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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인의 생활 양식 


<< 目 次 >>

1. 출 산

2. 혼 인

3. 장 례

4. 의 식 주

1. 출 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낙들은 자식을 원할 때 산신인 ?삼승할망?에게 기원하는 굿을 했다. 그리고 아들을 키워내는 부녀자들은 제주시 건입동과 용답동에 위치한 ?동.서 자복미륵?에 치성을 드렸다. 현재 용담동 속칭 한두기의 용화사라는 절에 있는 서자복미륵 앞에는 남근을 상징하는 동자불이 있는데 예전에 이곳에서 치성을 드려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생생히 전해지고 있다.

아낙들이 임신중에는 개, 닭고기, 돼지고기, 상어고기, 문어 등을 먹지 말며 불이 났거나 시체가 있는 곳에는 가지말고 살생을 하지 말며 남을 욕하지 말라는 많은 금기사항이 있었다. 출산할 때는 산파를 부르는데 해산할 방에는 비닐이나 보리짚을 깔았다. 특히 시누이와는 한 집에서 출산을 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시집간 시누이는 집안신이 다른 남의 집 사람이니 시댁에 가서 낳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 분만 후 산모는 메밀가루를 친 미역국을 먹었고 유아나 산모는 출산 3일 후에 쑥물로 목욕을 했다.

2. 혼 인

동성동본은 결혼할 수 없으며 친족외 사람과 결혼해야 하고 타성일지라도 혈연인 경우는 결혼할 수 없다는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혼인규제 관습은 제주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그리고 가급적 사돈끼리는 통혼을 하지 않는다는 관습은 전해지지만 타도와는 달리 거의 모든 부락이 잡성부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같은 자연부락 내의 혼인이 많이 이루어져 왔다. 혼담이 무르익어 신부가정에서 결혼이 허락되면 신부측에서 신부의 생년월일시를 신랑에게 주는 데 이를 ?사주를 내준다?고 한다. 혼례 살림은 신부측에서 마련하는데 이는 전라도와 비슷한 형태이고 경상도는 그 반대이다. 60-70년 전에는 이불, 요강, 빗접 1개쯤이 고작이었고 그나마 마련하려고 청년들은 타도나 일본 등지의 방직공장이나 해녀일에 나서기도 했다.

혼례는 타도와는 달리 신랑의 집에서 한다. 결혼 당일 신랑은 상객 4-5명과 신부의 집으로 간다. 이때 신랑측에서 예물로 납폐 곧 무명(2-4필)이나 광목(1통)을 ?홍세함(타도에서는 그냥 함이라 한다) 속에 예장과 더불어 놓고 붉은 보로 싸가지고 간다. 예장에 이의가 없으면 신랑은 신부댁 안내자인 ?중방?의 안내를 받으며 방에 들어가 상을 받고 신부는 부모와 작별인사를 나눈다. 이때 신부댁에서는 한판 잔치가 벌어진다. 결혼 뒷날 신랑, 신부와 부친, 백부 등은 인사차 신부댁을 찾아간다. 이 의례는 결혼 당일 치르기도 하고 생략하기도 하는데 타도에서는 첫농사를 마치고 가는 것이 보통이다. 신부댁으로 갈 때는 신랑의 자매 혹은 친지 여인이 술과 음식을 갖고 가는 게 관례다. 신부댁에서는 안사돈과의 인사를 중심으로 양가 근친간의 인사가 교환되고 간략한 가문잔치가 베풀어진다. 그날 신랑은 신부댁에서 하루밤을 묵는 게 상례였다.

3. 장 례

환자가 사망을 하면 맨처음 혼을 불러들이는 의례인 ?고복?을 한다. 망인이 늘 입던 적삼이나 저고리를 시신 위에 덮어두었다가 지붕 용마루나 높은 곳에 올라서서 북향하여 옷을 치켜올리면서 예를 들어 ?경주 김씨 ○○○ 훈장 ○○세 復?하고 세번 외친다. 그후 상제는 비로소 곡을 하게 된다. 다음으로 엽습을 하는데 망인의 옷을 벗기고 향나무 삶은 물을 솜이나 헝겊으로 찍어 시신을 닦는다. 이를 습이라 하며 그후 소렴을 한다. 소렴을 할 때는 우선 ?호상옷(채색수의)?을 입힌 뒤 ?검은호상(흑색수의)?을 입히고 베 12척의 ?두름포?로 시신을 싸고 7묶음으로 묶는다. 이때 쌀이나 메밀로 만든 떡을 양손과 가삼에 각각 3개씩 넣는데 이는 저승문을 지키는 개에게 주어 무사히 통과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관을 만들 때는 사돈댁에서 물허벅에 팥죽을 쑤어오는게 관례였는데 몇가지 유래담이 있다.

