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답사 첫날 전남으로 출발하는 당일 나는 전날 몸이 안좋았던 관계로 답사를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이 도우사 당일 많은 회복이 있어서 답사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번 답사 코스는 중학교때 수학여행으로 갔다왔던 곳이 많이 있었고 그리고 다시 가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번 답사는 나에게 흥미와 여러 지식을 쌓게 해주었다. 특히 구례 화엄사 석가모니 사리가 그곳에 많이 보관되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너무 새롭고 놀라웠다. 답사하는동안 구례 연곡사에 대해 준비를 했었는데 시간이 없는 관계로 다 발표하지 못한 점이 아쉬워 몇 가지 더 덧붙인다. 


연곡사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土旨面) 내동리(內東里) 지리산자락에 있는 사찰.

종파 : 대한불교 조계종

창건시기 : 544년(신라 진흥왕 5)

창건자 : 연기조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末寺)이다. 544년(신라 진흥왕 5), 화엄사의 종주(宗主)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여 임진왜란 때 병화로 인하여 불탄 것을 중건하였는데, 6․25전쟁 때 다시 불탔고, 그 후 중건하였다가 1981년 구 법당을 헐고 정면 5칸, 측면 3칸의 웅장한 새 법당을 세웠다.

경내에 국보 제53호인 연곡사 동부도(東浮屠), 국보 제54호인 연곡사 북부도를 비롯하여 보물 제151호인 연곡사 삼층석탑, 보물 제152호인 연곡사 현각선사탑비(玄覺禪師塔碑), 보물 제153호인 연곡사 동부도비, 보물 제154호인 연곡사 서부도 등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이곳은 조선 말기 수백 명의 의병이 왜군과 싸운 곳으로 당시 순절(殉節)한 의병장 고광순(高光洵)의 순절비가 동백나무숲 아래 있다.


고광훈


한말의 의병장.

본관 : 장흥(長興)

호 : 동강(桐崗)

활동분야 : 독립운동

출생지 : 전남 담양

주요수상 : 건국훈장 애국장(1990)


본관 장흥(長興). 호 동강(桐崗). 전라남도 담양 출생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후손이며, 한말의 의병장인 고광순(高光洵)의 동생이다. 1906년 형 광순과 함께 구례(求禮)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연곡사(燕谷寺)에 본부를 두고 각지의 일본군을 교란시켰다. 형이 연곡사에서 전사하자 남은 의병을 인솔하고 끝까지 항전하다가 붙잡혀 3년간 진도(珍島)로 유배당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연곡사 동부도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부도.

지정번호 : 국보 제53호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

시대 : 통일신라시대 후기

크기 : 높이 3m

종류 : 부도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53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3m이다. 연곡사는 544년(신라 진흥왕 5)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한 절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건하였는데, 6․25전쟁 때 다시 불타서 그 후 또 중건하였다. 연곡사에는 이 동부도 외에도 북부도, 서부도 등 세 개의 부도가 남아 있는데, 동부도는 그 중 형태가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며,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연곡사 동쪽의 네모난 바닥돌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을 기본형으로 삼았다. 하대석(下臺石)은 두 단으로 하단에는 구름무늬를, 상단에는 사자를 조각하였다. 중대석에는 둥근 통 모양의 안상(眼像) 속에 팔부신중(八部神衆)을 두었다. 상대석 역시 두 단으로 나누어 연화무늬와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둥근 테를 두르고 그 안에 가릉빈가(伽陵頻迦)를 새겨두었다. 옥신의 각면에는 우각(隅角)마다 중간에 둥근 마디가 있는 기둥모양을 세우고, 문살 ․보여(寶輿)․사천왕상이 얕게 양각되었다. 옥개는 2중연목(二重緣木)과 기왓골이 정교하게 모각되었으며, 상륜에는 봉황과 연화무늬를 새긴 석재가 얹혀 있다.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 부도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으로 반출될 뻔하기도 했다. 기단이 좀 높아 보이는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준다. 조각수법이 뛰어나서 통일신라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북부도는 이 동부도를 본뜬 것으로 보인다.


연곡사 동부도비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비.

