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교 보고서 참고문헌 자료

 

주제: 고대 매장양식과 내세관

- 신라 고분을 중심으로

 

최병헌, <신라고분연구>, 서울, 一志社, 1992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편, <고분벽화>,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1973

현용준, 고대한국민족의 해양타계, <무속신화와 문헌신화>, 집문당

김기웅 : 고분에서 엿볼 수 있는 신라의 장송의례, <신라 종교의 신연구> 5, 경주시

방선주, 고신라의 영혼 및 타계관념, 계명기독대학, 대전대학, 숭실대학, 서울여자대학 합동

논문집 1, 1964

전호태, 5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불교적 내세관, <한국사론>21, 서울대학교 인문대

학 국사학과, 1989. 8

강인구, 신라고분,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pp 727-729

김원룡, 고분,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pp 494-500

이태호, 고분벽화,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pp 505

논문 요약

 

왕릉: 삼국통일이전 - 고총(高塚); 생시의 지상의 주거생활을 그대로 지하의 무덤으로 옮긴

다는 취지. 현세의 생활도구가 고스란히 부장되어 있음.

통일이전신라 - 왕경으로부터 멀지 않은 평지에 수혈식(竪穴式) 적석총→ 통일이후 - 왕경

에서 흩어져 산 밑이나 언덕 위에 만들어졌으며 횡혈식(橫穴式) 석실분으로 변모, 무덤 봉토

무너짐 보완위한 호석제도(護石制度) 발전, 무덤 주위에는 십이지신상, 네 석사자, 방주석·

난간 배치, 무덤 앞에 석상(石床)놓고 양쪽에 문무석인(文武石人)과 석주 배치하는 복잡한

양식 정립

통일이전; 적석봉토분- 고총고분(금관총·금령총·서봉총·천마총·황남대총 북분)

토광묘, 옹관묘, 수혈식석곽묘, 화장묘(火葬墓)(불교영향)

통일이후; 횡혈식석실분- (1.평지→2.산록→3.풍수지) ↔ (주거와의 혼거단계→가족공동묘지

단계→단독분 단계)

1단계: ~지증왕릉[냇돌, 돌담식호석고분]

2단계: 법흥왕 ~ 경덕왕 (서악동 낭산, 남산, 명활산 기슭)[막돌, 산록돌담식호석고분→장식

화단계, 갑석·지대석·버팀석, 상석, 적석형기단식호석고분]

3단계: 혜공왕대 이후 (하천유역의 산록 풍수지리 입각)[판석+탱주, 면석구분, 판석형기단식

호석고분→탱석에 십이신상 조각, 분구 주위에 돌난간 완전한 기단화+불탑화, 석수상·석인

상·석화표·눙비 등 배치, 상석도 불간이나 제단식의 탁자형으로 높아짐)

 

 

1. 김기웅, <古墳에서 엿볼 수 잇는 新羅의 葬送儀禮>,『신라종교의 신연구』慶北印刷所,

1984

 

삼국시대의 매장시설물인 고분의 문화상·사회상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져, 구조형식이

나 부장유물의 성격·장법등의 구명은 되어있는 상태이나 종교관에 의거한 장례의식의 실상

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것은 당시의 장송의례가 시대의 변천과 함께 뒤이어

수용된 불교·유교 사상의 영향에 의해 변질·소멸됨에 따라 관계기록이 존재하지 않고 고

분 자체로는 알기 어려운 상황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논문은 신라시대의 고분을 통해

당시의 장송의례를 단편적이나마 고찰하고자 한 것이다.

 

인류가 시체의 매장을 시작한 뒤로 각 시대의 사람들은 당시의 독특한 종교관에 의거한 각

종 방법으로 정중하게 매장하였다.

인류가 의식적으로 시체를 매장하게 된 것은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구석기 시대 중기부

터로 네안데르탈인의 동굴주거유적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은 동굴주거의 흙바닥을 파고 거기

에 시체를 매장하고 사냥한 짐승의 일부라든가 석기들을 부장하였다. 그 후 구석기시대 후

기에 이르러서는 시체의 매장법이 다양해져, 시체의 머리 가까이에 묘석과 같은 돌을 세운

다든가, 시체위에 돌을 놓든가, 머리를 돌위에 놓든가하고, 시체 위에 붉은 흙을 부린다든가

하고, 대부분의 시체는 강하게 구부러진 屈葬의 상태였다. 이러한 시체매장의 상태는 여러

가지로 해석가능하지만 시체위에 돌을 놓든가 굴장하는 것은 사후의 인간에 대한 공포심에

서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주술로 여겨지며, 흙을 뿌린다든가 화덕 처에 매장함은

사자의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되는 피를 보충하고 열을 가함으로써 그 부활을 기원하는 주술로 생각된다.

