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주차 [발제 1][발제 2][발제3]


고대사회의 종교와 습속

1. 읍락사회단계의 호신숭배

1. 호신의 성격

호랑이는 주로 아시아지역에 분포하며, 호랑이가 서식하는 곳에서는 이를 신성한 존재로 여겨 숭배하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호랑이를 어떤 의미에서 신성시하느냐는 것은 민족이나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즉 토템으로 여기는가 하면, 샤먼의 수호령으로 여기기도 하고, 벽사의 힘을 가진 존재로 간주하기도 한다.
동에의 호신은 산신으로 보는 견해와 토템으로 보는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먼저 토템의 경우, 자세한 설명이 없어 그 근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첫째, 단군신화에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점으로 미루어 한국고대에도 토테미즘이 존재한다는 사실, 둘째, 삼국지 동이전에 의하면 동예에서는 동성끼리 혼인하지 않으며 기휘가 많았다고 하는데 족외혼과 터부는 토템과 관련이 깊은 현상이라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 될 수도 있다.
한편 동예의 호신에 대한 다른 견해인 산신설인 경우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의해서도 뒷받침 될 수 있다.

첫째, 삼국지 동이전에 동예에서 산천을 중시했다는 기록이 보인다는 점이다.

둘째, 산신은 역사적으로나 오늘날의 민속종교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동시에 가장 널리 신앙되고 있는 신격이라는 점이다.

셋째, 호랑이를 산신으로 간주하는 관념이 주변에서 많이 발견된다.

넷째, 호랑이 모습의 산신이란 연원이 오랜 관념형태라는 점이다.

그런데 오래된 기록에 의하면 산신은 인태신이란 관념이 동물태의 신이란 관념보다 기록상으로 앞서고 있으나, 한국의 경우 동물태의 산신이 더 원초적인 관념이라 생각된다. 한국의 건국신화에 동물들이 등장하지마 후대에 가면서 그 비중이 점차 줄어 대신 신인동형적 관념이 우세해지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것은 신이 동물태에서 인태로 변화되어갔을 개연성을 높여준다. 나아가 동예의 호신이 산신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산신은 산에 살며 산을 맡고있는 신이며 산뿐아니라 그 마을 전체를 지켜주는 신이다. 따라서, 한국의 산신은 기본적으로 농경신이지만 삼림의 지배자나 동물의 주인으로서의 성격, 즉 수렵신으로서의 면모도 가지고 있다.

2. 호신숭배의 사회적 기능

동예의 읍락은 산천을 자연적 경계로 서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읍락의 생활권을 외부인이 함부로 넘나들 수 없는데,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노예나 소 또는 말로 배상하는 풍속이 있다.
이것으로인해 동예가 씨족공동체단계의 씨족생활권 내지 씨족공동체에 의한 생활영역의 공동소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러한 전통이 동예사회에 비교적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이러한 사회적 규범이나 관습이 유지되는 데에는 정치권력과 같은 세속적인 힘에 의한 경우와 종교적 믿음에 의한 경우가 있다. 우선 세속적인 경우, 특정 정치 권력에 의해 사회적 규범이나 관습이 유지된다는 말로 삼국지 동이전에는 동예지역에 불내예후가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정치권력의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또 각 읍락이 세습적인 장수에 의해 영도되는 자율성이 강한 집단이었음을 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로 불내예후가 "궁실도 없이 만간에 섞어사는" 상태였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읍락에 잡거 한다는 삼한 국읍의 주사가 "읍락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는"상태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불내예후의 정치권력 정도도 짐작할수 있다. 따라서 읍락생활권의 사회적 공인 및 책화라는 배상관습이 유지가 여러 읍락 위에 군림하는 정치권력에 의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렇듯 정치권력의 성장도가 낮은 사회일수록 사회적 관습과 규범을 유지하는 데 종교의 역할과 기능이 큰 것이 보통이다. 삼국지 동이전에서 동예사회에는 초자연적인 것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념이 특히 강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예의 경우에도 읍락생활권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책화라는 관습을 유지시키는 데 동예인들이 종교적 믿음이 일정한 힘을 발휘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서 산신으로서의 호신숭배가 바로 그러한 기능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 해주는 것으로 한국 민속종교의 산신관념을 들수 있다. 한국의 산신은 개인의 신앙대상이라기보다 집단의 신앙대상이다. 마을신으로서의 산신은 마을의 풍요, 다산과 깊은 관게를 가진 신이며, 온갖 불행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산신은 산의 주인이자, 마을의 지배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예의 호신제는 종교적 의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를 함께 지닌 의례였으며 동제와 마찬가지로 읍락전체의 풍요, 다산, 재액소멸이 기원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읍락내부의 응집력을 강화하는 사회적 기능을 가졌으나, 한편으로는 읍락의 독자성과 배타성을 길러주는 기능도 한다. 또 호산신이 읍락의 지배자로 읍락을 수호하는 동시에 인간의 잘못에 대해서는 징벌을 가하는 신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앞의 내용을 다시 요약하면, 동예사회에서 호랑이 산신의 기능은 읍락 내부적으로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벌을 가함으로써 사회규범과 질서를 수호하고 읍락구성원의 응집력을 뒷받침하는 것이였으며, 읍락 외부적으로는 남의 읍락에 무단 월경하지 않도록 하여 읍락의 생활권을 지켜주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동예사회에서 읍락단위의 사회질서가 유지되는 데에는 이러한 산신숭배가 기여한 바가 컸다고 할수 있다.

3. 호신숭배의 역사적 의미

삼국지 동이전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한국고대사회의 기본단위는 읍락이다. 한국고대사회의 발전은 이러한 읍락들의 통합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나아가서 읍락통합 이전단계의 사회는 이러한 읍락들이 자율성과 폐쇄성을 유지하면서 병립해 있는 읍락병립단계였다.
앞서 우리는 동예사회에서 숭배대상이 되었던 호신이란 산신이며, 호랑이 산신은 읍락단위의 사회질서 유지를 뒷받침 하는 종교적 기초였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호랑이를 산신으로 여기는 관념은 수렵문화단계로 소급될수 있으며, 읍락의 생활권이란 관념은 씨족공동체단계와 연결될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신의 사회적 기능은 읍락병립단계부터 존재했던 것이라 할 수 있고 산신숭배는 수렵문화 단계에서부터 안으로는 사회내부의 결속과 규범을 유지하게 했고 밖으로는 사회단위집단들의 독자성과 폐쇄성을 뒷받침 했다는 것이다. 금속문화가 유입되고 농업생산으로 전환이 이루어져 생산력이 증대되고 사회통합이 진전된 삼국지 동이전 단계에 와서도 산신숭배는 여전히 읍락 중심의 사회질서를 뒷받침 하는 기능을 발휘했으며, 그것이 한국고대사회 전체로 봐서는 결국 사회통합과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역기능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화라는 풍습과 호신에 대한 제사가 유독 언급되었다는 것은 당시 동예사회에 이전 단계의 사회적, 문화적 제약이 그만큼 두드러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동예의 호신숭배는 삼국지 동이전 단계에서 동예사회종교의 한 측면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읍락병립단계의 종교 및 그 사회적 기능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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