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주차 [발제 1][발제 2][발제3][발제4]


청동기.철기시대의 사회와 문화

차승하/9745037

6.농경과 종교.예술활동

1)농경도구의 발전과 벼농사

우리 나라에서 청동기시대의 농업활동, 특히 벼농사에 대한 연구는 농사용 도구를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 농경도구는 삼림제거를 위한 벌채용 도구를 포함해서, 농경지 개간에 필요한 굴경(掘耕)도구, 곡물수확에 필요한 추수용 도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벌채용 도구로는 각종 간 도끼가 있으며 이 시대에 오면서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가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횡단면 타원형에 날 부분을 조갯날처럼 다듬은 육중한 도끼가 산림 벌채용으로 쓰였는데, 두께가 얇은 외날의 대패는 나무 가공용으로만 쓰였을 것이다. 홈자귀는 자귀의 몸통 한가운데에 자루를 매달기 위한 흠이 나 있다. 자귀는 중국 화남지방과 동남아시아 지방에 분포하므로 이 지역에서 전파되었으며, 따라서 이 지역의 쌀 농사가 우리 나라에 전달되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그림 35)
청동기시대에 밭을 일구는 데 쓰인 농경구로 회령 오동 유적의 곰배괭이와 여주 흔암리 유적의 돌 보습이 있으며, 나무제품으로 함주 주의리 니탄층에서 발견된 후치가 있다.
철기시대에는 오늘날 제주도에서 최근까지 전하는 쌍날따비가 농경지를 가는데 사용되었다는 것은 대전 출토 농경무늬청동기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청동기에는 쌍날따비로 밭갈이하는 사람 밑에 괭이를 높이 추켜들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어 따비와 괭이에 의한 농사가 성행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림36)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수확용 도구로 반달돌칼이 있다. 반달돌칼은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만들어져, 요하유역에서부터 한반도 남단에 이르기까지 전역에 걸쳐 분포한다. 모양을 보면 물고기모양,배모양,장방형,삼각형 등 각양각색으로 그중 배모양과 삼각형이 많이 출토되었다.
철기시대에 들어서는 철제품이 성행한 청천강 이북의 철기유적지에서 경작용 철기와 함께 수확용으로 반달돌칼의 형태를 본뜬 반달철도와 철제 낫이 출토된다. 남한지방에 철제 낫이 성행한 것은 원삼국시대에 이르러서이다.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에 와서 한반도 서부지방에 잡곡과 함께 벼농사가 성행하였다. 벼가 발견된 것은 청동기시대 대동강 유역의 남경, 한강 상류의 흔암리, 금강유역의 송국리유적이 있다.
금강유역의 송국리 경우 완만한 충적대지가 있고, 이곳의 삼각형돌칼·홈자귀 등 농경도구가 야요이시대 일본 규슈지방 논 유적에서 출토되었던 점을 미루어, 이곳에서 논농사가 시행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하겠다.
화북지방에서 요령지방을 경유했다고 보는 입장은 농경수확구인 반달돌칼의 전래가 이 지역을 경유하는데 근거를 두고, 화북지방에 단립형(短粒形)이 유행한다고 보기 때문. 화남지방에서 산동반도를 경유했거나 아니면 한반도 서해안 지방으로 전래되었다는 주장은 쌀의 기원지가 이 지역이라는 이유이고, 농경굴지구인 자귀가 이 지역을 통해서 들어왔다는 것을 근거로 삼는다. 최근에 서해안의 김포.서산이나 일산에서 출토된 탄화미가 방사성탄소연대상 기원전 2000년경으로 알려져 한국의 벼농사가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뿐만 아니라, 화남지방으로부터 직접 유입하였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2)종교와 예술활동

초자연적인 힘과 존재에 대한 신앙은 직접 종교행위에 사용되었던 제의도구는 물론 종교심성을 표현한 상징적 그림 또는 조각 등의 조형물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제의도구로 대표적인 것은 철기시대에 남한지방 여러 돌곽무덤에서 출토된 청동방울을 들 수 있다. 영산강 유역의 화순 대곡리와 함평 초포리 출토품이 좋은 예이다. (그림 37) 이들 청동방울은 거울과 함께 사제가 소지, 사용하던 무구(巫具)로 추정된다. 무구를 가진 돌곽무덤의 피장자는 단순히 개인적인 일을 봐주는 샤먼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제의를 맡은 전문적 제사장으로 인정된다. 농경과 관련된 공동체의 제사를 맡은, 발전된 농경사회에서 볼 수 있는 종교적 지도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부장품중 검, 창 등의 무기를 소유한 것은 군사정치의 지도자의 역할도 겸했을 것으로 보인다.
총동기.철기시대의 조형예술 유물 중 대표적인 것이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를 장식한 청동잔줄무늬거울이다. 이러한 무늬는 요동.한반도 청동기 문화권의 주요 특징이다. 처음 청동기시대의 거울은 무늬가 굵고 거칠다가, 철기시대에 들어서서 섬세해진다.
이밖에도 우리 나라는 동물 등의 사실적 묘사를 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대구 비산동 세형 동검의 자루끝장식이 두 마리 오리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진5)
우리 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걸쳐 제작되었다는 바위 그림이 많이 전한다. 대표적인 것이 경북 울주 대곡리 반구대를 비롯하여, 울주 천천리 고령 양전동, 그리고 영일 칠포리 바위그림등 주로 경상도 서부지역의 예이다.
반구대 바위그림은 주로 동물과 물고기 등을 대상으로 수렵하고 어로 활동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수렵.어로활동을 하는 장면을 그렸다는 것은 수렵활동에 따른 식량생산주술 성격을 갖고있다고 본다. 울주 천천리의 바위그림은 기하학적인 세 개의 소문양군(小文樣群)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군은 세겹으로 이루어져 겹고리무늬를 여러 개의 가면(假面)이 둘러싸고 있다. 이 가면무늬는 신의 얼굴을 나타낸 것으로 보이며, 시베리아의 아무르강 유역 바위그림에서도 비슷한 무늬가 보이고 있다. 또한 겹고리무늬도 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때 이 바위그림이 새겨진 곳이 일종의 종교적 제단 또는 성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자료: 한국사. {이청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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