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광주박물관

                                                  


1.서론


2.본론

 (1) 국립광주박물관 설명

 (2) 전시실 설명

 

3.결론


 

 

1. 서론


 벌써 역사현장학습을 갔다 온지 3일이나 되었다. 2학년 올라와서 처음으로 가는 역사현장학습이라 흥분도 되고 떨려 전날 잠을 한 숨 자지도 못하였다. 아마 처음으로 가는 역사현장학습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역사현장학습 중에서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내가 준비를 한 국립광주박물관이다. 준비를 제대로 못 하여 발표를 할 때는 부끄러웠지만 레포트를 열심히 준비하여 내가 준비하지를 못한 내용을 열심히 써 보았다.

그럼 국립광주박물관에 대하여 글을 써 보겠다.


2.본론


(1)국립광주박물관 설명



국립광주박물관은 문화예술의 진흥발전과 국민정서의 함양 및 지방문화의 활성화를 도모코자 1977년 착공하여 1978년 12월 6일 개관하였다. 한국의 전통양식에 맞추어 지어진 국립광주박물관은 현재 지상 2층 지하 4층의 건물에 1,000평의 전시실과 넓은 유물보관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널따란 야외전시장겸 정원이 박물관을 감싸고 있다.

또한 지난 96년 12월 착공한 전시실 개보수 및 수장고 신축공사의 완공으로 기획전시실과 불교미술실이 신설되고 터치스크린과 유적분포 전관판 등 첨단시설을 갖추게 됨으로써 내방객이 보다 쾌적하고 현대적인 관람환경에서 우리의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개관이래 이 지역의 문화유산을 수집, 보존, 연구, 전시하는데 정성을 쏟아온 국립광주박물관은 앞으로도 학술조사 연구활동은 물론 활발한 기획전시와 상설전시로 관람객을 맞이할 것이며 지역민을 위한 사회교육에도 더욱 힘을 기울일 것이다.

국립광주박물관은 구석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유물들을 시대와 주재별로 구성하여 전시하며, 석기, 토기, 청동기, 도자기, 회화 들 남도의 문화적 예술적 역량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이 전시된다. 특히, 삼국 시대의 옹관과 고려청자, 조선분청사기 등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남도의 지역적 문화유산이다. 전시되는 중요 유물은 국보 143호 화순 대곡리 청동 유물, 국보 103호 중흥산성쌍사자석 등 강진 일대에서 제작된 고려청자, 남종화의 거장 공재 윤두서 산수도 등이 있다.


(2) 전시실 설명


불교미술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인 4세기대의 일이다. 불교에 전래는 우리의 사상적, 문화적인 면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 동시에 불교미술이라는 독특한 조형예술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전남지방에도 일찍부터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삼국시대의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구례 화엄사가 대표적인 사찰로 알려져 있다.

광주 전남지방의 불료문화는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불교문화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탁히 통일신라시대에 선종의 유입으로 사상적인 발전과 함께 신앙의 대상으로서 많은 불교문화재를 남겼다.

불교미술실에는 이 지역에서 출토되거나 전해져오는 불교관련 문화재를 한 자기에 모아 전시하고 있는데 주요 전시유물을 살펴보면, 광양시 옥룡면 중흥산 폐사지출토 국보 제103호 쌍사아석등을 비롯하여 보성군 미력면화방리출토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 화순 운주사출토 금동보살입상, 영암군 염암읍 용흥리출토 통일신라 금동사천왕상등의 불교 조각품이 있고, 출처 미상의 아미타불화와 시왕도 등의 불교회화작품이 전시되어있다.

불교공예품으로는 광주시 구동 폐사지 서오층 설잡출토 금동사리장엄구와 구흥군 포두면 송산리출토 청동범종,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출토 금고, 곡성군 옥과면 설옥리출토 청동정병등 다양한 종규가 있다.

또한 광주 무등산 원효사, 광양 옥룡하지, 순천 금둔사지 등에 대한 발굴유물 등 총 100여점이 주제별 시대별로 이해사기 쉽도록 전시되어 있다.


회화실


조선시대에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한양이었듯이 회화 He한 한양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다른 지방에서는 일정한 회화계승의 맥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호남지방민은 유일하게 뛰어난 화가들에 의해 회화적 전통이 계승 발전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조선 초기에는 화순출신의 양팽손, 중기와 후기에는 해남 출신의 윤두서와 그의 아들인 윤덕희, 손자인 윤용 그리고 말기에는 진도출신의 허련과 같은 화가들이 나타나 조선시대 회화를 보다 윤택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호남지방의 문화적 전통을 세우는데 이바지하였다.

