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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윤명철(동국대 강사)

서 언

우리는 지금 새로운 밀레니엄이라는 21세기를 겨우 2년 앞에 둔 엄청난 대 변혁의 폭풍 가운데서 휩쓸려 다니고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두에 걸쳐 개편된 세계질서가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진동과 큰 진폭으로 다시 재편되고 있다. 앞으로 몇년 간에 짜여진 기본틀은 인류의 장래는 물론이고, 정치 경제적으로 각 민족과 국가들의 50년 내지 100년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런데도 광범위하고 전면적인 세계화가 추진되고 신문명이 도래하는 현실을 맞이하면서도, 우리는 나아갈 좌표를 설정하지 못한채 표류하고 있다. 안으로는 인간성을 잃어가고, 도덕적으로 황폐화 되며, 사회질서는 뿌리채 흔들리는 등 혼란이 심해지고 있다. 한편 밖으로는 세계질서에 대하여 어떻게 적응할까하는 대응논리가 성숙되지 못했다. 또한 정제되지 못한 외부문화가 범람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마져 이루지 못하고 있다. 더우기 최근에는 IMF사태가 발생하여 국가가 부도날 우려마져 있다. 바햐흐로 민족의 생존이 위태로운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적합한 대응방법론을 만들며,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의 삶을 해석하고, 가치관을 만들고, 또 방향을 결정하는데 남의 눈과 입장에서 하였다. 다른 세계를 해석한 틀로 우리의 삶과 미래를 규정짓고, 남의 모범 답안지를 갖고, 우리문제룰 해결하는 기본 정답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한 집단을 기본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그 집단 스스로가 하는 것이 순리이다. 일을 주체가 해석을 하는 것은 명분으로나 실질로 보아도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야말로 모든 일을 같이 체험했고, 절실함을 느끼며, 또 집단의 지향점과 생각을 제일 잘알기 때문이다.

남의 생각을 흉내내고 남의 모델을 빌어서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가능성이 많으며, 적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도 미리 알 수 없다. 또한 다양한 실험과 치밀한 검증작업이 미흡하거나 생략되어 있으므로 실패할 확률이 그만큼 많아진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한 집단의 경험과 역사는 바로 주체집단의 언어와 생각을 바탕으로 해석해야하며, 문제의 해결방법 또한 스스로가 찾아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천 수백년 동안 종교 사상 이데올로기 등의 남의 이론과 모델을 빌어다 전면적으로 적용하려는 서글픈 노력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결과적으로는 자기역사에서 마져 주변부로 밀려나 방관자적인 태도로 살아왔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주어진 몇가지 당면문제를 해결하기 위하한 모델을 우리 역사에서 찾고자한다. 우리에겐 남의 모델을 적용하고 유예기간을 갖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고 상황이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사실을 고증하고 내용과 본질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이고,왜 그렇게 되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해결하는 방법론을 추구하고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사명이다. 역사학이야말로 경험과 실험과 사실을 바탕으로 한 학문이므로 실패율이 적은 해결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숱한 역사과정 속에서 가장 바람직한 모델을 설정할 수가 있다. 때문에 역사학은 과거를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음에도 미래학인 것이다.

최근에 고구려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다. 전문학회가 만들어지고,관련 학술회의가 자주 열리고 있다. 또한 전문서나 대중적인 책들이 출판되고, 연극 춤 컴퓨터 게임 등 고구려를 주제로한 다양한 장르의 활동들이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왜 일어나고 있을까?

고구려는 우리에게 뭔가 강하고 의미있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고구려는 현재 우리 민족이 추구하고, 달성해야할 목표들을 이미 천 수백년 전에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실천했으며, 또 실패했던 경험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을 지향했으며, 중국과 북방국가들에 대해여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가졌다.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우수한 문화를 개화시킨 나라였다. 때문에 민족의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 몇가지 고정된 틀과 관념을 틀을 깨고, 변화 시킬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숨겨지고 왜곡?던 진실들을 알려줄 수 있다. 예를들면 '우리는 농경민족이었다.' '반도민족이었다.' '중국문화의 아류였다.' '오랫동안 중국의 주변부로서 정치적인 지배를 받았다.' '정착성을 갖고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고구려는 지배계급의 내분으로 망했다.' 등등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들이다.

필자는 고구려의 성격과 발전과정, 그들의 세계관 등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서 근거없는 편견을 불식하고 21세기적인 의미와 대안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민족이 설정해야할 패러다임의 한 모델로서 고구려를 삼고자 한다.

