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주차 [발제 1][발제 2][발제3]


고대사회의 종교와 습속

 
9745024 서진석

2. 단군신화와 고조선의 천신숭배

신화란 태초(primodial time)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로서, 우주 인간 문화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전하는 것이다. 또, 신화는 모든 것의 기원을 신성의 영역과 관련시킴으로써 도덕이나 관습, 질서와 규범을 신성시하고 정당화하는 헌장(憲章)으로서의 기능을 가진다.

1. 단군신화의 의미

단군신화 원형에 가장 접근한다는 < 삼국유사> 소재의 단군관계 기사는 다음 보기와 같다. <뒷장참조>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자료는 < 고기 > 인용 부분인데 단군의 출생에 이르는 과정, 고조선의 국도변천, 단군의 최후 등 다양한 사실을 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화적 사고에 입각하여 서술하였다.
먼저 환인에 대해 알아보자. 환인을 < 삼국유사> 협주에서는 제석(帝釋)이라 하는데 제석이란 수미산정(須彌山頂)인 도리천( 利天) 선견성(善見珹)에 산다는 불교의 천신인데 한국에 불교가 수용되기 훨씬 이전인 고조선에서 시조의 조부를 불교의 천신인 제석으로 보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환인이 천상적 존재임을 의식한 때문일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환인이란 한국 고유의 신명(神名)을 한자로 표현했다고 보는것이 옳을 것이다. 환인은 기본적으로 천신이지만 태양신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천신으로 보는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환인이 지고신(至高神)이라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 지고신은 신성과 초월의 극치로 이미 존재하는 우주의 질서나 사회적 규범의 수호자로서 우주와 인간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지상의 문제에도 적극 개입하며, 풍요와 다산에도 깊이 관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단군신화는 환인의 서자 환웅이 아버지로부터 천부인 3개를 받고 인간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태백산 신단수로 내려오는 데서 시작된다. 여기서 서자란 첩의 아들이란 뜻이 아니라 맏아들 이외의 아들이란 의미일 것이다. 왜냐하면 < 삼국유사> 가 편찬된 고려시대에는 맏아들 이외의 중자(衆子)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환웅은 환인으로부터 천부인 3개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부와 인이 관리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이며 특히 부는 제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관리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환웅의 인간 세상에 대한 지배가 합법적인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태백산과 신단수는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의 접점이라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신성한 곳이다. 단군신화에는 환웅이 인간세상에 처음으로 질병의 치료방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도덕률을 세웠고 사회규범을 파기한 자에 대해서는 처벌규정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이면에 전제되어 있다.
또 단군신화에서 곰은 여러가지 문제를 제기하는데 공통적으로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신성한 존재내지 신적 존재를 상징한다고 보았다. 여기는 토템으로 보는 견해, 지모신(地母神) 수신(水神)과 같은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보는 견해, 산신 또는 산신의 사자로 보는 견해등으로 나눠진다. 또, 곰의 변신에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곰이 인간이 되기위해 햇빛을 보지 않고 마늘과 쑥만 먹은 것을 성숙의 제의, 즉 성년식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할 때 곰의 시련과 인간으로의 변신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는 시조 단군의 출생이 필요한 모든 절차를 거친 환웅과 웅녀의 합법적인 혼인의 결과임을 말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 단군신화가 이야기하고자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고조선이 어떻게 해서 있게 되었는가라는 점이며, 이를 설명함에 있어 시조 단군의 근본을 풀이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단군은 지고신인 환인의 아들이며 지상에 풍요와 다산, 문화와 규범을 가지고 온 문화영웅 환웅이 지상을 대표하는 웅녀와 합법적으로 신성결혼을 해서 낳은 생래적으로 신성한 존재이며, 바로 이러한 단군에 의해 고조선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2. 단군신화의 기능

