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지역 역사 현장 학습을 다녀온 후...


                                                        사학과 2학년 20030366 신기원



1. 전남 지역 역사 현장 학습을 다녀온 소감


 - 인문학부에서 2학년 사학과 학생으로써 처음으로 간 이번 현장 학습에서 많은 체험과 지식들을 얻은 것 같아서 정말 좋았다. 2박3일 그다지 길지 일정에 맞추어 전남의 유적지들을 돌아 봤지만, 너무 바쁘게 이동하다 보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게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이번 현장학습을 통해 우리 주변 고장의 유적들에 대해 다시 한번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찰을 중심으로 돌아 다녀서 인지 더욱더 다른 유적들을 한번 경험해 보고 싶어 졌고, 의문들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들이 직접 조사도 하고 공부를 해서 발표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인상이 깊었고, 답사 유적지들에 대해 보다 쉽게 이해 할 수 있었던 거 같아 좋았다. 어쨋든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기행인 거 같다.


2. 내가 조사하고 발표한 송광사...

 순천 송광사는 전라남도 도립공원인 조계산 서쪽 자락의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번지에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신라 말 혜린선사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길상사라고 했던 것을 고려 희종 때 보조국사가 이 곳에 옮겨와 수선사로 고쳤다가, 훗날 송광사라 부르게 되었다. 우리나라 불교에는 일찍부터 세 가지 보배를 가리키는 삼대 사찰이 있어 이를 삼보 사찰(三寶寺刹)이라고 하는데, 곧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 경상남도 합천의 해인사 그리고 전라남도 순천의 송광사이다. 양산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불보 사찰(佛寶寺刹)이라 하고, 합천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의 경판이 모셔져 있기 때문에 법보 사찰(法寶寺刹)이라고 하며, 순천 송광사는 한국 불교의 승맥(僧脈)을 잇고 있기 때문에 승보 사찰(僧寶寺刹)이라고 한다.

 이러한 3보(三寶) 사찰 중 하나인 순천 송광사는 승보 종찰로서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절이며, 고려시대 때 16국사를 배출한 유서깊은 가람이다. 어느 절이건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혀서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수행하시는 스님을 배출하지 않는 절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사찰 중에서도, 불교계나 국가에 많은 공헌을 했다고 인정받은 국사나 선사의 배출이 가장 많은 송광사를 승보사찰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송광사에는 고려시대 16국사의 영정이 봉안된 국사전(국보 제56호)이 있다. 국사(國師)라고 하면 나라이 스승이 되고, 왕의 스승이 될 만한 고승(高僧)에게 주는 존호(尊號)이다. 한 가람에서 제 1대 국사부터 16대에 이르는 국사가 대를 이어서 배출된 경우도 없고, 이 16국사의 영정이 고스란히 봉안된 사찰도 전무후무하다고 할 수 있겠다.

뿐만아니라 송광사는 전라남도 도립공원인 아름다운 조계산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인근에 주암댐과 주변 유적들이 풍부하고 호남고속도로가 가까이 있어 교통도 편리하여, 아마도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사시사철 때를 가리지 않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아닌가 한다. 6․25전만 해도, 건물 수가 80여 동을 넘어서, 비오는 날에 아무리 넓은 경내를 돌아 다녀도 비를 맞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후 많이 소실되었지만 지금도 30여 동의 건물들이 건재하고 있고 새로 짓는 건물도 많다. 불교에서는 참으로 귀하고 값진 보배로 세 가지 즉 부처님(佛), 가르침(法), 승가(僧)를 들고 이것을 삼보(三寶)라고 하는데, 불교인의 신앙은 바로 이 세 가지 보배를 값지고 귀한 것으로 알고 그에 귀의해 가는 것이다.

* 조계산 : 소백산맥에 속하며 전남 순천에 자리잡은 해발 884m의 산으로, 고온 다습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 불리웠던 명산이다.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 ․폭포 ․약수 등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1979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98년에 사적 및 명승 제7호로 지정되었으며, 산세가 부드럽고, 비교적 높지 않아 3~4시간이면 그리 힘들지 않게 등산을 할 수 있다.

송광사의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첫째는 18명의 큰 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으로 곧 '송(松)'자를 파자하면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 스님을 뜻하고(참고로 솔 송자를 파자하면 ' 木 + 公'으로 나무의 공작이 되어 예로부터 귀한 나무로 인정되어 귀하게 쓰여짐),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 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며, 둘째로는 보조 국사 지눌스님과 연관된 전설로서 곧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지금의 주암댐 옆에 있는 모후산에서 나무로 깍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 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 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 하며,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찍부터 조계산에 소나무가 많아 '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송광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이곳에서 정혜결사 운동을 펴 수도와 참선의 도량으로 삼은 뒤부터, 불, 법, 승 중 승보사찰로서 큰 절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 차례에 걸친 외적의 침입과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1969년 조계총림이 발족하면서, 대웅전을 비롯하여 30여동의 전각과 건물을 새로 짓고 중수하는 등, 모두 8차에 걸친 중창으로 도량의 모습을 일신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승보종찰로서의 위용을 갖추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송광사의 문화재*