1. 민족 정체성의 확립과 고구려 정신

우리는 고구려를 통해서 우리민족의 자아(정체성,identity)를 찾고 확립할 수 있다.당면한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고, 21세기에 자주적인 역사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잊어버렸고, 잃어버렸던 민족의 자아를 찾고 회복하는 일이 1차적인 과제이다.

개인에게 자아가 있듯이 민족에게도 자아가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하여, 사회가 사회답고, 민족이 민족답게 존재하기 위하여는 자신에 대한 자각, 민족에 대한 자각이 투철해야 한다. 자아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삶에 대해 자신감도 갖지못할 뿐 더러, 자존심도 약하고, 의미있게 살려는 노력도 게을리 한다. 집단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민족은 항상 다른 민족과 구별되려고 하며, 경쟁의식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으므로 자아가 매우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역사에서 진보의 동력은 자아의식에서 부터 나온다. 자아의식이야 말로 사회를 밝게하고 민족과 역사를 진보 시키는 에너지이다.

인류의 역사과정이 말해주듯이 민족자아의 상실은 사회와 역사의 왜곡을 가져오고, 내부의 인간들로 하여금 자유의지를 포기하고 비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게 한다. 당연히 사회는 진실을 잃어버리게 되고 인간성은 타락하며, 다른민족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만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외세에 의하여 자주적인 역사발전이 오랫동안 저해당해왔고, 영토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렸다. 때문에 문화가 왜곡되거나 감추어져 왔을 뿐 만 아니라 자기문화의 현장체험을 할 기회를 봉쇄당했다. 또한 외부문화를 비자발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우리문화에 대한 자의식이 약할 뿐만 아니라 정체성(identity)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지 못한채 지내왔다.

특히 20세기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맞이한 시대가 아니었다. 세계사의 조류에 흽쓸리고,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에 의하여 피동적으로 강요받은 시대였다. 따라서 자기의 역사에 대하여 주체적으로 해석을 할 기회가 적었다. 때문에 자기문화를 비하하게 되었고, 왜곡된 문화를 강제로 수입당했을 뿐 만 아니라, 민족자아를 상실하였다. 그 결과 현실을 능동적으로 극복할수 없었으며 20세기를 맞이할 방법론을 모색할 수도 없었다. 그 결과 식민지가 되었고, 민족이 분단되었으며, 급기야는 한국전쟁이 벌어졌다. 이후에도 근대화를 비자발적으로 추진할 수 밖에 없었으며, 독재정치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역시 우리의 역사발전은 왜곡되어왔다.

이제 뒤늦게 나마 역사를 정상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는 민족자존심을 회복하고, 역사의 주체는 바로 자신들이라는 자의식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이라는 것을 탐구하고 인식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민족의 고질적인 성격으로 알려져있는 사대성 주변성 대국콤플렉스를 말끔히 해소하여야한다.

그런데 우리역사에서 가장 자의식이 강했던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는 자의식을 바탕으로 제국이 되고, 문화적으로도 매우 성숙하였다. 바로 고구려이다.

고구려는 고조선과 부여를 이어받았다는 계승의식이 강하였므으로 출발부터 자의식이 강했다. 고주몽은 건국하자 마자 송양의 비류국을 정복한 다음에 다물도라고 이름을 붙여 고토회복 행위임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인들은 해를 숭배하고, 자신들을 천손이라고 선언했다. 주몽과 혈연관계를 맺고 있는 해모수 해부루 등의 부여계와 해명태자 해주류왕 해색주 해우 등 고구려의 초기왕족들은 이름이 해와 관련이 있었다. 해는 물론 태양을 의미하는 우리 말이다. 각저총, 오호묘 등의 고분벽화에서 매우 중요하게 등장하고 있는 삼족오는 태양을 상징하는 새이다.

고구려는 전성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영토를 확대하고 주변의 다양한 종족과 문화를 흡수해갔다. 그런데 북방과 동방의 새로 편입된 국민은 언어와 혈통이 다른 종족들이었다. 이렇게 다문화,다종족적 국가가 되면서 고구려인들은 종족으로서 자아확인을 더욱 중요시했다. 또한 그것을 외부에 전파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천손(天孫)의식을 더욱 강조하였으며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광개토대왕이 죽고 나서 2년후에 세워진 거대한 기념비적인 릉비는 높이 6,39미터의 4면 44행에 1775자가 음각되어 있다. 그 곳에는 고구려인의 역사관 및 세계관 등이 응축되어있고, 이후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발전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 里程標 내지 座標의 역할을 하였다.

