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shinbiro.com/@infonet/his/his4.htm
 
고려후기의 역사인식

려후기에 역사인식의 변화를 초래한 사건들을 들자면 많은 것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을 애기 하자면, 첫째로 고려전기의 문신중심의 문벌귀족사회를 붕괴시킨 무신란, 둘째로 몽고의 침입으로 인한 대몽항쟁과 타협, 복속으 로 이어지는 원과의 관계, 셋째로 중국대륙에서의 원??명 세력의 교체와 이에 대한 국 내에서의 자주적이고 복고적인 공민왕의 개혁정치, 넷째로 우왕 14년의 위화도 회군이래의 이성계중심의 개혁정치와 조선건국을 위하여 실시한 준비작업 등의 있다. 고 려 후기의 역사서술로는 이규보의 [동명왕편][백운소설], 각훈의 [해동고승전], 일연의[삼국유사],원전?허공?한강이 찬한 [고 금록], 임익의 [선제사적], 이승휴의 [제왕운기], 정가신의 [천추금경록], 민지?권박의 [세대편년절요], 민지의 [본조편년강목] , 이제현?안축?이곡?안진?이인복의 [증수본조편강목], 이제현의 [사략] 그 밖에도 [사기],[증수본조강경록]과 각 왕의 실록 등을 들 수 있지만 현재 전하는 것은 [백운소설], [해동고승전]의 일부, [동명왕편],[삼국유사],[제왕운기] 이제현의 사찬등이있 다.

동명왕편

인집권시는 유학이 퇴조하고 유?불?선의 삼교가 절충하는 사상풍조가 등장하였는데, 이는 지식인의 사상경향이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으로 흐르게 된 것을 의미하고 역사의식도 변하게 되었는데 이시기의 집권층은 지식인의 역사의식을 대표할 수있는 것이 [동명왕편]이라 하겠다. 이 책은 민간에 떠도는 동명왕의 건국설화를 5언 시체로 재구성한 것으로 내용이 풍부하지 않고 증 거 자료와 인용이 있지 않다. 사서로는 미흡하지만 동명왕설화를 구환의 세계에서 성신의 세계로 끌어올리고 우리나라가 성인의 나라임을 자부한 것은 당시 고려에 대하여 군신관계를 강요해오던 금에 대한 자존심의 선언인데 이는 고구려전통을 낮게 평가한 [삼국사기]에 대한 반발이고 고려의 자존심을 훼손한 금의 압력에 대한 저항이라 할수 있다.
무인집권시대의 역사의식은 대외관계에서 유연한 사대외교를 강조하기보다는 금이나 몽고에 대한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자존의식을 높이고 저하요심을 복돋아주었다는 점에서 몽고의 간섭기에 민족의식이 한층 더 심화할수있었다.
동명왕편을 논하기를 [일견하여 믿기 어려운 개국의 근본, 또는 창국영웅의 사실을 후세인에게 확신케 하려는 의도와 또 삼국사 기에서는 이 사실을 생략하였기 때문에 이 중요로운 사실이 후세에 전하지 않을까 염려한 점이라] 하였고, 고려왕조를 지켜야겠 다는 강렬한 국가의식이 발동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후에 신라부흥운동으로 이어지는 경주지방의 민란에 대하여 고려왕조를 지키 려는 국가의식은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정통왕조라는 역사의식이 [동명왕편]시의 제작으로 표출되었다고 하였다.

제왕운기

승휴는 무신정권말기부터 원의 간섭기를 거쳐간 인물로서 신진사인으로 진출한 그의 환도에 있어서의 수난, 복잡 다단한 국제 관계속에서 민족의 수난을 몸소 체험한 그는 제왕운기를 저술하였는데 제왕운기는 동명왕편의 부족적, 지역적 설화에서 벗어나 민족 공동의 시조를 발견하고 민족의 활동의 전과정을 서술한 역사시라 할 수 있다. 제왕운기는 원나라에 의하여 세계대제국의 문화속에 지금까지 발전시켜 왔다고 생각한 자국의 문화가 흡수되어버리고 말 것과 같은 문화적위기의식이 제왕운기로 표출되었 다고 생각되며 제왕운기의 상편은 중국제왕의 역대흥망사이며, 하편은 시간적으로도 내용적으로 이에 상응하는 우리나라 제왕의 흥망사를 서사시로 읊은 것이다. 상?하편으로 나누어 쓴 것은 중국역사와 별도로 자국의 역사가 진행된 것을 의미한것이며 강역 도 요동에 하편 서두에서 밝히고있음은 자국역사의 독자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승휴는 문신이었기 때문에 일연과 는 다른 역사의식으로 유교사관을 내세워 정치와 사회의 안저을 요망하였으나 사대적 비자주적 성격을 합리화시키는 방향이 있었 다. 제왕운기는 삼국사기보다 고대사에 대한 인식이 깊어졌으나 기본입장은 [법부사치정리]한다는 원칙으로 유교사관을 취함으로 생명력이 있는 전통문화를 외면하였고 삼국관에 있어서는 시조설화만 기술하였고 고려시대사에 대한 인식에도 거란을 서희나 강 감찬의 기록은 전무하고 고려의 고구려계승에 대한 언급은 없고 태조의 가계설만 언급한점을 들어 원에 대한 사대성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제현

제현은 당시의 신진사류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그의 역사서술은 현실적인 국내문제의 해결에 목적을 두고 그를 위해 정치적 ?경제적 개혁을 단행함으로서 왕권을 중심으로 하여 국가의 질ㅅ를 회복시키려는 의식이 강하게 내포되어있다.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 모순을 초래한 원나라에 대해서는 별다른 저항의식이 없었고, 대외관계에 대한 사론은 소극성?고식성으로 일관되는 특징 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사학이 사대성을 면치못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원의 살다간 한 유학자로서의 한계성이 하겠지만 그는 장구한 역사를 이어온 자국의 사직을 지키고 누적된 난제들을 해결코자 노력을 기울였으며 역사서술 역시 문제의 식과 관련이 깊다고 하겠다.

무신란 이후 고려후기에 이루어진 자국역사를 중국역사와 대등하게 그리고 별도로 진행된 역사로 파악한 역사의식은 조선 전반 기인 15세기에 전반적인 민족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정신적 바탕이 된것이며, 뿐만아니라 무신란 이후에 문화적 위기의식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완 기록함으로써 값진 고대문화의 유산을 후세에 전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문화유산 은 국사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오늘날까지 전해주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한국사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