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 초당을 다녀와서 ☆

인문 학부 사학과 20030322 김세준

 답사 두 번째날에 간 곳중 내가 발표를 맡은 지역은 다산초당 이었다. 다산은 정약용의 호로 실학의 완성자로 유명하다. 우선 전라 남도 강진은 남도 문화의 일번지이다. 월출산 아래 멀리 다도해를 바라보며 남단으로 자리 잡은 강진은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이 서러운 유배 생활을 하곤 했던 곳으로 당대 최고의 실학자였던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이 무려 18년간이나 유배됐던 곳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수많은 명저(名著)를 저술했기에 강진은 정약전·약종·양용 형제의 고향이자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인 마재 못지 않은 중요한 사적지로 손꼽힌다. 정재원(丁載遠)의 넷째아들로 이승훈의 처남이기도 한 다산은 경기도 양근 마재에서 태어나 성호 이익의 학풍을 이어받아 실학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된다.

 정약용 선생님은 귀양살이 8년째 되던 1808년(순조8) 봄. 만덕산 귤동 마을에 터 잡고 살던 해남 윤씨들의 배려로 다산초당(茶山草堂)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일찍 돌아가신 선생님의 모친이 공재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손녀이고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증손이니 귤동마을 해남 윤씨 집안은 선생님의 외가 친척들이다.
이곳에서 유배가 풀릴 때까지(1808∼1818) 본격적인 학문탐구와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등 방대한 저술활동이 이루어졌다. 사적 제107호인 다산 초당은 강진만(구강포)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18년의 유배 생활 가운데 10년을 지냈던 곳으로 다산의 체취가 그대로 간직된 다산4경(정석, 약천, 다조, 연지석가산)을 볼 수 있다.

[초의선사의 다산초당도]

['다산초당' - 추사 김정희 서체 집자 현판]

['관어재' - 다산초당 현판]

다산초당 4경

묘역입구정문 문성문

[정석]

[약천]

[다조]

[연지석가산]

동암

[다산초당의 서암]

[다산초당의 동암]

['보정산방' - 추사 김정희 친필 동암현판]

['다산동암' - 다산 선생님 글씨 집자 현판]

[다산선생님께서
딸 아이에게 보낸 그림]

천일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