이 비문에서 가장 의미있는 귀절은 '出自北扶餘天帝之子 母河伯女郞'하여 고구려가 天孫民族이라는 자기선언이다. 또한 비문은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鄒牟王'이라고 반복하여 천손임을 강조하면서 자존의식을 드높이고 있다. 또한 대왕(大王),천제, 동명성제 등 거룩하고 성스러운 용어들을 썼다. 건국신화에서 주몽은 황룡으로 표현되었으며, 죽을 때도 옥채찍 하나만을 남긴채 하늘로 올라갔다. 벽화에는 황룡이 그려져있고, 성상번(聖上幡)이란 글이 쓰여진 깃발 등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고구려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다. 벽화내용 중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天孫民族이라는 고구려인들의 自意識과 그것을 확인한 자신감은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자아의식은 당연한 귀결이지만 고구려인들로 하여금 강한 자유의지(free-will)를 갖게 하였던 것 같다. 특히 남에게 굴복하지 않는 저항정신 등은 민족의 발전과 자주성을 수호하는 일로 나타났다. 고구려의 성벽구조 등에서 그러한 자유의지를 느낄수 있다.

2. 민족문제의 대응방법과 고구려의 국제정책

고구려는 21세기에 당면한 민족문제의 대응방법론을 모색하고 설정하는데 참고해야할 모델이다.

고구려사를 통해서 먼저 동아시아 역학관계의 기본틀을 이해할 수가 있다.

세계는 EC EU NAFTA 등 광범위한 블록화의 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는 동아시아 지역 역시 자국의 이익을 최고목적으로 삼고 각국 간의 역학관계와 위치조정을 숨가쁘게 조정하고 있다. 군사적인 역할과 영향력, 경제력의 향상과 체제의 개편, 정치적인 영향력의 확대등 많은 면에서 각 나라들은 경쟁을 하거나 갈등을 빚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최근의 사태에서 보듯이 세계 여타의 강력한 블록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협력체 내지 내지 블록을 결성해야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즉 갈등과 경쟁의 관계이면서 동시에 필요에 따라서는 협력과 동맹의 관계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각 나라들은 오랫동안 의심과 긴장의 시선으로 상대국을 바라보았다. 그 때문인지 아직은 정치적인 것 보다는 경제나 교역, 문화교류 등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보다 실질적인 이익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조심스레 협력체의 결성과 파트너쉽의 가능성들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해소하고 좀더 적극적이고 바람직한 협력체제를 갖추기 위헤서도 각국들은 서로간의 역사적 경험을 이해하고 어떠한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가를 진지하게 탐구해야한다. 특히 우리민족은 주변국들에 비하여 정치 군사 경제 문화면에서 상대적으로 허약하여 매우 불리한 조건 속에 있다. 그러므로 역학관계의 본질을 신속하고 정확히 파악해서 능동적으로 질서재편에 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이러한 동아시아의 역학관계는 고구려가 발전했던 당시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다. 지정학적 요인에 큰 변화가 없으므로 북방의 유목민족, 중국, 우리와 일본이라는 4각의 기본적인 구도와 정치적인 역학관계에는 거의 변함이 없다. 다만 일본이 7세기 이전까지는 우리의 영향을 받는 종속적인 존재였고, 고구려의 발전기에 중국은 남북조로 분단되어 있었던 반면 현재는 우리가 분단된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중국은 동아시아의 중심부였고, 패권을 오랫동안 장악해왔다. 이러한 기본구도 속에서 고구려는 자기의 대응방식을 갖고 발전해왔고, 동아시아의 강국이 되었다. 우리민족사에서 중국세력과 대등하게 관계를 맺고, 때로는 외교적으로 주도권을 쥐었으며, 상당기간 동안 전면전을 치룬 나라는 고구려밖에 없었다. 우리는 고구려의 대응 태도를 통해서 그들의 정치체제와 외교전략, 경제체제 및 주변국에 대한 문화정책, 군사전략 등에 대한 기본 패턴을 이해할 수 있다. 즉 고구려를 통해서 현재는 물론 향후 전개될 질서재편의 방향과 내용을 예측하고, 그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교훈을 얻을수 있다.

필자는 좀더 구체적으로 고구려가 추진한 정책을 동아지중해 중핵조정론이라고 설정하고 그것을 모델로 하여 동아시아의 기본구도와 함께 향후 우리민족의 위치와 역할을 모색하고자 한다.

< 동아지중해론>

먼저 지리적 특성을 살펴보자.

