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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의 의미
신형식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장

한국고대학회·백산학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현재까지 확인된 벽화고분은 만주지역〔집안일대〕에 23기, 평양·안악일대에 68기 등 91기에 이른다. 그중에서 만주일대에 남아있는 벽화고분을 정리하면 <표1>과 같다.

이러한 고분벽화에 대한 연구는 1907년 Chavannes가 산화연총을 학계에 소개한 이래 1930년도의 일본인 연구와 80년도의 중국인 연구로 이어지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90년 초 한·중 간의 국교수립과 한국인의 동북지방 방문러시에 따라 집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93년 고구려문화국제학술대회를 계기로, {아, 고구려전}(조선일보)와 94년 KBS의 {고구려고분벽화}로 국민적 관심사로까지 확대되었다.
〔표 1 〕만주의 고구려벽화고분
고분군
고 분 명
집안일대
우산하 

고분

각저총. 무용총. 삼실총. 사신총. 산연화총. 5회분 4호묘.5호묘. 41호분. 통구12호분
9
산성하 

고분

332호. 983호. 미인총. 귀갑총. 

절청정묘

5
하해방구고분군
모두루총. 31호. 환문총
3
장천 

고분군

1호. 2호. 4호
3
만보정 

고분군

1368호
1
마선구 

고분군

1호분
1
22
환인
마창구 

고분군

장군묘
1
1

특히 전호태의 정력적인 연구로 벽화가 지닌 성격파악이 구체화되었으며, 정재서의 연구로 벽화의 종교적 의미로서 {산해경}과의 관계로 확대되었다. 이어 필자는 최근에 벽화내용의 검토·훼손전후의 비교, 무용총 장천 1호묘의 기린도(천마도)와 천마총(경주)의 그것과 비교를 통해 문물교류상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벽화에 대해서 '인물풍속·동물·풍경·장식화' 등으로 구분하거나, '인물풍속과 사신도'로, 또는 '사회풍속·사신도·장식도안'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호태는 벽화내용이 내세관의 의미속에서 시기에 따라 변화과정에 주목하여 3기로 구분하였다. 제 1기는 생활풍속계가 사신계와 공존하되 생활풍속화가 주류이며, 제 2기는 생활풍속계·사신계·장식무늬계가 공존하되 장식무늬화가 중심이 된다. 제 2기는 사신계가 주류이며 장식무늬와 생활풍속을 부수적으로 파악한 바 있다.

『인물풍속화』는 고구려고분의 주된 내용으로 주인공 단독의 그림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벽화가 공존하고 있다. 우선 고분(석실)에는 기둥과 두공을 그려 묘실내부를 실제의 木造建物과 같이 만들고, 다양한 무늬로 장식한 후, 천정에는 해·달 등 천상의 세계를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말하자면 벽에는 주인공의 현실 세계를, 천정에는 내세의 모습을 반영한 하나의 「小宇宙」를 표현하고 있다. 이 때의 그림 주제는 주인공의 권위와 사치를 반영하는 생활상을 표현한 것으로

먹고 입고 사는 풍속·무용·음악·씨름·사냥·행렬·전투·공양 등의 장면은 물론, 각 개인의 개성이 두드러지도록 형상되었다.

와 같이 다양한 주제를 그리고 있으며, 실내장면에는 거실·부엌·마구간 등 각종 건물이 그려져 있다. 동시에 벽화에 나타나는 인물화는 幻想的 人物로 종교와 신화의 세계를 반영하여 '인간과 동물,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표현하고 있다. 즉, 神人으로서 비천·용·기린·학을 타고 날으는 모습, 牛首人身의 神農氏, 製輪神 등에서 볼 때, 고구려인의 의식세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인물화의 경우, 舞踊塚의 接客圖에 나타난 侍者와 侍女들의 모습이나, 安岳 3호분(冬壽墓)에서 보여 준 다양한 수행자들을 거느린 모습, 그리고 藥水里古墳壁畵 주인공의 화려한 행렬에서 고구려귀족사회의 생활상을 살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耿鐵華,·李淑英이 지적한 고구려귀족의 '사치하고 방탕한 향락생활과 부패하고 몰락한 의식'을 엿보기까지 한다.

