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불교건축에 관하여

99314015 김 민 수

목   차

Ⅰ.들어가면서...

Ⅱ.본론

 1.가람배치

  1)삼국시대의 가람배치

   가.고구려시대

   나.백제시대

   다.신라시대

  2)통일신라시대의 가람배치

  3)고려시대의 가람배치

  4)조선시대의 가람배치

 2.목조건축

  2-1.목조건축의 종류

 3.지붕의 유형

 4.평지형 사찰과 산지형 사찰

  4-1.평지형 사찰의 실예

  4-2.산지형 사찰의 실예

Ⅲ.글을 마치며...


Ⅰ.들어가면서...

 봄의 향기를 맘껏 느낄 수 있는 3월 따스한 봄날 사학과에서는 2박3일로 답사를 가게 되었다. 이번 답사지는 전남지역이었다. 흔히들 전남을 우리는 맛과 멋이 살아있고 토속적인 향토문화가 숨쉬고 있는 남도문화권이라 칭한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몰라도 난 이번 답사에서 남도의 맛과 멋을 마음껏 느끼고 싶었다. 이번 답사는 내겐 네 번째 답사이지만 다른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처음답사였다. 후배들과 함께 가는 나의 학창 시절에 있어 마지막 답사였다. 선배로서 후배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조금의 부담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답사가 기대도 되었다. 이번 답사코스는 유난히도 사찰이 많았던 거 같다. 그래서 교수님도 사찰의 건축과 가람배치에 대해 많은 설명을 했던 거 같다. 그래서 나는 답사를 갔다 온 후 레포트 주제를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던 중 사찰의 불교건축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사찰의 건축에 대해 레포트를 작성하기로 하였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 있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왕이나 왕족이 살던 궁궐건축과 그리고 사찰건축, 민가건축으로 크게 세 가지이다. 사찰건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건물들의 자리배정이라고 생각한다. 건물을 올리기 위해 그 지형을 잘 알고 그 지형에 맞는 건물 배치를 해야 그 건물들이 더 돋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람배치에 대해 공부하고 사찰건축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번 답사 갔던 사찰들의 가람배치도와 건축양식 등을 머릿속으로 그려 볼 수 있고 다시 답사 때의 그 느낌을 느껴볼 수 있는 계기를 이 레포트를 통해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Ⅱ.본론

1.가람배치

 인도에서는 기원전 2세기경부터 석굴사원이 경영됨에 따라 예배 대상인 불사리(佛舍利)를 안치한 탑이 있는 탑원(塔院)과 승려의 수도처인 승원(僧院)은 서로 장소와 방향을 구별하여 배치하였는데 이러한 영향을 받은 중국의 경우도 육조시대이전까지는 동일하였다.

 이후 점차 불탑과 불상을 봉안한 금당을 중심으로 강당(講堂), 승방 (僧房),중문(中門), 종루(鐘樓), 경루(經樓) 등을 비롯한 많은 크고 작은 전각이 마련되고 육조시대부터 일정한 기본적인 가람의 배치 형식이 자오선상(子午線上)에 남쪽에서 북으로 중문, 탑, 금당, 강당의 순으로 배치하고 중문과 강당을 잇는 회랑을 조성해서 불탑과 금당을 중심으로 한 불역(佛域)이 이루어졌다.

 다시 이 성역 주위에 승방과 부속건물이 배치되어서 커다란 집단체의 사역을 구성하는 양식을 이루었다. 이러한 가람배치의 양식은 시대에 따라 변천했고 시대적인 변천은 그 기능과 규모를 알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절마다 각각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는 가람의 형태도 일정한 시대나 종파에 거의 변화 없이 일정한 정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삼국시대의 가람배치

가.고구려시대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때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인데 이와 함께 소수림왕 5년(375년)에 이불란사와 성문사가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뒤에도 평양 구사등 여러사찰이 있었다고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 조사된 예는 몇 되지 않는다. 평양 청암리 사지와 평남 대동군 상오리 사지의 경우 모두 8각탑(목탑으로 추정)을 중심으로 동 서 남 북 세 곳에 각각 금당이 있고 남쪽 앞으로는 중문이 배치되었으며 북쪽 금당뒤에는 강당이 마련되어 회랑이 중문에서 나와 각 금당을 지나 닿거나 금당과 강당사이를 지나가는 특이한 배치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나.백제시대

