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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발해의 옛땅을 찾아,현지를 간다
서길수

 

1. <고구려·발해길> 일정

제1일(7월 26일 일요일 출발)

서울(12:40)-CJ686- 大連(12:40)

午後 大黑山山城(고구려 卑奢城) 및 大連 觀光 대련 1박

大黑山산성 (고구려 卑沙城)

소재지: 대련시 金州縣城 동쪽 7.5㎞ 지점에 있는 友誼鄕 八里村 동쪽에 있는 대흑산

규 모: 둘레 5㎞, 성벽 너비 3.3m, 높이 약 3∼5m. 성문은 서남쪽 관문 입구에 있다.

해발 663.1m의 대흑산은 청나라 이후 大赫山 또는 大和尙山이라고 불렀다. 대흑산산성의 남쪽 두 개 산봉우리 등성마루 위에 청회색 석회암으로 쌓은 거대한 산성인데 고구려의 비사성이라고 비정하고 있다. 비사성은 한문으로 卑沙城, 卑奢城, 또는 畢奢城이라고도 불렀다.

비사성은 수나라나 당나라가 쳐들어 올 때 산동반도의 동래에서 출발한 수군이 맨 먼저 고구려 군과 맞닥뜨리는 성이다. 삼국사기에 묘사된 비사성은 [사면이 절벽으로 되어있고, 다만 서문으로만 오를 수 있었다]고 되어 있어 상당히 함락하기 힘든 요새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 비사성 안에는 唐王殿, 서쪽 기슭에 향수사(響水寺), 조양사(朝陽寺)와 산 내지에 관음각(勝水寺)가 있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관광명소가 되어 있다.

제2일(7월 27일) 大連 - 城山山城(고구려 石城) - 丹東 단동 1박

성산산성(고구려 석성)

-압록강 이북 고구려산성 가운데서 가장 완전하게 남아있는 산성-

소재지: 요령성 莊河縣 城山鄕 沙河村 萬德屯 城山

규모: 앞성 - 2898m, 뒷성 - 5000m

고구려 산성을 공부하기 위해 하나만 간다면 바로 이 성을 택해야 할 정도로 잘 남아 있다. 문터, 치성, 아성, 장대, 천단, 봉화대, 깃대봉, 못, 병영터, 암문 등 고구려 성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제3일(7월 28일) 鴨綠江 遊覽-?河尖古城터-虎山山城(고구려 泊灼城?) - 桓仁 환인 1박

애하첨(?河尖) 고성터(고구려 안평, 서안평의 동쪽)

재지: 丹東市 진안구 九連城鎭 上尖村

규 모: 흙으로 쌓았는데 한 변의 길이 100m 정도의 네모꼴. 면적 약 10,000㎡.

애하가 압록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삼각주이기 때문에 지세가 평탄하다. 동쪽이 압록강, 서쪽이 애하 지류이고, 구련성진에서 2.5㎞떨어져 있으며, 남쪽에 하첨촌과접해있다.

지면에서 한나라와 고구려?요금시대의 기와와 도기조각들이 나왔는데 [安平樂未央]이란 글이 새겨진 막새가 나와 이곳을 서안평 동쪽의 안평으로 본다.

호산산성(고구려 泊灼城?)

소재지: 寬甸縣 虎山鄕 虎山頭

명나라 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알려져 중국이 장성을 복원하면서(1990년) 고구려산성을 확인. 호산 남쪽 아래 장성의 기점이 되는 한 변 36m의 판축토대가 나왔는데 그 아래층에서 고구려의 석축 성벽과 우물터가 발견되었다. 또 호산 정상을 통과하는 장성의 장대 받침은 고구려산성의 성벽을 이용하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제4일(7월 29일) - 고구려의 첫 도읍지 환인 답사 - 集安 집안 1박

下古城子-上古城子-將軍墓-沸流水 萬樂島(오녀산 원경)

♤ 上古城子무덤떼(고구려 때의 돌무덤)

六道河子 상고성자촌 동북 100미터의 밭에 있다. 고구려 초기토성인 하고성자에서 북쪽으로 1.5㎞ 지점에 있다. 1960년 대 조사 때 200여 기가 있었으나 문화대혁명 때 hen 허물어 버려 1988년 조사 때에는 겨우 27기 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그나마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 下古城子(고구려 때의 평지성)

육도하자향 하고성자촌 자체가 성터이다. 환인에서 3㎞, 혼강 서쪽 가장자리의 평원에 자리잡고 있다. 1987년 조사 당시 동 226m, 서 264m, 북 237m, 남 212m의 규모였는데 현재는 거의 훼손되어 흔적을 찾기 힘들다.

♤ 장군묘(米倉溝 무덤떼)

雅河鄕 미창구촌 북쪽 500미터 낮은 산 언덕에 있으며 언덕 밑에는 바로 혼강이 흐른다. 이 장군묘에서는 집안 이외에서 유일하게 벽화가 발견되어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다, 묘의 규모나 백화의 내용으로 보아 고구려 때 왕족의 무덤으로 보고 있다.

