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주차 [발제 1][발제 2][발제3][발제4]


청동기,철기시대의 사회와 문화



차명준

1.한국 청동기,철기시대에 대한 이해

선사시대를 유럽식 고전적인 시대구분법에 따르면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로 이어진다.
청동기시대의 청동은 구리와 석(錫)의 합금에 아연과 납등을 가해 700-800정도의 비교적 낮은 온도에 녹여 도구로 사용하였다.
철광석은 구리광석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1200도 이상되는 높은 온도로 가열해야 제대로녹아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어려움 때문에 인류가 청동, 즉 합금용 광물을 구하기가 어려우면서도 어느 다른 금속보다 먼저 도구로 만들어 사용하게 된것이다.
이러한 청동기의 사용은 우리나라에 수공업의 발달과 사회 구성원의 전문화를 가져오고, 나아가 평등사회에서 불평등사회로의 변화를 가져온 촉매제 역활을 하였다.
해방전 일본인 학자들은 한국에서는 인류 선사시대의 합법칙적인 청동기-철기시대의 발전단계를 거치지 못했다고 보았다. 석기시대 단계에 머물러 있던 우리나라에 중국으로부터 온 이주민들이 청동기와 철기를 들여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동기시대를 부정하고 대신 석기와 청동기.철기를 병용하였다는 금석병용기(金石倂用期) 존재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해방후 북한에서 평양 금탄리, 그리고 평북 의주 미송리유적등 여러 곳에서 민무늬토기와 함께 청동유물이 출토되는 유적이 발견되어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설을 뒷받침하였따.
남한에서도 비파형동검이 충남 부여 송국리 돌널무덤에서 발견되면서, 철기를 병용한 세형동검시기에 앞서 청도기만을 사용하던 시대가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송국리에서 출토되었던 비파형동검의 중심지는 압록강 북쪽을 넘어 요하유역이다.
고조선을 포함한 예맥족의 영역이 요하유역에 이르렀고, 송화강 일대가 부여 옛 땅임을 인정하며,고조선과 부여는 청동기문화를 기반으로 일어 났다고 본다. 따라서 한국 상고사의 무대는 요하-송화강-한반도 전지역을 포괄함이 당연하다.

2. 청동기.철기문화의 형성과 발전

1>청동기의 출현과 간석기의 개량

북한에서는 기원전 2000년대도 청동기시대에 포함시키면서 그 말기에 비로소 비파형동금 등의 무기류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지만 확실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거의 비파형동검과 함께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며 대체로 그 연대가 기원전 10세기를 넘지 않는 것으로 본다.
한국 청동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남부 시베리아-북방 오르도스지방의 청동기에 연원을 두었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기원전 13세기경 남부시베리아 예니세이강 상류의 미누신시크 지방에서 출현한 카라스크(Karasuk)문화(기원전 1200-700년)의 담당자가 동쪽으로 이동해 한국 청동기를 형성시겼다고 보는 것이다.(그림 1.참조.)
그러나 본격적인 청동기 제작단계에 이르더라도, 일반생활과 생산에 쓰이는 도구가 청동으로 제작되는 예는 드물었다. 그 이유는 청동기 제작에 필요한 원료수급과 제작공정상의 어려움과 함께 강도는 높으나 탄력성이 크고 깨지기 쉬운 재질상의 문제 때문이었다.. 그래서 굴지용,벌채용,농경용,어로수렵용 등의 실용도구는 대부분 청동기가 아니라 간석기였다.
이러한 이유로 마제수법을 발전시켜 실용도구가 종류와 모양을 다양하게 갖추고 다량 만들어졌다. 그중 화살촉이나 석검같이 청동기를 모방한 것도 있는데, 이 두종류의 석기는 의기용(儀器用)부장품(副葬品)으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마제석검은 그 종류가 여러가지이다.
자루의 형식에 따라 유경식(有莖式)과 유병식(有柄式)으로 나뉘며, 검신(劍身)에 피홈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그리고 유병식 중 자루 중간에 단 (段)이나 절(節)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등의 형식이 있다.(그림 2.참조)

2> 비파형동검과 청동기문화의 발전

우리나라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은 비파형동검이다.
비파형동검은 날 중간에 돌기가 있고, 하부로 갈수록 팽창되면서 곡선을 그려, 중국 고대 악기인 비파(琵琶)처럼 생겼다 하여 비파형동검이라고 부른다. 동북아시아의 청동기문화권은 날이 휜 예가 적지 않고, 손잡이가 검몸과 붙어 주조되며,동물 장식이 있는 오르도스식(Ordost式)단검문화권과 날이 곧고 손잡이도 함께 만든 동주식(東周式)동검문화권, 그리고 날 양쪽에 돌기가 있고,자루를 따로 만들어 끼우는 비파형동검문화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비파형동검문화권은 앞서 말한 요하-송화강-한반도에 걸치는 한국청동기문화권과 거의 일치하 며, 넓은 의미의 예맥족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요서지방의 청동기문화에는 북방계 요소가강하게 있어, 그 담당자가 예맥이나 고조선과 다른 북방유목민족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비파형동검이 요하유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요서지방에서는 영성현 남산근과 조양현 십이대영자 무덤유적이 대표적인데, 북방계 청동기가 출토된다.(그림 4. 참조)
요동지방의 청동기는 여대시 강상무덤과 심양시 정가와자무덤유적으로 대표되는데, 요서지방에서 보이는 동물무늬 장식이나 오르도스식 동검 등 북방계를 대표하는 유?은 없으나, 각종 마구류가 많이 나온다.(그림 5.참조) 청동기에 기하학적 무늬가 많은것이 특징으로, 이는 한반도 청동기와 상통하는 점이다.

