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kowon.dongseo.ac.kr/~d6002266/shin.htm
세계의 신화와 일본신화

차례

제 1 장 서론

제 2 장 세계의 신화

1. 수에르 신화

2. 이집트 신화

제 3 장 동남아시아의 건국신화

1. 한··일 건국신화 비교

i) 한국의 건국신화

ii) 중국의 건국신화

iii) 일본의 건국신화

iV) 한··일 세나라 신화의 비교

2. 천강난생신화와 천손강림신화

i) 가야의 천강난생신화

ii) 일본의 천손강림신화

iii) 천강난생신화와 천손강림신화의 비교

제 4 장 결론

참고문헌소개

제 1 장

서론

신화라고 하면 우리는 머리 속에 무엇을 떠올립니까?

우선 그리스, 로마 신화, 혹은 20세기의 컴퓨터 신화, 그도 아니면 아무개의 무슨 무슨 성공 신화... 이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가 망각해 버린 신화가 있다. 모르는 새 일상적으로 쓰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녹아 있는, 선조들의 삶에서부터 전해져 지금 우리의 생활에 살아 숨쉬고 있는 신화, 동아시아적 신화 말이다.

보통사람들은 '신화'라고 하면 꾸며낸 이야기 혹은 폭넓게 신뢰를 얻고 있는 허위를 연상한다. 장구한 세월을 살아남은 인류의 기록이자, 왜곡 없는 윤색이며, 강요하지 않는 종교이고, 허세부리지 않는 문학이다. 말하자면 신화는 심심풀이로 꾸며낸 픽션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태고의 현실에 대한 인간의 진술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 각국 신화의 다음과 같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창조,홍수,사랑, 도덕, 죽음, 종말 등의 소주제 아래 인류 공통 유산으로서 인문의 시원을 찾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소 다르더라도 현세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인간의 꿈을 대변한다는 점에서는 참으로 동일하다. 예컨대 성서에서 자주 인용되는 노아의 홍수는 다른 문화권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골소재다.인도에서는 물고기 한 마리가 자기를 돌봐준 대가로 한 남자를 대홍수에서 구출하는가하면 바빌로니아에서는 노아의 비둘기처럼 까마귀가 홍수가 끝남을 알려준다. 선교사들이 발을 들여놓기 훨씬 이전부터 하와이에도 비슷한 신화가 널리 퍼졌었고 중남미 아즈텍인들 사이에도 사악한 인간에 진노한 신들이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기 전에 착한 부부에게 미리 재앙을 알려주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한 독일의 지그프리트, 그리스의 테세우스등 세계 여러 곳의 영웅신화도 유사한 서사구조를 노출하고 있다. 

그런데 신화가 수십 세기가 지나도록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어떤 국가라도 그 탄생의 유례를 신화에 의해서 설명하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신화의 기능을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신화는 우선 모든 공동체와 종족, 민족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는 기능을 한다. 즉, 각각의 집단을 결합시키는 접착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덕적 행위의 체계를 이루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어떤 사회에서든 생활방식을 지배하는 규칙들은 항상 그것의 뿌리인 사화와 종교에서 합법성을 취해왔다. 그리고 신화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다양한 믿음의 원형인 것이다.

세계의 신화

1. 수에르 신화

인류 최초의 문명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양 강 유역에서 지금으로부터 5000년전에 발흥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여기에는 수메르, 바빌로니아, 아시리아문명이 포함되는데, 이 중 수메르가 가장 앞선다. 미국의 고고학자 사무엘크레머는 수메르인들이 이룩하고, 발견하고, 기록한 최초의 것들이 서른아홉가지나 된다면서 수메르 땅(지금의 이라크 남부)이 인류 문명의 시원지임을,그의 저서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다」(1956)에서 말했다.