(江上波夫, <呪術の世界> 世界考古學大系12 (平凡社, 東京)

p. 46-47)

 

1. 유해(遺骸)의 매장(埋葬)

고분의 구조나 부장품 상태로 보아 고신라시대의 유해매장에는 단장(單葬), 합장(合葬)등이

있으며, 합장에는 부부합장(夫婦合葬)과 가족합장(家族合葬)이 있다. 고대 신라시대의 유해

매장 시설물중 주류를 이루는 것은 내부주체의 구조형식에 의거하여 積石木槨墳이라 부른

다.

적석목곽분의 일반적 구조와 유해의 매장법

: 장방형의 토광을 파고 토광 바닥에 사람 머리크기의 강돌을 깔고, 그 위에 다시 자갈을 깔

아 곽바닥을 만들고 이 곽바닥위에다가 목곽을 짠다.

그리고 목곽중앙에 유해를 모신 목관을 안치하고 목곽 뚜꺼을 닫은 다음 목곽 위와 주위에

강돌을 쌓았으며, 이 적석위에 흙을 덮어 墳丘를 축성(築成)하였다.

적석목곽분은 매장법의 변화에 따라 내부주체의 구조에도 변화가 있어 다곽식과 단곽식의

두형식으로 나뉘게 되는데, 초기에는 다곽식이, 후기에는 단곽식이 유행하였다.

다곽식목곽분의 형식

1) 가족합장묘의 多葬의 다곽식적석목곽분 - 황남리(皇南里) 제 109호분의 예(1개의 봉분

안에 4개의 적석목곽분이 축조된 것, : 가족합장묘), 황오리(皇吾里) 제 54호분의 예(태지형

(台地形)의 1개의 구역내에 주분(主墳)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3개씩 합계 12개의 적

석목곽을 축조한 : 가족합장묘)

2) 부부합장묘 - 황오리(皇吾里) 제14호분의 예(1개의 봉분내에 4개의 적석목곽 축조, 2개의

主槨과 2개의 副槨, 장축은 동서, 제1부곽·제1주곽과 제2부곽·제2주곽이 남북으로 병렬,

부부합장묘), 황오리 제33호분의 예, 황오리고분의 예(표형(瓢形)의 1개 봉분 내에 장축을 동

서로 하는 2개의 적석목곽이 남북으로 列, 친척관계묘)

4) 단곽적석목곽분 - 1개 봉분 내에 1개의 적석목곽 축조한 개인묘. 王陵(규모가 대형이고,

부장품이 금관, 금제장식귀걸이(金製垂飾附耳飾), 금제과대(金製 帶)등의 장신구들로 화려하

며, 토기·금속이기등 다양하고 풍부하다) 金冠塚·金鈴塚·飾履塚·天馬塚등의 예

<三國史記> 新羅本紀 興德王十一年條에 왕의 유언으로 章和왕비의 릉에 합장하였다는 기

사. "冬十二月, 王薨. 諡曰<興德>, 朝廷以遺言合葬<章和>王妃之陵".

 

2. 매장시설·부장품 등에서 엿볼 수 있는 장송의례의 한면

유해를 매장하게 위해 소분을 축조하는 과정이나 축조가 끝났을 때 유해매장에 따르는 제

반행사, 즉 최후의 통과의례인 장송의례가 행해졌을 것이다. 유해의 매장시설물인 고분은 장

송의례의 결말적 행위의 산물이라 하겠다.

고분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장례의례의 일면으로는 1. 진혼의례, 2. 공양의례가 있는데, 진혼

의례의 예로 도주(塗朱), 또는 木心漆面(목관에 옻칠한 면) 같은 鎭魂呪術具의 부장, 가무(歌

舞) 등이 행해졌고, 공양의례는 부장된 쇠솥(철부鐵釜)·금속용기·이형토기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1. 진혼의례

1) 도주(塗朱) : 붉은 색은 벽사(酸邪)의 색, 또는 생명의 색으로 인골에 주칠하여 사자의 재

생을 기원하기도 하였는데, 우리나라에 인골에 도주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고분의 내

부주체에 주·단을 칠하는 진혼의례가 행해진 예들을 볼 수 있다.

◎ 적석에 주나 단을 칠하는 것

⊙ 금관총 - 적석을 평지면까지 쌓은 다음 목곽의 천정부 넓이에 朱(硫化鐵, 황화철)을 뿌

리고 그 위에 다시 돌을 쌓았는데, 주를 뿌린 적석면은 동서 4.50m, 남서 2.50m의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 황오리 제 33호분 - 東槨에는 적석층에 주칠 한 작은 흙덩이(小石塊)를 3곳에서 발견했

다. 2개는 적석 서단에서 3.2m거리를 두고 있고, 하나는 서북쪽에 하나는 서남쪽에 있었다.