♤ 오녀산성(고구려 홀본성)

부여를 떠나 비류수를 따라 내려오던 주몽은 졸본에 와서 고구려를 세운다. 학자들은 그 졸본성을 현재의 오녀산성이라고 한다. 820m 높이로 우뚝 솟은 오녀산은 고구려 첫 서울의 의연한 모습을 갖추고 우뚝 서 있고, 2,000년이 넘은 이끼 낀 성벽은 수많은 역사의 애환을 간직한 채 아직도 숨쉬고 있다.

♤ 환인 혼강댐(고구려 비류수) → 만락도

고구려의 첫 수도 환인과 두 번째 수도 집안을 잇는 비류수는 아직도 渾江이란 이름으로 흐르고 있다. 81㎞나 되는 혼강(비류수)를 막아 길이 593.3m, 너비 89.3m, 높이 78.5mdml 댐을 쌓아 34.6억㎥의 물을 저장하고 있다. 1958년 시작하여 10년 후인 1968년 준공하여 발전소와 양어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댐 건설 당시 환인지구의 최대 고구려 무덤떼가 있던 고려묘자촌이 수몰되어 버렸다.

제5일(7월 30일) 집안 - 고구려 국내성, 발해 압록부(鴨綠府)환주(桓州) 집안 2박

高句麗 遺蹟 답사(광개토태왕능, 다섯무덤, 장군총, 국내성 등)

제6일(7월 31일) 집안 高句麗 遺蹟 답사 - 通化출발(저녁 9시 05분) 열차 침대차 1박

환도산성, 장천1호, 국동대혈 등

제7일(8월 1일) 白頭山 登頂 백두산 1박

二道白河 도착(새벽 4 시 30 분) - 백두산 등정

제8일(8월 2일) 백두산 - 和龍 渤海 中京城터 - 延吉 연길 1박

西古城(중경 顯德府 자리)

소재지: 연변조선족자치주 和龍縣 頭道평원

규 모: 둘레 2,720m (심하게 훼손됨)

일제시대 때 발굴 결과에 따라 발해 궁성으로 밝혀졌는데 발해의 중경 현덕부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학계의 논쟁이 많았다. 현재는 중경 현덕부로 인정하고 있다.

서고성은 내외 두 개의 성으로 나뉘고 내성은 외성 가운데서 북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다. 서고성의 모양새, 짜임새 그리고 규모로보아 발해때의 수도로서 특징을 가지고있다.

貞孝公州墓

소재지: 화룡현 龍水鎭 龍海 용두산

서고성 근방에는 많은 무덤들이 널려 있는데 지금까지 20여 자리의 무떰떼에서 1000여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정효공주묘는 1980년 연변박물관에서 발굴하였는데 정효공주묘비와 벽화가 발견되어 발해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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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구려길> 일정

제8일(8월 2일) 백두산-和龍 渤海 中京城 터-延吉

연길(15:55) -CJ6626- 대련(19:40 )

제9일(8월 3일) 大連(09:00) -CJ685- 서울(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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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발해길> 일정

제1일(8월 2일) 서울(12:40)-CJ686- 大連(12:40)

제2일(8월3일) 고구려발해팀과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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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일(8월 3일) 도문 - 琿春 - 발해 東京城(팔련성) 터 - 溫特赫部城터 -

裴優城 - 薩其城 - 城子山山城 연길 2박

팔련성(동경 龍原府)

八連城은 琿春江과 두만강의 삼각충적평원 서북부 혼춘시 三家子鄕 국영 우량종농장 남부 경작지 안에 있다. 동경 용원부 자리로 784-794년 짧은 기간 동안 발해의 서울이었다. 또한 발해에서 일본으로 가는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온특혁부성-배우성

고구려 때부터 사용한 溫特赫部城과 그 뒤 확장한 裴優城은 팔련성에서 가까운 삼가자향 고성촌에 있다.

살기산산성(薩其山山城)

혼춘시 동쪽 楊泡鄕 泡子沿村 남산에 있는 산성인데 둘레가 6㎞나 되는 큰 성이다. 고구려의 柵城이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잘 쌓은 성인데 현재도 돌로 쌓은 성벽이 많이 남아 있다.

성자산산성

연길시 동쪽 10㎞, 圖門市 長安鎭 磨磐村 山城里屯 성자산에 있다. 둘레가 4,454m로 큰 성인데 고구려, 발해, 요금 시대의 유물들이 모두 출토되는 곳으로 보아 고구려 이후 계속 사용된 곳으로 보인다. 이곳을 고구려의 책성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제10日(8월 4일) 연길 - 黑龍江省 寧安縣 발해 上京城 - 鏡泊湖 경박호 1박

흑룡강성 상경 용천부

흑룡강성 영안현 발해진 동경성에 있는 발해의 수도로, 화룡의 서고성에서 755년 이곳으로 천도한 뒤 10년간 혼춘의 팔련성으로 갔다온 기간을 빼놓고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 수도였다. 당나라 장안성을 뽄 따 만들었다고 하는데 당시 당나라 장안성에 이어 동아시아에서 두 번째 큰 도시라고 한다.

