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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조선

단군신화가 민족의 신화로 등장한 것이 三國遺事(삼국유사)와 帝王韻紀(제왕운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할 것이다. 이들 典籍(전적)에 몽고의 침입이라는 민족의 시련기 를 겪은 뒤에 나타났다는 것도 단군신화를 이해하는데 일말의 해결점을 던지는 것이 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대부분 신화라는 관점에서만 혹은 동일 민족의 표상 같은 자 료로만 이것이 거론된 적이 많았고, 게다가 正史(정사)인 三國史記(삼국사기)에 전혀 언급된 바가 없 다는 데서 적극적 평가가 결여되었다는 감도 없지 않다 할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桓雄(환웅)과 熊女(웅녀)의 혼인으로 단군이 탄생하는데 비해 제왕운기에서는 桓 樹(환수)가 나타나게 되며, 安鼎福(안정복)의 東史綱目(동사강목)에 와서는 帝釋桓因(제석환인)이라 불리는 불교적인 성 격에서의 단군 탄생에 이의를 제기하여 허구의 망설이라고 극록하기까지 한다. 일제 하의 식민사가들은 철저히 단군신화를 말살하려하여 후세의 전승 내지는 무격참위가 를이 날조한 이야기라고 하는 등, 우리의 민족의식과 주체사상을 짓밟으려는 만행이 었다.

그 동안의 여러 설을 살펴보면, 최남선은 단군신화를 天(천)과 巫(무)를 뜻한다고 해석하 고 있다. 김재원의 경우에는 단군신화가 한민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중국 산동 성의 武氏祠堂石室(무씨사당석실)의 畵像石(화상석)의 신선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중국 고유의 창세사상과 북 방계 샤먼교의 영향이 혼합된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김정학은 인류학적 관점에서 곰 토템을 가진 한 부족의 시조건설이 몽고 침입 같은 국난 뒤에 민족적 신화로 승화 되어 나타났다고 보는가 하면, 천관우는 농경단계에 들어온 무문토기 단계의 역사로 보기도 하였다. 또 이기백은 고대 샤머니즘 토대 위에 선 재정일치시대의 산물로서 고조선의 역사를 반영한다고 해석하였다.

이와 같이 상이한 견해들을 보았거니와 한 가지 명확히 해 둘 것은, 신화는 반드 시 역사성의 근거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며 단군신화도 역시 역사적 사실이 신화로 재 구성된 것이지 허구나 날조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 우리가 역사체계를 세우는 과정 에서 삼국유사 등이 단군조선을 한국사 출발의 정점으로 하였다면 분명히 다른 방증 이 없는 한 일단 단군조선이 한국사의 시원이었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 이다. 물론 이것은 동일민족을 주장하는 단군이나, 혹은 국가의 시원으로서의 단군 조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신석기시대의 문화는 토기의 계통이나 유적·유물의 분토상에서 시베리아와 연관이 깊다. 한편 인류학의 성과는 시베리아의 신석기시대에 곰숭배사상이 넓게 퍼 져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역시 단군신화의 중심모티브가 곰인 것을 생각할 때 이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할 것이다. 또 한국의 신석기 문화를 남긴 주민이 예 맥족보다 선주하여 있던 고아시아족으로 판명되었으므로, 신석기 시대에 시베리아 일대에 광범하게 분포하여 고아시아족이 알타이어 계통의 주민에게 밀려 태평양 연안 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사실은 단군조선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다 시 말하여 단군조선은 시베리아와 연결되어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신석기시대 문화를 가진 주민의 역사적 사실이며, 그렇기 때문에 유물의 동질계통, 그리고 곰숭배라는 공통점을 갖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단군조선은 한반도의 신석기시대의 사실을 전승한 것이며, 이 시기의 주 민이 한반도의 선주민인 고아시아족인 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단군조선의 멸망이 기 원적 13세기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석기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보아진다. 이 시기는 중국에서도 정치적인 변혁의 시기이며 한반도에서는 이후부터 민무늬 토기 시대와 청동기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역시 한민족의 형성도 이 시기부터 비롯되기 시작하였고 문헌에 나타난 그 주민이 예맥이었음은 앞에 언급한 바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