발견된 위치는 곽의 상부에 해당된다.

⊙ 황남리 제 82호분 - 동총에는 적석위에 주를 약간 뿌렸다.

⊙ 황남리 제 83호분 - 적석층이 아닌 곽 바닥의 점토에 점점이 주가 섞여 있음이 발견되

었다.

⊙ 황오리 제 5호분 - 중앙의 함몰부분에 적석층 남북단과 그 둥간에 거의 같은 간격을 두

고 8곳에 솔같은 것으로 丹(산화철)을 칠한 돌이 검출되었는데, 황오리 제 4호분에있어서도

같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 식이총 - 적석에 주가 부착된 흔적을 검출하였다.

◎ 적석 뿐 아니라 유해를 모신 목관에 塗朱한 것

⊙ 곤간총( 杆塚) - 목곽편 내면에 검은 옷칠(黑漆)한 위에 다시 적색을 발랐다

⊙ 금관총- 목관에 내외면 검은 옻칠(黑漆)

⊙ 식이총 - 관재의 면에 단(산화철) 칠함

⊙ 천마총 - 목관 내면에 주를 칠하고 금박(金箔)으로 장식

⊙ 황오리 제 14호분 - 제 2주곽에 목관이 놓여진 바닥에서 금박이 점점이 남아 있는 부식

(腐蝕)된 흑색 목판 조각이 발견됨

2. 가무의 풍속

중국 사서에 의하면 동아시아 장송의례로 가무의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後漢書> 烏桓 '至葬則歌舞相送'

<後漢書> 歲北 '等類就歌舞爲樂'

일본 - <三國志> 魏書 東夷傳 倭人條 '喪主哭泣 他人醉歌舞飮酒'

고구려 - <隋書> 高麗傳 '葬則鼓舞作樂以道之' 장송에 있어 북을 치고 춤을 추면서 이를 보

낸다. 벽화에 이 풍속을 볼 수 있다. 고분벽화에 장례의례의 일면을 그리고 있다. 무용총의

가무도

cf. 全虎兌, 5세기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불교적 내세관, <한국사론> 21, 1989

⊙ 무용총 - 좌벽벽화에는 부엌으로 보이는 기와집에서 시녀들이 음식상을 내오는 모습, 한

기마인물의 ㅇ에서 14명의 남녀가 춤추고 노래부르는 장면으로 구성되었으며 기마인물의 옆

에는 한 마리의 개와 시종 1인이 그려졌다.

좌벽의 가무장면은 고구려 장속의례의 재현이라고 지적되고 있으며 윗편의 음식공양장면을

함께 고려할 때 일상생활의 한 모습이자 장의의 한 관정이라 생각된다. pp29

⊙ 5세기 후반 장천 1호분 - 전실 좌벽 - 정자에 앉아 음식공양을 받으며 가무를 관람하는

묘주인 부부가 그려져 있음

주벽 벽화는 현세의 일상생황 및 의례와 관련된 내용 묘사, 천장부 벽화는 치장자의 천계

인식과 관련된 내용.

⊙ 쌍영총 - 연도 좌·우벽에 각 30명 이상의 남녀와 소가끄는 가마차인 우교차(牛轎車).

신라 - <三國史記> 列傳 第三 金庾信下條 '給軍樂鼓吹一百人 出葬干金山原' 문무왕 13년

(673년) 김유신 장군을 매장했을 때, 군 악대 100명(軍樂隊百名)을 내어 주악(奏樂)케 하였

다 한다.