소렴 후 ?통두건?을 썼던 상제는 입관해야 상복을 입는데 이를 ?성복?이라한다. 성복은 타도와 별 차이가 없는데 남상제복에는 등 뒤 좌우와 앞가슴 좌우에 ?푸지게표?라는 베헝겊을 붙인다. 이는 조상을 공경하는 표시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부친상의 경우 상장은 왕대를 다섯 마디 잘라 사용하며 모친상에는 머귀나무를 쓴다. 입관 성복후 성복제를 치르며 발인전날 신시에는 일포제를 지낸다. 성복 후에야 조객들은 문상배례하며 보통 3일장 내지는 5일장이 흔하다. 장례는 택일된 날 택일된 장소에서 행하여지는데 거의 마을마다 ?상여계?가 있어서 연자매간 등에 보관해두었던 상여를 내다 사용했다. 상여행렬은 보통 ?명정단-혼백상(혹은 고인의 사진)-만장-설배-상여-상제-복친-친지?의 순인데 상여의 전후좌우로 광목(설베)을 길게 늘어뜨려서 부인의 무리가 떼지어 잡고 가기도 하는데 이를 ?설베맨다?고 한다. 상둣군은 자연부락의 동네 단위로 동원되는데 이를 ?골?이라 부른다. 골안에 장례가 나면 그 주민들은 반드시 노력부담하여야 했는데 상여계를 중심으로 이러한 일이 이루어져 왔다. 각 골은 보통 30-40가구로 구성되는데 제주도 특유의 산담(타도와는 달리 마소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무덤 둘레에 돌로 네모나게 울타리를 쌓은 것) 쌓는 일을 해야 할 때는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다. 친족들은 20촌까지의 무적으로 상가에 부조를 하는데 고적이라 불리는 친족들간의 부조는 장지로 일정량의 떡을 만들어가는 게 원칙이다. 장례날 초우제를 지내며 이튿날 재우제를 지내고 그 다음날 삼우제를 지낸다. 특히 장례날 저녁 ?귀양풀이? 굿을 하는데 고인의 영혼을 위무하고 저승길로 잘 인도해주기를 바라는 간단한 무당굿이다. 무당이 빈소였던 방을 향해 앉아 장구를 치며 ?채사본풀이?을 염송하면서 콩을 뿌리며 귀신을 ?아내는 행위로 굿을 마친다. 예전에는 대소상까지 방안에 고인의 혼백상을 모시고 하루 3식을 올렸으나 근래에는 대소상을 합해서 일년에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4. 의 식 주

의식주는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그 지방의 자연과 사회적 환경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특히 제주도는 타지와는 달리 고온다습하고 바람이 세차며 외세의 침탈이 잦은 변방이다. 그러다보니 의식주가 그날그날 살아가는 데 편리하고 환경에 맞으면 그만이었다. 이는 전통쪽으로 맛을 생각하며 의복과 주택을 고르고 영양을 따지며 음식을 즐길 그러한 여유있는 삶이 아니였던 데 연유하는 것이다. 우리 복식의 기본형인 바지 저고리는 고시대의 벽화에서 볼 수 있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형태와 제법에 약간의 변화가 있을 뿐 그냥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제주 특유의 의복이라고 지적하여 발생연대와 근거를 찾기란 문헌과 실물 그외 입증자료가 전혀 없어 곤란하다. 육지부와와의 교류관계에서 직접 간접으로 많은 영향이 있으리라 믿는다. 다만 기후, 풍토, 지리적 조건, 생활풍속, 생업적인 차이에 따라 요구되어지는 형태가 다른 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제주의 복식은 항상 착취와 유배지로서의 굴욕의 섬으로 수난을 받았던 역사적인 사실을 미루어 보아도 지배계급은 지배계급대로의 의복의 형태가 있을 것이고 육지 땅을 밟아 보지못한 토착 서민의 고유한 복식이 동시 존재했지만 자세한 내용 파악은 힘든 일이라 생각한다. 또한 제주 복식에서 유의할 점은 제주는 대륙과의 교역뿐 아니라 일본 오끼나와 등 남쪽의 여러 열대지방의 영향을 더러 입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남국의 세시 풍속에 의하면 [제주도 농민의 전형적인 노동복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어 왔고 서민들의 평상복이라고 할만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의류이며 이 갈옷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하여 입었는지 기록이 전혀 없다. 어떤 사람은 몽고의 풍속이라고 하지만 근거가 애매모호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700여년전 고기잡이 할아버지가 낚시줄이 자주 끊어짐을 민망히 여겨 강물을 염색한 결과 질기고 또한 고기가 더 잘 잡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나 확실히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농업과 어업등으로 생계를 유지해 온 본도민에게는 옛부터 사용해온 것만은 사실이다. 이 갈옷은 7-8월경에 딴 풋감을 으깨서 낸 감즙과 찌꺼기를 보통 옷에 풀하듯 광목옷에 같이 넣어 주물러서 옷 전체에 골고루 스미게 한 다음 햇볕에 말린다. 마른 다음에도 물을 축이면서 10여 일을 잘 손보고 또 말리고 하면 황토빛이 들면서 옷은 빳빳해진다. 이 과정에서 정성을 들이고 손을 보아야 염색이 골고루 되어 빛깔도 곱고 좋은 옷이 된다. 갈옷들의 명칭은 남녀 상의는 시즙유의로 갈적삼이라 하며 남자 고의를 갈주이 여자 고의는 갈굴중이라 하지만 남녀 공통으로 상의를 갈적삼 남녀 공통 하의를 갈중이로 통칭 부르고 있다. 갈중이와 갈적삼은 쉽게 더러움을 타지 않고 때가 잘 빠지고 질기며 무명이기 때문에 값이 싸다. 또 통풍이 잘되며 오물이 잘 묻지도 않아 위생적인 장점이 있다. 해녀들이 물질할때 입는 해녀복은 능률적이며 과학적으로 만들어졌고 상의는 물적삼 하의는 명칭이 여럿이나 통칭 물소중의라 부르며 물수건 기타 각 용구가 있다. 또 목자나 사냥꾼들이 입었던 가죽두루마기 등의 가죽옷이 나름대로 타지와 다른 독특한 면이 있다.

