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를 다녀와서

서론


3월 23일 2박3일의 일정으로 답사를 가게 되었다.

나는 고교시절 내내 향토답사반으로 활동을 했었지만 대학와서 처음으로 가는 답사였기에 설레는 맘을 안고 우리의 목적지인 전남지역으로 출발하였다.

답사코스로 유난히 사찰이 많았고 그 중의 한 곳인ꡐ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ꡑ는 천불천탑에 대한 민중의 염원이 담겨있는 운주사에 대해서 알아볼까 한다.


본론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도선(道詵)이 세웠다는 설과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전해지나, 도선이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법당과 석불, 석탑이 많이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 있다가 1918년에 박윤동(朴潤東)․김여수(金汝水)를 비롯한 16명의 시주로 중건하였다. 건물은 대웅전과 요사채, 종각 등이 있다.


천불산 다탑봉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불교의 깊은 혼이 서린 운주사는 우리나라의 여느 사찰에서는 발견 할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불사를 한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1942년까지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탑 12기와 석불 70기만 남아 있다. 크기는 10m 이상의 거구에서부터 수십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매우 투박하고 사실적이며 친숙한 모습이 특징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 좌우의 산등성이에 1,000개의 석불과 석탑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980년 6월에는 절 주변이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로는 연화탑과 굴미륵석불, 보물 제796호인 9층석탑, 보물 제 797호인 석조불감, 보물 제798호인 원형다층석탑, 부부 와불(臥佛) 등이 있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우리 국토의 지형을 배로 파악한 도선이 배의 중간 허리에 해당하는 호남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기울 것을 염려하고 이곳에 1,000개의 불상과 불탑을 하룻밤 사이에 조성하였다고 한다. 잘 알려진 부부와불은 천불천탑 중 마지막 불상으로 길이 12m, 너비 10m의 바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의 조각이다. 이 불상을 일으켜 세우면 세상이 바뀌고 1,000년 동안 태평성대가 계속된다고 한다.


또한 운주사는 지석천을 건너 능주벌을 가로 지르며 나주호쪽 낮은 산자락에 엎드려 있다. 근현대 소설이나 영화 ꡒ아제아제 바라아제ꡓ 등 무대로 자주 등장하면서 세간의 궁금증을 유발하게 되었는데, 한 도량에 이처럼 많은 석불과 석탑이 세워진 곳은 여기 뿐이다.

산비탈이나 논두렁 밭이랑 바위틈 여기저기에 석불과 석탑에 대한 일반규범을 무시한 채, 만들다 만 공작물처럼 아주 파격적인 생김새로 흩어져 있는 천불천탑. 남도지방의 전형적인 하층계급문화유산으로 꼽히며 풍수지리설의 시조인 도선국사가 이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지금은 석탑 21기, 석불 90여 구가 남아 있지만, 산등성이에 누워 있는 ꡐ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ꡑ 는 천불천탑에 대한 민중의 염원이 담겨 있다. 아마도 운주사 천불천탑은 우주법계에 계시는 부처님이 강림하시어 하화중생의 대 설법을 통한 불국정토의 이상세계가 열리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조성한 대불사가 아닐까한다.


천불천탑의 운주사는 인도네시아의 보도부두루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 어깨를 견주는 세계적 문화유산으로서 그가치가 높아 순례자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화순고인돌과 천불천탑의 신비를 주제로 운주사에서 해마다 무르익은 가을에 화순운주대축제가 열린다.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 바위너설 야지에 비로자나부처님(부처님의 빛, 광명)을 주불로 하여 여러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있다.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이러한 불상배치와 불상제작 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볼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운주사 석탑들은 모두 다른 모양으로 각각 다양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연꽃무늬가 밑에 새겨진 넙쩍하고 둥근 옥개석(지붕돌)의 석탑과 동그란 발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을 닮은 백제계 석탑, 감포 감은사지 석탑을 닮은 신라계 석탑, 분황사지 전탑(벽돌탑) 양식을 닮은 모전계열 신라식 석탑이 탑신석의 특이한 마름모꼴 교차문양과 함께 두루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운주사 탑들의 재료로 쓰인 돌은 석질이 잘 바스라져서 오히려 화강암질의 강한 대리석보다 더 고도의 기술을 습득한 불모(석공)님이 아니면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석질로 빚어만든 탑이 이렇게 수많은 세월의 풍상을 버티어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이곳의 조형자들의 기술이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는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듯 싶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운주사에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 한다.

