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목 : 역사 현장 답사

제    목 : 역사 현장을 다녀오고서  

제 출 자 : 20028006번 김   병  수 

담당교수 : 장     준    철 교수님


 3학년 편입하여 첫 번째 가는 2004년도 전반기 남도 역사현장 답사이다. 편입생에다 나이 한지 들어 젊은 친구들과 어떻게 잘 어울릴지 여러 가지로 망설이며 떠난 답사였다.

 도서관 앞에 아침 일찍 두 번째로 도착했을까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한 사람 한 사람 모이더니 제법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잠시 후 전주에서 출발한 버스에 우리 모든 일행은 몸을 싫고 처음 답사지인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암산에 소재하고 있는 백양사에 도착했다.

 백양사 영내를 둘러보기 전 백양사에 대한 유래와 문화적 가치에 대한 설명을 준비한 친구의 진지한 발표와 교수님의 보충 설명을 듣자 지금 까지 별 관심 없이 보았던 우리 문화 유적지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지는 것 같았다.

 이런 형식으로 우리 일행은 첫째 날 광주 박물관, 담양 소쇄원, 화순 운주사, 영암 도갑사, 영암 왕인박사 유적지를 둘러본 후 월출산 자락 밑에 자리한 숙소에서 하루를 묶고 이튿날 답사가 시작되어 첫 답사지는 강진 무위사였다 이어 해남 녹우당, 대흥사에 들러 강진 다산정약용 선생의 초당을 답사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나는 우리 일행과 헤어져야만 했다.

 근번 답사는 나 개인적으로 몇 가지 면에서 유익을 가져다 주었는데 첫째는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고, 둘째는 대학 생활하는데 있어 많은 친구들을 짧은 시간에 많이 사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 된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답사지 가운데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황사연 백서 사건으로 18년의 유배 생활가운데 10년(1808-1818년)간의 유배 생활을 했다던 다산초당 답사는 나 개인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했다.

 다산초당은 본래 윤단이라는 사람이 건립하여 서당으로 쓰던 건물인데 다산 선생이 이곳으로 옮겨오며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본래는 초가였는데 1957년 해남 윤씨(다산 선생의 외가)의 도움을 받아 기와집으로 다시 복원되었다고 한다.

 나로 하여금 나의 생각을 다산 초당으로 향하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이 곳 초당에서 후대에 길이 남을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의 다산 저서가 저술되었다는 것이다.

 본래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는 왕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한다. 그러니 그의 학문이 얼마나 깊고 다식했겠는가! 그러나 만일 그가 유배를 떠나지 않았다면 목민심서, 경세유포와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저서가 집필되었을까는 생각을 해본다.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곳 초당으로 유배되었으나 이곳은 그의 학문을 체계화하여 후대에 그의 학문과 사상을 집필을 통해 알리게 되었다는 것은 천만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목민심서와 같은 책은 오늘에 와서도 학문적 가치가 인정되는 책으로 많은 정치 입문생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필독서와 같이 읽혀지는 책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곳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다산 초당은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로써 많은 아픔과 우여곡절이 있는 곳이나 결코 그것은 다산에게 있어서도 후대에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도 아픔이 아닌 축복이 아닌가 싶다.

 여튼 근번 역사 현장 답사는 나 개인에게 있어 정말 유익된 시간이었고,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이해 그리고 애정을 가지게 되는 아름다운 시간들였다.

 끝으로 교수님! 2박 3일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