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embers.iWorld.net/ltwolf/

한국 불탑 양식의 변화

1) 삼국시대의 불탑유형

불탑은 재료에 따라 목탑, 석탑, 전탑으로 구분된다. 전탑은 중국에서 크게 성행하였고 목탑은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며, 이에 비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석탑이 대종을 이루게 되었다.

불탑을 조성하는 재료가 다름에 따라 그 구성 양식 또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데, 우리 나라의 불탑은 석탑이 대종을 이루면서 그 양식을 정착시키고 또한 주변의 다른 불교 문화권과는 다른 독창적인 양식을 전개시켜 나갔다.

삼국시대의 불탑이 처음부터 석탑으로 조성된 것은 아니다. 불교 전래와 함께 우리 나라 초기 불탑의 양식은 목탑으로 보여지며, 그 기본 평면은 방형이었다는 것은 거의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고구려의 목탑 터로 추정된 청암리의 8각기단이 다각형을 이루고 있는 사실에서 하나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 같은 다각형 기단은 후기에 와서 고려시대 흥왕사의 8각 목탑과 주로 북한을 중심으로 유행한 석탑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석탑 조성이 유행하기 이전 목탑의 조성은 문헌 사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신라 선덕여왕 시대에 조성된 황룡사 9층탑이 목탑이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여러 목탑들이 조성되기도 하였으니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목탑은 법주사의 팔상전이 있을 뿐이다. 또한 익산 미륵사지에서는 목탑 양식의 석탑 1기가 남아있는데, 이를 통하여 우리 나라에 석탑이 유행하기 이전에 목탑이 그 주류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백제는 이와 같이 목탑을 본받아 석탑을 조성하였으나, 신라 석탑의 발전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백제와 같이 목탑을 본받은 석탑 조성이 아니라, 전탑을 모방하여 석탑을 건립하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현존하는 석탑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는 분황사 석탑은, 안산암을 벽돌같이 작게 잘라서 쌓았으며 그 양식은 중국의 전탑을 모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라에서 순수한 전탑이 건립된 것은 대신라시대에 이르러 경북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하였으며, 이 같은 모전석탑 양식은 고려까지 계승되어 경기도 신륵사에 한 예를 남겨놓고 있다.
 

불탑 조성 초기
삼국시대 말
 
 
고구려
정방형의 목탑이 대종을 이룸
사료 부족으로 알 수 없음
백제
목탑을 본받은 석탑 조형 → 익산 미륵사지 석탑→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목탑 양식을 예술적으로 변형)
신라
전탑을 본받은 석탑 조형 → 분황사 모전석탑 → 경북 의성군 탑리 폐사지 5층 모전석탑 (양식적인 정비)
표 1) 삼국의 불탑 변형 과정 

2) 대신라시대의 불탑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 일부 지역을 통일하면서 풍요로운 문물의 혜택을 입어 많은 불사를 이룩하였다. 그 중 통일기의 초창기에 건립된 불탑으로 생각되는 것이 감은사지 3층 석탑이다. 이 3층석탑은 석탑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한 기풍을 지녔으며 쌍탑을 이루고 있어서 통일 후부터 유행한 쌍탑가람의 시원이라는 것이 주목된다.

우리 나라의 석탑은 연대가 내려옴에 따라 석재조립의 수효가 적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석탑의 규모가 축소되는데 따른 것으로서, 8시게 중엽의 불국사 3층 석탑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감은사탑 또한 3층을 이루었으며 탑의 맨 위에도 찰주가 남아있을 뿐 상륜은 없어졌다.

감은사지 석탑에서 두 가지 계통의 양식이 하나로 종합된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하나는 백제 석탑을 따르는 것으로 탑신을 구성하는 기둥이나 벽석을 끼운 사실과 옥개의 양식을 목탑과 같은 방식에 의해서 낙수면을 경사지은 점이다. 다른 하나는 신라의 벽돌탑 양식에 따라 옥개석 받침에도 각 층마다 모두 5단의 규칙적인 층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 후의 신라는 신라와 백제 양 계통의 양식을 다같이 수용하여 통일의 상징인 것처럼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을 만들게 되었다.

이러한 석탑들은 모두 방형을 기본적인 평면으로 2층기단을 가지고 3층 또는 5층의 탑신부를 갖추고 있다. 또 세부양식에서는 거의 규격화된 수법을 보이고 있는데, 대표적인 특색은 옥개석 받침에 모두 5단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러한 방형의 석탑을 가리켜 석탑의 일반형이라 한다. 9세기에 넘어오면 경주지방 뿐 아니라 각 지방에서도 선종사찰의 건립과 더불어 많은 석탑이 세워지는데, 이 때의 석탑은 축소 이외에 기단이나 탑신에 신중상이나 보살상을 조각하는 특징을 지닌다. (화엄사 5층 석탑, 실상사 3층 석탑 2기 등)

이 일반형의 석탑 이외에 이들과는 전혀 다른 석탑이 8세기 중엽부터 새롭게 건립되기 시작하였는데, 대표적인 예로 불국사 다보탑과 4사자 3층석탑, 정혜사 3층 석탑을 들 수 있다. 이 중 다보탑은 법화경에서 살필 수 이는 다보불·석가불의 관계를 탑으로서 설명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 일반형 이외의 석탑을 특수양식의 석탑이라 부른다.

대신라에는 전형석탑과 일반형 석탑, 특수형 석탑의 3유형이 있었고, 또 일반형 석탑은 후기가 되면 주로 지방에서 건립된 석탑에서 탑신에 신중상·보살상을 조각하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3) 고려·조선시대의 불탑

신라의 석탑은 9세시기에 이르러 지방으로 보급되었으나 규모는 작아지고 조각기법은 퇴보하기 시작하였다.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개성을 중심으로 불탑이 많이 건립되었는데, 이는 대신라가 통일 이후 경주 지방에 많은 석탑을 건립하였던 것과 같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개경을 중심으로 건립된 불탑은 신라 이래의 방형 다보탑을 주류로 삼았으나, 북쪽 지방에 있어서는 평양을 중심으로 다각 다보탑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이들 석탑 중 신라 이래의 일반형 석탑으로는 개풍군 현화사 7층 석탑, 개성의 남계원 칠층석탑(현재 경복궁 소재), 영통사의 3층석탑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시대에 건립된 불탑으로서의 특색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옥개의 처마곡선이 4귀에서 발전되었으며 받침도 신라에 비하여 층급이 낮고 수효가 적어졌다. 또 기단을 넣어서 탑신이 높아졌으며, 현화사탑은 각 층에 조각이 있어서 한층 주목된다.

한편 고려말에 이르면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개풍군 경천사에 세워진 10층석탑은 다른 탑과 달리 대리석을 사용하였으며, 기단 3층 위에 10층의 탑신을 쌓아올렸다. 그리고 이 탑에서 특이한 것은 기단과 탑신을 가릴 것 없이 전면에 동물·초화·불보상 등을 조각하여 놓은 것이다. 이와 같은 탑은 조선 초기에 이르러 원각사에도 세워지게 되었다.

고려의 석탑으로는 규모가 큰 석탑 이외에 또한 규모가 작은 청석탑이 한때 유행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오늘날 금산사에 전한다.

조선조에 건립된 불탑으로 오늘날 전하고 있는 것으로는 낙산사 7층석탑, 수종사의 8각 5층석탑, 신륵사의 다층석탑 등을 들 수 있겠으나, 이들 석탑들은 모두 규모가 현저하게 작아졌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불탑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목탑인 법주사 팔상전을 들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