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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의 제작과 이운에 대한 사실과 가설
성원 스님 / 해인사 승가대학 '수다라' 편집장
베일에 가린 팔만대장경. 제작 장소에서부터 이운의 경로와 방법까지,

우리가 아는 사실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지속적인 연구로 그 비밀을 벗기는 날,

팔만대장경은 진정 살아 있는 유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삶에는 일의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역사적 사실 또한 마찬가지리라. 문화유산을 단순히 유물 자체의 예술적 가치와 희소성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해인사에 소장된 팔만대장경은 제작과정이나 장소 등은 차치하고 현재 남아있는 상태만으로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경판의 제작 과정과 이운(移運)경로 등의 문제를 명확히 규명한다면,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 한층 더 깊은 이해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분사도감 존재 여부에 대한 의문점들

일반적으로 경판은, 지리산 일대의 원목을 섬진강 하구로 흘려보내 남해에 모았다가 바닷물에 침전시켜 방충 및 부식에 대한 저항을 가지게 한 후에 켜서 준비한 목판을 다시 강화로 옮겨 판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확한 기록에 근거한 것이 아닌 이상 이또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강화에서 경판을 제작했다는 것과 당시 강화에 대장도감(大藏都監)을 두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남해와 거제 및 진주에 있었다는 분사도감(分司都監)의 정확한 기능에 관한 자료가 없다. 그곳에서 단지 목판의 재료만 준비했을까? 그렇지만은 않았으리라는 근거가 있다. '남해분사도감(南海分司都監)'이라 새겨진 경판이 그것이다. 하지만 남해 대사리 일원에 분사도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 거제와 진주의 분사도감은 존재 여부를 밝히기 어려운 실정이다.

남해분사도감에서 판각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얼마큼의 양이 있었으며 또 어느 부분이 판각되었을까? 경판은 많은 것을 비밀로 묻어둔 채 완성된 모습만 내보이고 있지만, 많은 곳에 흩어져 있는 역사의 조각들을 주워 모은다면 보다 완전한 제작의 구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의심스러운 것은 강화 선원사에서 해인사로 이운하게 된 동기, 그리고 그 경로와 방법이다. 얼마 전 해인사 승가대학의 스님들이 강화에서 해인사로의 이운 경로라고 추정되는 길을 답사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육로보다는 해로를 통한 이운의 가능성이 훨씬 큰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우리의 추리를 가로막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해인사 법당에 있는 경판 이운에 관한 벽화다. 이 벽화에는 경판을 우마차에 싣거나 이고 지고 산을 넘어 해인사로 오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탐사를 시작하며 찾아간 개포나루(옛 장경나루)는 낙동강변의 작은 포구로, 지금은 나룻배가 오가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그곳 촌로들 사이에 구전돼 오는 얘기에 의하면, 장경은 분명 부산쪽(낙동강 하구)에서 배로 이운됐으며, 해인사의 벽화는 그곳 장경나루에서 해인사로 옮길 때의 모습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좀더 객관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는 두가지 길이 있다. 그 하나는 조선 초기 조곡의 운반경로를 역으로 추정해 보는 것인데, 조선 후기까지 경상도의 조곡은 대부분 낙동강을 따라 부산에서 남해, 서해를 거쳐 한양으로 이운됐다는 분명한 기록이 있다.

해로로 추정되는 경판의 이운 경로

더구나 장경 이운에 관해 구체적으로 기록한 『태조실록]에 따르면 경판을 서울 지천사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서울로 이운되는 장경을 맞으러 한강에 나간 태조가 그날 전라도에서 올라온 큰 조곡선들을 점검했다는 사실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두 번째로 육로 이운의 경로에 있는 문경새재는 임진왜란 때까지만 해도 우마차가 다니기 힘들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한곳으로 확정짓기에는 아직도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무엇보다 왜구의 잦은 침탈 때문에 장경을 내륙 깊숙이 이운했다고 하는 이운 동기가 문제다. 이운의 배경은 조선 개국 당시 격변하던 정세만큼이나 많은 상황을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경판을 단순한 결과로만 존재하게 하지 않으려면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 수많은 역사를 품은 채 말이 없는 경판을 진정 살아 있는 유물로 보존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