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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대지방인 인디아에서는 부처님을 서늘하게 모시기 위해 바위에 굴을 파고 그 속에 탑을 세우고 스님들의 수양을 위해 바위굴 속에 방을 만들어 놓았다.(BC100년경)

  • 이 풍속은 4세기경 중국으로 전해졌다.

     

  • 이러한 석굴 신앙이 7세기 말 - 8세기 초에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단석산 신선사 마애석불, 군위 삼존불 같은 석굴사원이 시작되었다. 신라에는 큰 바위산이 없었기에 신라의 예술가들은 새로운 방법을 창안했다.

  • 산을 파내어 굴을 만들고 다른 곳에서 돌을 옮겨다가 다듬고 조각, 조립하여 놓고 흙을 덮어 다른 나라의 석굴사원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방법을 이룩된 석굴사원은 동양에서 석굴암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 석굴암은 752년(경덕왕 11년) 불국사를 지은 김대성에 의해서 창건되었다고 한다.

  • 김대성은 현세 부모를 모시기 위해 불국사를 짓고, 전세 부모를 위해서 석불사로 불리던 석굴암 창건에 착수하였는데 김대성이 죽은(혜공왕 10년=774년 12월 2일) 뒤 신라 국가에서 절을 완성하였다.

     

  • <불국사 고금 역대기>에 보면 조선시대에 있어서 몇 번의 보수가 있었으며, 일제시대인 1913년 해체 공사를 하고 1915년부터 재조립공사를 하였는데 이 때 콘크리이트 돔을 입혔다. 이 것이 현재 석굴암 보존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 후 굴내에 비가 새고, 습기가 서리기 시작하여 수차에 걸쳐 재보수를 하였으나 결점을 없애지 못하였다.

  • 1962년-1964년 사이에 우리 정부가 전면 해체 복원공사를 실시하였는데 결국 콘크리이트 돔을 없애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