에리두, 우룩, 우르 등의 도시 국가로 구성된 수메르는 '왕권은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믿었으며 하늘을 위해 제사를 올렸다. 우르에는 그들이 제사를 올렸던 신전이 아직 남아 있다.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의 창조 신화, 낙원 신화, 홍수 신화 등을 학교에서 가르친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들의 신화는「에누마 엘리쉬」, 「아트리하시스 이야기」, 「지우쑤드라 이야기」와 같은 설형 문자 점토판 문서에 실려 오늘까지 전해오고 있다. 수메르 신화에서 만물을 창조한 자는 태모신 닌후르쌍이었다. 닌후르쌍에서 하늘과 땅이 맞붙어 있는 우주산이 태어났다. 안(하늘의 신)과 키(땅의 신)가 결합하여 공기의 신인 ‘엔릴’이 나왔고, 그리하여 땅이 하늘로부터 분리되었다. 별, 해, 달도 만들어졌다.「지우쑤드라 이야기」에는 ‘안, 엔릴, 엔키와 닌후르쌍이 검은 머리(즉, 사람)를 만들었다. 땅밑에서 올라오는 작은, 기는 것들이 늘어났다. 들짐승과 네 발 달린 동물들이 들판에서 서로 즐겁게 놀았다.’이 같은 좋은 시절 지우쑤드라가 등장한다. 그는 매우 경건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할줄 아는 왕이었다. 그는 어느 날 기도를 하다 ‘인간의 모든 종자들을 멸망시키겠다’는 음성을 하늘로부터 듣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큰 홍수가 났다.‘거세고 거센 바람, 거친 폭풍이 한 곳에 모였다. 홍수는 배급 그릇들을 휩쓸어버렸다. 일곱 날 일곱밤 동안 홍수는 이 땅을 휩쓸어버렸고 거센 바람으로 큰 배는 물 위에 떠서 더 흔들렸다. …태양이 떠오르자, 하늘과 땅에 빛이 비쳤다. …우투는 빛을 큰 배 속으로 비춰주었다. 왕인 지우쑤드라는 우투 앞 나가 땅에 입맞추었다. 왕은 소와 양으로 제사지냈다.’수메르 신화는 오랫동안 잊혀져오고 있었으나 19세기 후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점토판 문서가발견됨으로써, 밝혀진 것이다. 오랫동안 잊혀지고 또 이 땅에이질적인 문화가 들어섰기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수메르 신화는 생소하다.

2. 이집트 신화

슈와 테프네트 수메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일강 유역에선 고대 이집트 문명이 일어났다.거대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웅장한 신전과 화려한 벽화를 간직한 왕들의 묘등은 그 시대의 문화 유산이다. 상·하 이집트로 나뉘어져 있던 왕국을 하나로 통일한 최고의 권력자 파라오는 바로 신이었다. 피라미드는 신격화된 파라오에바쳐진 무덤이었다.

파라오를 신이라 여겼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많은 신들을 모셨다. 신화는 자연 그내용이 풍부해졌다. 그 중 하나인 「헤르모폴리스 신화」의 첫머리는‘나(우주의창조자)는 신들을 내 땀으로 만들고, 인간은 내 눈물로 만들었다.’라고 되어있다. 이렇게 볼 때 이집트인들은 신과 인간 사이에는 그다지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보았던 것 같다.

초기 이집트의 수도였던 헬리오폴리스는 태양신을 숭배하는곳이었다. 주신(主神)은 아톰. 천지와 신들을 창조한 자로서 원초의 대양인‘눈’의 아들이었다. 아톰 신화는 카이로 남쪽 고(古) 왕국 시대의 수도인 멤피스로 전해져 더욱 발전되었다. 아톰은 슈(男)와 테프네트(女)를 입으로 뱉어내었다. 슈는 공기, 테프네트는증기의 신이 되었다. 슈와 테프네트는 짝을 이루어 게브와 누트를 낳았다. 이들이 서로 껴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 슈는 누트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고, 게브는 땅에 눕혀 서로를 떼어놓았다. 이들은 각기 하늘과 대지의 신이 되었다. 게브와 누트 사이에서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 등의자녀들이 태어났다.

오시리스는 자연의 신, 식물의 정(精)의 변신으로서 수확기에 죽었다가 새싹이 돋을 때 되살아난다하여 죽은 자의 신이기도 했다. 죽음의 문제를 항상 심각하게 생각했던 이집트인들은 죽었다가 다시살아나는 오시리스를 최고의 신으로 숭배했다. 그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었던 것이다.