신화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단군신화도 고조선사회에서는 그 이상의 어떤 의미와 기능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적 기능으로 우선 생각해 볼수 있는 것은 정치권력의 신성성을 강조함으로써 정치권력을 정당화하고 합법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사실은 정치권력을 정당화함에 있어 지고천신(至高天神)이 동원되고 있다는 점이다. 관계자료가 극히 적어 지고천신 관념을 살펴보는 데에 어려움이 있지만 제한된 몇몇 자료를 통해 한국 고대의 지고천신관을 유추해볼때, 먼저 지적할수 있는 것은 지고천신이 창조신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한국인의 사고에 無로부터의 창조라는 관념이 희박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또, 지고신이 인간사회의 도덕과 규범의 유지에 깊이 관계하는 신으로 여겨졌는것 같다.
이에 비해 지고천신이 풍요와 다산에 관계하는 신이란 관념은 있었다. (보기( 1) ~ ( 5) 참고)
그런데 지고천신이 자식을 점지하는 신임을 보여주는 자료들에서 주목되는 점은 이들이 모두 왕실에 관한 사실이란 점이다. 여기서 한국 고대의 지고천신은 단순한 풍요와 다산의 신이 아니라, 정치적 성격이 강한 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보기 ( 6) , ( 7) 참고)
중국의 지고신관과 한국 고대의 지고신관을 대비해보면 공통성과 차이점이 발견된다.

공통성: 지고신이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것, 정치권력의 원천을 하늘에서 구한다는 점.
차이점: 한국 고대의 경우, 정치권력자가 천신의 직계임을 내세우고 중국의 경우 정치권력자가 지고신의 자손이란 관념 점차 사라지고 '지고신에 의해 선택된 자=천명을 받은 자'

환인은 지고천신이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최초의 사례이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군장은 자신의 정치권력의 원천을 왜 천신에서 구하였을까?
천신의 후예라는 관념이 고조선단계에서 대두되는 데에는 나름대로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것은 고조선사회가 여러 사회를 통합하면서 성립된 다세포적 사회라는 점이다. 고조선사회는 청동기사회로 전쟁이 빈발했으며 고조선사회로 흡수된 집단들은 원래 자기집단을 표상하는 나름대로의 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집단내부의 결속을 강화해 나갔을 것이라 짐작된다. 고조선의 지배세력은 자신들의 정치권력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보다 높은 사회적 차원과 관계하는 지고천신에서 구했던 것이다. 하위의 영적존재들로 표상되는 집단들 위에 군림할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조선의 정치권력을 신성화하여 고조선사회에 대한 지배를 합법화하는 것이 단군신화라고 한다면, 고조선의 지배자에 의해 단군신화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과시되었을 것이다. 그 하나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의례를 통한 단군신화의 재연(再演)이다. 이러한 의례를 정기적으로 반복함으로써 고조선의 정치권력의 초월성과 신성성은 주기적으로 재확인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일차적인 기능외에도 단군신화의 기능을 더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정치권력의 이상형을 제시하고 았다는 점이다. 내용에서 환웅은 고조선의 지배자들이 본받고 따라야 할 수장(首長)의 전형이었다.

둘째, 고조선사회의 내부적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을 가졌을 것이다. 의례는 전 공동체적 차원에서 거행되었으며 의례에 참여하는 자들은 모두 신성한 지배자의 보호아래 있는 존재로서의 유대감을 느꼈을 것이다.

***** 결국 고조선사회에서 단군신화는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해 주며, 사회적 결속을 강화시켜주고, 또한 정치권력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단군신화는 고조선사회의 신화적 헌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p1. 단군신화

< 위서> (魏書)에 이르기를 지금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라는 이가 있어 도읍을 아사달(阿斯達)에 정하고 나라를 창건하여 이름을 조선이라 하니 요 임금과 같은 시대라고 하였다.
< 고기> (古記)에 이르기를 옛날 환인(桓因, 帝釋을 말한다)의 서자 환웅(桓雄)이 있어 자주 하늘 아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바랐는데,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三危) 태백(太伯)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들을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보내어 이를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아래 내려오니 이를 신시(神市)라 이르고 그를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렸고, 농사 생명 질병 형벌 선악을 주관하는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에 살면서 정치와 교화를 베풀었다.
그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웅(神雄)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때에 신은 영험있는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날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형체를 얻으리라 하였다. 곰과 범은 이것을 얻어먹고 스무 하루 동안 금기를 하여 곰은 여자의 몸이 되고 범은 금기를 못 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했다.
곰여자는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매양 신단수 아래에서 어린애를 갖게 해 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잠시 사람으로 화하여 그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단군왕검은 당요(唐堯) 즉위 50년 경인(庚寅)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처음으로 조선(朝鮮)이라 칭했다. 또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로 옮겼는데, 이곳을 일명 궁홀산(弓忽山)이라고도 하며 또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하니,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 나라 무왕(武王)이 즉위한 기묘년(己卯年)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 산신이 되었으니 수(壽)가 1908세였다. (< 삼국유사> 1 고조선조).