화랑 해론(奚論)의 전사에 '時人無不哀悼 爲作歌弔之' 노래를 불러 그를 슬퍼했다고 하고, 화

랑 관창(官昌)의 전사시에 '新羅哀之 像其容爲假面作舞劍之狀'이라 기록한다. '舞歌作樂'함은

고인의 공적을 찬양하고 그 혼을 위로하는 진혼의식이다. 부장품으로 미왕릉지구 제 30호분

출토 琴奏樂裝飾頸壺 경호

3. 벽사

호간총(壺杆塚): 木心漆面 - 方相氏假面의 일종, 현존하는 최고의 가면유물로 나무로 만든

위에 옻을 칙한 것인데 눈알은 유리(琉璃)이고, 홍채(虹彩)에 해당하는 부분만 푸른 빛으로

되어있음. 눈은 황금환으로 둘려있고 두쪽을 나와있는 뿔과 뿔 사이의 칠면 상부의 테를 이

루는 곳은 철로 되어있고 그 위에 황금으로 점을 박았다. 이 목신칠면의 성격을 周禮夏官에

보이는 方相氏의 가면으로 보고 있는데, 상방씨는 곰가죽을 쓰고 황금으로 된 눈을 단 가면

을 쓰고 玄依에 주상(朱裳)을 입고 무기(武器)를 들고 1년 사시에 혼을 몰아내거나 혹은 상

례시에 묘광에 들어가서 창[戈]으로 네 귀퉁이(四隅)를 쳐서 목석(木石)의 기(怪)인 망량(

, 도깨비 등)을 몰아내는 것이다. 호간총에서는 이 목심칠면과 함께 철도끼(鐵斧)·皆技戟

등의 무기가 출토되었다. 호간총에 있어서도 이 칠면을 쓰고 무기를 쥐고서 매장시에 우선

묘광내의 기를 몰아 내고 유해와 함께 벽사를 위하여 가면과 무기를 부장한 것을 보게된다.

황오리 제 14호분, 황남리 제 83호분, 황남리 110호분 등에서 鐵斧·皆技戟 등 철제무기를

우해부를 중심한 곽바닥의 네 귀퉁이에 배체함은 주레하관에 보이는 방상씨가 묘광내에 들

어 가서 창으로 4기퉁이를 쳐서 기를 몰아낸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고 신라 고분에 부장

된 가면쓴 인물상토우로 호간총의 목심칠면이 지닌 뜻과 같다고 생각된다.

4. 공양제의

1) 쇠솥(鐵釜) - 식사용 곡물 공의과 관꼐

금관홍·금영총·식이총·천마총·호간총·은영총·황남리 제 109호분 제4곽·황오리 고분

황오리 제33호분 남곽주곽·황오리 제 4호분·황오리 제 14호분 제1곽·황오리 제 33호분

서곽주곽·노서리 제 138호분등의 예

금영총·식이총·노서리 고분의 것은 다리가 세 개 달린 쇠솥.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 - 사람이 죽은 다음에 살이 다 썩으면, 그 뼈만 추려서 목

곽속에 넣고 흙솥에 쌀을 넣어 목곽 끝에 달아매었다. 공양의례의 도구로 쓰였음 추정.

고구려 고분 벽화의 식사공양 장면의 예

2) 魚骨·鳥骨·貝穀 들어있는 (뚜껑있는 높은 잔)有蓋高杯·有台長頸壺·小壺등

부장한 토기에 물고기 뼈, 새뼈, 조개나 곡식등이 들어잇음은 사자에게 식물을 공현하는 공

양제사가 행해졌음 시사하는 것

金屬製盒·饌·高杯 등은 음식물 공양용기, 유리잔·컵모양 토기등은 음료의 공헌과 관계

있는 용기류

3) 이형토기

多杯附高杯形土器·土偶裝飾土器 등

⊙ 금영총에 부장된 다배부고배형토기는 고배형 그릇에 6개의 작은 잔이 부착된 것.

⊙ 황오리 제 33호분 서곽주곽에 부장된 투각영략고배형토기(透刻瓔珞高杯形土器): 그릇 몸

체에 상하 2단으로 각각 16∼22개의 방공이 뚫려 있고 그릇포면에 돌아가면서 목걸이 구슬

장식을 달았다. 실용에 쓰인 용기는 아니고 공양제사 위해 쓰인 토기

⊙ 토우장식토기 뚜껑있는 잔이나 높은 잔 등의 뚜껑 표면과 긴병(장경호)의 입술부위 주위

에 인물이나 동물등의 토우를 부착하여 장식한 토기, 장식된 토우에는 남자상·여인상·

개·소·말·돼지·사슴·새·닭·물고기·게·뱀·개구리등 다양.

고구려벽화의 예와 마찬가지로 사자에게 공헌

 

 

2. 방선주, 고신라의 영혼 및 타계관념 - 종교문화사적 고찰-

 

고대 신라 영역에 있어서 原신라문화(원신라라는 시대구분은 좀 모호하지만, 신라왕국 성

립이전, 즉 선사시대를 일컫는 말)의 기본적 원류를 이루는 지역 주민들이 가졌던 영혼 빛

내세·타계, 특히 극락토에 대한 신앙관념을 고찰하였다.

 

1. 삼국지 위서 동이전 "以大鳥羽送死, 큰 새의 깃털로 죽은자를 보낸다"의 의미

 

위지동이전 진한·변진 편에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기록으로,

'以大鳥羽送死 其意欲使死者飛揚

큰 새의 깃털로 죽음을 보내는데, 그 의미는 죽은자가 날아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대한 해석으로는 큰 깃털을 장례시에 어떤 구체적 방법으로 이용하는지는 확실치 않으

나 날리든지 부장하든지 장식하든지, 천상의 타계로 왕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자명하다.

