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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지방의 3.1운동 


제주지방은 일찌기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여 ?전국의 민중이 일치 단결하여 왜양을 일소하고 그런 연후에 일방으로 국가를 구하고 타방으로는 인민을 안도시킬 것을 절망한다?는 구호 아래 南學黨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곳 제주에서 3.1운동이 일어난 곳은 조천지방부터이다.

그 중에도 조천리의 유지 김시학의 아들 김장환은 당시 휘문고 재학생으로 서울에서 3.1독립선언 이후 만세운동에 참가, 활동하다가 3월 15일독립선언서를 숨겨 가지고 귀향하였다. 그의 백부 김시우는 제주도 내에서도 이름 높은 유학자요,또 지사였는데 그가 귀향하여 서울에서의 독립운동 상황을 자세히 전하자 감격하여 독립운동을 적극 추진하기로 하고 동지들을 규합하니 김시범, 김시은, 고재륜, 김영배, 김연배, 황진식, 김찬용, 백응선,김운배, 박두규, 이문천, 윤계진, 경희, 김필달 등 16명이였다. 이들은 조천리에서 좀 떨어진 비밀동산에서 밀회하여 결사동맹을 맹세하고 산이름을 ?만세동산?이라 하고, 여기에서 모든 계획을 토의.진행하면서 3월 2일을 기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신촌(新村),함덕리 등 인근 마을과도 연락하여 서당 생도들도 모두 동원하게 하였다. 21일 오후 3시경 김시범.김시은.고재륜 등은 물론 인근의 주민과 서당생도 등 약 5-600명의 인원이 조천의 만세동산으로 모였다. 김시범이 태극기를 만세동산 마루에 세우고 목메인 음성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모두 감격하였다. 선언서 낭독이 끝나고 김장환이 앞에 나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니 모두들 감격의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연창하면서 큰 길로 나섰는데, 달려온 일본의 무장헌병에 의해 군중은 해산되고 김시범 외 12명이 체포당하였다.

그러나 민중들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22일과 23일에는 다시 많은 민중들이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면서 체포당한 애국지사들을 석방하라고 외쳤다. 24일은 마침 조천리의 장날인데, 이곳 지사들은 다시 장날의 집합을 기회로 하여 장터에서 다수 민중이 참가하여 만세시위를 벌였다.뿐만아니라 이날은 조천리 외에도 제주도내 여러곳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최정식.김창국 등 유지들이 앞장서서 전도내의 만세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21일 이래의 만세운동으로 하여 체포당한 많은 인사들 중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 판결에 의하여 김시은.김장환.김연배.황진식 등은 징역 1년을 언도 받았으며,그 밖에도 많은 인사들이 6개월 내외의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일본경찰은 구속자를 취조하기 위하여 고문.구타를 하였기 때문에 16인의 대부분은 고문의 여독으로 早死, 혹은 病死하였다.

** 참고문헌 **

최근무,< 남부지방의 삼일운동>, <<한민족독립운동사>> 3, 국사편찬위원회,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