p2. 보기 참조

(1) 서해용왕의 아들 이목은 항상 절 곁에 있는 작은 못에서 살며 음으로 불법의 교화를 도왔는데, 한 해는 몹시 가물어 밭의 채소가 모두 말라 타므로 보양(寶壤)이 이목을 시켜 비를 내리게 하니 온 지방이 흡족하였다. 천제(天帝)는 이목이 월권을 했다하여 죽이려 하니, 이목이 보양에게 위급함을 고하였고 법사는 마루밑에 숨겨주었다. 조금 후 천사가 뜰에 내려와 이목을 내 놓으라고 청하자 법사는 뜰 앞의 이목(利木)을 가리켰는데 천사는 그것에 벼락을 때린 후 하늘로 올라갔다. 이목이 꺽이고 시들자 용이 그것을 어루만지니 곧 살아났다. (< 삼국유사> 4, 보양이목조).
(2) 부여왕(夫餘王) 해부루(解夫婁)는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를 지내 후사를 구하였는데, 타고 있던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서는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리게 하였더니,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금빛 개구리 모양이었다. 왕이 말하기를 "이는 하늘이 나에게 훌륭한 아들을 내림이로다"하고 거두어 길렀는데 이름을 금와(金蛙)라 하고 태자로 삼았다. (< 동명왕편> 에 인용된 < 구삼국사> ).
(3) 탈해왕(脫解王) 9년 춘3월 왕이 밤애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나무 사이에서 닭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샐 무렵 호공(瓠公)을 보내어 살펴보게 했는데 금색의 작은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보고하니 왕이 사람을 시켜 궤를 가져다가 열어보았다. 그 속에 어린 남자 아이가 들어있었는데 자태와 모습이 기이하고 위엄이 있었다. 왕이 기뻐하여 좌우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준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 삼국사기> 1 신라본기).
(4) 산상왕(山上王) 7년 3월 왕이 자식이 없어 산천에 기도하였더니 그 달 15일에 꿈에 천(天)이 나타나 말하기를 "내가 너의 소후(小后)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할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13년 9월에 주통천녀(酒桶村女)가 아들을 낳으니 왕이 기뻐하여 이는 하늘이 나에게 사자(嗣子)를 주심이라고 했다. (< 삼국사기> 16, 고구려본기 4).
(5) (경덕)왕이 하루는 표훈대덕(表訓大德)에게 말하기를 "내가 복이 없어 아들을 얻지 못했으니 원컨데 대덕은 상제(上帝)께 청하여 아들을 두게 해주오"라고 했다. 표훈은 하늘에 올라가 천제에게 청하고 내려와서 왕께 말하기를 "천제의 말씀이 딸을 바라면 가능하나 아들은 안된다고 했습니다." 왕이 말하기를 "원하건데 딸을 바꾸어 아들로 점지해주기 바라오" 표훈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 청하니 천제꺼서 말하길"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다."고 했다. 표훈이 내려오려고 할때 제가 또 불러 말하기를 "하늘과 사람 사이는 어지럽게 할 수 없는 것인데 지금 대사께서는 이웃마을을 왕래하듯 하면서 천기를 누설하고 다니니 금후엔 아예 다니지 말라."고 하였다. 표훈이 와서 하늘의 말을 빌어 타일렀으나 왕은 "나라가 비록 위태롭다 하더라도 아들을 얻어 뒤를 잇는다면 만족하겠소." 하였다. 이에 만월왕후(滿月王后)가 태자를 낳으니 왕이 몹시 기뻐했다. (< 삼국유사> 2,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
(6) 해부루왕의 상(相) 아란불(阿蘭弗)이 아뢰기를 "천(天)이 나에게 내려와 말하기를 장차 나의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게 하고자 하니 너는 이곳을 떠나라 " 아란불이 왕에게 권하여 도읍을 옮겨 동부여라 하였다.(< 동명왕편> 에 인용된 < 구삼국사> ).
(7) (진평왕)즉위 원년 천사(天使)가 대궐 마당에 내려와서 왕에게 말하기를 "상황(上皇)이 나에게 명하여 옥대(玉帶)를 전하게 했다."고 했다. 왕이 친히 무릎을 꿇고 받았다. 그런 다음 천사는 하늘로 올라갔는데 교사(郊祀)나 종묘(宗廟)의 제사와 같은 대사(大祀)에는 모두 이를 착용하였다. (< 삼국유사> 1 천사옥대(天賜玉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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