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주차 [발제 1][발제 2][발제3]


한국 고대사회의 정치구조

1 머리말

고대국가는 일반적으로 원시공동체의 해체 결과로 발생한 계급관계 위에서 성립한 정치적 사회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고조선.부여, 그리고 삼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모두 원시공동체로부터 분화.족출한 小國(소국)을 모태로 삼아 고대국가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소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고대사회의 구조를 밝히는데 관건적 의미를 지닌다. 소국은 아직 국가로 규정하기에는 미숙성이 엿보이는 그야말로 소국공동체일 따름이었다.
이런 소국이 고대국가로 이행하는 방법은 교역 또는 전쟁을 통한 소국가간의 통합이었다. 우리나라 고대국가들도 중심부 소국이 주변부 소국에 대해 부단한 통합작용을 전개함으로써 국가형성에 필요한 영역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한국사상에서 고대국가의 형성과 발전은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하여 삼국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동일한 과정을 시간차에 따라 필연적으로 경과하였다. 그러므로 고대사회의 구조, 특히 정치구조에서는 일정한 유사성을 간취할수 있다.
한국고대사회의 시간적 범위와 정치구조의 특정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 북한학계에서는 고조선, 부여, 그리고 진국을 고대노예소유자국가로 파악하는 한편, 삼국을 중세봉건국가의 중앙집권체제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시기구분은 삼국시기의 사회경제구성에 관한 이른바 노예론자와 봉건론자의 토론과정에서 삼국의 선행사회를 노예소유자국가로 규정함으로써 우리나라 역사에서 역사발전의 합법칙성이 계기적으로 관철된 데 대한 양자의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한편 남한학계는 고조선에서 신라 말까지를 고대사회로 보려는 관점위에서 고대국가의 발전과정을 연맹단계에 유의하여 다단계화합으로써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는데 귀족연합→전제왕권→귀족연립의 단계로 정치체제가 변화한 것으로 파악된다.
고대국가가 형성된 이후 해당사회의 상부구조에서는 일단 귀족합의체제의 유지와 대왕집권체제로의 지향이라는 두 경향이 병존했던 것으로 보아진다.

2. 고조선과 부여사회의 구조

고조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고대국가이며, 위만조선은 경제적으로 교역의 독점과 군사적으로 주변의 정복을 통해 국가의 발전을 이루었다. 또 부여는 고조선의 외곽에서 고대국가로 성장한 나라인 만큼 고조선과 유사한 구조의 사회일 것으로 짐작된다.
고조선과 부여사회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 우선 주목할 것은 사회적 지도자에서 발전한 정치적 지배자인 왕이다. 왕의 존재는 해당사회의 국가형성 여부를 가리는 하나의 지표일 뿐만 아니라, 정치제도상에서 정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왕은 위만조선의 선행단계에서 이미 나타나며, 위만조선에서는 매우 구체적인 존재로 부각되어 있다.
고조선에는 일찍부터 조선왕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 조선왕의 위상은 위만조선까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들이 모두 부자상속에 의해 왕위를 계승하거나 또는 왕위계승권자로서의 태자가 대외교섭과 같이 중요한 국사에 관여한 사실은 왕제가 제도적으로 정착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고조선에서 확인된 황제는 부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여는 다른 주변사회와는 달리 군왕이 있었으며, 왕위계승도 역시 부자상속제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었다.
고조선과 부여사회에서 존재한 왕은 해당사회의 국가적 발전수준을 가늠할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에 이에 상응한 정치세력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조선과 부여의 귀족세력은 기본적으로 대토지와 노예소유자였다. 그들은 극가체제의 운영에서 형벌권을 행사하여 형벌노예를 재생산함으로써 자신의 경제기반을 유지.확대하였다. 따라서 귀족회의체는 귀족세력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킨는 기구였으며, 그 대표자인 조선상과 마가는 권능상 왕에 버금가는 존재로서 왕권과 대립적인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상.가 계열의 귀족세력 이외에 국무를 분장한 관료군도 있었는데 이들은 왕에 의해 임명된 존재로서 왕의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였다. 고조선의 대부 禮(예)는 조선왕의 뜻을 받들어 燕(연)과의 외교를 담당하였으며, 위만은 준왕으로부터 博士(박사)에 임명되어 서쪽 변경을 지킨 고조선의 번병이었다. 또 위만조선의 장군은 무관으로서 국가체제의 유지에 긴요한 상비군의 지휘관이었다. 고대사회에서 군사직이 가장 먼저 출현하는 것은 보편적 현상이었다. 이밖에도 위만조선의 관료로서 활동하던 '조선대신'이 있었다.
한편 부여의 관료로는 조세업무를 담당한 使者(사자)가 있었는데 그 자체가 이미 대사.대사자.사자와 같이 중층적인 분화를 보이고 있었다. 다만 부여에서는 위만조선과 달리 아직 군사직의 분화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부여의 諸家(제가)가 전쟁업무를 직접관장하는 국가발달의 저급성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고조선과 부여에서 大夫(대부).將軍(장군).大(대신).使者(사자)계열의 관료군은 외교.군사.조세등과 같이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의 국무를 왕으로부터 위임받아 처리하는 존재였으며, 귀족세력과는 제도적인 위상이 상당히 달랐던 것이다.
끝으로 역사적 성격을 알아보기위해서는 주요정책의 결정과정에서 어느 세력의 의사가 관철되는가를 집중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인데 고조선과 부여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안은 다른 문제는 왕과 귀족세력 양자의 이해관계가 걸린 부분이었다.
부여의 왕위계승은 원칙적으로 부자상속제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는 제가회의가 추대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편 전쟁수행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왕과 귀족의 양쪽을 상징한 소발굽의 합치여부로 길흉을 점치는 牛蹄占法(우제점법)을 시행함으로 쌍방의 견해차를 초월적인 힘에 가탁하여 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고조선과 부여왕권의 치약성은 고대국가에서 권력구조의 편제방법, 즉 재지수장층의 재편이라는 특성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고조선의 왕권 취약성은 부여에서도 동일하였는데, 왕위의 교체에 관한 특수한 관행에에 나타나고 있다. 부여에서는 天災(천재)로 인한 농업생산의 감소에 대한 책임을 왕에게 물어 교체하거나, 심지어 살해하는 일까지 있었다. 왕의 교체와 살해의 주체는 추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가회의였다. 이것으로 고조선과 부여사회에서는 제도적으로 확립된 왕제에 의해 왕이 존재하지만 통치의 주체는 귀족회의체였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이런 현상은 왕권을 뒷받침해줄 관료제도의 미발달과 관련이 깊다.
고조선과 부여사회의 샤며니즘이 본질인 토착신앙을 체제유지의 이념으로 활용하였다. 이것은 신화의 형식으로 남아있는데, 신화의 존재는 특정사회의 국가형성여부를 가리는 또다른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

