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갑사 (道岬寺)


지정번호 : 전남문화재자료 제79호

지정연도 : 1984년 2월 29일

소재지 :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월출산

시대 : 신라 말기


 도갑사는 산세가 빼어나고 풍광이 아름다워 옛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이라는 산자락 아래 자리 잡고 있다. 신라의 4대 고승 가운데 한 분이신 도선(道詵)국사께서 창건하신 대가람으로 그 뒤를 이은 수미왕사와 연담선사, 허주선사, 초의선사 등 역대 고승대덕들이 주석 하시면서 깨달음의 참다운 이치를 널리 펼치셨다. 해탈문(국보 제50호)과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문수 보현보살 사자 코끼리상(보물 제1134호), 대형석조, 그리고 도선수미비 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도갑사는 월출산 남쪽 도갑산(해발 376m)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 넓은 산자락에 자리 잡은 도량으로 신라 말 헌강왕 6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현재 고려시대의 기록은 자료 유실로 알려진 것이 없고 조선 이후의 발자취는 소상히 남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원의 중창은 1456년(세조2년) 수미(守眉)왕사에 의해서였다. 수미왕사는 왕실의 어명을 받들어 국가적 지원으로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을 세웠고, 부속 암자만 해도 상동암, 하동암, 남암, 서부도암, 동부도암, 미륵암, 비전암, 봉선암, 대적암, 상견암, 중견암, 하견암 등 12개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원 중창은 그 후로도 계속 진행되었는데 '억불숭유'의 열악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대규모의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도갑사가 불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1653년(효종4년)에는 '도선수미비'와 '월출산도갑사석교 중창비'가 세워졌는데, 당시 영의정과 형조판서 등 국가의 지도급 인사들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도갑사의 위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 후로도 사원의 중수는 계속 이어져 1677년(숙종 3년)에는 당간석주를 세웠고, 1682년에는 대형 석조(石槽)를 조성하였다. 18세기 중엽에는 연담 유일 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당시 불교사전이라 할 수 있는 '석전유해'를 편찬하였다. 그런데 19세기 이후의 연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유실되었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일제시대와 6.25전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다. 더구나 1977년 참배객들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웅보전과 안에 모셔져 있는 많은 성보들이 소실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81년 대웅보전 복원을 시작으로 차츰 옛 가람의 복원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1996년 주지로 부임한 범각(梵覺)스님에 의해 '도갑사 성보관'이 건립되는 등 유관기관의 역사적 검증을 거친 제8차 복원불사가 활발하게 전개되어 도갑사의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앞으로 도선국사의 재조명에 힘입어 새로운 불교문화의 성지로 자리 잡아 나갈 것이다.


1. 도갑사석조여래좌상 (道岬寺石造如來坐像)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소재 도갑사에 봉안된 고려시대의 석불좌상. 높이 3m. 보물 제89호. 불신(佛身)과 광배(光背)대좌(臺座)를 모두 갖춘 불상으로, 광배와 불신은 한 돌에 조각하였다. 머리는 나발(螺髮)로 비교적 큼직한 육계를 얹었으며, 타원형의 얼굴에는 두두룩한 눈두덩, 넓적한 코, 작은 입 등을 표현하였다. 이 얼굴에서 특징적인 것은 좁은 이마인데, 백호(白毫)를 새겨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두 귀는 짧은 편이고 군살진 턱과 목의 삼도(三道)는 도식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둥글고 넓은 어깨에 신체의 굴곡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러한 신체적인 특징은 고려시대 초기 작품인 개태사지석조불입상(開泰寺址石造佛立像, 보물 제219호)이나 장곡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長谷寺鐵造毘盧咨那佛坐像, 보물 제174호)등과 공통된다. 당당한 가슴에는 우건 편단의 불의를 입고 있는데, 오른쪽 어깨에 ∨형의 옷 주름이 굵은 선으로 새겨져 있다. 오른쪽 어깨에서 팔과 가슴으로 흘러내린 옷 주름은 배 부분에 이르러서는 옷 주름이 거의 표현되지 않았다. 이러한 옷 주름은 통일신라기의 불상에서부터 표현되어 고려시대 초기의 불상으로 연결되지만, 통일기 불상의 양식보다는 장식적이고 형식화되어, 이 작품이 그보다 후대의 작품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왼손은 무릎위에 대고 있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위로하여 무릎위에 올려놓았고 무릎의 너비는 신체에 비하여 좁은 편이다. 머리의 육계와 나발의 표현, 얼굴의 세부 모습, 가슴의 표현 등에서 청량사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65호)과 친연성을 느낄 수 있으나 더욱 도식적이라 할 수 있다. 즉, 얼굴에서는 팽창된 뺨이 없어진 점과 군살진 턱의 모사 등 세부에서 전면적으로 투박성이 나타나고 있다. 통일신라기 불상의 특징인 육감적이고 풍만하며 탄력 있는 양식이 사라지고 도식적이고 추상적인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이 불상의 제작연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2. 도갑사 오층석탑