 신라와 같이 남북 자오선 상에 중문, 탑, 금당, 강당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는 중국의 영룔사의 가람배치인 단금당식(單金堂式)의 계통을 잇고 있다. 충남 부여의 정림사지, 군수리 사지, 금강사지 등이 이에 속합니다. 이 양식은 일본의 사천왕사지에 전해졌는데. 특히 전북 익산 미륵사지는 북쪽에 동서로 나란히 3개의 금당이 놓이고, 또한 탑도 그 남쪽에 각각 나란히 배치된 삼탑 삼금당식 (三塔三金堂式)으로 밝혀졌다. 그 중 가운데 탑은 석탑이 아닌 목탑으로 확인되었으며, 탑과 금당을 한 조씩으로 구획하는 남북의 회랑을 놓아 셋으로 독립시키고 있어 백제다운 독특한 배치양식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신라시대

신라에 공식적으로 건립된 최초의 사찰은 이차돈의 순교로 세워진 천경림의 홍륜사다. 신라 사찰양식도 백제와 마찬가지로 남북 자오선 상에 중문, 탑, 금당, 강당의 순으로 배치된 단탑 단금당식 (單塔單金堂式)의 계통입니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사지, 경주시 흥륜사지 등이 이런 예이다.

 황룡사지는 일탑일금당식 (一塔一金堂式)배치를 한 신라시대의 독특한 양식을 하고 있다. 목탑지 남방 전방의 좌우에 치우쳐 경루와 종구로 보이는 건물지가 있고 금당과 강당 좌우에도 나란히 동당(東堂),서당(西堂)의 건물지가 각각 노출되어 고구려 양식인 일탑삼금당 (一塔 三金堂) 배치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강당 및 중문의 좌우에서 나온 회랑은 금당 좌우에 회랑과 서로 만나지 않고 그냥 동서로 뻗어지고 있는 특이한 양식으로 신라 가람배치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경주시 적동 고선사지에서도 특이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단탑식 배치인데 협소한 지리적인 여건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문 다음에는 바로 금당과 강당의 순으로 배치되어 회랑에 싸여 있으며 탑은 금당과 중문 사이에 해당하는 서쪽에 회랑밖에 독립된 회랑을 갖고 배치되어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또 탑원(塔院)과 금당원(金堂院)이 만나는 쪽에만 두회랑이 겹쳐 복랑(複廊)으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가람배치는 일본의 국분사로 이어지고 있다.


2)통일신라시대의 가람배치

금당 앞에 놓이는 단탑이 동서의 쌍탑으로 바뀌어 쌍탑단금당식 (雙塔單金堂式) 가람배치가 되어 9세기경까지 크게 유행하였는데 우리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가람배치일 것이다.

쌍탑지로 추정되는 경주시 배반동 사천왕사지를 시원으로 경주시 구황동 망덕사지, 경북 경주군 양북면 용당리 감은사지, 동 장항리 사지, 동 외동읍 원원사지 등 8세기 가람과 경주시 남산동 남산사지,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진전사지, 전남 구례군 마산면 횡전리 화엄사, 전북 남원군 산내면 대정리 실상사,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보림사 등의 9세기에 해당하는 가람이 있다.

 이 양식은 8세기경까지는 중문과 강당을 잇는 외곽 회랑외에 금당의 좌우에도 회랑이 붙어 있을뿐더러 불국사 같이 복랑도 나타나게 되었다. 9세기 이후부터는 선종(禪宗)의 영향으로 가람이 산간(山間)으로 점차 이동함에 따라 경영문제나 지세의 제약 등에 기인하여 회랑이 없어지면서 엄격한 가람배치의 양식이 점차 무너지게 된다.

