소쇄원 (瀟灑園)


  - 1530년(중종 25) 조광조의 제자 소쇄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南面) 지곡리(芝谷里)에 건립한 원우(園宇).

지정번호 : 사적 제304호

지정연도 : 1983년 7월 20일

소장 : 담양군

소재지 :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시대 : 조선

크기 : 전체 건평 92.4㎡


소쇄원은 담양벌에서 무등산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광주호를 끼고 구비 구비 돌아 들어가면 별뵈(성산)의 남쪽 골짜기에 있다. 이 별서를 경영한 양산보(1503~1557)는 한 시대 걸출했던 인물 조광조(1482~ 1519)의 문하에 들어갔으나, 스승이 실권하여 화순 능주에 유배되고 죽음을 당하게 되면서 덧없는 세상을 뒤로하게 되었다. 성리학자들의 은둔과 은일사상을 배경으로 1520년부터 1557년에 걸쳐 소쇄원을 만들었다. 사적 제304호로 지정된 소쇄원은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으로서 약 108,560㎡ 규모이며, 주인이 기거하던 제월당을 비롯하여 광풍각, 대봉대, 내원을 감싸는 담장 그리고 시원스런 계류의 흐름으로 조성되었다.

 진입공간은 대나무 숲길을 따라 밝고 어두움의 원리를 보여주며, 동쪽 언덕을 가로지른 담장의ꡐ애양단ꡑ이라는 글은 북풍을 막아주고 열린 남쪽의 햇볕이 밝고 따뜻함을 말해준다. 소쇄원 공간의 중추를 이루는 광풍각은 계류에 더 가까이 하기 위해 축대를 쌓아 지어졌는데 주인과 방문객들이 온갖 풍류를 벌이던 곳이다. 양산보 주위에는 이종사촌인 송순을 비롯하여 사돈간인 김인후와 임억령, 고경명, 김성원, 송시열, 이후백, 송인수, 유희춘 그리고 이웃 환벽당 주인이던 김윤제 등 풍류객들이 드나들었다.

 면앙정, 송강정, 식영정, 소쇄원 등을 통해 학문과 사상이 시가문학이란 국문학 장르로 맥을 형성하면서, 송순의「면앙정가」와 정철의「성산별곡」 등이 지어져 담양은 우리나라 시가문학을 대표하는 산실로서 훗날 판소리 생성의 밑거름이 된다.


 

 

≪담양 소쇄원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

수양과 학문뿐 아니라 선비문화의 형성 또한 중요한 일이었으니 그를 위한 장소인 정자나 별서를 가꾸는 일은 그들의 정신세계의 총체적 결과였다. 소쇄원을 비롯하여 면앙정, 명옥헌, 송강정, 식영정 등이 대표적인 것들인데 그 중에서도 소쇄원은 주거기능을 갖춘 별서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정원건축으로 평가받는다.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1502~1557)가 30대에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그 후대에도 계속 확장이 이루어져 왔다. 양산보는 15세에 조광조를 만나 그 문하에서 수련한 유학자였는데,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유배당한 후 그 유배지까지 따라갔다가 사약을 받는 광경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고향으로 은둔하여 이 소쇄원을 만든다.

 소쇄원은 수많은 기록이 남아 증언하듯 많은 당대의 지식인들이 풍광과 여유를 즐긴 장소요, 그들의 정신세계를 격정적으로 토로하던 문화 담론의 산실로 자리하였다. 성리학의 거두 김인후를 비롯하여 송순, 기대승, 정철, 송시열 등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이곳을 넘나들며 그들 학문의 지평을 넓힌 것이다. 물길이 있는 계곡을 가운데 두고 전체 1500평 정도의 경사지에 꾸며져 있지만 사실 소쇄원의 영역은 지금은 차가 다니는 국도변에 심어진 대나무 숲에서 시작한다. 울창한 대나무의 숲이 만드는 벽과 물길 사이로 난 좁고 길 다란 길은 세속의 세계를 빠져나와 선계로 오르는 참배길이어서, 흐르는 물소리에 대나무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더해서 만드는 그 오묘한 분위기에 이미 우리의 마음을 씻는다. 대나무 숲이 끝나는 곳에 대단히 다이내믹한 풍경의 계곡이 밝은 햇살을 받으며 전개되는데 그 생김새가 대단히 복잡하다. 북쪽 계곡에서 흘러온 물길이 이런 저런 바위틈과 위를 지나며 부딪치고 모아져서 서로 다른 소리를 만들어 계곡 안을 가득 채운다. 건너편에는 집이 두 채가 있는데 위에 있는 3간의 집이 이 소쇄원의 주인이 거처하는 제월당(霽月堂)이며, 아래 가로세로 각 3간의 팔작지붕의 집이 주로 손님들이 기거하는 광풍각(光風閣)이다. 광풍제월이라 했던가. 주인 거소는 정적, 손님 거처는 동적 비갠 후 떠오른 달빛에 부는 청명한 바람…. 참으로 기운이 맑고 밝아 가히 소쇄하지 아니한가. 듣기만 하여도 마음은 이미 맑아진 듯하다.

 이 작은 두 건물은 지극히 소박하고 간단하다. 따라서 햇살 가득한 아름다운 자연 계곡에 순응하듯 그냥 세운 두 건축을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소쇄원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몇 개의 레벨 차이로 인해 다양한 동선을 만드는 이 계곡 속에 이뤄진 공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위 사이에는 다리도 있고 징검돌도 있으며 세족할 공간도 있다. 물레방아도 있고 연못도 있으며 경사진 지형을 오르기 위한 계단과 석축 등이 슬쩍 슬쩍 있는데 이들이 심상치 않은 것들인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인공 건조물이다.

 이들이 앉은 방식을 보면 대단히 교묘하다. 주인이 기거하는 높은 곳에 있는 제월당의 레벨에는 꽃과 나무와 담장과 수평으로 연결되는 정적 요소들로 이뤄져 있고, 풍류의 손님들이 드나드는 광풍각은 그 모양도 활개치듯 오르는 처마선이 흐르는 물과 변화무쌍한 바위와 그들이 만드는 소리들과 함께 대단히 동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그 두 레벨 사이에 주된 통로가 삽입되어 있는데 이 길은 때로는 단을 디디고 때로는 바위를 건너며 때로는 물길을 도는 유보도(遊步道)가 되어, 두 다른 레벨을 이으면서 서로 교류하게 하고 부딪치게 하여 일체를 이루게 하는 매개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