주목하지 못했던 사실이지만 동아시아의 각국들은 대륙과 한반도, 일본열도 및 여러군도들에 둘러싸인 황해 남해 동해 동중국해 등을 포함하고 있어 지중해적 형태와 성격을 띠고 있다.

지중해는 나름대로 몇가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컨데 해양문화의 성격을 구비하고 있는 만큼 이동성(mobility)이 강하다. 각 나라들이 내해(inland-sea)를 공유하고, 긴 沿岸이 여러나라로 갈라져 있으므로 국경이 불분명하고 변화가 심하다. 때문에 해역지배권(海域支配權)의 대립을 둘러싸고 국가간의 다툼이 벌어지며, 해양력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또한 지중해는 정치 군사적인 것 보다는 교역 문화 등 구체적인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완전한 의미의 지중해는 아니지만 바로 다국간 지중해의 형태로서 모든 나라들을 연결시키고 있다.

이제 동아시아는 세계질서 속에서 공존하며 협력을 해야할 단계에 이른 것이다. 동아시아가 협력체 내지 연합체, 혹은 불록을 구성한다면 해양을 매개로한 지중해적 질서 속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유럽지중해와 카리브 및 걸프지중해, 동남아지중해 등과 경쟁하고 대결하는 동아지중해의 형성이 절실한 것이다. 최근에 일본의 학계에서 지중해이론을 제기하며 21세기 일본의 앞날을 조망하고자하는 시도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면 이러한 지중해적 질서 속에서 우리의 위치는 어떻게 해야하며, 어떠한 역할을 해야할까?

남북통일은 불투명하며, 주변국의 방해로 인하여 민족힘의 결집 또한 매우 어렵다. 설사 남북통일이 이루진다해도 향후 경제 정치 군사력이 주변강국들에 비해 열세를 면할 가능성은 별로 없는 지극히 회의적인 처지이다. 그러나 신질서의 편성 과정에서 우리는 정말로 중요한 하나의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동아지중해의 중핵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분단시대, 냉전시대에는 적대적인 양대 힘이 격돌할 수 밖에 없는 부정적인 요인으로서 풀어버릴 수 없는 굴레를 씌웠었다. 그러나 이제는 연결과 협력의 시대이다. 남북이 긍정적으로 통일될 경우,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공히 활용하며, 동해 남해 황해 동중국해 전체를 연결시켜줄 수 잇는 유일한 나라이다. 특히 모든 지역과 국가를 전체적으로 연결하는 해양 네트워크는 우리만이 가지고 있다. 우리 바다를 통해서만이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교류할 수가 있다.

이러한 동아지중해의 역학관계와 한반도의 중핵조정지로서의 바람직한 역할과 가능성을 우리는 지나간 고구려의 역사를 통해서 가늠할 수 있다.

고구려가 진정으로 발전한 이유는 군사력을 뒷받침할 경제 문화력은 물론 국제정치력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딜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은 바로 해양활동이 활발하고 해양을 장악하므로써 주변국들간의 외교망을 통제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국제정치에 해양력(sea-power)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해양전략은 4세기를 거쳐 5세기경에 이르러 광개토대왕 대에 들어와 본격적인 국제전략으로 채택하고, 지중해적 국가로서 발돋움을 하였다. 즉 대륙의 동 서 북으로 팽창하여 만주지방을 완전히 석권하고, 남으로 과감하게 진출하여 백제 신라는 물론 가야지역까지 국가전략수립의 영향권하에 두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는 동해는 물론이지만 해양력을 바탕으로 황해 중부 이북의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즉 대륙과 한반도와 주변 해양을 한 틀속에 넣고 조정할수 있는 동아시아의 완전한 중핵자리를 확보하였다.

그 결과 국제질서의 형태가 변화되었다. 다수의 선이 동시에 연결되는 多重 혹은 多核 방사상형으로 되었다. 즉 분단된 남북조(상해와 북경), 북방의 유연(러시아), 그리고 고구려가 동아시아의 동등한 중심핵이 되고, 백제 신라 가야 왜 거란 말갈 등 주변국들은 서로간에 교섭을 갖게되었다. 지금의 구도와 별 차이가 없다. 다만 과거에는 중국이 분단되었고, 지금은 우리가 분단되어 있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고구려는 대륙과 해양을 공유하면서 각국들의 교섭을 관리하고 통제하고 조정했다. 백제 신라 가야,왜 등이 북중국정권(현 북경)과 교섭하는 것을 막는 것은 물론 때로는 남조정권과의 교섭마져 막았다. 뿐만 아니라 해양통로의 확보를 잇점으로 분단된 중국세력들(북경, 상해)간의 복합적인 갈등을 등거리 해양외교로서 적절히 이용했다. 통일된 나라가 분단국가를 대상으로 등거리 외교를 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이다. 그 후 7세기에 이르러 다시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고구려는 실패하였다.