1) 새깃털을 날리는 풍습: 서아프리카의 요루바(Yoruba)족 장송행진시 새를 죽여 그 날게를

날리는데, 이들 새를 '길을 얻어주는 새'라는 의미의 아디에-루아나(Adie-luana)라 불렀다.

프레이저의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장례의식

영혼을 천계에 비양시키려는 욕망은 추장의 장례의식에서 거행되는 또 하나의 기묘한 의식

의 동기가 된다. 시체매장후 추장은 집으로 돌아가나 관을 메었던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늪

에 가서 ..... 추장의 영혼을 비상시키려 하고 새깃털은 비상하는 혼의 노정을 용이하게 하려

는데 있다.

2) 장식하는 경우

漢민족은 장례시 흰닭을 사용하는 습속이 있다. 술로 마취된 흰 수탉을 발을 묶어 棺台위

에 안치하는데 조상에서 내려온 관습이라한다. De Groot는 중국에서 광명한 태양의 상징으

로 간주되는 수탉이 冥界로 인도한다는 것으로 보았다. 중국의 유접민족 苗人의 관념에는

무술성 문헌작품 반고문에 죽은 영혼이 명계로 가는 험난한 길을 닭의 비호와 선도를 받으

며 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3) 부장하는 경우

경주 노서리 138호분에서 닭의 뼈 약간이 출토되었음. 사령을 운반하는 새로 간주됨

관 중에 닭 뼈 약간 출토, 正東西로 長軸을 삼음. 금관총 신리총(飾履塚), 금영총 디군장의

분묘가 동쪽으로 향해있다는 사실, 태양 힌닭과 관계되는 신라 上世 전설등과 隋書에 신라

가 일월신을 숭배한다는 기사를 보아 위서의 이 기록의 목적은 산책된 지배자들로 하여금

큰 깃털을 타고 또 업혀서 자기왕가의 출자인 太陽樂土로 돌아가는 것이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3. 太陽舟信仰의 전파

경북 達成縣 玄風의 5c경 한 왕자의 분묘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陶質舟形土器, 金鈴

塚 출토의 二舟型 土器

까마귀두상 가면을 쓴 배모양 용기는 세계적 분포를 보이는 太陽舟信仰과 충분히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태양 운행에 관한 고대인과 원시인의 관점은 두가지 유형, 즉 태양차형과 태양선형으로 대

비되고 있는데 태양조형을 첨가. 마차, 용차 등 태양 원반을 태우고 일신 일제가 나날히 여

행을 한다는 신앙은 그리스, 바빌로니아, 인도, 중국을 포함한 내륙지방에 널리 퍼져 있음.

이집트, 앗시리아에서는 새날개를 단 태양원반의 표현이 있음. 날개를 가진 태양원반의 관념

은 태양이 조류또는 태양안에 새가 있다는 세계적인 솨념과 연관될 것이고 태양배 신앙에

앞서 존재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태양배라는 형태는 태양신만이 배를 타고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을 함께 태우기도 하는데 타계로 운반하는 亡靈船역할도 한다. (이집

트의 특징)

동남아 청동북, 銅鼓에 새겨진 태양배들의 예

 

4. <烏忌> 전승의 새로운 해석

삼국유사 일권 射琴匣篇 정월 15일을 烏忌之日로 삼고 찰밥을 먹는데 대한 연기설화

鎭魂神話의 변형

까마귀에 대하여 생각하면 이 새는 원래 태양조, 신조관념을 가지고 있었으나 죽은 자의

집을 곧잘 찾아듬으로 이를 꺼리는 풍속이 있으며 흉조로 생각되었다.

죽은 사람의 혼이 까마귀로 변하여 타계로 간다는 관념이 세계적으로 분포하여 있다. 구라

수, 브라질 보로로스 인간의 혼이 까마귀 형태를 가지고 꿈꿀대 나돌아 다닌다. 등의 예로

보았을 때, 영혼의 자유롭고 빠른 운동이라는 관념에서 조형혼(bird soul)의 신앙관념은 널

리 분포하고 있음. 또한 쥐도 죽은 영혼의 변신으로 간주됨

삼국유사의 烏與鼠來嗚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운다는 것은 인간의 혼이 까마귀와 쥐의 현상

으로 逃亡가는 것으로 생각된다.

정월에는 양기가 아직 약함으로 음산한 악령의 집혼을 방지하게 위해 신라에서 태양의 관열

이 갱신하려는 정월에 정기적인 태양제의 - 중국사기가 묘사하는 원단의 숭일월신등에서

볼 수 있는 - 와 결합하여 忌愼百事하고 不敢動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에서 정월에

시외에 눈에 뜨이기 쉬운 오곡 등을 뿌리는 습속은 혼을 되찾는 습속에서 보다 가까운 원형

을 찾을 수 있다.