지정번호 : 보물 제153호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소재지 :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산54-1 연곡사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 1.2m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53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1.2m이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연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로 신라 때인 544년(진흥왕 5)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여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건하였는데, 6․25전쟁 때 다시 불탄 뒤 중건하였다. 경내에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연곡사 동부도(국보 53), 연곡사 북부도(국보 54), 연곡사 서부도(보물 154) 등의 문화재가 있는데, 이 비(碑)는 동부도 앞쪽에 있다.

비문을 새긴 비신(碑身)은 임진왜란 때 없어지고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인 귀부(龜趺)와 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인 이수(首)만 남아 있다. 비석의 받침돌은 네 다리를 사방으로 쭉 뻗고 엎드린 용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사실성이 떨어지며, 거북머리는 훼손된 것을 복구하여 붙여놓았다. 용의 등에는 새 날개 모양의 무늬를 조각하였고, 등 중앙에 비를 끼우도록 되어 있는 비좌(碑座)에는 구름무늬와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머릿돌은 용무늬를 생략하고 구름무늬만을 새겼으며, 꼭대기에는 불꽃무늬를 장식한 연꽃봉오리 모양의 보주(寶珠)가 돌출되어 새겨져 있다. 화강석으로 만든 동부도비는 귀부와 이수의 조형이 작은 편인 고려시대의 석비이다.


연곡사 북부도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 경내 북쪽에 있는 고려 초기의 부도.

지정번호 : 국보 제54호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

시대 : 고려 초기

크기 : 높이 3m

종류 : 부도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한 절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건하였는데, 6․25전쟁 때 다시 불타서 그 후 또 중건하였다. 연곡사에는 이 북부도 외에도 동부도, 서부도 등 세 개의 부도가 남아 있는데, 이 북부도는 고려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부도는 연곡사의 북쪽에 네모난 바닥돌 위에 세워져 있다.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구름무늬를 조각한 8각 하대석을 놓고 그 위에 16잎의 연화무늬를 새겨 간석(竿石)을 받치고 있다. 중대석 각면에는 안상(眼象) 안에 조식(彫飾)이 있고, 팔각 탑신의 각 면은 향로와 사천왕상(四天王像) 등으로 장식하였다. 상대석에는 둥근 테를 두르고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를 양각하였다. 비교적 넓은 옥개석은 목조건축의 양식을 따라 이중연목(二重緣木), 기왓골 등을 세밀히 모각(模刻)하였고, 상륜부는 완전하며 4마리의 봉황이 날개를 벌린 돌을 얹고 다시 연화석 보륜(寶輪) 등이 놓여 있다.

이 부도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누구의 부도인지는 모르고 다만 '북부도'라고 부른다. 동부도가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반면에 북부도는 그 후인 고려시대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서부도는 조선 때 만들어진 것이다.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한 부도로서 8각형 부도를 대표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다.


연곡사 삼층석탑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지정번호 : 보물 제151호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소재지 :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산54-1 연곡사

시대 : 통일신라시대

크기 : 높이 6m

종류 : 석탑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6m이다. 연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로 신라 진흥왕(眞興王:재위 540~576) 때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세운 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건하였는데, 6․25전쟁 때 다시 불탄 뒤 중건하였다. 연곡사에는 이 3층 석탑을 비롯해 연곡사 동부도(東浮屠:국보 53), 연곡사 북부도(北浮屠:국보 54), 연곡사 서부도(西浮屠:보물 154), 연곡사 현각선사탑비(玄覺禪師塔碑:보물 152), 연곡사 동부도비(東浮屠碑:보물 153) 등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연곡사의 법당(法堂) 남쪽에 있는 사각형의 3층 석탑으로 3중의 기단(基壇)을 가지고 있으며 지대석에는 하대석을 받치기 위한 낮은 1단의 석재가 있고, 그 위에 하대석, 그 위에 중대석, 그 위 중석(中石)에는 우주(隅柱:탑 몸돌의 모서리에 세운 기둥)와 탱주(撑柱:탑의 기단 면석 사이에 세우거나 면석에 돋을새김한 기둥 모양)가 있다. 갑석(甲石) 상면에는 완만한 경사가 보이고 중앙에는 각형과 호형(弧形)의 몰딩이 있다. 기단의 각 층에는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맨 윗기단이 넓은데 비해 탑신부(塔身部)는 줄어들었으나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는 석탑이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었으며, 각 층의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마다 4단이고 추녀 밑은 수평이며 지붕돌의 경사도는 경쾌한 곡선을 그린다. 1967년 떨어져 있던 석탑의 3층 지붕돌을 복원공사할 때 위층 기단 안에서 동조여래입상(銅造如來立像)이 발견되었다.