이시스는 오빠 오시리스와 결혼하였으며 여자들에겐 곡식을 빻고 삼으로 실을 만들어 옷감 짜는 법을가르쳤다. 남자들에겐 병을 고치는 방법과 가정 생활에 관해 가르쳤다. 어느 날 오시리스는 세계제패를 위해 먼 길을 떠났다. 얼마 후 이시스는 남편이 난폭한 동생 세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듣게 되고 관을 버렸다는 나일 강가로 가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그 사이 관은 나일 강을 따라지중해로 흘러 페니키아 해안까지 떠내려갔던 것이다. 이시스는 페니키아까지 가서 남편의 시신을되찾아 와서는 세트의 눈에 띄지 않게 저습지에 감추었다. 그러나 세트는 그것을 찾아내었고 시신을열네 토막으로 내어 사방에 흩뿌렸다. 이시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시신을 수습하여 오시리스의 몸을 원래의 상태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여러 신들의 도움을 받아 죽은 시신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는의식을 행했다. 덕분에 오시리스는 소생하여, 죽음을 이긴 신이 되었다. 오시리스와 이시스 사이에선 호루스가 태어났다. 호루스의 운명은 오시리스의 살해자를 제거하는일이었다. 그래서 신전의 벽면에는 그가 세트의 추종자들과 싸우는 장면들이 새겨져 있다. 호루스는저승에서 죽은 자들을 오시리스 앞으로 안내하여 영혼의 무게를 재는 일(사후 심판)을 감독하는 일을맡기도 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신으로 라(Ra)가 있다. 태양의 신으로 창조자였다. 본래 태양신은 원초의 대양인‘눈’의 품안에 있었다. 그러나 태양신은 그 광채를 손상하지 않기 위해 눈을 감는다든지, 하얀 연꽃속에 숨는 등 고생을 해야 했는데, 결국 그는 그런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힘으로 대양 위해 우뚝일어서서 ‘라’라는 이름으로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되었다. 창조자, 세계의 지배자인 라는 다른신들을 설득하여 중왕국 시대 이후 이집트 전역에서 가장 강력한 신이 되었다. 고왕국 시대에 스스로신이라 칭했던 파라오들은 이제 신의 아들, 즉 라의 아들로 격하되었던 것이다. 라는 오벨리스크로표현되기도 했다. 이집트 신화는 훗날 그리스 땅으로 전해져 그리스 신화 속으로 녹아들어가 그 생명을 이어간다..

제 2 장

1. 한국, 중국, 일본의 건국신화

신화에는 여러종류(영웅신화, 창조신화등)가 있지만 이들을 모두 다루기에는 범위가 너무 광범위 하므로 이중 건국신화를 다루어 볼까한다.

어떤 국가라도 그 탄생의 유례를 신화에 의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건국신화라는 것은 민족의 성격과 함께 한나라의 통치이념과 정당성을 부과하며 혈연이 없었을 그룹을 혈연이 있었다는 것으로 치고서 연결하는 조작이 행하는 기능을 가진다.

대부분의 건국신화는 천손강림이 있어서 천신(天神)집단이 지방 호족을 흡수 합병해 나가거나 지방 호족이 나라를 양도하는 절차를 거친다. 그리고 천손족이 지방호족을 그 지배하에 넣고 중앙집권이 이루어진다.

멸망한 왕조의 신화는 계승되지 않고 새왕조는 다시 자기들의 신화를 만들어지고, 그러던 중에 역사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고대의 종말과 함께 그 실제적 기능과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황패강 교수는 15년간 일본신화연구를 해오면서 '일본의 고대문화는 우리가 전해 주었다'는 선입관을 갖지 않고 가능한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일본의 신화에 접근하려고 했지만 그럼에도 역시 한국, 중국과의 관련을 빼면 일본 신화의 울타리가 상당부분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한국과 중국의 건국 일본의 건국신화에 대하여 미친 영향과 각국간의 건국신화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한·중·일 신화는 모두 왕의 정통성의 근거로 천손이라는 핏줄의 신성함을 내세운 것으로서, 당대에선 정치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건국신화라는 것은 민족의 성격과 함께 한나라의 통치이념과 정당성을 부과하며 혈연이 없었을 그룹을 혈연이 있었다는 것으로 치고서 연결하는 조작이 행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리고 서양의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강제로 추방당한 반면 동양의 천손들은 스스로 천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며 이는 자연, 곧 신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것이 동양의 기본적인 사상이 건국신화에도 나타나 있음을 의미한다.