3. 삼국사회의 권력국조

1) 귀족세력의 출현과 기반

고조선과 부여사회의 구조는 우리나라 고대사회에서 원형적 의미를 지니며, 시공적으로 지속.확산하여 삼국시기로 이어진 데 역사적 의미가 있다. 국가형성 이후 고대국가의 발전은 크게 두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그 하나는 체제유지의 토대로서 토지와 인민이 결합된 통치영역을 확장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영역통치의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해 지베체제를 정비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삼국사회 상부의 권력구조는 귀족중심의 합의체제에서 왕중심의 집권체제로 전환하는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귀족합의체제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제도적 장치인 귀족회의체의 구성원이 출현하는 배경과 그 기반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데 삼국의 모태였던 卒本夫餘(졸본부여).伯濟國(백제국).斯盧國(사로국)등과 같은 소국이 각각 고대국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같은 조건에 있던 소국의 병합이 필수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지방에 기반을 두었던 수장층이 지배자공동체인 王京(왕경)의 부에 편입됨으로써 귀족세력으로 전환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경로를 통하여 소국의 수장계열이 중앙의 귀족세력으로 전환한이외에 삼국의 발전에 따라 왕실세력이 교체.분화한 결과로 또다른 계열의 귀족세력이 파생되기도 하였다.
고구려의 古鄒加(고추가)는 朱那(주나)의 왕자 乙音(을음) 이외에 왕실인 개루부의 대가, 전황실인 소노부와 왕비족인 절노부의 適統(적통)대인이 칭할수 있는 관위였다. 이들은 모두 고구려의 발전과정에서 왕실의 분화와 교체, 그리고 왕비족의 등장에 따른 모태사회의 분화로 인해 파생한 귀족세력이었다. 이같은 현상은 백제와 신라에서도 살필수 있다.
삼국의 귀족세력은 전쟁을 통해 자신의 경제기반을 확대.재생산하고 있었다. 귀족세력은 분급받은 전쟁포로의 사역을 통해 전장과 식읍을 경영하는 대토지와 노예소유자였던 셈이다. 귀족세력의 토지지배방법은 인간노동력의 수취에 목적을 둔 다분히 고대적인 성격의 것으로 그들의 정치활동을 담보하는 경제기반이기도 했다.

2)귀족합의체제의 운영

삼국은 형성기에 복속된 소국에 대해 자치를 인정하는 대신에 경제적 공납과 군사적 동원의 의무를 부과하였다. 이와 같은 간접적인 지배방법은 직접 지배를 관철시킬수 없는 국가적 역량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것으로서 아직 지배체제를 질적으로 전환시킬 만한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
발전기의 삼국은 확장된 통치영역에 대응하여 지배체제를 정비하였다. 귀족세력은 국가형성 이래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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