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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혼이 살아 숨쉬는 민족사의 위대한 거울
지관 /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원장
팔만대장경은 우리 민족사의 위대한 거울이요, 우리 문화의 자존심이다.

민족의 혼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는 팔만대장경은 성스러운 역사를

재창조할 오늘을 위해 지금도 우리 곁에서 숨쉬고 있다.

해인사는 무형의 정신과 유형의 사물이 신령스럽게 교감하는 우리 민족의 성역이라 감히 말한다.

그것은 바로 팔만대장경판이 해인사 장경각에서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문화유산 또는 문화재라고만 이름할 수 없는 생명력이 늘 숨쉬고 있는 것이다.

팔만대장경이 이토록 영원한 민족의 성사(聖史)로 감흥을 남기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의 지(知)와 정(精) 그리고 의지가 다양하게 결합하고 숭고하게 숭화한 걸작이기 때문이다. 유산이나 문화재가 영원함과 숭고함 등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반드시 그 유산 혹은 문화재에 동참한 인간의 정신사에 비례한다.

해인사 경내에 들어서서 장경각을 머리에 이면, 우주의 중심에 서 있는 듯 외경과 장엄함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감흥은 아닐 것이다. 불심이라는 종교적 경계를 넘어 민심이 모두 함께 감응하는 것은 그 장경 형성의 역사에 이미 무한한 민심이 동참해 왔기 때문이다. 팔만은 불교에서의 무한한 수를 의미한다. 팔만대장경은 팔만의 수보다 많은 겨레의 얼과 우리 국토에서 연연(連延)한 무진(無盡)의 자연이 교감하여 창조해 낸 숨쉬는 유산이다.

장경 중의 대장경, 해인장경판

불교의 방대한 교리를 담은 대장경은 많은 언어와 문자로 전승돼 왔다. 그러나 크게 분류하면 범본, 팔리본,서장본 그리고 한역본 등이다. 그 중 한역본에는 다시 세종류가 있는데, 중국에서 간행된 궁판(宮板)480질 1016부로부터 사판상해본(私板上海本)1916부 8416권에 이르기까지 14종이 있으며, 일본의 경우 천해본 1452부 6322권에서 대정신수대장경 3502부 11970권에 이르기까지 6종이 간행되었고, 우리나라는 고려초조본 1076부 5048권에 이어 지금의 해인장경에 이르기까지 4종, 모두 24종이 간행되었다.

이 24종의 대장경 가운데 해인장경판이 으뜸임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해인장경판 이전의 간본들은 오류와 조잡이 많아 해인장경판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교정이 완성됐으며, 그 후에 간행된 간본들은 해인장경을 모본으로 편재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일본에서 활판으로 간행된 대정신수대장경이 종류와 양에 있어서 해인장경을 모본으로 첨가하였기에 학자들이 많이 인용하지만 그 엄정함과 정확함에 있어서는 고려대장경을 따르지 못한다. 고려대장경이 장경 중의 장경이라 칭송받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무상무아(無常無我)의 장엄한 법계 즉 종교적 이상세계 - 종교의 성역이 세간의 장엄한 유형의 유산으로 빛나게 된 것은, 위기와 그 위난을 막으려는 민심의 성스러운 기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국적인 원력(願力)에 어떠한 삿됨도 어떠한 장애도 있을 수 없었다.

세 차례 새긴 장경판본, 몽고난으로 전소

고려 현종 2년 (1011)1월 거란병이 송도를 침공하자 임금이 나주로 피난하여 국력을 모으고 민심을 모아 대장경판을 새기게 되었으니, 고려대장경 초조본 1076부 5048본이 탄생한다. 물론 거란병은 물러났다. 그로부터 36년후 제11대 문종원년(1047)초간본에서 빠졌던 1000여권이 보완되니 이것이 두 번째의 고려속장경이다.

그후 제15대 숙종 원년 (1096)우세승통인 대각국사 의천은 송나라의 장소(章疎)전적 3000여권을 가지고 돌아왔고 요·송·일본 등의 경서를 모아 모두 1010부 4740권을 결집하였으니, 이것이 해동의 결집 신편제종교장총록이다. 이어 흥왕사 교장도감에서 이것을 모두 새기니 바로 세 번째 고려속장경판이다. 이상 세 차례에 걸쳐 새긴 장경판본 전부를 팔공산 부인사에 봉장(奉藏)했는데, 고려 제23대 고종 19년(1232)1월 장수 산례탑이 이끄는 몽고병의 침입으로 전소되고 말았다.

민심의 간절한 기원이 이룬 거사

이처럼 수 차례 이어진 국난을 극복하고자 팔만의 민심을 모아 무의자재(無依自在)한 신통력으로 다시 팔만대장경판을 간행하기에 이른다. 고종 23년(1236) 10월부터 38년(1251)9월에 이르기까지 무려 16년간 군신상하가 합심하여 국력을 결집, 드디어 네 번째 고려대장경 해인장경판을 간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군신과 인민이 하나 되어 위난을 극복하고 장엄한 대장경의 완성을 이룩하기까지는 다음과 같은 거국적 기원이 있었다.