i) 한국의 건국신화

옛 기록에 의하면, 옛날 하느님의 서자 환웅이 하늘 아래로 내려가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이에 3천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밑으로 내려왔다.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주곡, 주명, 주병, 주선악등 인간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리며 교화하였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한 굴에서 살면서 신웅에게 빌어 사람이 되기를 원하여 신웅이 쑥 한줌과 마늘 20개를 주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만 햇빛을 보지 않으면 인간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곰은 여자로 화하였고, 호랑이는 참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곰은 여자로 되었으나 혼인할 상대가 없어서 신단수 밑에서 잉태하기를 빌고 원했다. 그래서 환웅이 거짓 변하여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가 단군왕검이다. 단군왕검이 성장하여 평양성에 도읍하고 조선이라 칭하였다. 이분이 단군 조선의 시조로서 1,500년간 나라를 건설하고 다스리다가 주나라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므로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다시 아사달산 속으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으며 이때 나이는 1,980세였다고 한다.

단군은 고조선 때 왕의 칭호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단군신화의 요체는 하늘신의 자손에 의해 고조선이 세워졌고 그 왕위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단군신화 역시 다른 건국신화와 다름없이 고대의 종말과 함께 그 기능과 의미를 상실하게된다. 그런데 단군신화는 한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국가의 건국신화 주요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점을 매개로 시대적 상황과 결부되면서 단군은 고려 후기 이후 재해석되고 부활되게 되고 이것은 한국인의 민족의식의 특징적인 면모인 강한 혈연의식의 한 토대가 되었다.

ii) 중국의 건국신화

사기(史記)를 비롯한 중국의 낡은 역사책에는 삼황오제 후에 하, 은, 주라는 3개의 세습왕조가 교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는 어디까지가 신화시대이고 어느때 부터가 역사시대인지 그 경계가 아직도 분명치 않다. 그러나 3황 5제는 틀림없이 신화시대일 것이다

3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며 복희, 여와, 신농의 세 사람을 3황으로 삼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복희는 8괘(卦)를 만들고 글자도 만들었으며 혼인제도를 정하고 그물을 꼬아서 어업을 가르치고 소·양·돼지등 가축을 길렀고 35줄로된 '슬'이란 악기를 만들었다. 인류가 자연적으로 습득한 모든 것을 어느 고대 성인이 가르쳤다고 하는 소위 인간주의의 발로라고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여와는 복희의 제도를 고치지 않고 단지 생황이라고 하는 악기를 만들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손에 컴퍼스와 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토지 창조의 신이기도 하다. 복희의 제도를 고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며, 여와와 복희는 부부 신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다.

신농은 우수인신으로 나무를 잘라서 쟁기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농경 방법을 가르쳤다. 또한 백가지 나물을 맛보아 의약을 발견하고 시장을 열어서 물물교환 하는 일도 가르쳤다. 일본에서도 신농은 의학의 신이며 또한 노점상인의 수호신이 되어 있다.

중국인은 황제를 민족의 시조로 삼고 있으며 아직도 자기들을 황제의 자손이라고 칭하고 있다. 사기(史記)의 오제본기는 황제로부터 시작된다. 황제 뒤에 전욱 고양제(高陽帝), 곡 고신제(高辛帝), 요제, 순제로 이어진다.

중국인들이 시조로 삼고 있는 황제에 의한 건국 신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황제는 판천의 들과 탁록의 들과 두 번에 걸친 큰 싸움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황제는 곰과 호랑이 군대와 힘을 합쳐 요슁(有態) 지방에 통일국가를 건설한다. 황제는 쿤륜산에서 300살까지 살다가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가 되었다.

