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백양사를 가면서

1). 백양사에 대해서

2. 백양사의 건축물들

1). 백양사 사천왕문

2). 백양사 대웅전

3). 백양사 극락보전

4). 백양사 소요대사부도

3. 답사를 마치며



<백양사를 가면서>

지난주에 나는 대학을 들어와서 처음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2박3일이라는 일정으로 전라남도 남도역사기행을 다녀왔다. 첫 답사라 그런지 몰라도 기대가 매우 컸다. 매일 강의실에 앉아서 책으로만 배우던 내용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배운다는 사실에 말이다. 전날에 친구와 고등학교 수학여행 가는 것 같다며 잠을 제대로 들지 못했지만 아침이 되니 피곤하기는커녕 일어나서 씻고 빠진 것은 없는지 이것저것 챙기며 답사 간다는 사실에 기분좋아했던 것을 기억난다. 우리는 학교 박물관에 모여서 인원점검을 하면서 차에 모두 올랐다. 내가 과 생활을 잘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처음 보는 사람들도 꽤 많이 눈에 띄었다.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차는 서서히 움직이며 학교를 뒤로 한 채 우리를 싣고 전라남도로 향했다. 난 답사를 다녀와서 답사주제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를 몰라서 고민하다가 내가 조사하고 발표한 백양사에 대해서 답사보고서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조사를 하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이곳은 2000년 10월에 개봉한 영화 청춘의 촬영지로 유명하다고한다.

내장산국립공원 백양사지구의 가인마을 입구에 있는 야영장에서 자전거타는 장면 등이 촬영되었다고한다. 정말 유명한곳이긴 한가보다. 영화를 찍었다는걸 들으니 말이다. 답사 첫 코스가 백양사에다가 내가 첫 발표라 떨리고 땀이 주룩주룩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면 먼저 백양사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백양사>


백양사는 백제 무왕 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고색 창연한 명찰 중에 명찰 이다. 본래 이름은 '백암사'였고 1034년 중연선사가 크게 보수한 뒤 '정토사'”로 불려졌다.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단다. 3일째 법회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환양선사의 설법을 들었고, 법회가 끝난 날밤 스님의꿈에 흰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더란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는 흰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또한 강원도 명찰에 뒤지지 않는 신비한 전설과 유래가 전해져 내려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백양사를 들어가면서 길게 뻗어있는 길이 매우 좋았다는 것을 기억한다. 백양사로 들어가기 전에 길을 걸으면서 주위 풍경들이 매우 좋아서 나중에 꼭 여자친구와 함께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백양사 사천왕문>


백양사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먼저 들어갔던 건물은 백양사 사천왕문이었다. 사천왕문안에는 우락부락한 사천왕들이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여기백양사 사천왕문은 1974년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44호로 지정되었다.  이사천왕문은 일주문과 불이문의 중간에 있는데, 사찰과 외부세계와의 경계인 일주문을 지나, 진리의 세계를 상징하는 불이문으로 들어가는 의미로, 속세를 벗어나 신성한 사찰로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천왕문안에 있는 사천왕은 불국의 사방을 진호하며, 국가를 수호하는 신이다. 즉 동쪽에 지국천왕, 서쪽에 광목천왕, 남쪽에 증장천왕, 북쪽에 다문천왕이 지키고 있다. 이들은 각각 두 장군을 거느리고 있는데 위로는 제석천을 섬기고, 아래로는 팔부중을 지배한다. 이 옹호신은 불법에 귀의하는 중생을 수호하며, 호세안국을 수행하면서도,모든 악귀와 잡신을 억압하여 정법도량을 수호하는 존엄한 위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우락부락 사천왕을 지나면 백양사 안이 눈에 보인다.  백양사에는 문화재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백양사안으로 들어가서야 알았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극락보전 ,대웅전, 위에서 언급한 사천왕문,소요대사부도등 많은 문화유물이 잘 보전,보관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 다음으로 내가 유심히 본 것은 사찰의 주요 건물인 대웅전이었다.