인물화의 경우, 安岳 3호분과 德興里古墳의 주인공 초상화와 같이 주인공의 권위와 위상을 높이기 위해 주인공 주변에 다양한 시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 때의 주인공은 아담한 실내장식과 화려한 복장, 다양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원래 고구려의 羅冠은

衣裳服飾 唯王五綵 以白羅爲冠 白皮小帶 其冠及帶咸以金飾 官之貴者 則靑羅爲冠 次以緋羅?二鳥羽 及金銀爲飾

에서 보듯이 白·靑·緋羅冠이 있었다. 이러한 기록은 벽화에서 잘 나타나 있으며, 여인의 머리모양은 그 신분에 따라 다양한 멋을 부리고 있다. 특히 안악 3호분의 행렬도에는 수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있어 주인공의 권위를 나타내고 있다. 고구려고분벽화에 보여지는 白羅冠은 美川王陵에서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외 몇 개의 나관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고분벽화인물도에서 주목할 것은 다양한 머리모양이다. 남자의 경우, 折風은 주로 새털(鳥羽).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문관의 모자로 생각되는 責은 뿔이 난 것과 없는 것이 있다. 그리고 여자의 머리모양은 더욱 다양하여 「얹은머리]·[내린머리]·[올린머리] 등으로 멋을 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여인의 멋과 실용성의 능률을 위해 [머리수건]을 쓰고 있다. 약간 앞으로 젖힌 수건을 살짝 접고 있다. 그러나 벽화에 나타난 인물상에서 가장 화려한 것은 여인의 복식이다. 긴 두루마기의 섶과 선은 점박이 옷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었으며, 특히 다양한 머리(올린머리, 내린머리, 고리모양머리)와 사뿐한 버선발, 그리고 갸름한 얼굴 등이 공통된 특징이다.

고구려고분벽화에 나타난 여인의 복식이나 외형에서 두드러진 것은 신분에 따라 저고리와 바지의 통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배계급일수록 남녀 모두 바지통이 넓어 坐食階級으로서 비활동적인 생활상을 나타낸 듯하다. 그리고 남녀 공히 띠(帶)를 매어 멋과 활동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소매끝·갓·아래단에는 ?을 달고 있다. 특히 안악2호분의 여인은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와 같은 고구려 복식의 실용성과 장식성은 단정하면서, 아름다움보다 빈번한 외침과 혹한과 같은 자연적인 악조건을 극복하려는 독자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화려하고 번잡한 지배계급의 복식이 민족옷차림의 발전을 저해하였다는 북한학계의 지적은 문화발전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과오라 하겠다.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남성상은 왕 이외에는 주로 騎士와 力士가 중심이 된다. 대체로 말을 타고 달리며 狩獵·戰爭을 상징하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특히 무용총의 기사도는 상무적이며 호전적인 고구려인의 기질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용감한 고구려인의 기질을 설명하는 것은 斬?圖(통구12호묘)와 攻城圖(삼실총)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고구려 인물상을 대표하는 벽화는 三室塚의 力士圖이다. 가슴보다 굵은 팔뚝에서 패기에 넘치는 힘을 보게 된다. 그러나 둥글고 긴 얼굴, 짙은 눈썹, 그리고 크고 순한 눈을 볼 때 상무적이며 전투적인 고구려인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벽화에 나타난 외모(얼굴)는 결코 무섭지 않다. [삼실총의 力士]나 [안악 3호분의 주인공] 그리고 東山 중턱의 [高句麗石人像]은 결코 무섭게 생기지 않았다. 알맞게 살이 쪘고 갸름하며 여유있는 낙천적 모습이다. 삼실총의 무인상은 갑옷은 입었으나, 얼굴은 통통하고 순하게 생겼다.