고구려는 경기만을 상실하는 등 해양력의 약화로 인하여 정치군사력은 물론 외교력이 약화되었다. 그리하여 급변하는 동아시아의 질서재편 과정에서 중핵조정 역할을 상실하고 결국은 고립된 채 주변국들의 협공을 받아 전사하고 말았다. 이러한 고구려의 흥망은 동아지중해의 성격과 유용성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알려주고 있다.

21세기의 신질서 속에서 동아시아는 협력이든 동맹이든 어떤 형태로의 결속이 필요하다. 다른 지역에 대응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내부간의 보다 긴밀한 협력이 필연적이다. 이때 그 동안의 역사적 경험이나 지정학적 조건, 지경학적 지문화적 조건, 그리고 현실적인 필요로 보아 그 결속의 공통분모로서 해양을 매개로한 동아지중해적 형태가 가장 유효하다. 이 질서 속에서 통일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동아시아 각국은 이해가 잘 조정된 협력체 내지 공동체를 구성하여 세계사속에서 동아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 그럴 경우 모든 면에서 열세에 놓여있는 한반도는 고구려처럼 지리적으로 중핵에 있는 조건을 잘 활용하여 조정역할을 하면서 정당한 자기 위치를 확보해야만 한다.

이처럼 고구려는 살아있는 역사로서 21세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우리에게 절박한 메세지를 전달해준다. 통일한국이 활발한 해양활동과 동아지중해적 인식을 토대로 동아질서의 잴편을 유리하게 주도하고, 동아지중해의 중핵조정 역할을 수행한다면 우리민족은 21세기를 보다 긍정적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3. 21세기문화의 방향설정과 고구려문화

고구려는 우리가 정치 외에도 문화의 방향과 성격을 설정하는데 본받아야할 유효성있는 모델이다. 고구려는 개방적인 태도로 다양한 외부문화를 수용하는 세계국가적 성격을 지녔으며, 그러면서도 자문화를 발전시킨 문화국가였다.

고구려 문화의 성격과 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에너지의 정체, 그 논리와 정신성은 무엇일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물음이고 모두의 관심사이다. 하지만 이미 다른 글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언급했고, 오늘은 주제를 압축시키기 위하여 다만 고구려의 문화국가설과 문화의 특성을 부분적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 문화국가론 >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할 만큼 문화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문명이 전환하는 과도기에는 문화력이 정치 및 군사는 물론 경제질서의 방향과 위치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세계가 문화의 비중을 높히고, 일종의 전략으로서 문화를 배양하는 한편 수츨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동아시아는 각국 간에 균형있는 발전을 꾀하고, 자기문화를 성숙 시켜야한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중국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므로 문화 전반에서 정체성을 탈피하지 못했으며 교조성을 띄우고 있었다. 특히 우리는 농경문화의 산물인 정착성에 매몰되어 있었고,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변화와 운동(변증법)을 소홀히 하였다. 뿐만 아니라, 식민문화의 잔재인 주변성과 맹목적인 배타성을 아직도 다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의 주변부이며, 중국문화의 아류로서 인식되어 왔고, 지금도 일본 및 외래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아가고 있다.

우리가 세계문화 속에서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인 자기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제 생존과 전략의 문제로서 문화를 대하여야 한다. 자의식의 회복을 통해서 민족의 문화적 질을 높히고, 또한 세계성을 가지고 세계문화를 선도해야한다. 이러한 과제들은 몇가지 조건을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실현이 가능하다. 사고가 자유롭고 문화가 다양성이 있어야하며, 사회체제는 탄력성이 있어서 모든 일에 적응력이 뛰어나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의식에 충실해야한다. 문화를 창조하고, 수용하고, 누리는

존재가 자아에 충실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혼란이 발생하고 불행해진다.

