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답사를 다녀와서...>



이름 : 맹나래

학번 : 20030343

학부 : 인문학부 사학과

담당 교수님 : 장준철교수님

제출일  : 4월 9일







<목차>

서론


본론

1. 응진전전 3층석탑

2. 북미륵암 3층석탑

3.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4. 천불상

5. 표충사


결론














서론

 인문학부에 들어와 사학과가 되어 올해 처음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내가 속해 있는 동아리가 답사 동아리이기에 답사를 많이 다녀서 답사를 처음 경험하는 것은 아니었고, 중‧고등학교 때에도 소풍을 유적지도 많이 다녔기 때문에 답사는 나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자료를 준비해서 발표를 한다거나, 많은 유물‧유적들을 역사적의미로서 바라본다거나, 어떠한 양식으로 만들어 졌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든지 하는 방식은 나에게 새롭게 다가 왔다. 솔직히 처음 전남지역으로 답사를 간다고 하였을 때는 딱히 내키지가 않았다. 집이 전남 쪽이다 보니 답사 코스 중에서 절반이상이 모두 한번쯤은 가본 곳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번에 발표를 맡은 해남 대흥사는 5번도 더 가본 곳이라서 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놀러만 갔었지 그곳에 어떠한 유물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이번에 발표를 통해서 대흥사에 내가 몰랐던 많은 유물들을 알게 되었다.


본론

 대흥사는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도립공원에 있는 절로서 대둔사라고도 한다. 이절은 기원이 명확치 않으며,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거느린 승군의 총본산영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1604년(선조 37년)에 서산이 자신의 의발을 이 곳에 전한 후 크게 중창되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많은 사적이 있지만 나는 발표 때 하지 못했던 천불상과 표충사를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응진전전 3층석탑‧북미륵암 3층석탑‧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등의 중요한 문화재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응진전전 3층석탑

 이 탑은 보물 제320호로 1963년 1월 21일에 지정되었다. 통일신라신대에 제작된 것으로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다.이 탑의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이 모두 1석(石)으로 되어 있으며, 초층(初層) 탑신에는 네 우주가 있고, 2층 탑신은 그 높이가 급격하게 줄어든 데 비하여 넓이는 그다지 줄지 않은 점이 주목되고 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복발(覆鉢)․앙화(仰花)․보륜(寶輪) 등이 남아 있고, 노반은 4층 탑신으로 잘못 알 정도로 크며, 앙화는 8각형의 꽃송이를 세우고 작은 화형(花形)을 배치하여 횡대(橫帶)를 돌린 점이 특이하다 할 수 있다.  1967년 해체․보수할 때 상층기단 안의 자연판석 위에서 동조여래좌상(銅造如來坐像) 1구가 발견되었는데, 이와 같은 안치수법은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지리산 연곡사(谷寺) 3층석탑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2. 북미륵암 3층석탑.

  1963년에 보물 제301호로 지정된 이 탑은 두륜산 산정 가까이에 있는 북미륵암에 세워진 이 석탑은 이층기단위의 삼층석탑으로서 일반형을 따르고 있다. 기단은 지대석위에 하대석과 중석을 수장장석으로 짜고 중석에는 우주와 탱주일주가 표시되었다. 갑석도 수장구성인데 면은 두껍고 상면에는 거의 경사가 없으며 중앙에는 고현의 괴임이 일단 마련되었다. 상층기단은 표면에 사우주와 중앙에 탱주일주가 각출되었다. 상층기단갑석은 밑에 크게 모각된 일단의 부연이 있고 상면의 경사는 매우 약하며 중앙으로 각형몰딩이 있으며 그위에 탑신을 받았다. 이 석탑은 비교적 정제된 탑이긴 하나 양식에 있어서 일부 약화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석재구성에서 의 규율성과 옥개석이 넓어 안정감이 있다.