 이러한 쌍탑식 가람배치의 시원은 5세기이래 중국의 운강석굴 부조(浮彫)에 쌍탑이 새겨진 예가 있고, 기록 등에서 찾을 수 있는데 특히 당대(唐代)에 와서 성행한 양식으로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

 일본의 경우는 약사사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 통일신라기에도 단탑식(單塔式)가람이 경주시 덕동 고선사지를 비롯하여 경북 경주군 현곡면 나원리사지, 경주시 황복사지, 경북 문경군 가은읍 원북리 봉암사지 등으로 맥을 잇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모두 이 양식으로 일관했다.


3)고려시대의 가람배치

평지가람이든 산지가람이든 모두 단탑식(單塔式)가람배치를 따르고 있다. 전북 익산군 왕궁면 왕궁리사지, 충남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사지,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 경북 예천군 예천면 남본리 개심사지, 서울 홍제동 사형사지, 강원도 동산리 월정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가람배치의 방향도 대부분 남향인데 충북 중원군 미륵대원 같이 북향을 한 경우도 있으나 그것은 극히 일부이다.

 그리고 전북 남원시 왕정동 만복사지는 중문, 탑, 금당순서의 배치에다 탑의 서쪽에 또 하나의 금당이 있는 서전동탑식 (西殿東塔式)의 특이한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4)조선시대의 가람배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대부분이 산지가람(山地加藍)이며 모두 단탑식(單塔式) 가람배치이다. 불상이 봉안된 법당이 중심 예배대상이 되어 규모는 작아지고 약화되었다. 그리고 탑이 금당앞의 중앙선 밖으로 위치하거나 성역(聖域)밖으로 밀려나서 사원의 한 장식품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예는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신륵사, 경기 남양주군 조안읍 송촌리 수종사,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낙산사, 전북 부안군 산내면 석포리 내소사, 존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후기에 들어와서는 금당앞의 좌우에는 승방이 놓이고 금당 앞으로 누각(樓閣), 천왕문(天王門), 금강문(金剛門), 일주문(一柱門)의 순서로 배치되었다. 회랑은 모두 없어져 성역과 사역의 구별이 사라지고 산곡전체가 사찰화(寺刹化)되어 남문에 해당하는 일주문이 그 사역의 시작을 상징하게 되었다.


2.목조건축

우리나라 건축은 고대로부터 중국의 영향권 안에서 발전되어 왔지만 모방이 아닌 그들의 영향권 속에서도 ‘한국화’된 모습으로 존재했다. 중국의 건축기법이 우리나라에 미친 최초의 시기는 북한지역에 낙랑군이 들어선 시기부터 한나라의 문물이 직접 들어 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는 낙랑군이 있던 터에 한대 양식의 와당(막새 기와)이 출토되므로 해서 알 수 있다. 그 후, 중국과 지형상 가장 밀접한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보다 먼저 중국의 영향을 받아들여 활발한 건축활동과 높은 수준의 건축기법을 유지하였는데, 이는 현존하는 그들의 고분, 벽화를 통하여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고분벽화에서 밝혀진 건축술은 목조가 주된 형식인데, 삼실총, 산연화총, 환문총 등에서는 기둥과 공포의 윤곽만을 선으로 간단히 그렸으나, 구신총, 용강대묘, 상영총, 안악1,2,3호분 등에서는 구체적으로 공포의 구성을 상세하게 나타내었고 구조도 세부까지 치밀하게 나타낸 것을 볼 수 있다.

 공포는 동양건축에만 보이는 특색 있는 수법으로 그 위치는 기둥과 지붕의 중간에 놓여 지붕 하중을 기둥에 전달하는 구조상의 기능이 주목적인데, 이러한 기능적인 역할은 차차 의장적 기능으로 발전되어 그 형태에 적지 않은 신경을 썼으며, 그 결과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을 예민하게 나타내는 요소가 되었다. 공포의 구성 부재는 기둥 바로위에 놓인 주두와 전후좌우로 전개되는 각종 첨차 그리고 첨차와 첨차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소로, 첨차위에 놓는 장혀로 되어 있다.

