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주차 [발제 1][발제 2]


선사


1.우리 조상은 언제부터 한반도에 살기 시작했을까

이것을 알기 위해선 우선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과거 일본인들은 한반도에 구석기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와 북한의 웅기 굴포리, 남한의 공주 석장리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이후 각지에서 많은 수의 유적과 유물이 되었다. 이로써 한반도에도 구석기인들이 살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인류의 기원

인류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로부터 시작해서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그리고 현대의 직접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이어진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두발로 서서 걸어다녔으며,인류학자들은 이 직립보행을 인간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로 꼽음
˚호모 하빌리스:도구를 제작하고 사용,조상이 초식이었던 것과는 달리 초식과 육식을 겸하였음
˚호모 에렉투스: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류로 미루어 보아 손도끼를 비롯한 다양한 석기류를 제작하 고 그 기술도 발달시킴
˚호모 사피엔스:두뇌의 크기,생김새,골격 등이 현재의 인류와 동일하였고,이미 여러 인종으로 나 뉘어져 있었으며,지역에 따라 문화도 달랐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현대의 직접 조상이라고 말할수 있으며 거의 모든 것에서 발달되어 있 음

♠인간이 나타난 시기

구석기 유적은 약 80∼70만년전에 형성되었다.그런데 40∼30만년전에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 인골이 동아시아 일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앞으로 한반도에도 호모 에렉투스 인골이 발견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2.모계사회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였나

원시시대에는 모계사회가 있었다. 여기서 잘 알아야 할 것은 모권사회와 모계사회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우선 모권사회는 부계사회와 대비되는 것으로, 자식에 대한 권리의 대부분을 어머니가 행사하는 사회를 뜻한다. 반면에 모계사회는 혈통이 어머니를 통해서 계승되고 재산소유권이 형식적으로 어머니로부터 딸에게로 상속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씨족이나 어머니의 남자 형제들이 행사한다.
후에 세계의 현존민족에는 모권제를 가진 사회는 존재하지 않지만 모계제의 사회는 많이 존재하고 있다.

♠모계사회와 부계사회란 말이 나온 이유

이러한 구분은 일부일처의 결혼이 성립하고, 또 그 결혼이 족외혼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부일처의 결혼은 남자나 여자나 자신의 할 일을 잘 알아 하기 때문에 더욱더 경제적이다. 그럼으로 원시사회는 더욱더 모범적인 결혼을 유지할수 있었다. 또 자기집단 밖에서 배우자를 얻는 족외혼은 자기집단내의 결속을 깨뜨리지 않고 배우자를 교환하는 집단들 사이에 동맹과 의존관계가 형성될수 있다. 그럼으로 이러한 집단들 사이를 잘 이루기 위해 지역상 각각 다르게 나타나게 되었다.

♠ 무리사회가 씨족 공동체 사회로 발전해감에 따라 신석기시대 초기 농경이 시작되면서 모계.모거제가 나타났다. 즉 초기에 남성은 다른일을 했기 때문에 여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수렵활동에서 벗어난 남성들이 농경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여성의 활동영역은 줄어들었고 점점 부계사회로 굳어지게 되었다. 청동기 시대에는 농업생산력이 발전해서 씨족공동체는 해체되고 사적소유가 발생하고 그로인한 약탈과 정복전쟁으로 인해 평등한 원시사회는 여러 계급으로 분열되고, 계급간에는 지배.예속관계가나타났다. 이것은 가족제도에도 영향을 주어 남녀의 평등이 사라지게 되었다. 가부장은 생산수단과 생산물의 소유자일뿐만 아니라 처와 자식의 노동에 대한 지배자였다. 이것이 점점 발전하여 고구려 초기의 데릴사위제나 동옥저의 민며느리제가 나타났고남녀의 불평등은 더욱더 심해졌다. 이것은 신체구조가 운명적이기 보다는 계급이 운명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결과적으로 모계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였다고는 볼수 없다.

3. 선사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초기인류는 단단한 식물성 섬유질을 주식으로 삼았다. 그러나 우연히 죽은 고기를 맛보게 돠었고 그로인해 그 맛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냥하는 도구(투창,활,작살)도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냥일이란 너무 힘들어서 남자의 특별한 임무가 되었다. 이에반해 열매나 야생식물은 구하기 쉬워 이것은 여자의 몫이 되었다. 곧 구석기시대는 수렵.채집의 단계란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들어서면서의 경제적인 변화

흔히 신석기 혁명이라고 불리는 농경이 인간 생활을 바꿔 놓았다. 농사를 짓기 위해 정착 해야 했다.그럼에 따라 마을이 생겨났다. 그리고 농경이 익숙해지면서 수확이 안정되자 인구도 급격히 늘었다. 신석기에 있어서 식생활을 가장 큰 변화는 토기의 제작과 사용에서 비롯되었다.토기는 음식물의 보관과 다양하게 조리하는데 획기적인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에 농경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사냥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돌로만든 창이나 화살촉이 자주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사냥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면서 나타나게 되는 변화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들어서면서 농경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쌀 농사가 시작된 것 이다. 이것은 토기 바닥에 볍씨 흔적이 남아 았는 것으로 보아 쌀 농사가 보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쌀 농사뿐 아니라 잡곡농사도 행해졌다. 그리고 사냥과 채집도 여전히 행해졌다. 사냥은 점점 발전하여 동물의 사육이 행해졌고 이것은 더욱더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우리와 기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식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4. 고인돌은 왜 만들었나

고인돌은 우리나라 어디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중국이나 일본의 것과 구별되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이다. 분포지역은 중국의 요하 동쪽으로부터 제주도를 포함하여 한반도전역에 펄쳐있고, 중국 산둥반도와 일본 북큐슈에도 소수 분포한다. 여기서 고인돌에서 나오는 부장품을 알아보겠다. 그것은 청동제품이다. 청동기는 원료를 구하기가 힘들고 값비싼 것이므로 무기와 공구.장신구나 의식용 기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고인돌은 어느정도 지위에 오른 사람만이 했고 지위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늘력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졌고 이것은 사회적 불평등을 나타낸다. (발제: 김민주)

*참고문헌

한국역사연구회, 1994, 「선사」, 『문답으로 엮은 한국고대사산책』, 역사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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