특이한 3중 기단 양식과 탑신부가 기단에 비해 줄어들었으나 안정감을 주는 아름다운 석탑으로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곡사 서부도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土旨面) 내동리(內東里) 연곡사 경내 서쪽에 있는 고려시대의 부도.

지정번호 : 보물 제154호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소재지 :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산54-1 연곡사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 3.6m

종류 : 부도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3.6m이다. 연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로 신라 때인 544년(진흥왕 5)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여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건하였는데, 6․25전쟁 때 다시 불탄 뒤 고쳐 세웠다. 부도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묘탑(墓塔)으로 연곡사 서쪽에 있는 서부도는 소요대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8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부도로 하대석의 하단은 8각단이고 상단에는 중앙에 몰딩이 있으며 그 주위에 홈이 새겨져 있다. 중대석은 편구형(扁球形)으로 아래 위로 홑잎 연꽃이 조각되었고, 상대석 밑에는 앙련(仰蓮: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이, 위에는 높은 호형(弧形) 굄이 있다. 탑신(塔身)은 모두 8면인데, 1면만 문짝 모양이 새겨져 있고 나머지 면에는 모두 신장상(神將像)이 1구씩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여덟 군데의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얹어두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다.

연곡사에는 서부도를 비롯해 동부도(국보 53)․북부도(국보 54) 등 세 개의 부도가 남아 있는데, 서부도는 연곡사의 다른 부도들에 비해 형태나 꾸밈은 뛰어나게 아름답지 않지만 각 부분의 비례가 우아한 작품이다. 조형적으로는 아름다운 균형미를 볼 수 있으나 조각수법의 생략화로 둔중해 보인다. 탑신에 새겨진 명문(銘文)에 따라 조선시대인 1650년(효종 1)에 세워진 부도로 추정된다.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현각선사탑비.

지정번호 : 보물 제152호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소재지 :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산54-1 연곡사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귀부 높이 1.12m, 이수 높이 75㎝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52호로 지정되었다. 탑비의 귀부 높이는 1.12m, 이수 높이는 75㎝이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연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로 신라 진흥왕(眞興王:재위 540~576) 때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여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건하였는데, 6․25전쟁 때 다시 불탄 뒤 중건하였다. 연곡사에는 현각선사탑비를 비롯해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연곡사 동부도(東浮屠:국보 53), 연곡사 북부도(北浮屠:국보 54), 연곡사 서부도(西浮屠:보물 154)와 연곡사 동부도비(東浮屠碑:보물 153), 연곡사 삼층석탑(보물 151) 등의 문화재가 있다.

현각선사탑비는 고려시대의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979년(경종 4)에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때 비신(碑身)은 없어졌고 현재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인 귀부(龜趺)와 비석의 머릿돌인 이수(首)만 남아 있다. 귀부는 몸뚱이가 크게 손상되었고, 비좌(碑座)의 네 측면에는 귀꽃과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 이수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수의 용의 형상은 웅건하며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비를 받치고 있는 돌거북은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수염을 가진 용머리를 하고 있는데 머리 정상에는 뿔이 하나 돌출되어 있다. 받침돌 위에 놓여 있는 비의 머릿돌에는 여러 마리의 용이 서로 얽힌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가릉빈가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


산스크리트로 ꡐ칼라빈카ꡑ의 음사(音寫)이다. 《아미타경(阿彌陀經)》 《정토만다라(淨土曼茶羅)》 등에 따르면 극락정토의 설산(雪山)에 살며, 머리와 상반신은 사람의 모양이고, 하반신과 날개․발․꼬리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울며, 춤을 잘 춘다고 하여 호성조(好聲鳥)․묘음조(妙音鳥)․미음조(美音鳥)․선조(仙鳥) 등의 별명이 있다. 이 새의 무늬를 조각한 불교가 성행했던 통일신라 시대의 수막새 기와들과 구리거울이 지금도 전해 오고 있으며,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연곡사북부도(국보 54)와 연곡사동부도(국보 53)의 상대석(上臺石) 안상(眼象) 안에 각각 이 새가 새겨져 있다.


