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급 관계의 변화와 민중의 생활

1. 농민의 몰락과 토지로부터의 이탈

농민전쟁 이후 조선이 반 식민지화되면서 제국주의 세력의 주된 수탈대상이었던 농민은 빠르게 몰락해갔다.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 지주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더욱 강화되어, 이들은 토지소유권을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한편, 개항 뒤 쌀을 수출하면서 그 부를 더욱 늘려만 갔다. 또한 이들은 여기에서 얻은 이익을 토지에 재투자함으로써 토지소유를 더욱 확대하고, 소작료를 인상하거나 고리대로 농민들을 더욱 수탈하였다. 이로 인해 전체 인구 가운데 약 80%를 차지하는 소농·빈농층은 끊임없이 몰락하였다. 그리고 자작농까지도 지주들의 토지소유 확대로 인해 자기 땅에서 내몰려 소작농이나 농업 노동자가 되었으며, 실업자가 되기도 했다.

농촌에서 내몰린 몰락농민들은 광산·부두 등지로 흘러들어 노동자층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대공장에 취업한 본격적인 노동자라기보다는 '품팔이' 노동에 종사하는 자유노동자였다. 노동자들은 죽어라고 일했지만, 하루 살기도 어려울만큼의 임금에 만족해야했다. 그러나 근대적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은 거의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2. 토착자본의 예속화와 민족경제의 파탄

제국주의와 지배층의 수탈은 농민 뿐만 아니라 소상인이나 수공업자들도 몰락시키고 말았다. 경강·평양·개성 등지의 대상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상인들은 일본상인에 맞서거나 생존을 위해 일본상인에 예속되었다. 특히 개항장의 객주조합은 일정액의 세금을 황실에 상납하여 특권을 보장받았지만, 보부상이나 시전상인들은 제국주의 자본에 상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외국상인의 행상이 합법화되고 일본이 갖은 조세를 부과하면서 이들은 거의 해체되고 말았다.

조선 후기부터 성장해온 일부 민간자본은 민족자본으로 커나갈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불평등조약에 의해 값싼 외국상품이 들어오고 정부 또한 외세의존적인 정책을 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한때 광무정권의 식산흥업정책에 힘입어 여러 회사가 설립되고 근대적 생산공장을 짓는 등 국내산업 발달에 힘쓰기도 하였지만 일본자본과 경쟁하여 이길 수는 없었다.

조선사회는 봉건적 관계와 자본주의적 관계가 복합되어 있었지만 지주-소작제라는 봉건적 관계가 여전히 지배적이었다. 1905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봉건적 생산관계를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식민지 초과 이윤을 얻어내려고 하였다. 일제의 이러한 정책은 지주층과 자본가들의 이해와 같이하는 것이어서, 이로 인해 외국자본 침투와 봉건 수탈이라는 이중의 압박을 받아오던 민중은 이들을 상대로 치열한 항쟁을 벌여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이러한 항쟁은 항일의병전쟁의 밑거름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