고구려 벽화에서 나타난 특징은 등장인물이나 동물, 그리고 모든 주제가 調和와 均衡을 이룬다는 점이다. 5회분 4·5묘의 [태양신과 월신]이나 [화염문 사이에 낀 남녀상] 등은 색감이나 구도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 더구나 무용총의 기사의 경우 白馬(위)와 黑馬(아래)를 각각 타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그리고 무용도의 경우 무용수의 복장이 서로 상·하복의 색깔이 엇갈리게 하였다. 즉, 전자가 상의(저고리)가 붉고, 하의(바지)가 흰색이면, 후자는 상의가 흰색이며 하의는 적색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좌우·전후의 대칭적 조화는 接客圖의 탁자 모습에도 보여진다. 이러한 조화와 균형의 미는 인동당초문의 경우에도 예외없이 나타나 있다.

고구려인물화에서 특기할 또 다른 사항은 노래와 춤을 즐기는 歌舞圖이다. 빈번한 전쟁 속에서 여유와 긴장완화를 노래하는 고구려인의 현실감각은

其民喜歌舞 國中邑落 暮夜男女群聚 相就歌戱

로 나타나, 음악을 통해 결속과 단합을 꾀하였을 것이다. 가무도에는 각종 악기가 보여지는데, 『隋書』에는 彈箏·臥??·琵琶·五弦·笛·笙·簫·小??·腰鼓·貝 등 14종류를 들고 있다. 『三國史記』에도 이와 비슷하게 기록되었으나, 다만 樂工人에 대해서,

紫色나사의 모자에 새깃(鳥羽)을 달고 노란색의 큰 바지에 붉은 가죽신을 신고 5색의 노끈을 매었다. 춤추는 4인은 상투를 틀고 붉은 수건을 이마에 동이고 금고리로 장식하였다. 2인은 노란색 치마저고리와 붉은 바지를, 2인은 붉은치마저고리와 긴소매, 그리고 검은 가죽신을 신었다. 쌍쌍이 함께 서서 춤을 춘다

와 같이 그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벽화가 거의 원형을 잃고 있기 때문에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가 없으나, 다양한 악기는 찾을 수 있다. 특히 삼실총의 阮咸, 5회분 4호묘의 腰鼓, 무용총의 橫笛(젓대), 강서대묘의 大角(쌍나팔), 집안 17호묘의 角(나팔)과 玄琴 등이 대표적인 악기들이다. 다만 臥??와 阮咸에 대해서는 엇갈린 견해가 보여지고 있다.

