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num.mokpo.ac.kr/kangbr/www/역사학이란.htm

재미있는 학문의 세계 - 역사학

"역사란 무엇인가?" 무언가 흥미진진하고 비밀스런 답이 나올 것만 같은 질문이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 - 무언가 멋진 말인 듯한데, 손에 잡히는 것은 별로 없다. 필자 역시 자신없는 길이지만 발길 닿는대로 무작정 역사학의 세계를 산책해 본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현상의 세계에서는 어느 것 하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한시도 그대로 머물러 있지를 못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남겨 놓은 변화의 흔적들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학문이 바로 역사학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역사학의 탐구 대상은 너무나 방대하다. 모든 시간, 모든 공간 속에서 살아오고 있는 인간과 그들이 구성했던 사회의 모든 측면들이 역사학의 탐구 대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역사가도 이를 한꺼번에 탐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개는 어느 특정 공간에서 특정 시간대에 살았던 인간사회의 특정 측면만을 한정해서 탐구한다.

그렇지만 역사가는 결코 그것만으로 끝내지는 않는다. 연구 주제를 이처럼 특정의 공간과 시간과 측면에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역사가는 변화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서 모든 시간 및 공간에서 펼쳐온 인간 활동의 제반 측면들과의 관련성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사고하는 일을 결코 게을리하지 않는다. 탐구 주제는 엄격하리만치 철저히 한정하되, 사고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절제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 여기에 역사학의 묘미가 있다.

역사학의 탐구 대상이 방대하기 때문에 역사학 연구는 불가피하게 어느 정도의 경향성 내지는 편향성을 가진다. 이제까지의 역사 연구는 '체제사'와 '중앙 중심의 전체사'를 복원하려는 경향성을 보여왔다고 할 수 있다. 각 시대의 정치체제·경제체제·사회체제를 복원하고 중앙을 중심으로 전체 사회를 조직화하여 파악하려는 작업이 역사학 연구의 중심이 되어 왔던 것이다. 이는 역사학의 근간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체제사'와 '전체사'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체제 속의 인간 개별자들과 전체 속의 부분들이 무시되어 버려, 역사학은 무미건조한 획일적 편향성을 보여왔다. 최근 이러한 역사연구의 편향성에 대해, 대중들은 역사에 대한 관심의 문을 닫아버림으로써 무언의 항변을 하고 있다. 역사의 시대는 끝났다는 섣부른 진단까지도 나오고 있다. 가위 역사학의 위기라 할 만하다. 21세기에 직면한 이 시점에서 역사학의 장래는 뭇사람들이 우려하는 대로 과연 희망이 없는 것일까?

변화를 다루는 학문 답게 역사학은 21세기를 향한 멋진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학이 사는 길이고 더 나아가 그 존재의 의미를 더욱 확대 재생산하는 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일컬어 흔히 '정보화의 시대', '세계화의 시대'라 부른다. 과학문명의 총아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는 인터넷의 정보통신망으로 연결되고, 세계 경제는 바야흐로 국경이라는 장벽을 넘어 점차 하나로 묶여져 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패쇄적인 민족경제·국가경제를 고집하다가는 경제기반 자체가 몽땅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최근 IMF체제에 직면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우리 경제의 붕괴가 전세계를 엄청난 경제적 혼란으로 몰고갈 수도 있다는 사실도 실감했다. 이제 세계의 경제는 독립 분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이 난마처럼 뒤얽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 우리는 외국 자본의 국내 투자를 애타게 고대하면서도, 그것을 더 이상 경제적 종속이니 예속이니 말하지 않게 되었다. 엄청난 변화이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독립성을 자포자기하고 있는 것일까?

아직 많은 사람들은 동의하고 싶지 않겠지만, 21세기에는 국가·민족의 '독립'이란 개념까지도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식 독립의 개념은 더 이상 경제의 폐쇄적 자립성에서 찾아질 것이 아니다. 그 새로운 대안은 다름 아닌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하지 않던가?

이제 우리는 우리 문화의 재인식을 통해서 국가와 민족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확보하고, 국가와 민족의 독립성을 확인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화의 독창성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민족은 그 독립성을 의심받게 되는 시대에 서게 된 것이다. 우리 문화의 독창성을 확보하고 다른 국가·민족의 문화와 경쟁해가는 일. 이것이야말로 21세기의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하고 있다.

우리 문화를 획일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너무나 따분하고 단조로운 것이어서, 문화의 경쟁력은 결코 확보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대안은 이렇다. 지방문화의 개성과 다양성을 전제로 하여 우리 문화가 하나로 결집될 때, 비로소 문화의 발랄한 생명력과 경쟁력이 살아날 수 있다. 그래서 21세기를 또한 '지방화의 시대'라 하는가?

이렇게 본다면 멋지게 변신만 할 수 있다면 역사학이 이 시대에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은 오히려 더 넓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변신의 방향은 자명하다. '체제사'·'전체사'의 획일성과 편향성에서 벗어나서, 우리 역사문화의 다양성과 균형성을 추구하는 '생활문화사'와 '지방사'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그 방향이다.

여기에서 잠시 목포대 사학과로 말머리를 돌려보자. 그간 목포대 사학과는 일찍부터 호남지방사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일을 학과 특성화의 방향으로 설정하고 실천해 왔다. 중앙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이 지방의 역사적 삶의 흔적들을 조금씩 정리하다 보니, 이제 어느덧 양과 질의 면에서 상당한 학문적 성과를 쌓게 되었다.

이러한 학문적 성과는 교육의 현장과 접목되어 성취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더욱 크다. 교수와 학생들은 수시로 현장을 답사하여 문화유산과 역사자료의 흔적들을 확인·발굴하여 이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에 힘써왔다. 스스로 말하기 쑥스럽긴 하지만, 역사를 학문으로 연구하는 일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 연구의 소재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실무적 기능과 안목을 갖게 하는 일에서도 조그만 성취를 이루어왔다고 자부하고 싶다.

지방의 문화연구에 관한 한, 인접한 고고인류학과에서도 항상 앞장서서 열의를 기울여왔다.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사학과와 고고인류학과에서는 호남지방의 역사·문화와 동아시아 각국의 지역 역사·문화를 보다 종합적으로 비교·연구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작년에 두 과가 통합하여 역사학·고고학·문화인류학의 세 전공으로 꾸며진 역사문화학부를 출범시킨 것은 그 모색의 결실이었다. 변신을 위한 고심어린 노력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21세기를 지칭하는 '정보화의 시대', '세계화의 시대'란 구호는 언뜻 '문화의 시대', '지방화의 시대'란 구호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자가 21세기 변화의 대세를 지칭하는 구호라 한다면, 후자는 그러한 변화의 대세에 적응하는 변신의 방향성을 시사하는 구호라 할 수 있다. 21세기의 역사학의 변신 노력은, 이러한 화려한 구호들이 시사하는 변화를 인지하고 그 적응과 변신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일과 통하는 것이다.

강봉룡(목포대 역사문화학부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