 우리나라에서 목조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송광사에는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국보 제42호),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국보 제43호), 국사전(國師殿:국보 제56호) 등 3점이 국보로 지정돼 있고,  대반열반경소(大般涅槃經疏):보물 제90호), 경질(經帙: 보물 134), 경패(經牌: 보물 제175호), 금동요령(金銅搖鈴:보물 179),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관세음보살보문품 삼현원찬과문(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보물 204),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大乘阿毘達磨雜集論疏:보물 205호),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보물 206호), 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經疏開玄褻:보물 제207호), 하사당(下舍堂:보물 263호), 약사전(藥師殿:보물 302호), 영산전(靈山殿:보물 303호), 고려 문서 즉 노비첩(奴婢帖) 수선사형지기(修禪社形止記:보물 572호) 등 9점의 보물이 있다.

이 밖에도 자정국사사리함(慈靜國師舍利函;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8 호), 능견난사(能見難思;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호),고려문서 금강저(金剛杵;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2호), 고봉국사 주자원불(高峰國師廚子願佛; 전라남도 유형문화 재 제28호),팔사파문자(八思巴文字;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호) 등 지방 유형문화재 8점이 있으며, 추사(秋史)의 서첩(書帖), 영조(英祖)의 어필(御筆), 대원군(석파)의 난초 족자 등 많은 문화재가 경내에 있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인근 순천시 승주읍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본시 신목이었던 이팝나무(제36호)와 천자암의 용틀임하듯이 비비꼬인 곱향나무인 쌍향수(제88호)가 있는데, 이 두 천연기념물에는 모두 다 신기한 전설이 있다.

먼저 이팝나무는 전설에 의하면, 못자리를 시작할 때, 그 해에 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들고, 잘 피지 않으면 흉년이 들며, 거의 피지 않으면 가뭄이 심하게 든다고 하며, 쌍향수는 전설에 의하면, 보조국사와 그의 제자인 당나라의 담당 왕자가 이 곳을 지나다가, 땅에 꽂았던 지팡이에 뿌리가 내려 싹이 났다고 하는데,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이 나무의 가지가 모두 다 밑으로 향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을 느끼게 해준다.


*송광사의 신비*

 송광사에는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비한 것이 세가지 있다.

우선 일주문을 지나 우화각 옆에 꽂혀져 있는 높이 15m는 족히 되어보이는 고향수(枯香樹)가 있어, 송광사를 찾는 수 많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끄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 것은 보조국사의 지팡이로서 입적하신 보조 스님이 '만일 이 지팡이에 싹이 돋고 살아난다면, 내가 다시 태어날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는 신비한 지팡이이다. 정말 이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보조스님께서 다시 살아날 것만 같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여 신비한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는 우화각 다음의 사천왕상 앞에 있는(그 전에는 대웅전 안뜰 한 옆에 있었음) 그 유명한 '비사리 구시'가 있다. 원래 비사리 나무는 오랫동안 자란다고 해도 그저 회초리감 정도밖에 자라지 않아서, 이 것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산테미(?)나 물건 담는 소쿠리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나무인데, 이 비사리 구시는 전라북도 남원시 세전골에서 베어온 것으로 어른 키 높이 정도의 굵기에 팔을 한껏 펼쳐도 저쪽이 닿지 않을 정도로 커서 쌀 7가마 분량의 밥을 담을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 크기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불가사의 하게 거대해서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신비감을 더해준다.

 마지막으로 능견난사라는 그릇인데, 이 그릇은 송광사 제6세 원감국사가 중국의 원나라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 그릇을 아래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가 다시 거꾸로 위의 그릇부터 밑에서부터 쌓아 올려도 차곡차곡 쌓아지는 신비스러운 그릇으로서, 조선 숙종 임금이 신비스럽게 생각하여 유명한 장인에게 명하여 이 그릇을 그대로 재현해 보게 했는데도 도저히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능히 보고도 못 만든다는 뜻으로 임금이 친히 능견난사라고 명명했다고 하며, 원래 700여개의 그릇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30개가 남아있어 송광사 경내의 성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송광사에서 선암사쪽으로 넘어가는 조계산 자락의 천자암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쌍향수를 빼놓을 수 없겠다. 이 쌍향수는 옛날 보조스님이 당나라의 담당 왕자와 함께 이 곳을 지나다가 짚고 가던 지팡이를 꽂아 두었는데 이 지팡이가 자라서 쌍향수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 쌍향수는 두 나무가 서로 용틀임하듯이 서로 꼬며 자라있고, 가지들이 모두 거꾸로 뻗어 있어 이 전설을 뒷받침해 주는 듯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비감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