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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자연환경


제주도는 한반도의 서남단, 북태평양에 위치한 한국 최대의 섬이며 중위에 8개의 유인도, 54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다. 섬 전체가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 크기는 동서로 73킬로미터, 남북으로 41킬로미터이며 총면적은 1820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 이는 전체 남한면적의 1.8%,충청북도의 4분의1에 해당되는 크기이다.

기후적으로 볼 때 연평균 강우량 1,400 - 1,800, 평균 15℃로서 온난다습한 아열대 몬수운형의 기후지역에 속하며, 한편으로는 주변해역에 난류가 흐르고 있어 비교적 따뜻하며 한서의 차가 적은 난대성, 해양성기후를 보인다. 그러면서도 해발 1,950미터 한라산을 정점으로 하여 동서사면은 3˚- 5˚의 매우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나 남북방향에서는 급한 사면(斜面)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지형의 대체적인 형성은 신생대 제 4기의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즉 제주도 지반의 형성은 신생대 3세기말에 끝나고 그 후 2회에 걸친 용암의 분출로 섬의 중심부근에 위치한 해발 2천미터에 달하는 한라산 덩어리와 섬의 여기저기에 분포하고 있는 기생화산이 생겨나 오늘날 제주도 지형이 완성된 것이다.

지형이 이처럼 화산활동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제주도 토양의 70% 는 화산재 토양으로 구성되며 이 토양은 화학,물리적 성질로 보아 본질적으로 여러가지 농업생산의 저해요인을 갖고 있다. 이런 화산재토는 보수성(保水性)이 아주 약하고 그와 동시에 지하층은 절리구조(節理構造)를 갖기 때문에 잠수상태(潛水狀態)가 이루어질 수가 없어 제주도는 물이 귀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천은 항상 물이 흐르는 영구유수천인 경우가 드물며 그나마 한라산을 정점으로 하여 긴사면과 넓은 용암대지가 발달한 동서사면 쪽으로는 그 발달이 빈약하고 주로 남쪽과 북쪽 사면에 많이 분포한다. 그와 동시에 생활용수로 많이 이용되는 용수천 또한 동서해안보다는 남북해안 지방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본래 물이 귀한 제주도에 있어 이러한 용수분포가 주민이 거주할 수 있는 입지요건을 구성한다.

이러한 이유와 함께 경작지의 대부분이 풍화작용의 진전도가 높아 토양이 비교적 비옥하며 평탄지대가 많은 해발 100 m 이하의 해안지방에 조성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지형 및 토양 여건때문에 자연히 촌락은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형성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까닭에 물이 땅밑으로 스며들어 물줄기가 솟아나는 곳이 아니면 물이 귀해 논이 드물고 주로 밭에서 잡곡을 생산한다. 따라서 주식도 보리밭·조밥·찐고구마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또 아낙네들은 물을 물동이나 양동이로 길어 오지 않고 대로 만든 바구니인 구덕에 입이 작은 옹기 항아리인 허벅을 넣고 거기에 담아 져날랐다.

제주도에는 동굴이 많이 분포한다. 동굴은 크게 자연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동굴과 인간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동굴로 나누어진다. 이런 동굴들은 빌레못굴과 같이 원시인들의 생활터전이 되기도 하고 근대 이전까지는 억겁의 세월 속에 감추어져 있으면서 공포와 전설을 낳았고 일제시대에는 강제부역의 현장이 되었다. 그리고 4·3항쟁의 토벌기에는 아무데서도 받아주지 않는 갈 곳 잃은 섬 주민들의 피신처가 되기도 하였다.

제주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어느 곳을 가든지 기묘한 형태의 오름들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름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섬 전체에 360 여개가 산재하고 있다.

오름이란 ?오르다?의 명사형으로서 ?자그마한 기생화산?을 일컫는 제주말이다. 오름의 형성은 고려 중엽 두 차례에 걸친 화산활동때의 폭발과 융기, 그리고 해식작용 등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지질학적 시대로는 신생대 제3기말에서 제5기에 해당되는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즉, 제주도 형성단계 중 기생화산 형성단계에 만들어져 그 후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작용을 겪고 지금의 오름이 된 것이다.

제주도의 오름들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하여 대부분 동서의 장축방향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분화구의 형태와 식물분포 등에 의해 제각기 독특한 멋을 보여준다. 이러한 오름들은 산야에 식물지대를 형성하면서 수목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각종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으며 포유류,조류,파충류 등 수 많은 동물들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또 제주도의 오름은 제주도 사람들에게 신앙의례의 터전으로서 숱한 신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곳에서 제주의 선조들은 소나 말 등을 방목했고 오름을 통해 방향을 알아냈으며 여기에 묘를 쓰기도 했다. 또 오름은 지역을 구분하는 요소로서도 이용되어 왔다. 이처럼 오름은 옛부터 중요한 생활수단의 하나인 목축근거지였으며, 공동묘지는 물론 촌락형성의 모태가 되어 왔다.

이러한 오름은 역사적으로는 외적이 침입했을 때는 봉화를 올려 통신망 구실을 했던 곳이고, 몽고족이 목마장을 설치한 후로는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라? 는 가슴 아픈 속담을 남겨 놓은 곳일 뿐만 아니라 일제 말기에는 일본군의 최후보루로서 도민들이 강제부역을 감내해야 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4·3항쟁 당시에는 민중항쟁의 거점으로서 항쟁의 근거지나 전투지가 되기도 했고, 오늘날에는 외지자본가들의 불법개발 및 토지투기 바람에 맞서 민중생존권쟁취 싸움을 벌이는 현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