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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성곽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출반한 신라는 서남쪽으로 백제, 가야와 국경을 접하게 되고 이들의 도전을 받아야 했으며 바다 건너 왜(倭)의 침공도 그치지 않았다. 또 동북으로는 동해안을 따라 말갈이 수시로 침범해 왔고 진평왕때부터는 남으로 내려오는 고구려이 세력에 맞서 항쟁해야 했다.

 이러한 세력들의 틈바구리에서 성장한 신라는 일찍부터 성을 쌓기 시작 하였다.
시조 박혁거세가 왕 21년(기원전37)에 서울 금성(金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금성이 성곽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신라에서는 고구려와 백제처럼 도성을 따로 쌓지 않았다.
왕국의 주위에 나성이 없는 대신 경주 외곽에 명활산성이 도성 방어의 관문 구실을 하였으며, 20대 자비왕때에는 지방의 요새인 삼년산성을 쌓기도 하였다. 삼년산성은 신라의 삼국 통일전초 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성인데 3년에 걸쳐 축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통일신라의 성곽

 통일을 이루한 신라는 국토의 재정비에 따라 행정의 중심지역과 황해도, 평안도 등 새로 국경이 된 북방지역에서 대부분 축성이 이루어졌다. 

곧 문무왕 때에는 왕도 중심의 방어선이 완공되고, 신문왕 때에는 지방 중심지인 소경(小京)의 성곽이 축조되었으며 효소왕, 경덕왕 때에는 북방으로의 진출과 함께 장성의 축조가 이루어졌다. 

성덕왕에는 국경에 장성을 쌓아 북방의 경계를 굳게 하는 한편 동해의 왜구를 막기 위해 울산에 관문성을 쌓아 동해안 방비를 튼튼히 하였다. 

현덕왕 18년에 평양 북계선(北界線)이 확정되었고 그 이후에는 축성의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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