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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궁궐

 10세기 초에 건국된 고려는 고대 국가의 분열상을 극복, 민족의 재통일을 시도하지만 발해의 영토는 이 시기에 상실된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목표 아래 개성을 도읍지로 선택하고 평양에도 성을 쌓는 등 몇 차례 궁궐을 짓기도 하였다. 고려의 정궁은 후삼국시대에 태봉이 쌓았던 발어참성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태조 2년 에 그 자리에 새롭게 창건되었다. 성종대를 거치면서 왕권이 강화되고 모든 법제가 정비되면서 현종 초기에 새롭게 지은 궐은 규모도 커지고 형식과 제도도 더욱 완비된 모습으로 발전되었다. 이 때는 궁성 안에 여러 전각들도 각각의 기능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건덕전, 유사시에 왕이 거처하는 원덕전, 궁정을 편전하는 선정전, 태자 의 거처인 좌춘궁등이다. 한편 의종(1146-1170)은 고려시대의 궁궐 건축사에서 가장 기억될 만한 인물이다. 그는 지은 궁궐에 거처하기를 꺼려하였고 풍수지리 및 도참설을 신봉하여 수많은 개인의 집을 빼았아 이궁으로 만들어 옮겨 다니면서 호화로운 건축과 조원을 여러 곳에 만들었다. 의종은 무신의 난으로 쫓겨나고 무신이 집권 하는 시기에는 왕의 권력이 크게 실추되고 궁궐의 중건도 부진하였다. 이 후 잦은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는 등 고려의 궁궐은 많은 수모를 겪는다. 서긍의 '고려도경'을 참고하면 고려의 궁궐은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명당자리를 궁궐터로 선정하였기 때문에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그대로 활용하여 높은 기단을 쌓아 높이의 차이를 극복하고 정전을 비롯한 주요 거눌은 4면에 행각을 둘러 폐쇄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웅장한 건물들이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서 겹겹이 포개져 있는 모습은 송악과 어우려져 장관을 이루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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