특히 다양한 악기의 모습에서 고구려귀족의 멋과 사치를 엿볼 수 있거니와, 고구려벽화가 전기에는 '인간의 향락'을 후기에는 '천당을 갈망'하는 지적도 생각할 수 있는 견해이다. 더욱이 彈箏·臥??·琵琶·笛·腰鼓 등이 서역이나 중앙아시아계통의 악기라는 사실에서 당시의 활발한 동·서문물교류상을 확인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長川一號墓壁畵에는 橫吹를 비롯하여 비파·거문고(玄琴)·완함·大角·長簫 등 여러 가지 악기가 등장하고 있어, 고구려음악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 외 벽화에서 눈에 띠는 것은 동물과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낸 사실이다. 5회분 5호묘의 용을 탄 신선이나, 학을 탄 선인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인의 생활상을 나타낸 미천왕릉의 마구간의 그림은 한 집에 소와 말을 사육하여 경제적 여유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미천왕릉의 우물도와 부엌도 및 마구간 그림은 고구려인의 실제 생활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도나 풍속도에서 고구려귀족들이 삶을 즐기는 풍요를 느낄 수 있으며, 특히 [미천왕릉의 부엌도]에는 지붕에 새가 앉아 있어 하나의 신앙세계와도 연결되고 있었다. 또한 [미천왕릉의 우물도]에서 도르래를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물화]는 인물풍속화와 함께 고구려 고분벽화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동물에는 말·소·개·범·사슴·닭 등의 실제동물과 靑龍·白虎·朱雀 등 이른바 四神圖와 같은 환상적 동물이 있었다. 환상동물에는 그 외 [날개와 발을 가진 물고기](안악 1호분), 三足烏와 두꺼비의 日·月神(쌍영총·각저총), 기린도 등과 같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거북과 뱀이 겹겹이 꼬여있는 현무도와 方位神이나 道敎와 관련이 있는 사신도에 있어서 특히 『山海經』의 '鳥人一體'의 신화가 복희·여와의 경우와 같이 東夷의 영웅이라는 견해는 黃帝대신 神農氏나 製輪神을 갖고 있는 고구려의 도교가 지닌 非中原的인 특징에서 또 다른 문화전파로를 상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5?墳4號墓에서 보여주는 해와 달의 신은 세발까마귀와 두꺼비를 머리에 이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결합이라는 고구려벽화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동물화에서 볼 수 있는 [날개달린물고기]나 [날개달린사슴](안악1호분)은 고구려인의 환상과 꿈을 반영한 것이며, 다신교적 의식세계를 표방한 것이다. 특히 [날개달린물고기]는 덕홍리고분(동벽)에도 보이고 있는 고구려 동물벽화의 특징의 하나이다. 이것은 天馬(날개달린 말)와 함께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표시한 예라 하겠다. 더구나 [날개달린 물고기]나 [人頭雀身]의 모습은 『山海經』에 보이는 모습이어서 비중원적 요인의 특징에서 고구려 문화의 성격을 찾게 된다.

그리고 용을 탄 인간과 [牛頭人身 獸身兩頭人](아래는 동물이며 위는 머리 둘을 가진 인간), 그리고 人頭雀身(덕홍리 고분·삼실총)과 같이 인간과 동물의 공생을 통해 다신교적인 고구려인의 의식과 中原文化와 다른 북방 Scythian문화의 영향을 알려준다. 무엇보다도 해와 달의 신의 꼬리는 뱀(용)의 모습을 하고 있어 허리와 다리를 뱀으로 감고 있는 삼실총의 力士塚과 같이 유민족의 깊은 교류상을 엿볼 수 있다. 인간과 동물과의 공생관계는 용이나 뱀만이 아니고 5?墳5號墓에서 보듯이 소와도 연결되며 삼실총에서 보듯이 주작과도 공생하고 있음을 본다. 나아가서 동물 이외에 식물이나 다른 생명체와의 결합도 물론 보여지고 있다.

동물화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사신도이다. 이는 단순한 환상의 동물이 아니라 方位神내지는 道敎를 포함한 종교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선 靑龍은 東方의 守護神으로 네 발을 갖고 있어 외형상으로는 白虎와 비슷하다. 다만 머리 부분에서 차이가 있으며, 청룡은 긴혀를 갖고 있으나, 백호는 큰 눈과 날카로운 이빨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북방수호신인 玄武圖는 거북과 뱀이 뒤엉킨 모습이나, 약수리고분과 삼실총의 것은 양(염소)과 뱀이 어울린 모양을 하고 있다. 더구나 약수리 고분의 현무는 거북 잔등 모양을 하지 않고 있어 특이하다.