우리는 비교적 이러한 조건에 걸맞고 모델이 될만한 문화를 발전시킨 역사가 있다. 흔히들 고구려는 군사동원체제에 능숙하고 약탈경제를 영위한 정복국가로 알고 있다. 그러나 고조선과 부여의 오랜 문화적 전통을 이어받았으므로 출발부터 이미 문화적인 성숙함이 배어있었다. 그 후 긴 역사동안 매우 드물게 특성있는 문화가 발달했으며 문화를 소중히 발전 시켰다. 고구려가 문화국가였음은 현재 국내외에 남아있는 숱한 유적 및 질적으로 뛰어난 유물과, 고구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백제나 신라의 문화적 유산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면 모델로 설정한 고구려는 어떤 성격의 문화를 꽃피었을까? 그 꽃향기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고구려문화는 매우 다양성이 있고, 개방적이며 보편성을 띄운 세계문화적인 성격을 띄우고 있었다. 발전기의 고구려는 넓은 영토와 다양한 자연환경을 갖었으므로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특성을 가질수 밖에 없었다. 자연환경과 땅은 지리정치적(geo-politic)인 영토의 의미 만은 아니다. 지리경제적(geo-economy)으로도, 지리문화적(geo-culture)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많은 강들, 연해주 지역과 흥안령의 대삼림, 요동의 넓은 평원, 초원, 호수 등을 골고루 소유하였으며, 남쪽으로 진출하여 비옥한 농토를 얻었다. 자연환경도 사막과 유사한 건조한 기후, 초원. 겨울에는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는 수렵삼림대, 따뜻한 온대, 온도가 높고 강수량이 많은 남방 등 다양했으며, 기후는 물론 식생대도 아주 다양했다.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는 필연적으로 경제형태나 교역방식 역시 다양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거주하는 종족들과 그들의 언어 관습도 달랐다. 이렇게 고구려는 동만주와 연해주 일대의 수렵삼림문화, 동몽골과 북방방면의 유목문화,화북에서 올라오는 중국의 漢문화, 해양을 통해서 들어오는 해양남방문화, 한반도 남부의 문화 등이 하나로 모인 집결지적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다양한 자연환경과 문화, 그리고 색다른 종족들이 하나로 모인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구려였다. 해양과 반도, 대륙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성격이 다른 여러종류의 문화가 한군데로 모인 곳이었다. 이처럼 하나의 국가영토 안에 다른 종족과, 색다른 자연환경, 이질적인 문화가 存하므로써 複合的인 歷史空間이 ?으며, 국가의 성격에는 질적인 변화가 생겼다. 고구려는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국제성있는 지중해 문화의 전형적 특성을 가질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성과 세계화는 실제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발생시킬수가 있다. 多樣性은 단순히 양적인 集積에 불과하고 적절한 調和를 이루지 못한다면 오히려 역사발전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최근의 실패에서 보듯이 운영을 잘못하면 오히려 심각한 혼란을 일으키며 방황을 하게된다. 때문에 문화적 다양성과 사고의 자유로움 외에 민족정체성의 확립이라는 일견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몇가지의 과제들을 동시에 실현해야 한다. 고구려는 그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성을 모색하는 하나의 척도로서, 또는 우리 및 동아시아가 추구할만한 모델로서 설정이 가능하며,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구려제국으로 편입된 신국민들은 각 종족들간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의 차이로 인하여 엄청난 문화충격과 혼란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종족간의 문화적인 충돌을 예방하고 적절히 타협시켜가면서 제국내의 국민으로 통치하기 위해선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해야한다. 그러나 조화로움이 없이 다양성을 무조건 수용한다면 문화를 창조하는 중심핵이 사라질 뿐 아니라, 문화의 기본방향이 설정될 수가 없다.

한편 고구려인들 역시 본래부터 지키고 가꾸어온 기층문화가 파괴되고, 또 본질이 왜곡될 가능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였을 것이다. 특히 당시는 주변국들과 경제 문화만이 아니라 정치 군사적인 갈등을 빚고 있었다. 문화의 혼란이란 곧 정치의 혼란, 사회의 혼란으로 비화가 될 수 있다. 만약 자기문화의 독창성이 약하거나, 주변문화와는 다른 차별성이 없다면 결국 문화적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종속당할 우려가 있다. 고구려는 소위 세계화를 추구하는 현재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딜레마에 빠졌다.

고구려인들은 슬기로웠다. 고조선과 부여의 계승의식이 강한 그들은 자의식을 바탕으로 자기보호의식이 강했고, 다른 혼재된 문화 속에서 자기문화의 차별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기위해선 자아의식을 강화시키고 독창성있는 자문화(自文化)를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혼란이 아닌 조화, 집적이 아닌 통일성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선 전체를 관장하고 연결시켜주는중핵이 되는 문화가 필요했고, 그 중핵은 정치력을 토대로 강한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

고구려인들은 바로 중핵역할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중핵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인식하였다. 때문에 세계국가로서의 새로운 자각을 하면서 동시에 민족으로서 자아의 확인을 매우 중시했으며, 그것을 외부에 전파하는 일에도 힘을 썼다. 그래서 천손(天孫)의식을 강조하므로써 주변세계와 차별성을 꾀하였다.