 

 

운주사 구층석탑 [ 雲住寺九層石塔 ]


1984년 11월 30일 보물 제796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10.7m이다. 운주사는 화순군 도암면 천불산(千佛山)에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에 딸린 사찰로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도선(道詵:827∼898)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넓은 자연석을 놓아 이를 하층 지대석(地臺石) 겸 기단석(基壇石)으로 삼고, 그 위에 상층기단 받침을 3단으로 새긴 다음, 상층기단 겸 탑신(塔身)을 올려놓아 9층까지 이루었다. 위층 기단의 가운데돌은 4장의 널돌로 짜였고,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긴 뒤 다시 면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굵게 새겨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초층의 탑신을 제외한 각 층 탑신 4면에는 이중으로 마름모 모양을 양각하여 그 안에 십자형 꽃무늬를 조각하고 옥개석(屋蓋石) 밑면 역시 사선문양을 양각하였다.상륜에는 옥개형 석재를 올려놓았고, 그 위로는 보주(寶珠)를 생략하였다.


거대한 암반 위에 세워진 이 탑의 꼭대기에는 원기둥모양으로 다듬은 돌과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이 놓여 있다. 옥개석의 밑면에 받침을 생략하였거나 각 면에 새긴 조각의 특징 등 탑의 조성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운주사 석조불감 [ 雲住寺石造佛龕 ]



1984년 11월 30일 보물 제797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5.3m, 재료는 화강석이다. 운주사는 화순군 도암면 천불산(千佛山)에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에 딸린 사찰로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도선(道詵:827∼898)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가리킨다. 운주사의 석조불감은 건물 밖에 만들어진 감실(龕室)이다. 감실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양쪽 벽을 판돌로 막아두고 앞뒤를 통하게 하였다. 감실 안에는 남쪽과 북쪽을 향하고 있는 여래좌상이 있다.


불감은 맨 밑에 4각의 평판석(平板石)으로 지대석(地臺石)을 깔고, 그 위로 4각 돌기둥을 세워 석실을 조성하여 이를 받치게 하였으며, 그 위에 팔작(八作)지붕 모양의 옥개석(屋蓋石)을 얹었고, 석실 전면과 후면에 각각 불상을 안치하였다. 원래는 석실 전후에 석문을 달아 여닫게 하였던 모양이나, 지금은 석문을 달았던 흔적만 남아 있다.


남쪽의 불상은 전체높이 255㎝로 소발의 머리에 길고 예리한 코, 작은 입과 목에 삼도(三道)가 표현되었고 법의(法衣)는 양 어깨를 모두 감싼 통견(通肩)이며 도식적인 옷주름을 간략히 표현하였다.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배에 대고 왼손을 무릎 위에 얹은 모습인데, 입체감이 없는 경직된 모습이다. 전체높이 264㎝인 북쪽의 불상도 같은 양식을 보이는데 옷 속에 싸인 두 손은 가슴에 모아 지권인 지구 지권인(智拳印)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화되고 경직된 불상 양식과 도식적인 옷주름 표현 등 불상을 새긴 수법은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불상 양식을 나타낸다.


운주사 원형다층석탑 [ 雲住寺圓形多層石塔 ]


1984년 11월 30일 보물 제798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5.71m이다. 화순군 도암면 천불산(千佛山)에 있는 운주사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도선(道詵:827∼898)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둥근 이중 기단(基壇) 위에 높직한 10각의 돌을 짜올리고 그 위로 앙련화(仰蓮花: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무늬)를 상징한 원형의 옥개석(屋蓋石)을 얹었다. 그 위에는 짤막한 원형의 탑신(塔身)에 원형 옥개석을 차례로 얹어 6층탑을 이루었는데, 원형은 층수가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각 층의 원형 옥개석은 상층부로 올라감에 따라 완만하게 체감되어 있다. 탑신은 몸돌과 옥개석이 모두 원형이고, 층마다 몸돌 측면에 선이 돌려져 있다. 상륜(相輪)에 보륜(寶輪)·보주(寶珠)가 전혀 없는, 버섯모양의 석탑으로 고려의 특색이 있는 희귀한 탑이다.


기단의 맨윗돌은 윗면이 편평하고 옆면이 둥근데 비해, 탑신의 옥개석은 반대로 아랫면이 편평하고 윗면이 둥근 모양으로 아래위의 조화와 안정감을 이룬다. 이 석탑은 그 형식이 매우 특이한데 제작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결론


답사는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운주사의 경내를 주의깊게 돌아보면 어느하나 같은 것이 없는 각자의 개성이 살아 숨쉬고, 그 당시 참여한 석공의 천재성이 말없이 메아리치는 듯 했다.

이번 답사에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점과 사전지식이 부족했지만  2학기 때 가는 2번째 답사때에는 이런 아쉬운 점을 채워서 좀 더 의미있는 답사가 되길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