남방수호신인 朱雀는 닭, 봉황, 꿩 등의 결합체로서 큰 날개를 갖고 있다. 따라서 때로는 무용총의 경우와 같이 닭이 주작의 위상을 대변하기도 하고, 5회분 5호묘의 주작은 빨간 큰 날개를 가진 새가 되기도 하였다. 청룡은 비늘모습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뿔과 혀만이 길게 위로 뻗어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백호는 흰색 바탕에 털무늬가 있어 비늘무늬를 한 청룡과 다르다. 특히 5회분 5호묘의 백호는 부릅뜬 빨간 눈과 날카로운 이빨을 들어낸 큰 입, 그리고 위로 치켜 올라간 귀에 굵은 목을 쳐들고 있다. 어깨밑에는 붉은 나무가지무늬(화염문)의 날개가 붙어 승천의 의미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승천의 의미]는 무용총의 天馬圖에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어깨위로 뻗은 날개는 갈기와 같이 뒤로 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날개 밑에는 빨간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앞발이 곧게 뻗어지고 있으며, 사방에는 화염문으로 둘러 쌓여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 청룡과 백호는 크게 훼손되어 있으므로 그 외형의 차이는 [긴 혀와 날카로운 발톱]뿐이다. 즉 청룡은 긴혀로 위로 힘차게 뻗고 있으나 백호는 없다. 그리고 백호는 날카로운 발톱을 갖고 있으나, 청룡은 발가락 속에 발톱이 들어가 있다. 다만, 백호도 날개를 갖고 있어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남방수호신인 朱雀은 상상의 새로서 닭이나 봉황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날개와 꼬리가 길고 크다. 따라서 5회분 5호묘에는 유난히 빨간 날개를 가진 새가 주작이 되며, 무용총에는 수탉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玄武는 거북과 뱀이 얽킨 것으로 두 동물이 주둥이를 마주대고 있어, 힘과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교체되고 있으며 박력있는 생동감으로 고구려벽화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상의 그림이 종교적·계급적 제약과 환상적 동물의 표현으로 회화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남겼다는 북한의 견해는 당시 사상과 의식세계를 외면한 서술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고구려인의 세계관과 우주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물화에서 특기할 것은 고구려와 신라의 문화적 관련성이다. 태양 속의 까마귀(三足烏)가 결국 예언자로서의 새(朱雀)로 연결되었으며 고구려의 주작과 신라(天馬塚)의 새가 형태나 특징이 거의 같았다. 이러한 양국간의 상사성은 長川一號墓의 天馬(기린)와 天馬塚(경주)의 천마와의 상사성과 함께 고구려문화의 신라전파를 반영한 것이다. 고구려벽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새는 死者를 하늘로 연결하는 使者로의 의미를 갖고 있었으며, 弁辰에서 장례 때 새깃을 함께 묻어 죽은 사람이 하늘로 날아가기를 빈다는 기록을 구체화시킨 것이라 하겠다. 특히 삼실총에는 두 뱀이 엉켜서 싸우는 그림은 다른 벽화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장식화]에는 식물무늬·기하무늬·雲文·기둥무늬·별자리 등이 있다. 식물무늬는 연꽃무늬와 忍冬文이 특히 많은데, 전자는 무용총과 삼실총에서, 그리고 후자는 江西大墓와 사신총에서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기하무늬에는 원형·?甲·톱날·병풍무늬 등이 있으며, 구름무늬가 크게 눈에 띈다. 기둥무늬는 무용총이나 각저총에서 볼 수 있는 지상건물처럼 보이게 한 것으로 기둥·두공·도리 등을 묘사한 것이다. 별무늬는 무덤 천정에 그려져 있는 것으로, 진파리 4호분이나 長川一號墓의 星座圖도 그 일종이다.

장식화에서 가장 많은 것은 연꽃이다. 대체로 下解放31號의 벽화와 같은 형태를 갖고 있으나, 무덤에 따라 그 모양이 약간 다르다. 이러한 연꽃무늬는 무용총·각저총·麻線溝 1호묘 등에서도 비슷하게 보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연화문도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또한 연꽃봉오리 무늬도 무용총의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연꽃의 무늬에 따라 그 특징을 시기별로 정리한 孫仁杰의 견해에 따르면, 처음에는 藻井에만 그려 넣었으며, 다음에는 藻井이 꽉차게 장식되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묘실 벽에 장식되었으며, 다음에는 다른 그림속에 분포되었다는 것이다.

연꽃무늬 중에서 가장 장식적 표현은 만개된 연꽃의 문양이다. [진파리 1호묘]의 연꽃모양이 가장 상징미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꽃문양도 다양한 변화를 나타내 마치 와당을 보는 듯하다.