벽화는 天孫民族이라는 고구려인들의 자아의식과 그것을 확인한 자신감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반영하고 있다. 고구려인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활기찬 力動性이 흘러넘치고 있다. 각종의 수렵도와 씨름도, 力士 등 현실적인 소재들은 화려한 색상과 거침없는 붓길로 力動性있게 표현되었다. 이는 고구려인들이 事物과 事件은 운동하고 있다는 변증법적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들은 또 歷史에 대하여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어서 우주를 보다 자유롭게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우 다양한 소재들과 주제들이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일관된 統一性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외부에서 수용한 문화라도 高句麗的인 精神을 주조로 재해석, 재구성하였다.

이처럼 그들은 자기역할과 자기정체성(identity)을 자각하고 역사에 대한 자신감과 진보의 의지를 가꾸고 승화시켜 고구려를 재발견(rediscovery)하였다. 색깔있고, 다양한 주변문화를 자기문화 속에 흡수 용해시켜 훌륭하게 조화시켰다. 그 결과 새로운 형태의 고구려문화를 만들어냈고, 질이 높은 문화국가로서 성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새문화를 내적도약의 에너지로 삼아 세계화로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였으며, 신질서에 걸맞는 보편정신과 문화를 창조하였다. 이렇게해서 고구려는 문명개화의 절정시대(renaissance)를 맞이했으며, 고구려인들은 세계국가적 성격을 갖고 동아시아의 중핵국가로서 성격을 재정립(re-foundation)하였다.

이렇게 문화가 발전하고 문화국가화한 것은 민족문화는 물론 거시적으로 동아시아 문화의 형성과정과 성격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만주지역이 문화적 공간의 기능을 상실하고, 동아시아는 중국한족문화의 일변도가 되어 정체성을 띄게 된것은 고구려가 가꾸어낸 문화적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나를 알려준다.

고구려가 제국적이고 세계국가적인 성격을 가진 것은 바로 문화적 토양이 다양했고, 이러한 다양성을 수용하면서도 고구려적인 정신과 문화를 끊임없이 재창조해낸 역동성과 문화적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세계화를 지향했고, 적극적으로 문화를 개방했던 시기에 역설적으로 민족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가장 주력했다. 그것이 바로 고구려인의 지혜이었다. 세계화와 민족주의는 서로 괴리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토플러가 속내를 드러냇고,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당하고 있듯이 서구인들이야말로 세계화란 미명의 덫을 친 다음 자집단주의를 철저하게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덫에 걸려 민족주의 마져 포기한채 허우적 대다 지금 막 그들의 먹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는 이러한 시기에 우리와 동아시아가 본받고 추구할 만한 모델로서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4. 민족통일의 모델과 고구려

고구려는 그 밖에도 우리에게 닥친 여러가지 절실한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론을 제시해준다.

고구려는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였다. 전성기의 국력은 통일을 실현시켰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우리는 당시의 지배방식이나 통치방식을 이해하지 못한채 평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고구려가 통일하지 못했고, 민족간의 분쟁은 더욱 격화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외세가 참여한 강제적 통일이 시도되었으며, 그 또한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우리 민족사는 주체성을 잃어 가면서 동아시아의 주변부로 전락하여 갔다. 고구려인들의 민족의식이나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우리는 통일의 의미와 가치,방법론 등에 대한 여러가지 교훈을 얻을수 있다. 민족의 공질성 회복과 민족국가론의 의미를 깨달을수 있다.

고구려는 우리에게 또 다른 유용성이 있다.

남과 북은 향후 전개될 상황을 염두에 두고 통일의 과정과 이후에 주도권을 잡기위한 노력을 각 방면에서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한민족의 역사상에서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단군문제와 마찬가지로 통일의 과정과 의미를 놓고 신라정통론, 고구려정통론의 논쟁이 가열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우리는 고구려에 대한 연구를 여러각도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민족문제, 영토문제, 외세에 대한 대응태도, 민족문화의 성격 등은 향후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고구려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각도에서 연구가 진행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한 예로 고구려를 지역적 영토적 개념으로만 파악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가 있다. 민족적 문화적 개념으로 동시에 파악해야 남북한 어느 한 쪽에 편향되지 않는 계승성을 주장할 수가 있다.