 4세기 후반에 들어온 불교의 영향은 우리나라 건축에 현저한 변화와 발달을 촉진시켰는데 불교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고구려는 왕권의 확립과정에서 불교가 지주 역할을 하였으며, 백제와 신라는 국가 형성과정에서 정신적 기반이 되었으며 널리 보급 되고 신봉되었다. 이들 삼국은 도읍을 중심으로 장대하고 화려한 많은 사찰을 건립하게 되었다.

 목조건축은 그것들이 어떠한 양식으로 건립되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사지의 발굴을 통해 가람배치로만 짐작할 수 있다.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불교를 수용한 고구려는 평원군 원오리 사지, 평암리 사지와 대동군 임원면 상오리 사지등이 대표적인 사지이다.

 고구려에 이어 백제에 있어서는 특히 건축술이 발달되어 그 당시의 장관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신라 황룡사의 9층탑을 건립하였다는 백제의 아비지나 일본 초기 가람의 장엄을 통해서도 백제의 건축술이 탁월하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는 부여 군수리사지와 동남리의 폐사지 및 금강사지 등의 대표적 백제사지를 통해 알 수 있다. 백제의 가람배치는 대부분이 일탑일금당식(一塔一金堂式)이 많은데 익산 미륵사지는 새로운 가람배치로 조사연구가 더 필요하다.

 신라의 사원건축도 대략 고구려나 백제와 많은 유사점이 있다고 추정되는데, 황룡사의 조사에서 밝혀진 당탑의 배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이들 삼국의 불교건축에 있어서 가람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목탑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기의 목탑은 3국 모두 중국에서 전래한 누각형식을 따랐으며 방형이나 다각의 다층탑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2-1목조건축의 종류

피안교(彼岸橋):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돌이켜 보는 자리

일주문(一柱門):산문이라고도 하는데, 산사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문으로써 절 이름 현판이 걸려있다.

천왕문(天王門):사찰을 수호하는 뜻으로 천왕의 모양을 나투어 파사현정의 정신을 일깨우는데 그 정신이 있는 것이다.

해탈문(解脫門):이미 일주문을 넘어 해탈문을 지나게 될 때 벌써 해탈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으로 뜨거운 정진(精進)을 촉진시키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불이문(不二門):불이란 뜻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선과 악이 둘이 아니며, 유와 무가 둘이 아니며, 공과 색이 둘이 아니라는 깊고도 묘한 뜻을 가지고 있다.

대웅전(大雄殿):대웅보전,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왼쪽에 문수보살을, 오른쪽에 보현보살을 모시는 절의 큰 법당, 또는 중앙에 아미타불을 모시고 왼쪽에 관세음보살, 오른쪽에 지장보살(혹은 대세지보살)을 모신다. 부처님을 대웅(大雄) 즉, 대장부라는 뜻으로 ‘대장부를 모신 집’이라는 뜻이다.

비로전(芘蘆殿):맑고 깨끗한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 혹은 대적광전, 대광명전이라 한다.

극락전(極樂殿):미타전, 극락세계의 부처님이신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 혹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한다.

관음전(觀音殿):원통전, 대자대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대웅전 좌측)

지장전(地藏殿):명부전, 대원력의 상징인 지장보살을 중앙에만 모시기도 하나 대부분 우리나라 사찰은 명부의 십왕(十王)을 좌우로 모시기 때문에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미륵전(彌勒殿):용화전이라고도 하며 앞으로 오실 미륵부처님을 모신법당.

영산전(靈山殿):나한전, 응진전, 영산회상의 모습을 재현하여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좌우에 10대제자 혹은 16대 아라한을 모신 법당 혹은 500나한전도 있다.

팔상전(八相殿):부처님의 생멸을 팔상으로 나누어 주로 탱화로 그려서 모신 법당.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모시고 있다.

신중단:불법을 옹호하는 호법신장을 모신 단. 주로 탱화로 그려 모시되 동진보안보살을 주존으로 그려 모시고 있다.

삼성각(三聖閣):산신, 칠성, 독성님을 모신 법당. 사찰에 따라 각각 따로 모시기도 하며 큰법당보다 뒤편에 모시고 있다.