연화문은 쌍용총이나 연화총의 것을 모델로 하여 약간씩 달랐으니, 이러한 다양한 연화문은 불교의 번창과 귀족들의 생활여유 속에서 화려한 문양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고구려인의 연꽃무늬는 蓮華化生으로 승화된 것이다

또한 장식무늬에서 큰 비중을 갖고 있는 인동무늬는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다. 특히 사신총(집안)의 것은 나뭇잎 가운데 꽃망울이 있는 것과 새모양으로 색깔을 달리하면서 거꾸로 이어지는 것은 그 멋과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다. 그러나 대부분은 같은 무늬를 연결시킨 것이다. 그 외 雲文도 있으며, 무용총과 각저총의 半切蓮花文(博山文)도 있었다. 이러한 장식무늬는 그림의 주인공이나 주제를 부각시키며 공간을 메꾸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 무늬는 대개 천정 고임부분을 장식하였고, 그림과 그림사이를 연결시키는 고리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인동당초문의 유행은 중동 및 서역문화와의 밀접한 관련을 찾을 수 있다.

장식무늬 중에 특이한 것은 星座圖이다. 현실천정 꼭대기에는 대부분 성좌도가 있다. 동쪽에는 태양(3발까마귀)이, 서쪽에는 달(두꺼비)이 있고, 몇 개의 동심원이 그려져 있으며, 거의 北斗七星이 예외없이 나타나있다. 이러한 성좌도는 고구려의 천문학이나 과학의 수준을 반영한 것으로 高松塚에 영향을 주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성좌도의 내용에서 『三國史記』에 보여진 彗星·五緯(五星)·太白·土星 등의 출현은 단순한 天變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長川一號墓에 있는 성좌도는 북두칠성이 남북으로 교차되어 있으며, 달에는 두꺼비 외에 토끼(?)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 외 風景畵가 있는 바 주제와 자연을 연결시키거나, 이것은 주제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풍경화에는 산, 나무, 구름 등이 중심이 되었으나 그 형태는 단순화하거나 상징화 또는 도식화하였다. 그러나 풍경화는 벽화의 주제도로서는 존재된 것은 흔하지는 않았으며 주로 수렵도의 배경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한편, 북한의 경우 다양한 벽화의 형태에 따라 「사회풍속화」,「도안화」, 그리고「神靈畵」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사회풍속화는 고구려 전기의 고분벽화로 宴樂·出行·禮輦·狩獵·戰爭(攻城)·百戱·倉庫·부엌 등이 있으며, 도안화는 중기무덤의 고분벽화로 전통적 도안(기둥·나무·구름·비천·용)과 불교식 도안(연화)이 있었다. 그리고 신령화는 고구려 후기의 고분벽화로 사신묘·강서대묘·5회분(4·5호) 등의 사신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인동문과 용과 거북의 엉킨 모습, 구름과 용을 탄 신선 등 고구려고분벽화는 그 형태와 내용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고구려벽화는 당시의 사회생활이나 행동양식을 반영하기 때문에, 고구려인들의 실제 삶을 나타내고 있다. 벽화마다 나타난 宴會圖와 接客圖는 귀족들의 사치와 여유를 나타내고 있었고, 狩獵圖는 단순한 사냥이 아니라, 군사훈련과 인물발탁의 과정이 있다. 특히 고구려인의 귀족적 취미는 무용총 벽화에 나타난 수렵도의 화살촉에서 그 상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날카로운 화살촉이 아니라, 석류모양을 하고 있어, 동물(사슴, 호랑이)을 생포하려는 목적인 것이다. 동물을 기절·마취시켜 생포하여 집안에 가두어 즐기려는 취미의 모습이 역력하였다. 이러한 鳴鏑은 목표물을 단순히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맹수를 쫓아내서 작은 동물(사슴·토끼)을 잡는 방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벽화를 통해 우리는 고구려인의 尙武的 氣風과 樂天的인 기질을 잘 알 수가 있다. 무영총에서 나타난 무사들의 사냥도나 삼실총의 역사들은 팔뚝이 가슴의 두배나 되고 있어 힘과 패기에 찬 고구려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무용총이나 각저총의 벽화에서 보여지는 연회도에서는 으레 화려한 실내장식과 무덤주인공에게 따른 시종자들의 그림은 고구려 귀족들의 생활상을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여러 동물이 뒤엉킨 사신도의 환상적 표현은 내세에 대한 강렬한 투영을 엿보게 하며,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신과의 조화에서 고구려의 종교관과 사생관을 보여준다.

