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1 기의 사회구조와 신분제


9245031 조기정
9545014 김현숙

9545015 김현영

 

Ⅰ. 머리말

신분이란 전근대 제 국가에 공통된 것으로 국가의 지배체제 속에서 법에 의해 규정되어 고정된 사회적 지위를 가리킨다. 지위를 확정하는 것에 의해서 상하의 존비와 귀천의 등급이 정해져 지배체제가 유지되었다. 이러한 신분은 대체로 혈통에 따라 세습되고 법제로 규정되지만 한편으로 사회조직 내에서 담당하는 기능이나 출신지역등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되어 변동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지금부터 사회구조와 신분제가 국가권력과 지배층 그리고 民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질서화되고 변동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 문

1. 향촌사회와 본관제
골품제의 모순과 이로 인한 나말 시기의 사회변동은 민의 저항을 일으키게 했다. 그래서 고려전기에는 이러한 과정과 성과가 일정하게 반영되었다.

고려의 본관제는 나말려초의 사회변동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성립되었다. 따라서 재편된 지역사회의 영역관계와 내부의 계층관계를 포함한 사회.경제적인 내용들이 고려되어 이루어졌으며, 그 내용들은 적(籍)의 작성을 통하여 조정되고 실체화되었다. 그리고 재편된 지역사회의 공동체적 관제를 국가의 지배질서속으로 편제하는 조치가 필요하였는데 그것은 치읍(置邑)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치읍은 대개 토지와 호구의 파악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때 정부의 파견관들은 재지세력의 협조를 받아 적을 작성하였는데 지역별로 시간적인 차이가 존재하였다. 그 이유는 고려 초기 국가권력이 재편된 지역사회들을 일시에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고 지역사회내 각 세력간의 이해조정도 어려웠다.

국가는 공민과 토지를 파악하여 재정기반을 확대하고, 호부층은 재지지배를 보장받았으며 중앙관직으로의 진출이 보장되었으며 민(民)은 공민으로 되어 신분 예속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과도한 수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됨으로써 이해 조정이 되었다. 이런 관계속에서 본관제에 의한 향촌지배질서는 다음과 같았다. 당시 지역사회 내에서는 자위체제를 운영하면서 타지역에 대한 개별성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이것은 고려전기 '군백성'이나 '드디어 군족이 되었다' 등의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가권력은 지역사회 내에 실재하는 계층관계를 이용할때 쉽게 관철될 수 있으므로 이들은 호부층을 중심으로 직영체제를 수립하고 적을 작성하였다.

본관제의 지배방식은 영역간에도 계서적인 지배형태를 채택하였다. 군현제와 부곡제, 주현과 속현의 구별이 그것이다. 영역간의 계서적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영역규제가 실시되었다. 영역규제는 호구와 전정 모두에 실시되었다. 호구의 경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본관으로의 쇄환이 추구되었다. 전정의 영역 내 제한의 경우는 1109년 신보반에 속한 백정들에 대한 특혜조치로서 그때까지 동일한 영역 내에서만 가능하였던 전정의 계승을 이들에게는 특별히 타읍에 있는 것도 계승할 수 있도록 했다.

본관제의 면모들이 변동기의 지역사회질서를 수용한 위에서 구축되었다고 볼 때 지역사회의 공동체적 면모와 규제력에 의존했을 것이다.

국가에 의한 촌락지배는 재지의 유력계층, 즉 향리층이나 촌장.촌정계층을 통하여 실천되었다. 당시의 군현지배가 혈연공동체의 수장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군현제가 신분제적으로 편성되었다. 향리나 촌장.촌정계층은 국가의 지배질서속에 역(役)을 담당하는 존재로서 편입되어 국가의 지배력이 관철되고 있었다. 고려전기의 향도조직과 성격을 살펴보면 신라하대의 그것을 기본적으로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호부층들이 주도하는 본관의 정치적 공동체 즉, 읍사가 전면에 부각되었으며, 향도조직은 이 조건에 일정하게 제약받고 역으로 그것을 보강하기도 하였다. 지방의 지배세력들은 향도조직을 통하여 자기들이 주도해 지역내 통합을 강화하려 했던 것처럼, 국가적 차원에서는 팔관회와 연등회가 지방세력을 포섭.지배하는 장치로서 의미를 가졌다.