3.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이 불상은 답사 때 시간이 없어서 보지 못해 많이 안타까웠었다.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48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대흥사에서 북쪽으로 1.8km쯤 떨어진 두륜봉(頭崙峰) 정상 바로 밑에 북미륵암에 있다. 이 마애불(磨崖佛)은 거대한 암벽(岩璧)을 다듬어 양각 하였는데, 마애불을 벽체로 하여 목조전실(木造前室)을 세워 용화전(龍華殿)이라 하고 있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표현한 이 마애불 소발(素髮)의 머리와 상호(相好)는 풍만하며 귀는 어깨에 까지 닿고 있다. 수인(手印)은 항마인(降魔印)이나 자유스럽지 못하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발이 어색하다. 두광 신광은 삼조의 음각선(陰刻線)으로 나타냈으며 그 내부는 아무 표현이 없고 밖으로는 화염문(火焰汶)을 새겨 장식했다. 그 옆에 좌우로 이좌(二坐)씩의 비천상(飛天像, 高, 1.3m)을 대칭되게 배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불신(佛身)은 전체적으로 보아 상당한 양각(陽刻)이나 인체비례(人體比例)나 조각기법(彫刻技法)이 이에 따르지 못하고 있다. 조성연대(造成年代)는 고려시대 전반기(11세기)로 추정된다. (全高 5.2m, 高 3.6m, 頭高 1.2m, 1.85m, 무릎폭 2.7m 보물(寶物) 48호로 지정됨) 눈은 눈꼬리가 귀위로 치켜올라 갔고 입술은 두껍다. 목에도 삼도(三道)가 있고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인데 왼쪽 어깨에 가사(袈娑) 끈이 보인것이 특징적이며 옷주름은 평행선으로 도식적인 표현에 그치고 있다.


4. 천불상

 이 불상은 교수님께서 한번 보라고 해주셔서 더 기억에 남는다. 천개의 불상이 각기 모두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라고 생각했었던게 생각이 난다. 천불상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974년 9월 24일에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된 대흥사의 천불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48호)에 봉안된 천불상은 경주의 옥석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조각한 정교하고 신비스러운 천개의 불상이다. 천불은 각각 서로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중앙의 삼존불은 나무로 만들어진 목불이다. 대흥사의 유물·유적은 수도없이 많이 있지만 세인의 관심을 끄는 유물은 천불이라 할 수 있다. 천불이란 다불사상(多佛思想)에 근거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삼겁(三劫)에 각기 이 세상에 출현하는 부처님이며, 단순히 천불이라 할 때는 현겁(現劫)의 천불을 말한다. 즉 이세상 어느 때나 무한한 부처가 존재하며, 어느 곳에서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 천불의 표현이다. 천불전에 봉안된 옥불상은 근세에도 영험함을 보였는데 경상도 신도들의 꿈속에 불상들이 현몽하여‘가사를 입혀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대흥사의 한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불상들은 아직도 4년에 한 번씩 가사를 바꾸어 입는데 그 헌 가사를 가지고 있으면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다고 한다.




5. 표충사

기념물 제19호 1976. 9.30 지정

표충사는 서산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사액사우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의 명을 받들어 그의 제자 유정등과 함께 승병을 일으켜 순안, 평양 등지에서 왜구를 토적하였다. 이에 선조가 그의 전공을 칭송하여 교지를 내렸다. 표충사는 조선 정조 12년에 건립되었으며 서산대사의 유물과 유적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 처영과 유정의 진영(嗔影)도 안치되어 있다. 사찰경내에 유교형식의 사당을 겸한 예는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독특한 경우에 속한다. 이곳은 부처의 삼보도량 가운데 하나인 승보(僧寶)를 존중하고 받드는 불가의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구현된 공간이다.


결론

 

 답사를 다녀와서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발표할 때도 조금만 더 잘할걸...이건 발표 때 했어야 하는 건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피곤하다고 그냥 대충 지나친 경향이 많이 있었는데 조금만 더 주의해서 볼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선배님들이나 동기들이 한 발표를 보고 많이 배우기도 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은 답사였기는 하지만 다음 답사를 위해 거친 경험이라고 생각하니 다음 답사 때에는 이번에 못했던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그렇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