백양사 대웅전은 보존불상을 모신법당으로 1917년 백양사를 다섯 번째로 중창하면서 송만암 대종사가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백양사에 머문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유심히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백양사 대웅전 역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43호로 지정되어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건물자체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전면의 기둥 간격이 모두 같은 것이 특색이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건축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건축양식은 겹처마에 단층 팔작지붕 다포집이다. 2단의 장대석으로 쌓은 기단에 중앙으로 계단을 두었고, 자연석으로 주초를 놓았다. 기둥은 민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전내에는 본존인 석가모니불이 중앙에 있고 협시인 문수. 보현보살이 좌우에 있었다. 불교 건축양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대웅전 건물이 건축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내 눈에도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잘 지어져있었다.

<백양사 극락보전>

 


그 다음으로 내가 살펴본 것은 극락보전이다. 이 건물은 현 백양사 사찰 내의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조선 선조 7년(1574) 환웅선사가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확실히는 알 수 없다. 구조양식은 창방 위에 평방을 놓고,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 얹은 다포양식으로 외2출목, 내3출목이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양쪽 벽면에는 단색으로 된 벽화가 담담한 처리로 그려져 있었다. 이 극락보전 역시 1972년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32호로 지정되어있었다. 백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만큼 처음 보았을때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고풍스럽다고할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현판에 씌여져있는 극락보전이라는 글씨는 동국진체라는 것이고 극락보전 안에 있는 후불탱화도 진경풍속화의 사실성을 가진 우수한 탱화라고한다. 정말 이것 저곳을 보면서 느꼈지만 수 백년전에 지어진 건물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지금 21세기를 살고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온것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백년 전에 지어진 건물과 지금 내가 공존해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백양사 소요대사부도>


마지막으로 백양사에서 살펴볼 것은 소요대사부도이다. 여기서 부도라는 것은 승려들의 묘탑을 일컫는것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소요대사부도를 대충 눈으로 살짝보고말았다. 대부분 절에 있는 부도려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답사기를 쓰면서 매우 중요한 부도라는 것을 알았다. 소요대사부도는 1974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56호 지정되었다가 2002년에 보물 1346호로 승격되었다. 조선 전기의 승려 태능 이라는 사람의 묘탑으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라고한다.  규모는 높이 158cm, 지름100cm, 둘레 285cm 이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집에와서 사진으로 자세히보니 상당히 오래된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랫부분에는 동물모양의 그림들이 조각되어 부도의 장엄함을 보일려는 의도로 보인다. 소요대사부도는 자세히 살피지 못해서 어떻게 더 써야할지를 모르겠다. 다음번에 백양사를 갈때는 가장먼전 소요대사부도를 먼저 살피기로 결심했다.


답사를 마치며


이번에 첫 답사를 다녀오면서 많은 곳을 답사하고 그랬지만 내가 직접조사하고 자료를 찾은 백양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대학 들어와서 첫 답사이자 첫 답사코스인 백양사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도심에서 잠시 떠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이런 느낌이들까 난 백양사뿐만 아니라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근심걱정들을 모두 떨쳐 버릴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톱니 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생활에서의 나는 무슨기계같았다. 그러나 이번답사를 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하나도 같지 않고 정말 매우 재미있게 답사를 다녀온 것 같다. 책속에서나 보던 많은 유물 유적들을 내 눈으로 직접보고 느낄수 있어서 매우 좋았고 다음 학기면 군대에 가는 친구들과 이렇게나마 추억을 만들수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가슴이 설레인다. 다시 한번 가고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이번답사를 통해서 학업에 도움도 많이 되었지만 내 자신을 되돌아 볼수 있는 기회도 가진 것 같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에서의 나를 재충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나 할까 이번답사는 내생에 몇 번 되지 않는 나를 설레이게 한 추억이었다. 웃고 떠들면 즐거워했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이번 답사기의 끝을 맺을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