2. 직역과 양천제

고려시대의 신분은 경제상의 의미보다는 법제적.사회적으로 인정된 지위라는 점에 특징이 있으며 국역 부과를 중심으로 전체 주민을 양천제라는 기본틀로 파악하고 있다.

①직역
직역이란 근대 사회에서 자발적인 취업에 의하여 획득되는 직업과는 다르며 왕조 국가에서 국왕을 정점으로 한 지배층에 참가여부, 협조정도, 사회에서의 기여능력(寄與能力)등을 참작하여 의무인 역(役)이 지워진 것이다. 이러한 고려시대의 직역은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제도적인 장치를 가짐으로써 세습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직역이라 해도 개인은 성장이후 사회 활동 과정에서 여러 차례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그럼 직역의 개념에 대해 알아보자. 직역의 개념에는 연구자에 따라 여러 유형들이 제시된다.

첫째, 관직을 제외한 잡직.서리.공장.군인 등의 역으로 보거나 또는 토지 지급을 매개로 특정 부릇에게만 부과되는 의무가 직역이며 모든 개인에게 무차별적으로 부과되는 역은 신역이라는 견해

둘째, 군인.이속.잡직.서리 등이 부담하는 특수한 신역으로 보면서 광으로는 관직도 포함시키는 견해

셋째, 직역은 곧 신역이라 하여 군역.향역 뿐만 아니라 요역 관직까지 포괄하는 견해 등이 있다. 그리고 직역은 전정 연립제에 의해 그 역과 역을 수행하기 위한 경제 기반이 세습되고 동시에 역의 동원에 강제성이 있는 향역.기인역.군역 등 신역의 특수 형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②양천제
고려 사회는 양인(良人)과 천인(賤人)으로 뚜렷이 신분을 구별하고 있다. 양인은 양인으로 천인은 천인으로 영구히 유지시킴으로써 사회질서의 기본을 삼았다. 따라서 "천인은 영원히 천인화 한다"는 법제정(法制定)의 정신에 의하여 합법적인 신분 변화란 있기 어려웠던 것이다. 양인은 법제상 능력에 따라 세분된 직역내에서 신분을 이동시킬 수 있었지만, 이는 법제상의 폭을 가능한 한 넓게 해석한 것이고, 실제로는 같은 신분내의 지속성을 유지시키는 요소가 적지 않았다. 또한 직역은 양인만이 가질 수 있는 의무이며 동시에 권리도 될 수 있으며, 곧 신분의미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분의 분화는 양인에게만 집중된 문제이다. 양인의 신분은 입사자(入仕者), 향리(鄕吏), 학생(學生), 서인(庶人)등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려 신분제의 구조는 다음 표와 같다.

양인 입사직: 품관.진사.재생(齋生).급제.사심.서리
향 리: 향리.향직
학 생: 학생.유학(幼學)
서 인: 서인.군인.백정
천인 집단 천인 : 향.소.부곡.역.관.진의 주민
노비 공노비 : 궁원노비.관 노비
사노비 : 솔거노비.외거노비


3. 고려 후기의 사회구조 및 신분제의 변화

본관제에 의한 향촌사회의 지배질서는 12세기 이후 점차 변화하였다.

먼저 향촌 사회 지배질서의 변화된 모습으로 사회 경제적인 경작조건의 악화와 지배자의 소유지와 수조지를 집적하여 수조권을 가산화하는 현상이 늘어났다.

속현이나 부곡제 지역에 수탈이 보다 가중되었고 유망 등의 형태로 1차적 저항이 나타났다. 저항이 일어나면 본관제의 토지 긴박과 계서적 지배구조를 전제로 한 지배구조 하에 남은 지역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게 되어, 그들마저 저항하게 되는 구조적 모순에 빠졌다. 국왕과 지배층사이, 지배층 상호간에 부의 분배를 중심으로 이해를 달리하여 민의 동향에 대한 대책도 분열되었다. 이는 중앙 통제력 약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향촌사회 지배자들도 전기처럼 향촌 질서를 주도하지 못하고 수탈자로서 면모가 부각되었다.

이 시기의 또 하나 변화점은 신앙활동보다 향촌 공동체적 모습이 부각되는 '향도'의 출현이다.

12세기 이후 몰락 농민과 소농민들이 자기들의 기반을 보장할 수 있도록 향촌공동체를 재구성할 필요에 의해 출현했다.

다음으로, 국가 권력이 어떻게 지배질서를 재편하였는지를 살펴보겠다.