더구나 벽화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구도와 다양한 색상은 온도·채광·습도 등을 조절한 과학적 뒷받침에서 가능한 것임은 사실이다. 또한 고분벽화에서 고구려여인들의 「점박이」옷이나 ?과 折風과 같은 모자의 풍속은 어느 벽화나 비슷하게 나타나 있어 고구려인들의 전통적 습관으로 보인다. 특히 무용총벽화의 걸상과 평상생활이나, 마선구 1호묘에서 나타난 다락식 창고는 ?京의 원형을 찾게 해 준다.

고구려벽화에는 당시 음악·무용·교예 등 예술의 발달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현악기·관악기·타악기 등 21종의 악기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王山岳의 거문고〔玄琴〕는 4현금(무용총)과 6현금(미천왕릉)에서 볼 수 있으며, 비파모양을 한 阮咸은 삼실총과 미천왕릉에서 찾을 수 있다. 관악기로는 나팔·저·소 등이 있으며, 타악기로는 북과 장고가 있다. 이러한 다양한 악기와 연주장면은 고구려인의 낙천적인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그 외 높은 나무다리 위에서 춤을 추는 교예도 있어 춤의 다양성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장식무늬의 발달은 진파리 1호분이나 흥륜사(경주)출토 와당에서 보듯이 고구려의 문양이 통일신라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고구려는 그 문화를 濟·羅에 전파함으로써 민족예술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나아가서 벽화의 인물이 동물뿐 아니라, 식물과도 공생하였으며 불교가 양자를 연결시키는 역할도 하였다. 長川一號墓의 蓮華化生은 만물태생의 의미였으며, 그후 통일신라로 연결된 것이다. 특히 이러한 연화화생에 등장하는 장식모양은 연화문 외에도 당초문, 보주연화문, 화염문 등으로 나타나지만 궁극적으로는 연화화생의 바탕에서 형성된 불교미술의 발전이라 하겠다.

이러한 고구려의 벽화에 대해서 북한학계는 당시 사회생활을 반영한 것으로 힘과 미의 조화로서 생동하는 사실적 표현과 선명한 색감, 그리고 명암의 능숙한 이용성을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점차 환상적 동물의 등장에 따른 실제인물 풍속도가 주류를 이루어 종교가 회화발전에 해독을 끼쳤다고 보았다.

고구려고분벽화에서 보여진 이러한 불교적 색채외에도, 상상의 동물이나 날개달린 인간 등 특이한 모습이 눈에 띤다. 百獸의 으뜸으로서 麒麟 이외에 鳳凰·龍·거북 등 靈獸와 朱雀과 玄武도 결국은 상상의 동물이다. 특히 德興里古墳에서 보여진 「두사람 얼굴을 가진 짐승」(地軸;一身兩頭), 「날개달린 인간」과 安岳1號墳의 「날개달린 물고기」그리고 5회분 5호묘의 白虎도 빨간 날개를 갖고 있다. 결국 이러한 모습은 하늘로 비상하고 싶은 인간의 희망과 하늘(사후)세계를 넘나드는 인간의 욕구〔또는 소원〕를 나타냈다고 생각된다.