고려부도


고려시대의 사리탑(舍利塔).


고려시대의 부도는 크게 신라식의 팔각당형(八角堂形)과 기타 특수형으로 대별된다. 팔각당형은 신라 말기의 부도처럼 대석부(臺石部)가 큰 것이 주류를 이루고, 특수형은 석종형(石鐘形)․석등형(石燈形)․골호형(骨壺形)․석탑형(石塔形)․사각당형(四角堂形) 등 여러 가지로 구분된다.

팔각당형의 경우, 이화여자대학교에 있는 부도는 고려 초의 팔각당형 부도의 좋은 보기이며, 간석(竿石)에는 운(雲)무늬가, 탑신석(塔身石)에는 문호형(門戶形)과 신장(神將)이 조각되었고, 탑신부와 대석부의 균형이 좋은 신라 후기 양식을 이어받고 있다.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居頓寺圓空國師勝妙塔)은 팔각중대석(八角中臺石)이 약간 높으나 대석부가 탑신부에 비해서 과히 크지 않으며, 흥법사 염거화상탑(興法寺廉居和尙塔)에서와 같은 고식(古式)을 보이는 복고형식으로 주목된다. 연곡사(飢谷寺)의 동 ․북 2기의 부도는 상륜부(相輪部)가 갖추어진 팔각당형의 한 예로서 신라 말의 실상사 수철화상능가보월탑(實相寺秀澈和尙楞伽寶月塔)의 양식과 통한다.

이 밖에 팔각당형 부도로서 고달사지부도(高達寺址浮屠), 보현사 낭원대사오진탑(普賢寺朗圓大師悟眞塔), 봉암사 정진대사원오탑(鳳巖寺靜眞大師圓悟塔), 쌍계사부도(雙磎寺浮屠) 등을 들 수 있다.

특수형 부도의 경우 금산사석종(金山寺石鐘)은 신라의 태화사지부도(太和寺址浮屠)의 뒤를 이은 고려 최고(最古)의 석종형 부도로서 2단의 석단(石壇) 위 중앙에 놓인 방형판석좌(方形板石座) 위에 있고, 이러한 단(壇)은 석종 그 자체의 형태와 함께 인도의 스투파(sutupa)를 모방한 것으로 보이나 세부에 많은 지방화를 볼 수 있다.

신륵사보제존자석종(神勒寺普濟尊者石鐘)은 방형석단(方形石壇) 위에 2중대좌(二重臺座)를 놓고 그 위에 안치한 것으로 높이도 낮고 하대용두석(下帶龍頭石) 등도 생략된 간단한 양식이며, 이는 조선시대에 성행한 석종의 직접적인 규범양식이 되었다.

정토사 홍법국사실상탑(淨土寺弘法國師實相塔)은 팔각형하대석(八角形下臺石)에 팔각형부련중대석(八角形符蓮中臺石) 받침, 운룡(雲龍)무늬를 새긴 팔각형간석(八角形竿石) 등으로 된 팔각당형이지만, 탑신부는 편구형(偏球形)을 끈으로 졸라맨 듯 조각하여, 이 구형은 사리기(舍利器)가 아니면, 골호(骨壺)를 모방한 것이 역연하다.

영전사지(令傳寺址) 사리탑 2기는 2층기단을 가진 일반형 석탑인 것이 특이하고,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은 사각당형 부도로 화려하고 정교하다.

불국사 사리탑은 석등형으로 방형지대석(方形地臺石) 위에 팔각형하대석, 그 위에 팔판간석(八瓣竿石) 받침을 얹고, 긴 운문간석(雲紋竿石)을 놓아 기단부를 구성하였으며 그 위에 원통형 탑신부와 팔각옥개석을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