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주차 [발제 1][발제 2][발제3]


고조선

1.『환단고기』믿을 수 있나 ?

환단 고기는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묶은 것인데 이 책들은 대부분 고려말 조선초의 것이라한다. 원래 구한말의 계연수가 함께 묶어 1911년에 인쇄하였다. 하지만 그 인쇄본은 찾 을 수 없다. 현재 볼 수 있는 책은 1949년에 이유립(1907~1986)이 오형기에게 정서시킨 것을, 1979년에 영인한 것이다. 그런데 오래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환단고기 를 구성하는 여러 책들은 지금까지 나온 역사책에 인용된 사례가 없다.
숨겨져서 전해져 왔기 때문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숨겨야만 했던 설득력 있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이책이 만들어졌다는 연도에 대해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
환단고기에는 1923년 이전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이름을 적고 있다.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이름이 '자유'라는 사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를 비롯한 국내,국외의 어떤 문헌에도 나타나지 않아서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1923년 중국 낙양에서 남생(연개소문의 아들)의 묘지명이 발견되면서 비로소 알려졌다. 1923년에 비로소 알려진 사실이, 고려말, 조선초의 책들을 엮어 1911년에 인쇄했다는 환단고기 에 실려있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용어에서도 많은 모순이 발견되는데, 환단고기 의 단군세기 에서 '문화'라는 용어가 Culture의 뜻으로 사용되며, (서구의 Culture라는 개념은 20c초 일본을 통해 '문화'라고 번역되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이다. 그 이전에는 '문치교화'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태백일사 에서는 '원시국가'라는 근대 이후의 용어가 쓰이고 있다. 조대기 등에서 사용되는 '남녀평권' '부권' 등의 용어도 마찬가지이다.
뿐만 아니라 지명에서도 여러 가지 모순이 발견된다. 태백일사 북부여기 단군세기 등에 자주 등장하는 '영고탑'이란 지명은 청나라 시조의 건설과 관련하여 생긴지명이고 상춘이란 지명도 18c말부터 사용된 지명이다. 조선 전기 이전에 쓰여진 책들이 조선후기에야 사용된 지명을 쓰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앞에서 들었던 여러 가지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환단고기 를 위서로 간주하여 신빙성을 두지 않는다.

2. 단군신화는 사실인가

세계 어느나라든 역사가 오래된 경우에는 '건국신화'를 갖고 있다.
우리 나라도 여러 건국신화,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데, 그 중에서 단군신화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신화이다. 따라서,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사의 출발점으로, 단군은 민족의 유구성과 독자성의 상징으로서 인식되어 왔다.
그러면 과연 단군은 실재했고, 단군조선은 우리민족의 출발점인가
신화에는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상황이 직접 기록되어 있기보다는 상징화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보통이다. 환웅이 이끌고 온 집단의 이주로 인하여 곰과 호랑이로 상징되는 집단의 공존이 깨어졌으며, 곰 집단은 유이민 집단과 결합하여 고조선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환웅과 웅녀의 결합으로 태어났다는 단군은 유이민과 선주민 양자를 아우르는 대표성을 확보하고 있다. '단군왕검' 이라는 용어는 제사장과 정치권력자의 기능을 겸하고있던 재정일치 사회의 우두머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당시 사회에 통용되던 보통 명사와 같은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나오는 신단수에서는 애니미즘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쑥ㅱ마늘ㅱ곡식으로 상징되는 농경비중의 증대, 형벌의 발생, 유이민 집단과 선주민집단의 융합, 지배자 출현, 종교적기능과 정치적기능을 한 몸에 아우른 지배자 즉 단군왕검등이 드러난다. 하지만 신화는 어디까지나 신화이다. 거기에는 국가 성립기의 역사적 상황이 간접적으로 반영되어 있을 뿐, 그 자체가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단군신화자체를 바로 역사적 사실이라 믿는다면 또다른 '현대판 신화'를 만들어 내는 오류를 범할뿐이다.

3. 고조선은 과연 만주에 있었는가?

(1) 위치

?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

☞ 지명 - 『사기』 : 위만이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와 세력을 키워 결국 왕위를 빼앗고 '왕검성'에 도읍하였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단군이 조선을 세우고 도읍한 곳을 '평양성'이라 하였다. 이렇게 보면 왕검성은 평양, 패수는 그 북쪽에 있는 강 즉 대동강이 된다.
☞ 과학적 근거 - 일제 강점기 대동강 연안에서는 점제현 신사비를 비롯하여 기와,벽돌,봉니등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를 근거로 이지역은 낙랑군이 있었던곳으로 주장.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중심지에 낙랑군을 두었으므로 자연히 멸망당시 고조선의 대동강유역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 문제점 - 1. 고고학적 물증이 문헌상에서 제기될 수 있는 의문점들을 모두 해결하지 못한다.

2. 낙랑군의 위치를 통해 고조선의 위치를 거꾸로 찾아가는 방식도 문제점 이다.(그것은 언제까지나 말기의 위치에 해당될뿐 처음부터 멸망할때까 지 변함없이 평양에 있었다고 장담할 수 없다.)

? 요동지역에 있었다!!!

☞ 지명 - 위만이 건너왔다는 패수를 오늘날의 대릉하로, 왕검성 가까이 있었다는 열수 를 요하로 본다.
☞ 고고학적 근거 - 비파형 동검, 순장무덤
☞ 문제점 - 1. 고조선이 멸망한 뒤 설치된 한사군의 실체와 위치에 대한 고증이 복잡 해진다.

2. 대동강유역의 낙랑 유물, 유적을 인정한다면 말기 고조선의 중심지가 요동일 수 없다.

? 요동에서 평양으로 이동하였다!!!

☞ 지명 - 이동설에서는 말기 고조선의 위치를 대동강유역으로, 그 이전의 고조선 중심 지를 요동지역에 있엇던 것으로 본다.
☞ 고고학적 근거 - 요동지방과 한반도 서북부에 분포하는 청동기 문화의 시간적 차이 와 계승성에 주목하고 있다. 처음에는 요동일대에 광범한 비파형 동검문화를 건설하고 있던 고조선이 연나라의 동방진출로 위축되어 평양일대를 중심으로 세형동검문화를 건설하였다고 본다.
☞ 문제점 - 1. 국가의 중심지가 옮겨 졌다고 했을 때 이러한 사실이 문헌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은점이 문제이다.

2. 고고학적으로 요동지방과 한반도차이 특히 대동강유역의 문화양상과 요 동지역 청동기 문화와의 차이나 계승관계가 설명되지 못한다.

(2) 영역

고조선의 영역문제를 생각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할점은 고조선의 영역이 시대에 따라 상당히 다양하게 변화했을 것이다. 따라서, 고조선의 영역을 처음부터 멸망할 때까지 고정시켜 대동강유역에 한정하거나 아니면 만주, 한반도 북부에 걸친 대제국으로 그리는 것은 당시의실상과 거리가 있다. 영역문제를 논할 때는 무엇보다도 그 사회가 가지는 생산력 수준과 상관관계를 밝혀야한다. 당시의 사회 구성 능력이 영역의 범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에 성립되어 철기문화가 보급되던 단계까지 존속하였다. 따라서 초기에는 공동체적 잔재를 많이 가진 사회로 후기에는 제법 강력한 지배체제를 갖춘 사회로 발전해 왔다. 그 과정에서 고조선의 영역도 끊임없이 변화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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