"국왕 00는 태자와 공과 후와 재상들과 문무백관들로 더불어 목욕재계하옵고, 허공계 가득한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과 제석천왕을 비롯한 삼십삼천의 하늘님과 모든 호법영관께 비옵나이다. 달단의 환란은 몹시 가혹하나이다. 그들의 잔인하고 흉악한 본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어리석고 어둠이 짐승보다 더 심하오니 천하에 가장 소중한 불법이 있는줄을 알기나 하오리까. 그리하여 그 더러운 발치 지나가는 곳마다 불상과 경전을 모조리 불살라 버리오매, 부인사에 모셔두었던 대장경판본도 마침내 불타고 말았습니다. 수십 년 공적이 하루아침에 재가 되어 나라의 큰 보배가 없어졌사오니, 모든 불보살과 여러 천왕의 대자대비하신 마음이온들 이 일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습니까. ...... 바라옵건대 모든 부처님과 성현과 삼십삼 하늘님께서는 저희들의 지극한 소원을 살피히고 신통한 묘력을 내리사, 저 모진 오랑캐로 하여금 더러운 발길을 돌려 멀리 달아나게 하고, 다시는 우리의 국경을 범치 못하게 하여지이다. 전쟁이 쉬어 온 나라가 화평하고 모후와 태자의 목숨이 오래가며 나라의 운이 길이 만세에 태평케 하시오면, 저희들이 마땅히 정성을 다하여 밖으로 불법을 두호(斗護)하오며, 부처님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하려 합니다. 저희들의 간곡한 소원을 굽어 살피옵소서."

(이규보 지음, 『대장각판군신기고문』, 『동국이상국집』권25)

이와같은 간절한 발원으로 16년에 걸친 군신민(君臣民)의 원력이 성취되어 무형의 공력은 거사를 이루게 되었다.

국간(國刊)을 위한 관리부서로 강화도에 본사(本司)를 두고 진주 또는 하동이라 여겨지는 곳에 분사(分司)를 두었다.

본사가 강화도에 있는 것은 왕이 몽고병란을 피해 1232년 6월 그곳에 천도하였기 때문이며, 분사를 진주 또는 하동에 둔 것은 경판 자재인 자작나무(自작木)가 거제도 일대에서 많이 자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도지 강화도 선원사에서 새기고 봉안

『고려사』 권24에 따르면 고종 38년(1251) 9월25일 조판 불사가 끝나던 그 해에 바로 간경회향을 기념하는 법회에 왕이 강화도 서성문 밖 선원사 대장경판전에 참석하여 향배하였다고 하니, 선원사에서 경판을 새기고 봉안한 것이 확실하다. 『동국여지승람』 권12 강화조(江華條)에, 선원사의 유지(遺址)는 강화부 남쪽 약 3Km 지점에 있으니 요즘의 장원서 과수원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976년 동국대학교 강화도 학술조사단은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도감산 도감(都監)마을을 그 유지라 추정하였다. 고려대장경 영인본 제1권에 새겨진 "丁酉歲高麗國大藏經都監奉勅彫造"을 보면 도감마을이란 이름이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또 권44, 47 등에 보이는 "戊申歲分司大藏都監開板"은 분사 주조의 경우를 보여주는 것이다.

거제도 등지의 자작나무는 일명 백화목 또는 거제목이라 하는데 부패와 충식을 방지하는 견고한 자질을 지녔다. 이 나무를 삼 년간 바닷물에 담갔다가 판자로 만들고 소금물에 삶아서 그늘에 말린 뒤 그 위에 구양순체로 동일하게 새겼다. 판이 뒤틀리지 않도록 끝을 각목으로 마무리하고, 옻칠을 한 후 네 귀퉁이를 동판으로 장식하여 알뜰하게 마무리했다.

연산군 개태사 주지 수기승통은 고려본, 거란본, 요본, 몽고본 등의 대장경을 대조하여 정밀히 교정하였으니, 동양에 남아 있는 삼십여 종의 한역 장경 중에 가장 완벽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지금까지 엄정한 교정작업에 대한 많은 일화들이 남아 있다.

엄격한 교정 작업이 낳은 완벽한 장경

그 규모를 보면 평균적으로 각 장의 길이가 24Cm, 너비 70Cm에, 두께 2.8Cm, 무게가 3250g이다. 판면은 길이 22Cm, 너비 54Cm에, 상하의 계선을 그리고 한 면에 23행, 한 행에 14자, 전후 양면에 644자 등을 새겼다. 판의 후면 끝에는 경의 이름과 장 수, 천자문 차례의 함호를 새기고 좌우끝의 각목에도 동일한 표시를 남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해인사판은 8만 1258판 1511부 6802권으로 현재 해인사 장경각에서 숨쉬고 있다.

대장경 보존의 신비는 지금도 경이로울 뿐이다. 요즘은 과학적 설비와 기계를 동원하여 분석을 해보지만, 그 지혜는 정보화의 주인공들을 비웃는다. 우리 민족의 보이지 않은 슬기와 정성은 유형의 유산을 지키는 또다른 무형의 유산이다.

팔만대장경은 우리 민족사의 위대한 거울이요, 우리 문화의 자존심이다. 인류가 기념해야 할 성보 팔만대장경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다시 큰 여정을 시작했다. 앞서 말하였듯 물리의 유산은 그에 동참한 민심에 비례하여 영원함을 유지한다. 문화유산은 성스러운 역사를 재창조할 오늘의 민심을 위해 늘 숨쉬고 있다.

지관: 동국대학교 총장을 지내고 해인사 주지를 역임했다. 현재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원장으로, 학술과 불교학 진흥을 위해 정진하고 있다.

『한국불교소의경전 연구』, 『해인사지』,『역주역대고승비문』 등의 저서가 있으며 『불교대사전』을 15년째 편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