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화 위기 속의 나라 안팎의 정세변화

1. 친러세력의 등장과 러·일의 각축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고, 청에게 막대한 배상금과 영토 일부를 넘겨받아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독주는 다른 제국주의 열강을 크게 자극하였으며, 특히 일본의 요동반도 점령은 만주를 통해 남으로 진출하려던 러시아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1895년 4월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요동반도를 청에게 돌려줄 것 등을 요구하면서 압력을 가하였다. 일본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들과 대결할 수 없었으므로 이를 수락하여야만 했으며, 동북아시아에서 확보하고 있던 지위를 위협받게 되었고, 그만큼 조선에 대한 영향력도 줄어들게 되었다.

이런 국제정세 변화와 맞물려 국내정세 또한 변화하게 되었다. 민씨일파는 일본의 영향력이 약해진 틈을 이용해 러시아· 미국 등과 교섭을 시작하였지만, 약해진 지위를 만회하기 위해 일본은 1895년 8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뒤 신변에 안전을 느낀 고종은 러시아의 양해를 얻어 미국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려 하였지만 친일세력에게 들통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이 사건들을 계기로 반일감정이 높아지자 이 틈을 이용해 1896년 2월 러시아는 이완용 등 친러파를 이용해 고종과 그 일행을 자신들의 공사관으로 피신하게 하였다. 러시아 공관으로 몸을 피한 고종은 친일 내각을 무너뜨리고, 러시아· 미국과 가깝게 지내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새 내각을 세웠다.

일본과 러시아는 당분간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조선에 대한 우월권을 확보하는데 주력하였다. 일본은 불리한 정세 속에서 러시아와 교섭을 벌여 조선에서 세력균형을 확보하는데 주력하였으며, 러시아는 1896년 5월과 6월 일본과 '웨베르-고무라 각서', '로바로프-야마가따 협정'을 맺어 조선에서 우월한 지위를 확보해 나갔다.

친러정권을 세운 러시아는 조선에서 확보한 정치적 우위를 바탕으로 경제·군사적 침략을 감행하였다. 이어 만주를 둘러싼 열강의 대립이 고조되면서 곧바로 조선을 둘러싼 대립으로 이어져, 이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러시아는 '로젠- 니시 협정'을 맺어 두 나라가 조선에서 갖고 있는 경제·정치적 이해관계를 서로 승인하였다.

러시아가 만주로 진출하여 조선에서 영향력을 펼쳐나가자 중국대륙을 노리던 미국과 러시아의 남하를 줄곧 견제해왔던 영국 등은 '러시아 견제'를 위해 일본과 '반러동맹'을 구축하게 되었고, 일본을 이를 이용하여 서둘러 조선을 식민지화 하려 하였다.

2. 러일전쟁과 조선의 '보호국화'

조선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대립은 1904년 2월 일본이 러시아 함대를 기습하면서 결국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전쟁의 승세를 차지하고 있던 일본은 많은 전쟁 비용을 미·영에 의존하고 있어 전쟁을 조속히 끝내려 하였다. 러시아도 국내의 불안한 정세 때문에 전쟁을 오래 끌 수 없었다. 결국 일본은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중재를 요청하였고, 미국과 영국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승인하면서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대가로 미국은 일본과 '카스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필리핀 지배를 인정받았으며, 영국은 '2차 영일동맹'을 맺어 인도 지배를 승인받았다. 그리고 러시아와는 '포츠머스 조약'을 맺어 러시아가 조선에 간섭하는 것을 배제하였다.

한편 전쟁을 일으킨 지 15일만에 일본은 5만여 명의 침략군으로 조선 정부를 위협하여 '한일의정서'를 체결하고, 8월에는 '제1차 한일협약'을 맺어 고문정치를 실시하였다. 조선의 보호국화를 제국주의 열강에게 인정받은 일본은 1905년 11월 왕궁을 포위하고 이완용·이근택·권중현·이하영·이지영 등 '을사5적'을 앞세워 통감부 정치와 외교권 박탈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을사보호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선 민중들은 일본과 '을사5적'을 규탄하였으며, 고종은 1906년 6월 이준 등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 에 보내어 조약이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호소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빌미로 1907년 8월 강제로 '한일신협약'을 맺은 다음 고종을 폐위시키고 군대마저 해산시켰다. 결국 일본이 조선을 직접 통치하게 된 것이다.

1909년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등 반일 저항의식을 드높였지만, 이것만으로는 일제침략을 막아낼 수 없었다. 일본은 대한제국에게 '합방'을 강요하여 1910년 8월 29일, 결국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데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