iii) 일본의 건국신화

어느 민족이나 신화를 갖고 있지만 특히 일본은 신화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를 통해 일본역사와 문화의 원형에 접근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일본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계기엔 언제나 신화적 발상이 배경에 깔려 있으다. 이는 대동아전쟁을 일으키는 일왕의 조칙 첫 머리에 [팔 굉일우]가 등장하는 것을 예로 들수있다. 일본 신화시대의 마지막신의 아 들이자 역사시대의 첫번째왕인 신무가 일본을 통일한후 반포했다는 [팔 방을 덮어 집으로 삼음(팔굉일우)]이란 조칙은 전세계를 일왕에 귀속시 켜야 한다는 사상의 바탕을 이루며 일본 국민을 동원하는데 결정적역할 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건국신화는 대략 이러하다. 태초에는 광활하고 기름기 많은 혼돈의 바다밖에 없었다. 이 혼돈의 바다에 온갖 요소들이 뒤섞여 잇었다. 하늘에서 이 바다를 내다 보던 세 신령이 세상을 창조하기로 결정했다. 신령들은 이자나기(イザナミ)와 이자나미(イザナミ)를 비롯해 많은 남신과 여신들을 만들어 냈다. 신령들은 이자나기에게 세상을 창조하라며 보석으로 장식된 마법의 창을 주었다. 이자나기가 창을 바다속에 넣고 휘휘 돌렸다. 이자나기가 혼돈의 바다에서 창을 꺼내 보니, 창 끝에 바닷물 몇 방울이 응결되어 있었다. 그방울들은 도로 바다 속으로 떨여져 오오야시마(おおやしま)가 되었다. 이것이 현제의 일본 열도가 된다. 그리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다른 섬들을 낳는데 이것이 혼슈, 시코쿠, 규슈등 의 다른 섬들을 이루었다.

그후 이자나기(いざなぎ)와 이자나미(いざなみ)는 여러 신들을 낳는데 화(火)신을 낳던 중 이자나미가 죽게된다. 이자나미는 죽어서 요미노크니(よみの 國)에 가게되는데 이자나미의 죽음을 슬퍼한 이자나기는 이자나미를 찾아 요미노크니까지 찾아가 요미노크니를 다스리는 신과 요미노크니를 빠져나가는 좁고 긴 터널을 이자나미의 얼굴을 보지 않고 빠져나간다는 조건으로 이자나미를 데려나오게 되지만 터널을 다 빠져나오기 전에 이자나미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만다. 그후 이자나미는 다시 요미노크니로 돌아가게 되고 거기서 죽음의 신이 된다. 이자나기는 슬픔을 견디지 못해 바닷가를 거닐던중 왼쪽눈에서는 아마테라스가, 오른쪽 눈에서는 쯔키유미가 코에서는 스사노오가 태어난다. 그중 코에서 태어난 스사노오는 자라면서 타카마노하라(高天原)에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 이를 보다 못한 누나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てらす大神)는 스사노오에게 일본을 통치할것을 약속받지만 그후로도 스사노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계속 방탕한 생활을 하자 아마테라스는 화가 나서 동굴로 숨어버린다. 태양의 신이 숨어버리자 세상은 암흑으로 덮히고 다른 신들이 스사노오를 추방하고 아마테라스를 동굴에서 나오게 한다. 스사노오는 이즈모노크니(出雲國)로 내려가 사람들을 괴롭히던 머리가 8개 달린 큰뱀을 죽이고 여기에 나라를 세운다. 그리고 스사노오를 돕기위해 아마테라스는 그의 후손에게 벼를 가져다 인간에게 주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게 한다. 그러던중 돌연히 스사노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자 타가마노하라에서 천손인 호호니니기가 5부신과 함께 강림해서 그 땅을 다스리고, 그를 천황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초대 천황은 137년, 10대 천황이 168년간 장수한다.

옛날 일본인은 세계를 신들이 사는 高天原과 인간과 생물들이 사는 나캇쿠니(中っ國)그리고 악령이 사는 요미노크니(死見の國)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인은 다른나라와는 달리 특이한 死生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은 죽어서 高天原이나 요미노쿠니로는 갈수 없는 것이 그것이다. 일본의 신화에서는 사람은 다만 나카노쿠니에서 태어나고 죽는 것이다.

