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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1. 정림사지

문화재명 : 부여 정림사지
지정번호 : 사적 제 301 호

백제가 부여로 왕도를 정했던 때의 중심 절터이다. 경내에는 백제시대에 세워진 오층석탑 (국보제9호)과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불좌상(보물 제108호)이 남아있다. 몇차례의 학술조사가 이루 어져 절의 건물배치와 각 시대의 유물들이 수습되었다. 특히 석 불좌상이 있는 건물터에서는 "태평 8년 무진정림사대장당초"라고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다.

태평 8년은 고려헌종 19년(1028)에 해당되며, 당시 정림사라고 불렀던 이 절의 강당터 위에 다시 건 물을 짓고 대장전이라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는 백제시대와 고려시대의 막새기와를 비롯한 벼루, 토기등 사찰 생활용품과 소조불상 등이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문 화를 알게 하고 있다. 사찰의 건물 배치는 중문, 오층석탑, 금 당, 강당의 중심축선이 남.북일직 선상에 놓이고 이를 회랑으로 두룬 1탑1금당 형식이다. 이러한 건물배치에 영향을 받아 고대 일본의 사찰은 모두 이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석불좌상을 보호하 기 위한 건물은 1993년에 새로 세웠다.

2. 정림사지 석불좌상

문화재명 : 부여 정림사지 석불좌상
지정번호 : 보물 제 108 호

정림사는 부여 천도 즈음인 6세기 중엽에 처음 창건되어 백제 멸망 때까지 번창하였던 사찰이었고, 그 후 고려시대에 다시 번창했던 것 으로 생각된다. 백제때의 번창을 알려주는 것이 석탑이라면 고려때의 번성을 보여주는 것이 이 석불상이다. 현재의 머리와 갓은 후대의 것 이며, 신체는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겨우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두 손의 표현으로 보아 비로 자나불상인 것이 확실하다.

불상에 비해서 대좌는 잘 남아 있는데, 상대는 앙련이 조각되었지 만 마멸과 파손이 심하고, 중대의 8각 간석은 각면에 큼직한 안상이 표현되었으며, 하대는 3중으로 복련, 안상을 새긴 각면이 중첩되어 복잡하면서도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 뛰어난 8각대좌라 하겠다 이 불상과 대좌는 강당의 주존으로 생각되는데, 명문기와로 보아 10 25년경의 중창때 조성된 불상으로 11세기 중엽의 만복사대좌나 불상 과 함께 11세기 고려불상양식을 단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3. 정림사지 오층석탑

문화재명 :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지정번호 : 국보 제 9 호

이 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시대에 세워진 귀중한 탑 으로,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목조건물의 가구를 모방하고 있으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정돈된 형태에서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의 형태가 장중하고 명쾌한 기풍을 풍겨준다.

초층탑신 4면에는 당의 소정방이 백제를 멸한 다음 그 기공문을 새 겨넣었으나 이는 탑이 건립된 훨씬 뒤의 일이다. 이곳 일대의 발굴조 사에서 정림사명이 들어 있는 기와가 많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