제주도는 해산물과 한라산록의 산열매와 산나물 그리고 귤 등 토산물이 풍부하다. 그러나 삶의 어려움 때문에 다양한 조리법이라든지 양념을 많이 넣어 맛을 내거나 모양이나 종류에 주의를 기울이는 등의 향토 음식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장점은 있다. 양념을 많이 쓰지 않기 때문에 식품 특유의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주식은 보리쌀 좁쌀 피쌀들이고 부식은 된장과 채소류들이다. 육식은 바닷고기를 말렸다 먹고 돼지를 추렴하여 잡아서 나누어 먹는다. 쇠고기는 1년에 명절에나 먹게된다. 밥은 평소에는 잡곡밥을 먹고 제삿날에는 곤밥 즉 고온밥(쌀밥)을 먹는다. 쌀은 80%를 육지에서 구입하므로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긴다. 쌀로 술을 담그기는 매우 어려우므로 제사에나 쓰게 된다. 보통 소주를 많이 마신다. 평소에 먹는 것을 살펴보면 겨울과 봄은 아침 저녁 두끼만 먹고 여름과 가을은 세끼를 먹는다. 밥은 보리 조 팥을 섞은 잡곡밥이고 반찬은 배추국 콩잎국 파국 무우국 호박국 등을 끓이고 자리젓 갈치자반 정갱이자반 고등어자반을 많이 먹는다. 제주도의 연료로 쓰이는 말똥은 8월 제초가 끝나면 모두 다투어 산에 들어가서 주워 모은다. 하루 한 사람이 두세 가마니를 주워 들인다. 이것을 잘 말려 두었다가 10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방에 땐다. 이것은 한 번 불을 붙이면 좀처럼 꺼지지 않고 서서히 타는 고로 매우 따듯해지므로 귀한 연료이다. 제주도의 초가집은 거센 바람과 고온다습한 기후를 이겨내기 위한 슬기의 산물이다. 지붕은 새(띠풀)를 베어다가 2-3년마다 한번씩 갈아 덮고는 새로 만든 굵은 짚줄로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단단히 묶고 벽은 외부를 돌로 쌓고 그 안에 대나 잔나무가지를 새끼로 엮고 흙을 이겨 발라서 만드는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평면구조는 가장 흔한 삼간집인 경우 ?상방(마루)?을 사이에 두고 그 양쪽으로 ?정지(부엌)?와 ?구들(방)?이 위치해 있다. 구들 곁에는 보통 ?고팡?이 있고 또 ?굴묵?이라는 방에 불을 때는 공간이 있다. 가옥의 배치도 타도와는 전혀 다른데 일반적으로 한국 가옥의 특성으로 얘기되는 비대칭 분산구조를 취한 것이 아니라 안 마당을 구심으로 하여 이문거리 밖거리 안거리 등 가옥이 동서남북중 어느 세 방향에 서로 대칭되게 배치되어 있다. 이는 제주도의 무속신앙과 풍수지리, 기후에 대처한 요구, 독특한 가족제도 등 복합적인 문화적 요인의 산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