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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각 뒷 이야기
현 진

장경각 뒷길 풀베기 울력이 있었다. 수미정상탑 그늘에서 차담을 나누면서 원융 한주(閑 主) 스님이 "이 자리가 잘못 했으면 선방이 될뻔 하였소"라는 말에 모두들 귀가 솔깃해진 게다. 차담 시간에 한번씩 듣게 되는 짜투리 얘기는 흥미있는 소참법문(小參法門)이

아닐 수 없다.

'72년에 핑퐁외교라고 하여 미국의 닉슨이 중국을 방문한 일이 있었지요. 그때 모택동 이 자신만만하게 보여준 국보가 만리장성이었어요. "듣고 보니 이십 년이나 지난 이야기고, 몇몇 구참 (久參)들을 빼놓고는 까마득한 옛일이다. 멀리 앉았던 스님들도 두런두런 나누 던 얘기를 중단하고 자세를 고치고 있었다.

이미 장경각 뒷이야기는 처음부터 청중들을 휘어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닉슨이 한국을 방문하면 입을 벌어지게 만들 세계적인 자랑 거리를 찾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담당비서관이 추천한 보물이 바로 해인사 대장경판. 예나 지금이나 목조건물은 화재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화재를 방지하고 폭격에도 끄 덕하지 않는 영구적인 장경각을 다시 짓는다는 게 정부의 복안.

그때 도면에는 지금 장경각과 똑같은 크기로 지하1층, 지상1층의 콘크리트 구조로 설계 되어 있었다. 다시말해 장경판고 두 동의 건물을 2층으로 포개어 놓은 형태를 생각하면 이 해가 쉬울 것이다. 위치는 지금 수미정상탑 자리인 장경각 바로 뒷 쪽. 기공식을 위해 건설 장비들이 도착하고 있을 때 명월당(明月堂), 지금의 보경당에서는 대중공사(大衆公事)가 한 창 벌어지고 있었다. 어른 스님과 수좌들의 주장은 틀릴 게 없었다. 해인사는 터를 잡은 모습이 행주형국(行舟刑局). 그러니까 큰 바다에 배가 가고 있는 모양이란 뜻이다. 땅을 파 고 지하를 만든다는 일은 곧 배밑을 뚫는 일이 아닌가. 배가 흔들릴 지경인데 스님들이 그 냥 있을리 없다. 그리고 목조 문화와 콘크리트 문화의 정서가 주는 이질감을 지적하지 않 을 수 없었을 게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중공사의 성격은 반대하는 쪽으로 점점 기울어가고 있었다. 다음날 스님들은 장비를 몸으로 막는 사태가 벌어지고, 젊은 스님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큰소리 를 지르는 기세에 정부관계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이니 정부측의 양보있 을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당시 총무 원장이던 손 경산 스님이 중재를 위해 대중들 앞에 나섰지만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할 분위기였다고 전한다.

예나 지금이나 해인사 스님들의 성격은 불 같아서 경산스님을 남영호(화장실 아랫쪽, 지금은 매립되고 없음)에 빠뜨릴 기세였다. 정부관계자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 적당한 위치 를 찾다가 부방장스님이 극락전쪽을 가리키면서 "저쪽이 좋소"하여 설왕설래 일주일 만 에 절충을 보았던 것이다. 그때 일을 꺼낼 때마다 당시 주지였던 봉주스님을 빼놓을 수 없다. 정부관계자들에겐 봉주스님은 '호랑이 주지'로 통할 정도로 똑부러지게 일을 처리 하였다.

철저히 정부의 이권개입을 차단하고 자주권을 행사하는 무서운 스님이었다는 게다. 극락 전 터에 신장경각을 짓는 과정에서도 스님은 "아무리 정부사업이라도 성역을 해치는 일은 용서할 수 없다"며 호통을 친 일은 유명하다.

한번은 호기있게 나서는 젊은 주지 스님의 기를 꺾으려고 경찰서에서 무장을 하고 온 적 이 있었다. 그때 스님은 절문을 걸어 잠그고 미동도 하질 않았다. "우리 집안을 치려는 도 둑놈들 물러가면 문을 열겠다."

결국은 정부의 입김없이 당당하게 해인사의 권리를 확보하고 일을 처리할 수 있었던 것 은 스님이 처음이었다. 참으로 호법신장이 따로 없었다고 그때를 살았던 노스님들은 증언 한다. 새로 지은 장경각을 두고 한동안 뒷 얘기도 많았지만 지금은 선원으로 십년째 사용 하고 있다. "박대통령이 선방 하나 지을려고 그랬던 모양이야.

지금은 얼마나 좋아. 큰절에서 떨어져 있으니 정진하는 데에도 적격이지." 원융스님의 한 담이 끝났을 때 우리앞에 놓였던 햇감자도 많이 줄어 있었다. 노스님이나 선방의 구참들 을 모시고 정진하면 세월 속에 묻히기 쉬운 이런 뒷얘기들을 많이 듣게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선방 건물이 신장경각으로 지어진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지 만, 왜 극락전터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는 아는 이가 드물다. 그때 장경각 뒷쪽에 신축 되었더라면 두고두고 욕을 먹었을 게 뻔하다. 최신 기술을 다 동원한 건물이었지만 결로 (結露)현상을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 절 일은 전통에 정통한 이가 원력으로만이 할 수 있는 게 분명하다. 얄팍한 머리로는 이러한 불가사의한 일을 흉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장경각을 참배할 때마다 실감하게 된다.

실상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또 과학으로 검증 될 수 있는 부분은 빙산의 일각에 불 과하다. 세상 일은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는 말이다. 해인사 대장경 역시 세상 이 치로 따질 수 없는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