3> 세형동검과 청동기문화의 확산

비파형동검 다음에 세형동검의 시기가 되면 청동기문화는 한반도 남부지방까지 광범위하게 이동한다. 세형동검은 자루를 별도로 제작한다든가, 검신 한가운데에 등대가 있다는 등의 속성은 비파형동검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그림 7.참조)
세형동검은 원래 검날 가운데에 결입부가 형성된 한반도 출토동검만 가르켰지만, 최근에 북한에서는 걀입부가 없더라도 압록강 이북의 요하-송하강 유역에서 출토되는 일체의 폭좁은 단검도 세형동검이라 부른다.
남한에서는 여전히 압록강 이남에 출토하는 결입부가 뚜렷한 폭좁은 동검만을 세형동검/ 비파형동검에 대조대는 이름으로 한국식동검이라고 부르고, 만주지방의 폭좁은 동검은 비파형동검의 범주에 넣고 있다.
청천강 이남의 한국식동검문화 중 가장 오랜 것은 금강유역에 분포한다. 한국식동검문화는 기원 전 3세기경에는 대동강과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먼저 발전하고, 다음 위만조선이 등장하는 기원전 2세기경에는 대동강과 영산강 유역, 한군현이 설치된 기원전 1세기 이후에는 낙동강유역으로 그 중심지가 옮겨간다.
금강유역은 기원전 4-3세기경의 전기 한국식동검문화가 가장 발전한 지역으로, 서해를 통하여 요동의 청동기문화가 직접 유입되었다고 본다. 그 근거가 되는 대표적인 유물이 대전 괴정동, 충남 예산 동서리, 아산 남성리무덤에서 출토된 나팔형동기/ 방패형동기/ 칼자루모양동기/원개형동기 등의 이형(異形)동기인데 비슷한 청동기가 요동지방의 심양 정가와자무덤에서 출토된 바 있다.(그림 11,12. 참조)
영산강유역에서는 금강유역보다 늦은 기원전 2세기경의 세형동검 후기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이들 청동기가 이 지역에서 직접 제작되었음이 전남 영암에서 출토된 다량의 거푸집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은 전남 화순 대곡리와 함평 초포리무덤유적인데, 한국식동검과 함께 한국식 꺽창과 투겁창/ 도끼는 물론 여러 종류의 청동방울이 나온다. 방울의 종류는 팔주령(八珠鈴)/ 이두령(二頭鈴)/ 간두령(竿頭鈴) 등으로 이들 방울은 샤먼이 사용했던 무구로 추정된다.
낙동강유역은 기원전 1세기 이후의 종말기 한국식동검문화 유적을 대표하는 지역이다.
이 시기는 이미 철기의 보급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서 세형동검과 함께 다량의 한대 철제 유물이 공반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경주 입실리/구정리, 대구 평리동, 그리고 경남 의창 다호리무덤이 있다.
청동기는 기본적으로 원료 획득과 제작상의 어려움 때문에 일반 생활도구나 생산도구로 거의 만들어지지 못했으며, 대신 무기류나 마구류/ 의기류 등으로 만들어져 우월한 지위에 있는 계층의 사람들이 지닐수 있는 희귀품이었고 이는 일정한 정치세력의 동향과 맞물려 해석할 수 있다.

4> 철기문화의 유입과 보급

철기문화의 유입과 그 변천과정은 세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1단계는 중국 철기문화가 유입되기 이전에 시베리아 계통의 철기가 유입되었다고 보는 단계이다. 이에 해당하는 유물은 함경도 지방에서만 확인되는데, 대체로 남한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다음 2단계는 기원전 3-2세기경으로 중국의 전국시대 철기문화 유입기로, 철기는 청천강 이북에 주로 집중되고 그 이남에서는 발견된 예가 드물다. 대표적인 철기 유적으로 평북 영변군 세죽리와 요령성 무순시 연화보유적이 있고, 명도전과 함께 나오는 유적으로 평북 위원 용연동유적 등이 있다.(사진 1. 참조) 이들 유적은 전부가 일반생활유적으로 호미/괭이/낫/반달칼/자귀 등의 농기구와 창/화찰촉 등의 무기가 출토된다.
3단계는 기원전 1세기경 한대 철기문화가 대량 유입되는 단계로 이때 한반도 전역에 철기가 널리 보급된다. 3단계에 이르면 대동강유역의 토광목관묘(土壙木棺墓)와 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에서 한대 철기유물이 다량 출토된다. 대부분이 장검/창/도끼와 같은 무기류이다. 남한지방에서는 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 철기가 다량 출토되는데, 청동유물도 다량 공반되는것이 대동강유역과 다르다. 대표적인 유적이 경주 구정리, 대구 평리동 그리고 의창 다호리 토강목관묘이다.
결국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철기가 보급된 것은 한대 이후로서 중국에서 철기가 생산된 것은 춘추전국시대부터이지만, 한대에 와서 각 지방으로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과 맥락을 같이하며,강철제품이 보편화된 것은 이러한 기원전 1세기 이후 제3단계에 이르러서인 것이다.-.

footleft.gif (3017 bytes) footri1.gif (3023 bytes)
메뉴로 발제4 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