신년에서의 태양의 자손인 왕자의 진혼의식을 통한 태양솰력의 경샌주술과 결부되다가 점점

잊혀지고 오기의 습속을 형성하여 사금갑걸화가 형성된 것이다. 까마기와 쥐는 사람의 혼으

로 간주되기도 하고 실종된 까마귀는 실종된 까마귀형 혼이며, 돼지는 태양과 역시 관계가

많은 동물로 북구신화에 태양차는 일설에 금색 돼지가 끌고 있다고 하는 등 태양의 자손인

왕자나 추장을 상징하여 서로싸운다는 것은 그 신변이 위태함을 암시함이 아닐까, 왕자가

금갑으로 상징되는 수혼의 악령을 사살하는 의식을 통하여 궁실의 진혼의식은 종료되고 이

로써 태양의 활력갱신과 정상운행을 주술적으로 돕는 것이 되지 않았는가 사금갑 전승을 해

석하고자 한다.

 

3. 玄容駿, <신라인의 타계관>

신라인의 타계관을 천상타계관념과 해양타계관념이 습합되어 그 기반을 이루고 불교의 융성

으로 그것이 변용의 길을 걷게 되었음을 삼국사기, 삼국유사들의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전개

하였다.

천상타계관은 북아시아의 수렵(狩獵)·목축민 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신라 건국 이전부터

유입되어 주로 지배민족의 타계관으로 전승되어 왔으며, 신인(神人)의 천강신화(天降神話)와

일차장(第一次葬)으로서의 수상장(樹上葬(台上葬)) 등 요소를 동반하고 있었다.

해양타계관은 동남아시아계 해양민족·농경민족 문화를 배경으로 유입되어 주로 피지배민

족의 타계관으로 전승되어 왔으며, 신인의 타계표착신화(他界漂着神話)와 수장(水葬(주장(舟

葬)) 습속 등의 요소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이 두 타계관이 습합·조화되고 불교가 융성하면서 각각 불교적으로 변용되어 갔다. 이러

한 두 타계관의 습합은 신라인의 종족 내지 문화가 단일한 것이 아니라, 남·북양 계통의

복합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외에 산중타계관·지하타계관 등 다른 타계관도 어느 시기에 있었을 것이나 기층적인

두 타계관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1. 천상타계관 - 하늘에 이상세계가 있음을 상정하고 인간은 세계에서 지상의 현실세계로

내려와 살다가 사후 다시 이 세계로 돌아간다는 관념.

1) 신라 육촌의 시조신화 - 강림신화

『三國遺事』卷 第一, <新羅始祖 赫居世王> 條

진한 땅에 옛날에 육촌이 있었는데, 첫째는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이니, 그 촌장 알평(謁

評)은 처음 하늘에서 瓢 峰에 내려와 급량부(及梁部) 李씨의 시조가 되었고, 둘째는 돌산

고허촌(突山高墟村)이니, 촌장 蘇伐都利는 처음 兄山에 내려와 사량부(沙梁部) 鄭씨의 시조

과 되었고, 셋째는 무산 대수촌(茂山大樹村)이니, 촌장 俱禮馬는 처음 伊山에 내려와 점량부

(漸梁部) 孫씨의 시조가 되었고, 넷째는 이니, 촌장 지맥호가 처음 화산에 내려와 본피부 최

씨의 시조가 되었고, 다섯째는 김산 가리촌이니, 촌장 는 처음 명활산에 내려와 한부 , 여섯

째는

『三國遺事』卷 第一, <新羅始祖 赫居世王> 條

2) 혁거세의 강림신화

<前漢><地節>元年壬子(古本云<建虎>元年, 又云<建元>三年等, 皆誤)三月朔, 六部祖各率子弟, 俱會於<閼

川>岸上, 議曰: [我輩上無君主臨理蒸民, 民皆放逸, 自從所欲, 覓有德人, 爲之君主, 立邦設都乎!] 於時, 乘

高南望, <楊山>下<蘿井>傍, 異氣如電光垂地, 有一白馬 拜之狀. 尋 之, 有一紫卵(一云靑大卵), 馬見人長

嘶上天, 剖其卵得童男, 形儀端美. 驚異之, 浴於<東泉>(<東泉寺>在<詞腦野>北), 身生光彩, 鳥獸率舞, 天地

振動, 日月淸明, 因名<赫居世王>

진한의 육촌 조상들이 前漢의 地節 원년 3월 1일에 알천(閼川)의 언덕 위에 모여 나라를

세우려고 덕망있는 군주를 찾을 때, 楊山 밑 라정(蘿井) 곁에 이상스러운 기운이 전광(電光)

처럼 땅에 비체더니 거기에 백마가 꿇어않자 절하는 형상을 하는 것을 보았다. 찾아가 보니

붉은 알이 하나 있고, 말은 사람을 보고 울다가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알을 깨니 아름다

운 동자가 나왔는데, 이 아이가 혁거세로서 13세가 되는헤 五鳳 元年 甲子에 왕이 되어 신

라를 건국했다.

