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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라역사의 큰줄기

 신라는 기원전 1세기경 영남지방에서 일어나 고구려, 백제와 더불어 한반도의 판도를 가르고
7세기에 최초로 한반도를 통일한 국가입니다.
시조인 혁거세(爀居世)로부터 경순왕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하였습니다.
나라의 이름은 신라, 신로, 사라, 서나, 서야, 서라, 서벌 등으로 불리웠는데
모두가 마을을 뜻하는 사로(斯盧)로 해석됩니다.

 신라는 삼국사기에 의하여 3기로 나뉘어집니다.
첫번째는 상대(上代:시조~28대 진덕여왕)이고 두번째는 중대(中代:29대 무열왕~36대 혜공왕),
세번째는 하대(下代:37대 선덕왕~56대 경순왕)입니다.
특히 이중에서 상대는 원시부족국가에서 씨족국가를 거쳐
고대국가로의 발전을 확립한 시기이고, 중대는 한반도를 통일하고
문화를 꽃피운시기입니다.
 

2..신라의 건국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는 혁거세에 의하여 기원전 57년에 건국되었습니다.
혁거세는 양산(楊山)근처의 우물가 곁에 있던 알에서 나온 아이인데,
여러 부족중의 하나인 고허의 촌장이 데려다 키웠습니다.
혁거세의 나이 13세가 되자 여섯 부족이 그를 추대하여 왕으로 즉위하였으며
왕호는 거서간(居西干), 국호는 서나벌이 되었습니다.
혁거세는 즉위 직후 용의 오른쪽 갈빗대에서 태어난 알영이라는 여인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신라 시조의 난생설화는 고대부족의 설화가 역사가에 의하여 과장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신라는 박,석,김의 세 성씨중에서 왕을 추대하는
여섯부족의 연맹체를 이루고 고대국가로 발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신라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가장 구석에 위치하였고,
사회적으로 경주분지에 정착한 유리민의 소요로
백제나 고구려에 비하여 가장 늦게 발전하였습니다.
 

3.신라의 대외관계

신라와 백제, 고구려는 초기에 우호관계에 있었습니다.
신라는 377년에 광개토대왕이 맹위를 떨치던 고구려와 국교를 맺었으며,
377년과 382년에는 고구려의 알선으로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였습니다.
또한 내물왕은 왜구가 자주 친입하여 괘롭히자 399년에 고구려의 5만 원병과 함께
백제와 연합하여 왜구를 무찌르기도 하였습니다.
눌지왕때에는 고구려의 평양천도 등으로 인하여 군사적 압력이 거세지자
그 대비책으로 백제와 나제공수동맹을 맺었습니다.

이후 532년에는 본가야를 합병하여 국토를 넓히는 등
강력한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국경을 둘러싼 갈등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백제와의 나제동맹이 깨지면서 가시화되었습니다.

한강은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옥한 옥토를 포함하는 요지이자,
세 나라의 가운데에 위치한 충돌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신라는 심해지는 군사적, 외교적 압력을 해결하기 위하여
고구려의 10군(郡)과 한강유역의 전 백제영토를 함락하고 합천에 대야주를 설치하여
백제방어의 기점으로 삼는 등 수동적 약소국의 형태에서 벗어나
능동적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4.신라의 삼국통일

신라의 삼국통일은 고구려와 백제의 연합공격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신라의 팽창과 중국의 당과의 활발한 교류에 대한 대응으로 백제와 고구려는
선덕여왕때부터 본격적인 연합공격을 감행하였고
이것은 신라와 당나라 간의 교역 뿐 아니라 신라의 국토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이때 김유신은 국경의 군주로서 백제에 대항하였으며, 유학생, 유학승을 통한
친당정책은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이후 무열왕에 이르러 나당연합군은 660년에 백제를 멸망시키고
문무왕은 백제의 부흥운동을 제압하고 668년에 고구려를 정복하였습니다.
이때 당나라는 일방적으로 옛 백제의 땅에 웅진도독부를 두어
자국의 관리와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신라마저 계림도독부라 칭하고 문무왕을
계림도독에 임명하는 등의 압력을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신라는 당을 축출해내기 위하여 고구려 부흥군을 도와 당에 대항하도록하고,
국토의 잠식 투쟁에 들어갔으며 671년에는 백제의 옛수도인 사비성을 빼앗는 등의
본격적인 항쟁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675년에 매초성에서 당의 20만 병력을 섬멸하고, 676년에는 해상권을 장악함으로써 완전한 삼국의
통일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반도 역사상의 첫 통일이며
신라는 이로 인하여 영토를 세배이상 팽창시키게 되었습니다.
 

5.신라의 문화유산

고구려, 백제와 마찬가지로 신라 역시 지역적인 특징을 갖춘
많은 문화유산을 남기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불교로서
신라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특이한 불교의 수용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제와 고구려는 국가적 사절을 통한 외교적 창구를 통하여
불교를 수용하였으나 신라는 초기에 무명인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전도됬으나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소지왕때 아도(阿道)가 전파했으나
이 역시 박해 속에 끝나는 등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법흥왕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이를 전파하려 했으나 귀족의 반대로
이차돈이 순교를 당하는 등 많은 시련끝에 결국 홍륜사를 건립함으로써
불교를 널리 알리게 된 것입니다.

신라 불교의 성격은 고대국가의 이념과 사상을 통일하고 국가의 발전을 비는
호국신앙과 현실구복적 신앙으로 수용발전되었다는 점에서
또다른 차이를 보입니다.
많은 신라의 문화유산은 이러한 신라 불교의 성격을
잘 간직하면서도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 형태를 융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초기의 신라 문화재는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뒤에는 백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뿐만아니라 멀리의 중국과 인도의 남방문화까지도 수용하면서
패기있고 섬세한 양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후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면서 화려하고 세련된 문화 유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