맺 음 말

서문에서 언급한대로 우리는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몇가지 중요한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게화를 하나의 대응논리로 선택하고 추진하였으나 참담한 실페로 끝이 났다. 세계화라는 명제는 비록 타당하고 선택이 불가피하였으나, 그 개념을 설정하는데 오류가 있었고, 추진과정에선 방법론의 실패가 있었다. 인간의 경험은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고 설정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역사는 과거학이면서 동시에 미래학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고구려를 모델로 설정하고 하나의 가능성을 추츨해볼 수가 있다.

고구려는 정치 군사적으로 강국이었을 뿐 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중핵조정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여 각 국간에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여왔다. 또한 고구려는 제국적인 성격을 띄었으나 다른 민족들을 억압하지는 않았다. 우리 역사상에서 가장 자아에 충실하였고, 동시에 세계보편적인 인식으로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킨 문화국였다. 그 포용력 있는 문화생태와 자유를 희구하는 정신성은 고분벽화나 릉비문 등의 유물 유적을 통해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멧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잊혀지고 잃어버렸던 고구려를 이해하고, 특히 고구려문화의 현재적 의미와 기능을 모색해야한다. 그리고 고구려 정신과 그들의 세계관 국제질서에 대한 대응태도 등을 통해서 이미 다가온 다음 세기의 발전좌표를 설정하는 데 도움을 받아야한다. 고구려가 가진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의미는 21세기에 우리민족을 어떻게 만들어가야하는가에 대한 바람직하고 유용성 있는 모델이 된다는 것이다.

고구려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서 언

왜 고구려인가? ( WHY)

관심이 고조 됨. 고구려 사에 대한 재인식.

**유독 고구려인 이유?

1) 신라중심사관. 반도사관, 넓이 콤플렉스. 대국(중국)콤플렉스

존재의 원근거. 문화의 성격 탐구.

2) 21세기 민족발전 및 생존전략을 찾기 위하여.

세계화. 민족주의화를 동시에 추진. 정치경제력과 문화력도 강화 시켜야함.

***필자-- 고구려를 모델로 설정하여

1. 민족정체성의 확립과 고구려 정신.

21세기 세계화 지향. 상대적으로 민족 자아의 확립이 매우 중요함.

자아의 상실로 인하여 역사발전이 왜곡. 식민지 상태 경험.

고구려는 제국--자존심 회복. 잃어버린 아이덴티티 확립하기 위하여 고구려 이해.

또한 자신을 알기위한 작업으로서도 필요함.

***고조선 부여 계승의식.

해를 숭배-- 천손의식 강함. 비문, 벽화 등

5세기 영토 팽창하면서 제국을 지향. 세계국가적 성격.--오히려 자의식 강화.

따라서 우리는 세계화의 방법론을 찾고 학습할 수 있음.

2. 민족문제 대응과 고구려의 국제정책.

1)동아시아 역학관계의 기본 틀을 이해.

장기간의 존속.다른 나라와의 비교.향후 중국 등 강국의 문화 정치 경제권으로의 편입에

우려에 대한 대응태도 모색.

***동아시아는 지중해적 성격.-- 고구려의 동아지중해 중핵 조정론 제기.

대륙과 해양을 겸하고, 중국의 분단 등을 활용하여 중핵조정역할을 함--21세기.

2) 대중국 대응태도 경험.

동아적 양국적 세계사적 시각으로 동시에 파악.

중국의 외교전략, 기본패턴 이해(정치 군사 등)--고구려는 능동적으로 대응.

중국 동북삼성의 점진적 진출, 분위기 조성, 정당성 확보.

3.21세기 문화의 방향설정과 고구려문화

문화 국가설 . 다양한 종족 다양한 환경--다문화,지중해성문화. 열린 문화

중국문화, 사대성 주변성탈피.

이동성 문화--농경 기마 해양.--

***앞으로 문화는--다양성 바탕 세계화 지향. 이동성--남북이 공히 필요.

4.민족 통일의 모델과 고구려

고구려의 통일과정,

멸망 과정과 결과 --외교력의 약화.

대북한과의 관계에서.

북한의 정신 , 문화 이해.-- 문화적 공질성 확인.

정통성 싸움--단군 고구려 정통론과 신라정통론의 논쟁이 일어날 가능성 많음.

고구려를 , 민족을 영토 , 지역적개념이 아니라 민족적 문화적 개념으로 이해.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