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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궁궐

 고구려 왕궁터로 알려진 것은 길림성 집안현의 국내성 터와 평양시 대성 구역의
안학궁터, 평양성(장안성)의 궁성터 등이다. 고구려는 도읍을 통구에서 대성산 
일대의 평양으로, 다시 장안성 일대의 평양으로 옮기면서 국가의 발전과 상응하
는 도성과 궁성을 갖추었다. 초기에는 평서오가 산성을 유기적으로 관련짓되 일
정한 거리를 두고 따로 건설하였다. 그러나 장안성에서는 이들을 결합한 평산성
을 쌓고 그안에 체제를 갖춘 도시를 형성하여 일반 백성들도 성 안에서 살게하 
였다. 현재 국내성이나 장안성 내성의 궁궐터는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며 다만
안학궁만이 발굴 조사되어 고구려 전성기 궁궐 건축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성
국내성은 기원전 37년부터 427년까지의 고구려 궁성이다. 이 기간동안 이곳이 
고구려 전기의 명실상부한 왕궁이었다. 이 성 안에서 현재 도시가 자리잡고 있
는 관계로 고구려 시대의 성 안 시설물 포치를 자세히 알기 어렵다. 다만 성 안
의 서북쪽에서 고구려 시기의 주춧돌이 나와서 당시에 큰 건물이 세워져 있었
음을 말하여 준다. 또 붉은 색의 고구려 기와들이 많이 나왔고 성 안의 큰 길로
는 성문들을 서로 연결하는 동서 남북의 두길이 있었다.
성벽은 잘 다듬어진 방추형 돌로써 네모나게 쌓았는데 그 둘레는 약 3800여 미
터이며 현존 성벽의 높이는 약 5내지 6미터인 것으로 보인다.

 

 
 
안학궁성
안학궁성은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직후인 427년 무렵에 대성산성과 함께 건설
되어 지금 평양시에 해당하는 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긴 586년까지 고구려 후기
의 왕궁이 있었던 곳이다.
장수왕은 평양 천도 뒤, 줄곧 이 궁에 거처하였고, 국내성과는 달리 주변에 강
력한 군사시설들을 갖추고 있었다.
안학궁성은 성벽 한 변의 길이가 622미터, 넓이 약 38만 평방미터나 되는 웅장
한 토성으로 돌과 흙을 섞어서 벽을 쌓았고 성벽 안에는 성벽을 따라 약 2미터
너비로 포장된 순환도로를 냈다.
또 성벽의 문들을 연결한 도로, 궁정과 화랑, 못, 조산등 규모가 크고 화려한 
건축물과 시설물이 있었다.

 

 
 
장안성
장안성은 552년에 쌓기 시작해 586년에 완공된 성이다. 국내성과 안학궁성은
통치 계급의 주거 지역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쌓았으므로 일반 주민들
은 성 밖에서 살았다. 
그러나 후기의 도성인 장안성은 도시 주민들이 모두 성 안에서 살게 되면서 
크게 쌓은 성이다.
장안성은 북성, 내성, 중성, 외성등 4개의 성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둘레는 
23킬로미터, 성 안 총면적은 1186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큰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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