회화실에는 이러한 지역의 문화적 특성에 맞추어 관람객들이 호남 회화의 흐름에 대해 쉽게 이해하고 감상하며 향토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울 수 있도록 조선시대와 근대기에 활약한 호남출신 화가들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밖에 비록 적은 양이지만 정선, 심사정, 정수영, 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화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하여 관람객들이 호남회화의 흐름은 물론 조선시대 회화의 면모를 이해하고 감상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선사실


선사실에는 광주 전남지방에서 출토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및 초기철기시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최초로 도구를 제작 사영하면서 수렵과 어로 등의 채집 경제생활을 한 문화단계로 석기의 형태와 종류, 가공기술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고 있다. 광주 전남지방의 유적은 섬진강 영산강유역, 서해안의 영광 등에서 발견되고 있다.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10.000년경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시대의 주민들은 물과 식량자원이 풍부한 강가나 바닷가에 자리잡고 살면서 집터, 고개더미, 무덤유적을 남겼다. 주요한 특징은 토기의 발명, 간석기의 제작, 식량생산의 시작을 둘 수 있으며, 광주 전남지방의 유적은 여수 송도가 대표적이다.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0세기경 시작되는데, 농경과 목축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며 새로이 고인돌 돌널무덤이 등장하고 구릉상에 집터를 만들었다. 유물은 다양한 종류의 간석기 무문토기 청동기 거푸집 등이 있다. 고인돌은 이 시대의 특징적인 무덤이며 광주 전남지바엥 특히 많이 분포되어 있다.

초기철기시대는 기원전 3세기경 중국 북방지역의 연나라와 문화적 접촉이 일어나면서 비롯되는데, 남부지방에는 기원전 1세기경 본격적으로 확산된 듯 하나. 이 시대에는 철제도구를 이용한 목제농구 등의 도구제작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어 농업생산력이 급격하게 증가되며, 유적으로는 광주 신창동이 대표적이다.


원삼국 삼국실


원삼국시대는 기원 전후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3세기 동안으로 마한 진한 변한이 백제 신라 가야라는 고대국가로 성장한 시기이다. 이 시대에는 한반도에 철기문화의 보급이 가속화되어 철제로 만든 일상도구의 사용으로 생활경제면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철제무기를 이용한 잦은 전투는 집단간의 결속을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농경의례와 같은 집단행사를 동해 공동체의식이 형성되고 부와 권력이 집중되면서 새로운 지배질서를 갖추어 국가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삼국시대 전반기 이 지역을 마한의 작은 나라들이 독특한 지역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으나, 새로운 정치체로 등장하지 못하고 4세기 후반 강력한 통치력을 바탕으로 성장한 백제의 근초고왕때에 병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보여주는 옹관묘는 나주와 영암이 중심지역으로 4~5세기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백제가 옹진으로 남천한 뒤 지방통치체제가 본격화되는 5세기 중반이후부터는 백제계의 석실분을 만들었다. 옹관묘는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확인되고 있으나 석실분은 영산강유역뿐만이 아니라 광주 전남 전역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 문화적 변화추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나주 자미산성과 회진토성은 이 지역에 당시 유력집단의 거점적 존속생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신안해저유물실


신안 앞바다에 600여년간 침몰되어 있던 원대의 무역선에서 인양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7년동안 모두 11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발굴인양작업에서 도자기 20,681점을 비롯하여 금속제품 석제품 목제품 유리제품 등을 발굴하였다.

신안해저유물실에 전시된 자기중서 청자는 중국 용천요에서 생산된 제품들도 유약이 맑고 아름다운 비취색을 띠며 형태는 단정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졌다. 백자는 대부분이 중국 경적진요에서 생산된 것들로 그릇의 두께가 얇고 쳥백색의 투명한 유약을 입힌 청백자이다. 흑유는 검은 광택이 좋은 하남천목, 건요산천목으로 주로 찻잔으로 사용되던 것들이다.

전시된 금속품들은 대부분 당시 배의 선원들이 일상생활에 사용하였던 것들이다. 나무제품은 많지 않은데 그 대부분이 바닷물에 부식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전시된 나무 상자는 뚜껑이 있는 사각형과 원통형의 두가지인데  이 상자들은 도자기를 포장하여 담았던 격납용기이다. 또한 전시물 중 목패는 탁송물의 물표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목패 중에는 “지치삼년”이라는 한자묵서가 있다. 이것은 원대의 연호로서 서기 1323년에 해당되는데 이는 침몰선의 연대를 명시해 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물이다.