 신라 말 도선이 창건한 도갑사내의 석탑이다. 기단부(基壇部)의 바닥돌은 땅속에 파묻혀 있어 확인할 수 없으나 1층 기단으로 짐작되며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과 머리장식을 올린 형태이다. 기단 가운데 돌과 탑신부의 다섯 몸돌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1층 몸돌은 일반적인 예와는 다르게 4매의 엇물린 널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2층 몸돌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었다. 1층 지붕돌은 전체적으로 두꺼운 편으로 밑면에 5단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의 경사가 급하며 네 귀퉁이가 약간 들려있다. 2층 지붕돌부터는 폭이 좁아지고 지붕돌받침도 4층부터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정상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 : 머리장식받침)과 보주(寶珠 : 작은 공모양의 장식)가 올려져 있다. 이 탑은 기단이 1층으로 가운데기둥의 수가 1개로 줄어들고, 두꺼운 지붕돌, 5단에서 점차 줄어드는 지붕돌받침 수 등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3. 도갑사소장동자상 (道岬寺所藏童子像)

 신라 말 도선이 창건한 도갑사 해탈문 안에 있는 목조동자상이다. 국보 제50호로 지정된 해   탈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건물로 동자상은 뒷쪽 좌우칸에 모셔져 있다.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두 동자상은 총 높이가 약 1.8m가량이고, 앉은 높이가 1.1m 안팎으로 크기도 비슷하고 조각기법도 동일하다. 다리를 앞쪽으로 나란히 모아서 사자, 코끼리 등에 걸터앉은 두 동자상은 동물상과 따로 만들어 결합하였으며, 두 손도 따로 만들어 끼웠다. 현재의 손도 후대에 다시 만들어 끼운 것으로 생각된다. 두 동자상의 머리를 묶은 모양새는 매우 화려하며, 이목구비가 원만하여 동자의 천진스런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점에서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과 실천의 상징인 보현보살의 신으로 추정되며 사자와 코끼리를 탄 동자상이라는 드문 예 가운데 목조상으로서는 유일한 작품이다.


4. 도갑사 도선국사 진영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인 도선국사(827 898)의 초상  화이다. 도선은 주로 통일신라 말 고려 초에 활약했으며 비기(秘記:신기한 기록)나 풍수지리설과 연관되어있어 실재 인물이라기보다 신화적 존재로 파악되기도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기도하여 태조 이후 고려의 왕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초상화는 불교의 의식 때에 왕사나 대사 등이 손에   드는 장자를 들고 의자에 걸터앉아 약간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전신상으로, 화폭의 윗부분에 '도선국사진영'이라는 제목을 써 놓았다. 절에 전해오는 기록에는 도선의 초상화는 세조 2년(1456) 도갑사를 중창한 수미왕사의 제안으로 처음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은 이후 다시 옮겨 그린 것으로, 비단에 진한 채색을 사용하여 그려 놓았다.


5. 해탈문 (解脫門)

 조선시대의 목조건축물로 국보 제50호. 1960년에 있었던 중수공사 때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에 의하면 이 건물은 신미(信眉)․수미(守眉) 두 스님의 발원으로 1457년(세조 3)에 중건되어 1473년(성종 4)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2칸으로, 좌우의 한칸씩은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안치하고 있으며 중앙의 한칸은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의 정면에는 도갑사의 정문임을 알리는 '월출산도갑사'라는 현판이 중앙칸 창방 위에 걸려 있고, 한칸안으로 들어오면 다시 두 기중 사이의 창방위에 '해탈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바른 장대석 쌓기를 한 기단 위에 약한 배흘림을 준 두리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이출목(二出目)으로 된 공포(拱包)를 올려놓았다. 공포 위에는 대들보를 올려 보 끝은 외목도리를 받고 대들보 양쪽 끝 가까이에서는 마루 보 끝을 받는 포대공(包臺工)의 첨차가 그대로 우미량(牛眉樑)이 되어 앞으로 나오는 것을 기둥 위 대들보에서 받아 이것이 주심도리(柱心道里)를 받고 있다. 이 문의 건축양식은 기본적으로는 부석사조사당(국보 제19호)과 동일한 계통이나 특이한 점은 공포의 출목(出目)이 구조적으로는 이출목이면서 그 형태는 외일출목(外一出目)으로 된 것같이 보인다. 대들보 또는 마루보 위에서 마루도리나 대들보를 지지하는 포대공의 양식이 기둥머리에 있는 공포와 전혀 달라 마치 다포집 양식의 공포와 같은 형태로 된 점이다. 따라서 이 건물은 주심포(柱心包) 집 양식을 가장 많이 수용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포집 양식의 수법을 혼용한 가장 뚜렷한 건물로서 흥미있는 것이며, 우리나라에서 그 예가 많지 않은 산문건축(山門建築)으로도 매우 귀중한 것이다.