3) 김알지 신화

7) 박혁거세의 五陵傳說

죽은 후에 영혼이 다시 그 원향인 천상계로 귀한한다는 신앙의 증거로 박혁거세의 오릉전설

이 있다.

理國六十一年, 王升于天, 七日後, 遺體散落于地, 后亦云亡. 國人欲合而葬之, 有大蛇逐禁, 各葬五體爲 <五

陵>, 亦名<蛇陵>, <曇嚴寺>北陵是也.

혁거세왕은 나라를 다스린지 61년 만에 하늘로 올라가고, 7일 후에 그 유체가 땅에 흩어져

떨어지고, 왕후도 또한 돌아갔다. 나라 사람들이 그 유체를 모아서 장사지내려 하는데, 큰

뱀이 쫓아 방해하므로 오체를 각각 따로 장사지내니,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한다.

 

9) 혁거세의 葬法

村山智順의 해석

"이 승천, 7일 후에 유체가 땅에 산락하고, 국인이 이것을 합장하려고 한 것등을 보면, 이

것은 나무위에(樹上) 풍장(風葬)한 것이 7일 후에 부패하여 그 뼈가 뿔뿔이 땅에 떨어졌을

므로 뼈를 모아 매장하려고 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 '승천'에 대해서는 <三國志>에 '以大鳥

羽送死 其意欲使死者飛揚'라고 되어있어, 진한의 풍습에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를 날려올려

보내려는 의미로 大鳥의 날개로 이를 보냈다고 하는 것인데, 이처럼 날려올려보내려는 것은

사자의 영혼이 승천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한은 신라의 전

신이니까, 진한 시대에 이미 사자를 승천시키려고 하는 사상이 있었던 것이 신라에 전승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미 사후 그 영혼이 승천하는 것이라는 사고가 있으면 승천에 알맞는

수단을 강구할 것은 당연한 일이어서, 진한에서 대조의 날개로 보냈던 것이 신라에 이르러

서는 이 승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하늘에 가까운 곳이라 생각되는 나무위, 산위, 언덕

위등에 시체를 방치하는 것과 같이 진보한 것인지도 모른다. 승천, 유체가 땅에 산락했다는

등의 <삼국유사>의 기록은 이 추리를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10) 진표율사(眞表律師)의 장법

<三國遺事> 卷第四, 義解 第五, <關東楓岳鉢淵藪石記> 條

신라때 樹上葬의 기록은 많이 찾을 수 없으나, 진표율사의 이야기에 그 잔영을 찾을 수 있

다. <삼국유사>에 진표율사는 12세에 출가하여 갖은 고행으로 수도하여 천안을 얻고 마침

내 도솔천중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이때 지장과 미륵이 율사의 이마를 만지며 크게 칭찬

하고, "네가 현새의 육신을 버리고 대국왕의 몸을 받아 후에 도솔천에 날 것이다"라고 말하

고는 곧 사라졌다. 그 후 사는 많은 절을 세우고 이적을 보였는데, 말년에 그의 아버지와 함

께 鉢淵에 가서 같이 道業을 닦으며 효도를 다하다가 죽을 때는 절의 동쪽 바위 위에 올라

가서 죽었다. 제자들이 그 시체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공양하다가 해골이 산락하니 그제야

흙으로 덮어 묻고 봉묘를 만들었다.

 

하늘(도솔천)에 영혼이 올라가게 하기 위하여 언덕 위에 풍장하고 뼈가 산락한 후에야 이

차장으로 매장했다는 것이되낟. 역시 천상타계에 飛揚시키기 위해 풍장을 했다는 말이다.

 

11) 천상타계관의 계통

천상타계관은 북동아시아 지역을 포함하여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는데, 가락국의 수로왕도

하늘에서 구지봉에 내려왔고, 북부여의 해모수는 오룡차를 타고 기승골성(記升骨城)에 내려

왔고, 고구려의 주몽은 일광을 감량하여 알 속에서 태어났는데, 스스로 천제의 아들이요, 하

백의 손이라 하고 있으며 고조선의 단군은 하늘에서 태백산정에 내려온 한웅의 아들로 태어

났다.