신안해저유물이 갖는 커다란 의미는 단독 유적에서 일괄유물로 세계 고고학사상 유례가 없는 대발견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일괄 유물로서의 발견 도자기에 대한 편년문제 해결에 하나의 중요한 근거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화상의 복원, 그리고 교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리라 여겨진다.


고려자기실


전남지방은 한국도자기의 본사이라 할만큼 고려시대 청자로부터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가마터들이 분포되어 있다. 고려시대 청자를 비롯한 도자제작의 중심지로서 그 기원과 발전에 있어 차지한 위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고려도자실에는 이처럼 전남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한 도자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작기법의 고려시대 도자기를 물론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모형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고려시대 도자기를 대표하는 것은 청자이다. 우리나라에서 청자의 제작은 통일신라 말, 즉 9세기 후반경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자의 초기 양상은 녹갈색이나 암갈색 등 어두운 색을 띠지만, 11세기 말 무렵부터 아름다운 비색을 내기 시작한다. 그릇 모양은 섬세하며 부드러운 곡선의 조형미를 나타내고 있어 직선이 강조되고 양감이 풍부한 중국 도자기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전시된 중국 도자기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전시된 유물 중 상악국명합 죽정문주전자 연화문매병 등은 12세기 전반 절정기의 청자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12세기 전반에는 한편으로 상감기법이라는 독특한 무늬표현기법이 이용되었다. 상감기법이란 그릇의 바탕에 무늬를 새긴 다음 그 부분에 붉은 흙이나 하얀 흙으로 메꾸는 방법이다. 이는 동양도자사에 그 예가 없는 창조적인 기법으로 고려청자의 중요한 특징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운학문사이호 포도동자문주전자 동자문매명 등이 있다.


조선 분청사기 백자실


조선 분청사기 백자실에는 분청사기와 백자를 제작시기와 기법에 따라 그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하였다.

특히 조선분청자기실에는 광주 충효동 분청사기 가마터에서 발굴된 유물이 함께 전시되어 이 지방에서 제작된 분청사기의 특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조선시대 도자기는 크게 고려시대 말 상감청자의 뒤를 이은 분청사기와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백자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분청사기는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백자에 흡수되어 만들어지지 않게 되고, 백자는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제작되었다.

분청사기란 청자와 같은 회색의 바탕흙 위에 하얀 흙을 바른 다음 회청색의 유약을 입힌 도자기를 말한다. 분청사기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그릇면의 분장과 그 위에 자유분방한선으로 이루어진 무늬이다. 백토분장은 붓으로 칠하는 방법이 으로 이용되어 그릇 전체에 운동감이 있다.

무늬의 소재는 자연에서 얻은 동 식물과 추상적인 것 등 매우 다양하며, 무늬 구성이나 모양에서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서민들의 익살이 담겨 있다.

백자의 특징으로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순백색의 아름다움과 너그러운 둥근 선을 꼽을 수 있다. 둥그스럼한 합이나 사람 그리고 달항아리 등에는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백자에 무늬가 있는 것은 지극히 적은 양이다. 산화된 철이나 동, 그리고 코발트와 같은 안료를 이용하여 그릇 위에 소나무나 대나무 풀꽃 등을 간결한 필치로 그려내어 중국백자처럼 무늬를 가득 채우거나 화려하지 않다.

이러한 점은 우리 조상들의 순수한 백자에 대한 끊임없는 바램과 근검절약하는 생활습관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야외전시


유물의 재료가 자연적인 가후 조건에서도 보존이 가능하며, 기후 조건에서도 보전이 가능하며, 크기와 무게가 실내에서는 전시하기 어려운 자료들이 야외에 전시된다. 국립광주박물관의 정원에는 순천 덕산리에 있던 지석묘와 광주광역시 장운동에 있던 오층석탑, 강진 용운리에 있던 청자가마 등 11기의 유물과 유규가 옮겨져 전시되어 있다.


결론


이번 역사현장학습을 다녀와서 나에게는 많은 것들이 남았다. 지금 까지 책이나 텔레비전에서만 보아오던 곳들을 실제로 보니 더 새롭고 놀라웠다. 이번 역사현장학습이 아니었더라면 전라남도에 무엇이 있었는지 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역사현장학습은 나에게 새로운 것들을 알려준 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