관(官) 주도의 향촌 통제를 시도하고 부곡제지역이 감소되면서 점차 지방제도가 일원적으로 편성되었다. 이는 유망 발생을 공권력으로 억제하고 안정적인 수취의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지방관은 과도한 수탈을 제한, 농업노동력 보호 등과 유망민을 안접시키는 과정에서 후기에 이완되자 현 거주지에 적(籍)을 붙여 수취대상으로 삼는 공호제를 실시했다.

이에 따른 신분계층 질서의 변화를 살펴보면 12세기 이후 사회 경제적 변화에 따라 신분계층 질서도 동요되었다. 신분 계층간의 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본관제를 구성하던 영역간 영역내 계서적 지배질서가 해체되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 공호제가 실시되면서 '공호양인(貢戶良人)'나 '공부백성(貢賦百姓)'이 보인다. 이 계층은 사적인 예속인.부랑민.노비층 등 조세부담에서 이탈하거나 제외된 계층은 물론 향리.지방별초.염호 등의 계층과도 구별된다. 전기에서 보이던 정치적 색채 대신 수취를 부담하는 계층으로서 성격이 뚜렷하다.

공호제 실시와 관련한 변화를 지적할 수 있다.

영역간의 계서적 지배질서 파괴로 부곡제 지역민과 일반 군현민 사이에 신분적인 동질화가 이루어졌다. 민의 무력 봉기를 통해 일반 군현으로 상층은 도모하였고 군현과의 충돌이 없었으나 특수한 수취부담이나 역을 달리 파악하고 축소시켰다.

'중간 계층' 계서적 지위상의 변화로 고려 후기에는 '장리백성(長吏百姓)', '기인백성(其人百姓)'등의 향리층이 백성층과 구분되었다. 향역은 고역으로 인식하고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정부는 향역부담자를 확보하기 위해 향리의 과거응시 제한, 응시 과목을 늘리는 등 제한을 가하며 향리에 대해 본관으로 복귀시키는 정책을 고수했다.

향리 뿐 아니라 기인, 경군역도 직역이라기 보다 천역으로 표현되어 기피 경향이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신분계층질서를 뒷받침해오던 전제와 역제의 결합이 해체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신분제 변동의 경제적인 계기를 토지 소유와 생산관계가 변동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공호제 실시가 민의 유망에 대응한 것이면서 또한 양인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사전 민전화로 양인 중 가혹한 수탈을 피해 농장에 투탁하고, 천인이 되는 일이 많아졌다. 법적으로 금지대상이었지만, 채무관계로 인해 양인의 노비화와 매매가 이루어졌다. 이런 경향은 재정 기반의 감소를 초래하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다.

또한, 노비가 양민 신분과 지배계층으로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농업 생산력 수준이 상승되고 그 바탕에서 농민층 분화가 진행되어 나타난 것이다. 무신 집권기 이후 비정상적인 정치과정 중에서도 천인 출신의 관계진출이 급증하였다. 첨설직이나 납속보관제, 호구 위조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사례는 개별적인 특별한 차원에서 이루어진 특별한 경우이므로 신분제가 변화했다고 할 수 없으나 사회 의식상의 변화를 초래하고 천인층을 자극하여 후기 노비 반란의 계기가 되었다. 고려 후기에 추구된 신분제 정비는 노비 변정 사업과 양반 호적의 정리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 정비 방향은 지배층을 양반에 한정시키되, 천인을 노비에 한정시키면서 양인을 확보하고 양인 내부의 계층적 동질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고 파악한다.


Ⅲ.결론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중세 1 기(고려시대)는 나말 말기의 어지러운 사회적.정치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왕권중심의 지배체제를 확립시켰으며 이러한 과정속에서 본관제와 양천제가 국가의 전반적인 지배체제가 되었다. 이러한 제도가 중세 1 기의 사회구조를 법제적.사회적으로 고정시켰으며 나아가 발전과 몰락의 길을 걷게 했다. 그리고 후기 대외관계의 변화와 농업질서의 변동과 사회변화에 따른 신분질서의 동요속에서 양인 내부의 계층적 동질성이 확보되어 가면서 한편으로 신분계층간의 상하이동이 광범하게 일어났음을 살펴 볼 수 있다. 이러한 조건속에서 중세 1 기는 중세 2 기로 넘어가는 발단을 마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