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uou.ulsan.ac.kr/~htjeon/non_top.htm
pinpurpl.gif (1013 bytes)고구려의 오행신앙과 사신도
                                                                                                                                                                              전태호

이 논문은 五行說에 대한 고구려인의 인식과 고분벽화의 사신도가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본 글이다. 먼저 오행과 관련된 문헌자료들을 검토하면서 고구려가 오행설을 대외정책, 정치구도의 재편, 지배이념의 강화 등과 같은 정치.사회적 측면에 폭넓게 활용했음을 논증하였다. 이어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사신도를 표현방식, 벽화내에서의 비중, 벽화고분의 구조와의 관계에서 시기, 지역별로 어떠한 변화를 보이는지를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오행관계 문헌자료 등과 비교.검토함으로써, 사신도가 오행설을 바탕에 둔 사신신앙의 표현임을 확인하였다. 앞의 두 가지 논증을 바탕으로 필자는 고구려에서는 오행설이 4세기경을 분기로 그 이전에는 정치적 측면에서 활용되었고, 그 이후에는 신앙과 이념적인 방면에서 이용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고구려의 사회변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이 글은 고구려의 오행신앙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라는 점에 그 일차적 의의가 있다. 또한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사신도 자료를 총정리하고 있으며, 이와 오행설을 연계시킴으로써 사신신앙의 사상적 기반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고 있는 점에서도 연구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4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그려지는 사신도와 고구려 후기의 사회변동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가 앞으로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이 논고는 고구려의 오행관계 문헌자료와 고분벽화의 사신도 자료의 정리를 통해 양자간의 관계를 밝히고, 고구려 사회.문화의 일면을 파악하려고 한 글이다. 필자는 오행관계 문헌자료의 정리를 통해 고구려가 건국초부터 오행설에 대한 나름의 인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천인감응설 등 오행설과 관련된 중국의 정치이념에 대해서도 일정한 식견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또한 34기에 이르는 사신표현 고분벽화를 지역, 시기, 구조별로 정리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四神에 대한 인식과 표현이 평양지역에서 집안지역으로 전해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필자는 위의 두 가지를 종합하면서 4세기 이후 고구려에서 고분벽화에 사신도가 즐겨 표현되는 이유는 오행설에 바탕을 둔 사신신앙의 유행 때문이며, 이는 이 시기부터 본격화하는 사회변동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글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빈번히 등장하는 사신도 자료를 일괄적으로 정리하면서 그 사상적 기반을 찾아내려 하였는데, 일단 그 방법과 시각이 지니는 의미가 크다. 더우기 방대한 분량의 벽화자료가 고구려사 연구의 기초자료로 더해지고 있다는 점, 문헌자료와 벽화자료의 연계를 시도하고 있는 점 등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방법론을 바탕으로한 보다 구체적인 성과가 뒤따르기를 기대한다.

1997. 3 울산 유적.유물의 특성과 시립박물관의 성격 울산의 고대문화 울산경실련

ball3.gif (146 bytes)「울주반구대.천전리암각화」(『한국의 암각화』한길사, 1996.4)
ball3.gif (146 bytes)「고구려 각저총벽화 연구」(『美術資料』57, 국립중앙박물관1996.6) 별쇄30, 단 서울에 보관중. 학위논문에 수록.
ball3.gif (146 bytes)「고구려 감신총벽화의 서왕모」(『한국고대사연구』11, 1997.2) 별쇄20, 학위논문에 일부 수록.
ball3.gif (146 bytes)『고구려고분벽화연구-내세관표현을 중심으로-』(서울대박사학위논문, 1997.2)
ball3.gif (146 bytes)「고구려 중심의 三國時代觀」(『한국사시민강좌』21, 1997.8) 『북한의 한국사인식』1, 1990년의 글을 보완.
ball3.gif (146 bytes)「고구려 고분벽화연구론」(『古文化』50,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97.10) 별쇄20, 역사비평26, 1994의 글을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