또한 고분벽화 곳곳에서 산견되는 기린은 조상들의 영혼과 동일시로 神格化되어 실재의 동물(사슴·말)에다 하나의 뿔과 날개를 가미하여 초자연적인 靈物로 승화되었다. 기린은 5행사상의 화신이 되었으며, 사후세계의 인도자내지는 수호자로 받들면서 조선시대까지 숭배되었다. 더구나 기린은 德과 仁의 상징으로서, 사슴·말·소 등과 결합된 동물이었다. 따라서 무용총 서남천정은 꼬리가 둥근(짧은) 사슴형이고, 무용총 북동천정은 말형이다. 그러나 장천 1호묘의 그것은 말·사슴의 혼합형이어서, 기린의 형태가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漢代의 기린이 사슴형이었으나, 남북조에 이르러 말·사슴형으로 바뀐 사실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 동시에 고구려에 있어서 말의 중요성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또한 기린은 神氣를 내뿜어 내는 특징을 나타내며, 후한시대 이후 不死世界의 瑞獸에 포함되어 중국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다만 기린 역시 하늘을 날으는 날개를 갖고 있어 천마의 뜻을 지니고 있다. 한편 魯人面鳥身·獸頭人身·飛魚 등 瑞獸의 기원과 신선설화의 발생을 중국 동북방의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발해만 지역으로 상정하는 주장은, 官房道敎와 다른 동북아시아의 특색으로서 고구려문화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 河南省의 學庄村 鄧縣의 彩色畵像?墓의 벽화와 德興里古墳壁畵를 비교할 때 상호연관을 찾을 수 있다. 더구나 襄陽賈家?의 畵像?墓에 보이는 「주작의 몸에 인간의 얼굴을 한」모습은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며, 이러한 人頭鳥身像 역시 상호관련이 있어 고구려는 남북조뿐 아니라, 서역까지도 문물교류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덕흥리고분을 다각적으로 검토한 南秀雄의 주장에 잘 반영되어 있다.

특히 神鳥토템이나 鳥人一體의 신화에 보여지는 벽화는 『山海經』의 내용에서와 같이 동이계통의 신화로 고구려의 벽화에 이르러 새로운 활로를 맞게 되었다고 하겠다. 우리는 『山海經』의 신화가 동이계 신화 특히, 고구려 신화와의 관련 속에서 고구려 문화의 특성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구려 벽화의 성립시기 「3세기 중엽」과 동이계 도교신화가 성립된 시점인 「2세기 후반」을 고려할 때 두 문화가 한 공간 내에 동시에 표출된 사실을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벽화는 단순한 신화의 단계만이 아니라 예술의 차원을 넘어 종교와 과학과의 결합이며, 고구려인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벽화 속에서는 상무적이며 진취적인 고구려인의 특징이 나타나 있는가 하면, 노래와 춤을 통한 현실적인 낙천생활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고구려여인의 화사한 복식에서 여유와 멋, 그리고 풍요의 일면도 볼 수 있으며, 특히 회화의 기교에서 보여지는 조화와 균형의 미는 무용총(수렵도)에서 보듯이 말의 색깔(흑과 백), 사냥하는 인물의 방향에까지 반영되어 있다. 나아가서 서역과의 교류상 및 제·라 그리고 일본과의 교류가 빈번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기린상에서는 천마총(경주)과 무용총의 모습, 성좌도의 내용(장천 1호묘와 다가마스총)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다만 고구려 벽화에서 주목하려는 것은 『山海經』의 내용과 도교와의 관계이다. 덕흥리 고분에서 보여진 萬歲之象과 『山海經』鳧?와는 여러 모로 비슷하다. 또한 5회분 4호묘의 용을 탄 신선은 『列仙圖』의 王子 喬와의 상사성은 양자간의 관련을 믿게 해 준다. 더구나 덕흥리고분이나 삼실총에 등장하는 말·사슴·주작·신선 등은 거의가 『山海經』에서 나타나는 모습과 너무 닮았다. 따라서 『산해경』에 나타난 동이계 신화와 고구려 신화의 관계를 통해 고구려 문화의 성격을 재조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고구려 문화가 中原文化와는 그 기원과 특징을 달리하는 것으로 우리 민족문화의 성격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