북아시아의 수렵 목축 문화를 배경으로 이루어져 들어와 신라 건국 이전부터 있어온 것으

로 추정됨. 불교의 33천 사상과 습합하여 불교적 변용

12) 불교적 변용의 예 - 前後所將舍利傳說

<三國遺事> 卷第三, 塔像第四, <前後所將舍利> 條

신라의 義湘法師가 당에 건너가 終南山 至相寺에 있을 때, 이웃에 宣律師가 있어 항상 하늘

로부터 공양을 받고, 제를 올릴 때마다 하늘의 부엌에서 음식을 보내왔다. 이를 본 의상법사

가 선율사에게 부탁하기를 "사는 이미 천제의 경애를 받는 터이니, 듣건데 제석궁에 부처의

40개의 齒牙중 하나가 있다고 하니 우리들을 위해 상제께 청하여 그것을 인간에게 보내어

복되게 하는 것이 어떠하냐"고 해ㅆ. 그 후 선율사가 천사를 시며 그 뜻을 상제에게 전달하

여 교섭하니, 상제가 7일을 기한하고 그 이빨을 의상법사에게 보내 주었다. 의상이 경의를

표하고 궁중대문에 맞이하여 두었다. 도리천( 利天)의 하루밤은 인간의 백년에 해당하므로,

여기의 7일 기한은 700년이 된다.

이 전설은 부처의 이빨이 사후 천제의 관장사항이 되어있는데 그것을 빌어다 모셨다는 이

야기로, 곧 부처의 시체가 사후 하늘에 올라갔다는 말도 된다. 천상타계관의 불교적 변용의

예이다. (불교적 설화에 이러한 내용은 없다. 한국식 변용의 예로 본 것은 타당하다)

13) 興輪寺壁畵普賢傳說

14) 佛像降臨傳說

 

2. 해양타계관

1) 脫解神話

<三國遺事>, 卷第二, 第四 <脫解王> 條

2) 赫居世 王妃神話

<三國遺事>, 卷第一, <新羅始祖赫居世王> 條

 

[今天子已降, 宜覓有德女君配之.] 是日, <沙梁里><閼英井>(一作<娥利英井>)邊, 有q龍現

而左脇誕生童女(一云龍現死, 而剖其腹得之), 姿容殊麗

혁거세를 맞이하고, 덕망있는 여군을 찾아 짝을 지으려 할 때, 沙梁理 閼英井 가에 계룡(鷄

龍)이 나타나 왼편 갈비에서 동녀를 하나 탄행하니, 그 자태와 얼굴이 유난히 고왔다. 이 동

녀(童女)가 혁거세 왕비이다.

계룡이 낳은 딸이라하니, 동녀요, 용은 용궁 또는 용왕국이라하는 상상의 이상국.

3) 처용설화

4) 거타지설화

<三國遺事>, 卷第二, <眞聖女大王·居陀知> 條

용녀가 와서 인간의 처가 된 사람

5) 水路婦人 龍宮往來說話

<三國遺事>, 卷第二, <水路婦人> 條

바닷 속 용궁 묘사 "칠보궁전에 음식이 맛있고,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의 연화가 아니라"

하였다.

6) 箱舟漂流說話

바다 멀리 있는 이상세계는 시조의 원향, 성역, 낙토이며 사후 인간의 영혼이 돌아가는 세

계라는 관념이 상자 모양의 배에 사람을 넣어 띄워버리는 이야기, 바리공주 무가등의 예에

서 볼 수 있다.

7) 文武王의 水葬

<三國遺事>, 卷第二, <文武王法敏> 條

문무왕은 재위 21년에 돌아갔는데, 유언에 따라 동해 속의 큰 바위 위에 장사지냈다는 전

설이 있다. 왕은 평소 지의법사(智義法師)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

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겠다고 하며, 법사가 "용은 짐승이니 무엇을 보답하겠습니까?"

라고 말하자, 왕은 "내가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지 오래니, 거칠게하도 갚을 수 있는 짐승이

된다면 나의 뜻에 합당하다"고 해왔다는 것이다.

<三國遺事>, 卷第二, <萬波息笛> 條

왕은 바다 속에 장사지낸 후 과연 대룡이 되고, 그의 아들인 신문황 때에 죽어 천신이 된

김유신과 힘을 합쳐 無價大寶인 萬波息笛을 보내어 나라를 수호했다.

 

고고학적 유물들 - 舟形土器 사자의 영혼을 타게에 운반하는 儀器로 추정되고 있으며, 舟葬

습속의 잔영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 사령제인 오구굿에서 '용선龍船'을 만들고, 그 배에 죽

은 자의 영혼을 태워 저승으로 보내는 행사를 하는데, 이 용선도 舟葬습속이나 주형토기의

민속적 잔재라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