6. 소미왕사비

 이 비는 귀부와 비신과 이수가 모두 잘 남아 있는데 총 높이가 3.35m이고 비석의 높이만 2m이다. 돌거북의 머리는 눈쌀을 심각하게 찌푸린 용의 얼굴처럼 표현되어 있고 목이 짧으며 등껍질이 꽤 두꺼워 보인다. 이수에는 꽃잎처럼 화사하게 피어오른 구름무늬와 정면에서 얼굴을 마주보는 용 두 마리가 새겨져 있고, 양쪽 귀퉁이에도 가가용의 얼굴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인조 7년(1629)에 만들기 시작하여 인조 11년(1633)에 세워진 비인데, 그 양식과 수법이 고려전기에 유행하던 것과 비슷한 점이 특이하다.

 

 7. 미륵전 (彌勒殿)

 불상의 높이는 2.2m이고 광배까지 합하면 3m가 되며 대좌와 불신과 광배가 모두 한 개의 돌로 이루어져있다. 불상의 얼굴은 둥그스름한데 눈두덩은 두툼하고 코는 넓적하며 입이 작다. 이마가 좁은 편이고 육계는 큼지막하다. 왼편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은 가슴께에 두세줄의 주름을 만들고는 무릎을 감쌌고, 다리는 결가부좌하고 손은 항마촉지인을 짓고 있다. 배 모양의 광배에는 머리둘레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머리 위 양쪽에 화불이 한 구씩, 그 밖의 공간에는 불꽃무늬가 간략하게 새겨져 있다. 얼굴에서나 몸에서나 별다른 표정이라든가 생동감은 느낄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의젓함을 지닌 불상이다. 조각 수법은 둔한 편이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보물 제89호로 지정되어 있다.


 

 

8. 도선 수미비 (道詵 守眉碑)

 도갑사를 창건한 도선국사와 중창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로 전체 높이가 4.8m에 이른다.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서 얼핏 보면 요즘 새로 세웠나 할 만큼 말끔하다. 이 비석이 완성된 것은 효종 4년(1653)이었지만 만드는 데 17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아주 크고 미끈한 거북이가 비석을 지고 고개를 틀어 절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다. 입에는 여의주를 물었는데 벌린 입 틈으로 우렁찬 소리라도 새어나올 듯하다. 두툼한 등껍질 위에 가장자리가 말린 넓은 연잎이 조각되어 비신을 받고 있다. 이처럼 구름이나 연꽃무늬가 아니고 연잎으로 비신을 받친 것은 조선시대의 비에서만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몸통이나 머리에 비하면 발 부분은 빈약하다.


 

 

 

 

 

9. 대웅보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8작 지붕으로 된 다포식 단층으로 공포의 살미첨자 끝은 앙설로 쇠석위에 조초각된 연봉이 하나씩 놓여져 있다.


10. 국사전

 목조 맛배지붕 주심포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로 선각국사 도선과 수미왕사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 산내 암자


- 상견성암 (上見性庵)

 상견성암에 있는 바위에는 월출산의 빼어난 경관을 칭송하는 "천 개의 바위봉우리 는 서로 빼어남 견주고, 만 개의 구렁은 그 흐름을 다툰다"는 문구가 새겨 있다 가파른 절벽 위에 풍경처럼 매달린 절이 흔들흔들 구름 끝에 걸려있고, 계곡과 봉우리가 서로 빼어남을 자랑하는 경관과 산정의 샘물 맛이 일품이다. 또한 상견성암은 스님들의 수행처로써 많은 고승들이 주석하시면서 수행했던 곳이며, 현재도 수행이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 동암 (東庵)

  동암은 옛 도갑사 12 암자 중 상견성암과 함께 유일하게 남아있는 암자이며, 약사여래불의 기도도량으로써 많은 영험을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동암에 있는 우물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약수로 소문이 자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