제11일(8월 5일) 경박호 - 敦化 오동성 - 육정산 - 성산자 산성 - 돈화 돈화 1박

돈화 성산자산성(발해의 첫 도읍지 동모산 비정)

돈화시에서 서남쪽으로 22.5㎞ 떨어지 목단강 상류인 돈화시구 紅山鄕 성자산촌에 있는데 대조영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 震나라를 세운 동모산산성이라고 비정하고 있다. 들판에 외딴 섬처럼 홀로 서 있는 산 위에 쌓았는데 둘레는 2㎞정도이다.

오동성,영승유적(발해 건국 초기의 도읍지 舊國으로 비정)

학계에서는 傲東城을 발해의 도읍(舊國)유적, 즉 발해 왕조의 최초 도읍지로 보고 있다. 주위에 많은 발해 유적이 있는데 유적 11곳, 무덤떼 1곳, 성터 11곳, 건물자리 5곳이 있다. 최근에는 돈화시 강동향 永勝村에 있는 영승유적을 구국으로 비정하는 학자도 있다. 영승유적은 남북 길이 1000m, 동서 길이 700여 미터로 돈화시의 발해유적들 가운데서 규모가 가장 크다.

목단강 유역의 24개돌 건물자리

돈화에서 영안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데 24개의 주춧돌만 남아 그 용도에 대해서 많은 추측을 낳게 했다. 그러나 최근 도문시의 馬牌와 북한의 함경북도 漁浪郡 會文里에서도 같은 건물자리가 나왔다. 세 군데 유적이 모두 강가의 길 가에 위치하고 있어 주요한 교통요지에 세운 역참으로 보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육정산 발해무덤떼

돈화시 남쪽 약 5㎞ 거리에 있는 육정산에 있다. 6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 육정산이라고 하는데 서쪽 두 번째 봉우리가 603m로 주봉이다. 육정산 무덤떼에는 모두 80여 기의 무덤이 있는데 이미 32기의 무덤을 발굴하였다. 이 무덤떼 가운데 제1무덤구 제2호 무덤이 발해 제3대 와 대흠무의 둘째딸 정혜공주의 무덤이다. 이 무덤에서 아주 진귀한 묘비와 돌사자가 발굴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제12일(8월 6일) 돈화 - 吉林 용담산성 - 동단산성 - 長春 길림성 박물관 장춘 1박

용담산성

龍潭山城은 현재까지 발견된 고구려 성 가운데서 가장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길림시 중심에서 약 7㎞ 떨어진 해발 388.3m 용담산 위에 있다. 성벽은 대부분 황토에 응회암 자갈을 섞어서 쌓은 것이고, 일부분은 황토를 다져서 쌓았다. 성벽의 둘레는 2,396m이고, 가장 높은 곳은 10m, 낮은 곳은 2m 쯤 남아있다.

산성 안에 용담이라는 못이 있고, 용도가 확실하지 않은 물이 없는 저장소가 한 군데 있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성안은 물론 송화강과 길림시가 한 눈에 보이고 동단산도 바로 내려다 보인다.

동단산산성

부여시대의 유물이 나와 특히 귀중한 유적이며, 그 뒤 고구려, 발해의 유물도 나와 일제시대 때부터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곳이다. 송화강 가에 있는 동단산은 해발 28.3m인데, 부근 지표면보다 약 50m 정도밖에 높지 않은 아주 작은 산이다. 3중의 산성과 평지성이 있고 멀리 부여 유적인 모알산이 보인다.

제13일(8월 7일) 瀋陽 요령박물관 - 신락박물관 - 등탑현 백암성 - 遼陽탑 요양 1박

요령성박물관: 요령성에서 가장 크고 미약하지만 고구려 방이 따로 있다.

신락박물관 : 1973년에 발굴한 신석기시대의 문화로 7,200여 년 전에 이미 문화생활을 했다는 갖가지 도기들이 출토되었으며 상층부에서는 청동기문화 유적이 출토되어 고조선문화의 연관성 문제를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유적이다.

백암성

압록강 이북에 있는 고구려 산성 가운데서 가장 웅장하게 남아있는 산성이다.

령성 燈塔縣 西大窯鄕 官屯村 燕州城大隊에 있다. 백암성은 요동성이 무너지면 태자하를 따라 쳐들어오는 적을 바로 맞이하는 중요한 성이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산성을 직접 오르며 치성과 아성 등 고구려 산성의 특징을 살피고 당 태종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전투가 벌어진 장소와 태자하를 살핀다. 위대한 고구려인들의 축성술을 볼 수 있는 성벽들이 웅장하게 남아있어 고구려의 막강한 국력을 실감할 수 있는 성이다.

제14일(8월 8일) 遼陽 - 海城 영성자산성(고구려 안시성) - 大連 대련 1박

英城子山城(고구려 안시성)

둘레 4㎞의 토성이다. 해성에서 岫巖으로 가는 대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당 태종 수십만 대군을 무찌른 고구려의 성 안에는 중국인들이 마을을 이루고 사과밭을 일구고 있다.

제15일(8월 9일) 大連(09:00) -CJ685- 서울(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