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농민전쟁의 의의

갑오농민전쟁은 조선 후기부터 쌓여왔던 모순(지배층의 부정과 부패, 삼정의 문란 등)이 폭발하여 일어난 대규모의 농민항쟁으로서 이전의 사회체지를 부정하는 일종의 내전이라고 볼 수 있다.

농민군의 항쟁 대상은 민씨정권을 비롯한 친일개화파 관료와 보수적인 양반 계층이었지만, 이들 지배계급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 하였고, 친일파들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하여 위로부터의 개혁을 꾀하면서 농민들의 개혁 의지를 가로막았다. 그렇지만 이들을 타파하기 위한 항쟁에서 농민군이 패배함으로서 농민군이 지향한 신분 해방과 봉건 착취제도 철폐, 토지제도 개혁 등도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농민전쟁의 이념이 혁명적이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이념을 시민 혁명의 단계로까지 이끌어 갈 수 있는 시민계급의 의식 성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점 등으로 인해 갑오농민전쟁이 근대 혁명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 농민전쟁은 개항 이후 끊임없이 이어져 오던 외세의 경제·군사적 침탈에 대한 농민들의 총체적인 반침략 투쟁 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 농민군이 일본을 비롯한 외세에 의해 패배하면서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식민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게 되었으며, 조선에서 각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어 제국주의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다.

갑오농민전쟁은 19세기에 일어난 우리 민족의 반침략·반봉건 항쟁의 최고봉으로, 위로는 갑오개혁의 추진력으로 그리고 아래로는 반일의병잰쟁의 단초를 열었다. 또 이 갑오농민전쟁은 중국의 태평천국혁명, 인도의 세포이 투쟁과 함께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한 19세기 아시아의 3대 농민전쟁의 하나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또한 중국의 의화단 투쟁에 앞서 일어난 갑오농민전쟁은 20세기 아시아 민족의 반제국주의 투쟁의 시초로써 근대민족운동의 선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