강당(講堂):설법과 강의가 이루어지는 큰 강당 또는 그런 식의 방.

선방(禪房):참선하는 집 또는 방을 말한다. 선종(禪宗)에서는 가장 중요시 하는 집이다.

요사:스님들이 거주하는 방 또는 건물이다.


3.지붕의 유형

 지붕은 건물의 제일 위에 설치하여 구조물을 가리고 보호하는 기능을 하며 지역과 기후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우리나라 지붕은 기와, 이엉, 돌, 나무껍질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자연과의 조화를 최대한 살리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래서 지붕에 곡선적인 미를 활용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였고 기능적인 측면도 고려하여 지붕재를 구성하였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대표적인 목조건물은 기와지붕으로 그 형태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맞배형지붕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붕의 형태로 측면을 단절하여 박공으로 마무리하였다. 측면이 삼각형태의 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진각지붕

 지붕면의 측면이 처마까지 쭉 이어져 있으며 물매를 가져 사다리꼴 모양이다.

팔각지붕

 지붕의 측면은 박공모양으로 하고 다시 그 밑을 이어서 지붕면이 처마까지 경사지게 이어져 측면이 ‘八’와 유사하다. 위용이 있어 격이 높은 건물에 활용되었다.


4.평지형 사찰과 산지형 사찰

 사찰의 가람배치는 건물이 입지하는 형식에 따라 크게 평지형(平地型)과 산지형(山地型)으로 구분된다. 평지형 사찰은 불교 초기의 형태로 도성과 가까운 평지에 두었으며 왕실의 원당(願堂)이나 국찰(國刹)로 많이 지어졌고 도성안에 위치하여 불교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가람배치는 중문, 회랑, 탑파, 금당 등이 일정한 비례를 가지고 정형적으로 배치되었다. 산지형은 불교가 정착한 뒤 수행을 목적으로 인근과 떨어진 산속으로 입지를 정하게 되는데 초기에는 자연의 석굴을 이용하다가 점차 산지에 터를 두고 사찰을 조영하게 되면서 일반화되었다. 특히 산지가 많은 한국은 평지사찰보다는 산지사찰이 많이 지어지는데 여기에는 불교사상의 변화, 한국 고유 민족 신앙의 영향, 기타 종교의 영향, 풍수지리 등의 영향을 들 수 있다.


4-1.평지형사찰의 실예(조계산 송광사)







<송광사 전경도>


4-2.산지형사찰의 실예(하동 쌍계사)

<쌍계사 전경도>


Ⅲ.글을 마치며...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찰의 건축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크게 산지형과 평지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번 답사 때에 유난히 사찰이 많았는데, 산지형과 평지형 사찰 모두 다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거 같다. 이번답사 때도 보림사와 운주사 등의 평지형 사찰과 그리고 쌍계사 선암사 등 대표적인 산지형 사찰을 볼 수 있었다. 지금 보림사와 선암사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사찰이 자리 잡은 곳과 가람배치가 확연히 달랐던 거 같다. 건물들의 위치도 조금씩 달랐다. 산지형은 건물들이 계단식으로 자리 잡은 모습들이 많았다. 산중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기에 평평한 땅이 그리 넓지 못하기에 계단식으로 자립잡지 않아나 싶다. 그리고 지붕의 유형도 맞배형부터 세련미가 넘치는 팔작지붕형태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찰건물의 형식을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거 같다.

 이번 답사는 나에게 네 번째 답사로써 그동안 다른 지역들을 답사하며 보고 느꼈던 걸 이번기회에 종합해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거 같다. 특히 사찰건축에 대해 그 동안 알 고 있던 것은 더 확실히 자세히 알 수 있었고, 모르던 부분들도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은 걸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답사는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우리 전통 건축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거 같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건물을 짓는 우리 선조들의 정신과 그리고 선조들의 미를 사찰건물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도 건물을 지탱하고 건물의 웅장함 그리고 사람을 압도하는 그 장엄함 등도 엿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