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kohap.co.kr/together/event/palace/index3.html
 
신라의 궁궐

 신라는 기원전 57년부터 935년까지 56대 992년 동안 존속한 고대 국가로서 7세기 중엽에 이르러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하여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다. 신라는 통일 전후로 여섯시기로 나누어 살펴본다. 

 
| 제1기 | 제2기 | 제3기 | 제4기 | 제5기 | 제6기 | 발해궁궐|
 
제1기 

제1기는 기원전 57년부터 356년까지로 연맹 왕국의 완성기로 부를 수 있다. 신라 최초의 지배자인 혁거세는 금성을 쌍아 경성으로 삼았으며, 5대 파사니사금 22년 월성을 쌓고 왕이 이곳으로 옮겨 거쳐하였다. 또 기원전 32년에는 금성 안에 궁실을 지었는데 314년에는 처음으로 궁궐이란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그 의미는 궁실과 같다. 금성 안에는 그 시기에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등으로 구분되어 불린 지배자가 거쳐한 궁궐이 있었고 우물과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제2기 

356년부터 514년에 걸친 시기로 귀족 국가 태동기로 불리며 이 시기 지배자의 호칭을 따라 마립간 시대라고도 한다. 이 시기의 궁궐은 앞 시기에 비하여 많이 확대, 발전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궁성에 대하여는 "487년에 월성을 수리한 뒤 이듬해 금성 에서 월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496년에 중수하였다"라는 정도의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편 제 2기에 왕권이 얼마나 강화되었는지는 이 시기에 축조된 대규모의 고분 곧 황남대총, 금관총, 천마총 등과 출토 유물을 통해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제3기 

514년 654년까지로 귀족세력의 연합기로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시기이다. 이때 궁궐에 대한 기록으로는 두가지가 주목되는데 첫째, 날이 가물자 왕이 정전을 피하여 남당에 나아가 정치를 하였다는 기록과 둘째, 진평왕 7년에 대궁, 양궁, 사량궁등 3궁의 일을 모두 맡아보게 하였다는 기록이다. 위에서 정전은 월성 안 궁궐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데 514년 법흥왕이 즉위했다는 자극전이나 651년이 기록에서 나오는 조원전이 이 정전인 듯하다. 또 정월 초하루에 왕이 조원전에 나아가 백관들의 신년 축하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어 궁궐안에서 신년 의례가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제4기 

654부터 780년 까지이며 통일신라의 황금시대이다. 문무왕은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켜 삼국통일을 이룩하였을 뿐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를 정복함으로써 얻게 된 막대한 재물과 노동력을 활용하여 경주를 통일 왕조으 수도답게 변모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경주의 도시 전체를 일신시키려던 계획은 실현하지 못했지만 선왕으로부터 물려받은 궁궐을 장려하게 수리하는 한편 새로운 궁궐로서 동궁을 창조하였다. 한편 문무왕은 재위 후반부인 14년 이후부터 21년 숨을 거둘때까지 줄곧 궁궐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궁을 짓는데 몰두 하였다. 최종적으로 경성 전체를 새롭게 만들려고 하였을 정도로 신라의 궁궐 건축사에서 가장 주목받을 업적을 남겼다. 또 문무왕 14년에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고 화초를 심고 진기한 짐승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서 못은 안압지인 것으로 짐작된다. 안압지 주변의 건물터는 형식과 규모로 보아 대규모의 궁궐이 이곳에 조성되어 있었음을 보여 주며 특히 월성과 가까운 못 남쪽에도 많은 건물 터가 남아 있어서 월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전체가 한 궁궐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제5기 

780년부터 889년까지의 호족 세력 등장기로 신라의 쇠퇴가 빠르게 진행 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궁궐을 새로 짓거나 도성을 보강하는 공사를 크게 벌인적은 없으며 건물 하나를 세우거나 궁궐 안 중요 건물을 중수하는 것이 고작 이었다. 다만 사찰 건축으로 봉은사, 해인사, 황룡사 9층탑이 이 시기에 이룩되었다 

제6기 

889년부터 935년까지의 내란기로 신라의 멸망기다. 전국 도처에 군웅들이 할거하여 지방의 통제가 불가능하였고 왕국의 수비도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그 가운데 견훤과 궁예는 각기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세우고 왕을 칭하고 도읍지를 정하여 궁궐을 짓기까지 하였다. 918년에 궁예를 쓰러뜨리고 즉위한 태조 왕건은 국호를 고려라 고치고 송악에 서울을 정하였다. 이리하여 1천년 고도로서 찬란한 문화를 남겼던 경주는 지방의 한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통일신라 왕조의 중심이었던 월성, 동궁 및 여러 궁궐들도 버려지게 되었다. 

발해궁궐 

발해는 통일신라와 같이 7세기 말기부터 10세기 전기에 걸쳐 한반도와 만주 지방에 남북의 형세를 이루어 존재하던 왕조이다. 발해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들 스스로가 남긴 역사책이 없고 멸망뒤 고려로 망명해온 유민들조차 역사를 기록하지 않아 자세한 사항은 고려의 문헌을 통해서만 추측이 가능하다. 현재 남아 있는 상경 용청부의 석등과 장륙불상, 또 온돌과 굴뚝을 갖춘 살림집 등을 통해 그 시기에 만간의 살림짐에도 온돌이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등은 고구려의 자를 사용하여 제작한 것으로6.3미터의 화사석을 중심으로 지은 것이다.

 

| 고구려 | 백제 | 신라 | 고려 | 조선 |
 | 상위메뉴 | HOME

Copyright(c) 1997 by KOHAP. All rights reserved. Last edited : June 1, 1997 
webmaster@www.koha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