여기서 또 특기할 만한 것은 일본의 천황제 이데올로기이다. 초기 천황들 대부분이 신화로 윤색되어 있는 데다 오늘날까지 천황은 일본인들에게는 범접하기 어려운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다. 천황제에는 역사나 문화적인 전통만이 아닌 종교 신화적인 요소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천황제의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일본인의 압도적 다수가 현재의 천황제를 지지하며 이를 폐지하자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신문이 3천명을 대상으로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가 「현재의 상징적 천황제가 좋다」고 응답했으며 천황제 폐지에는 8%, 천황의 권위를 높이자는 견해에는 6%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본인에게서 건국신화 듣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2차대전이후 천황의 권위는 실추되었고 그 이후로 신화를 입에 담는 것은 금기 아닌 금기가 되었으며, 아직도 많은 무까시바나시(むかしばなし)시에 여러 가지 신화의 단편이 잔해가 되어 흩뿌려지 있지만 이러한 이야기들도 결론적으로는 신이 천황이 된다는 것이 주제이므로 일반에서는 그다지 이야기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모리모또씨의 설명이다.

iv) 한·중·일 세나라의 건국신화 비교

한, 중 두나라의 건국신화는 도교적 세계관의 표현으로 상당히 비유사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고조선 건국신화에서 단군이 웅녀의 아들인 것처럼 중국의 개국군주인 황제의 부친도 요슁지방의 군주라는 설이 있다.

황제의 궁궐이 위치한 쿤룬산도 단군신화의 신단수와 유사하다. 산 위에 있는 주목의 굵기가 5-6명이 빙 둘러야 할 정도라는 대목이 특히 비슷하다. 단군이 산신이 되어 1980세 까지 살았다는 이야기도 황제가 300살까지 살다가 옥황상제가 되었다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모두 도교적 세계관의 표현이다.

그리고 두나라의 건국신화는 곰에 대한 토템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황제와의 싸움에서 전자는 염제의 자손, 후자는 천우라는 자가 적이었다. 여기에서는 대표자 이름을 들었으나 아마도 부족연합일 것이다. 단군 건국시화에서 황제 자신도 곰이나 불곰을 한패로 삼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곰이나 불곰을 부족의 토템으로 삼는 그룹으로 해석한다.

마쓰나에 교수는 일본 건국신화 중 천손인 호노니니기가 5부의 신과 함께 강림했다는 부분은 고구려와 백제의 행정 체계인 5부의 영향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는 일본의 건국신화는 한국의 신화와 중국의 율령제 사상에 근거하고 있으며 하늘에서 내려온 무리가 정착한 산봉우리를 소호리라고 부르는 것은 도읍을 뜻하는 백제어 소부리(所夫里)에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테라스가 그의 후손에게 벼를 가져다 인간에게 주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게 한 부분도 신농이 우수인신으로 나무를 잘라서 쟁기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농경 방법을 가르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2. 천강난생신화와 천손강림신화

i) 가야의 천강난생신화

가야 천강난생신화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기원후 42년 한반도 남단의 낙동강변 신답평에 구간들의 추장들이 백호의 백성들을 다스리며 살고 있었다. 3월초 어느 날 구지봉 근처에서 형체는 보이지 않으나 이상한 소리가 들여왔다.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이곳에 내려와 나라를 세워 백성을 다스리고 임금이 되라 하셨다. 너희들은 지금 구지봉에 올라가 흙을 파고 춤추며 노래하라. 그러면 천신이 내려올 것이며 머지않아 너희들은 대왕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모두들 왕을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는데 얼마 후 하늘에서 한줄기 빛이 드리워지며 홍포에 쌓인 물체가 내려왔다. 보자기를 보니 여섯 개의 황금알이 빛을 발하며 나타났다. 이튿날 여섯 개의 황금알이 늠름한 여섯명의 동자들로 변해 있었다. 이들은 나날이 쑥쑥 자랐다.

이리하여 3월 보름날 왕위에 오르니 그가 가야의 시조 김수로 였다. 김수로는 김해의 신답평에 대가락국을 세웠고 나머지 다섯 사람도 낙동강변에 다섯 가야를 세워 임금에 오르니 이것이 6가야연맹의 건국이었다.

ii) 일본의 천손강림신화

고황산영존이 상을 덮는 이불로 황손인 천진언언화경경지존을 덮어서 내려가게 하였다. 황손은 천반좌를 떠나 또 겹겹의 구름을 헤치고 존엄한 위세로써 길을 찾아 휴가소의 다카치호미네에 내렸다. 그후 천황이 나아가는 모양은 쿠시히의 二上의 하늘에 뜬 사다리로부터 평지에 서서 공국과 언덕이 이어지는 곳을 지나 좋은 나라를 찾으러 가서 오전국(吾田國) 장옥의 쯔쿠시의 해변에 도착하였다.

그 땅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황손이 그에게 "나라가 있는가 없는가"라고 물었다. 대답하여 "여기에 나라가 있습니다. 바라건대 마음대로 하십시오"라고 말하였다. 황손은 거기에 머물렀다. 그때 그 나라의 녹위진희라는 미인이 있었다. 황손이 그 미인에게 "그대는 누구의 딸인가"라고 물었다. "첩은 천신이 대산기신을 데리고 살아 낳은 아이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천손은 녹위진희를 데리고 잤다. 그런데 하루밤 사이에 임신이 되었다. 천황은 믿지 않고"비록 천신이라도 어찌 하루밤 사이에 임신시킬 수 있겠는가. 그대가 임신한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닐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녹위진희는 분이나 원망하며 문이 없는 방에 들어가 맹세하기를 "첩이 밴 것이 만일 진실로 천손의 씨가 아니면 불에 타고 말 것이며 천손의 씨라면 불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즉시 그 집에 불을 놓아 방을 태웠다. 처음에 일어난 연기 끝에 생겨난 아이를 화란강명이라고 하였다. 그다음에 열을 피하여 있을 때 생겨난 아이를 연화화출견존이라 하였다. 다음에 낳은 아이를 화명명이라 하였다. 모두 세아이다. 오랜 후에 천진언언화경경저존은 붕(崩)하였다. 쓰쿠시 휴가의 에노산릉에 장사 지냈다.

일본의 천손강림신화는 고사기 니니기노미코토편과 일본서기 신대하편에 각각 기록되어 있은데 여기 기록한 천손강림신화는 일본서기 신대하에 나타나 있는 기록을 살펴보았다.

iii) 천강난생신화와 천손강림신화의 비교

가야의 천강난생신화와 일본의 천손강림신화 그 내용이나 방법, 강림도구가 거의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천신이 강림하여 땅에 내려와 대화를 나누는 방법마저 거의 똑같음을 알 수 있는데 가락국기는 "이곳에 사람이 없느냐?" 라고 말하고 있고, 기기는 "이곳에 나라가 있는가 없는가?"라고 묻고 있다. 또한 강림한 장소는 그 명칭까지 똑같은 구지봉이다. 그리고 가락국기는 홍포에 쌓여 내려오지만 기기는 이불을 쓰고 내려온다. 에가미 교수는 강림도구로 쓰여졌던 수로왕의 홍포와 니니기노미코토이 진상부금, 즉 마토코오우후스마가 서로 공통되고 있는데 대해서 결코 우연의 일치라고 볼수 없으며, 기마민족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상부금이라는 말의 의미는 '침구를 둘러쓰고 자는 것'을 뜻하는 말로 천손이 강림해올 때 신성한 침구인 이불 같은 것에 둘러싸인 형태로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이 유래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일천황이 서거했을 때 행하는 다이쇼오사이에 씌워지는 보도 이와 같은 의미라고 주장하고 있다.

제 4 장

결론

독일 철학자 니체는 19세기 후반에 "신은 죽었다"고 선언 했다. 그렇듯 "허구"로 치부 됐던 신화가 정보화사회가 만개될 21세기가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민족의 신화처럼 민족적 정서를 제쳐 두고 어떤 신화를 보게 되면, 그것은 설화의 한 갈래로서 듣고 얘기하며 공감할 만한 신이한 옛 이야기거나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관심의 대상일 따름이다. 이런 경우에 신화는 그 자체로 신성시되거나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정서적 이질성을 지닌다.

그러나 자기 민족의 신화는 전승 주체로서 별도의 의식을 지니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신화를 허황된 이야기로 간주하는 것은 자기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겨레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일본은 한국이더라. 문학수첩

중국과 오천년

日本を 知る 事典

일본은 일본이다 우리문학사

한국사 이야기 청아출판사

일본역사관 소학관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창작과 비평사

일본속의 한국문화유적을 찾아서 대원사

일본과 천황 고려원

세계의 유사 신화 세종서적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일본신화 탐구당

알타이 신화 청노루

민족신화와 건국영웅들

질문에 응해주신 森木亮子さん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