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 仙巖寺 )를 다녀와서...

                                                    00 이진민


자그마한 국토 면적에 비하면 수많은 절이 전국방방곳곳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

하지만 그 수많은 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선암사를 꼽겠습니다. 언제 찾아도 변함 없이 좋고, 언제 찾아도 늘 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선암사!

선암사를 처음 찾았던 날, 저는 마음속에 품어버렸습니다. 또한 저는 이번 답사를 다녀오면서 많은 것을 새삼 깨달았는데 특히 답사를 가기 전 사전 조사를 한 선암사에 많은 애착(?)을 갖었습니다.간략하게 선암사에 대해서 소개하자면 선암사는 전라남도 순천시(順天市) 승주읍(昇州邑) 죽학리(竹鶴里) 조계산(曹溪山) 있는 절로써 542년(진평왕 3)에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처음으로 개창하여 비로암(毘盧庵)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875년(헌강왕 5)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더 신빙성이 있습니다. 1088년(선종 6) 의천(義天)이 중창하였다.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 석종(石鐘)․철불(鐵佛)․보탑(寶塔)․부도(浮屠)․문수전(文殊殿)․조계문(曹溪門)․청치 등을 제외한 건물은 모두 병화에 소실되었다. 1660년(현종 1) 경준(敬俊)․경잠(敬岑)․문정(文正) 등 세 대덕이 중건하였고 그 뒤에 침굉(枕肱)이 많은 당우들을 보수하였다. 1911년 6월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사찰령(寺刹令)>과 같은해 7월 반포된 <사찰령시행규칙>에 따라 30본사가 정해질 때 30본사 가운데 하나가 되어 승주군과 여수시․여천군(麗川郡)의 말사를 통섭하였습니다. 6․25 이전에는 불각(佛閣) 9동, 당료(堂寮) 25동, 누문(樓門) 31동 등 모두 65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전쟁중에 불타고 현재는 대웅전․원통전․팔상전․천불각․장경각․강선루(降仙樓) 등 크고 작은 20여 동의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1호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팔작(單層八作)지붕으로 조선 중기 이후의 건물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웅전 앞에는 보물 제395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1기가 있고, 입구의 돌다리인 승선교(昇仙橋)는 보물 제40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0호인 금동향로 1기가 있다. 그 밖에 부도 2기가 경내에 있는데, 특히 조선 후기의 특성을 간직한 사자탑인 화산대사사리탑(華山大師舍利塔)이 주목을 끕니다.그럼 본격적으로 선암사의 문화재에 대해서 소개해보겠습니다.


  선암사승선교 ( 仙巖寺昇仙橋 )

전라남도 순천시(順天市) 승주읍(昇州邑) 죽학리(竹鶴里) 선암사 입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조홍교(石造虹橋). 길이 14m, 높이 7m, 나비 3.5m. 기다란 화강암으로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연결하여 반원형의 홍예를 쌓았는데, 돌을 연결한 솜씨가 정교하여 홍예 밑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게 조각된 둥근 천장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홍예를 중심으로 좌우 계곡 기슭까지의 사이에는 둥글둥글한 냇돌을 써서 석벽을 쌓아 막았다고 합니다. 다리 좌우의 측면석축도 난석(亂石)쌓기로 자연미를 그대로 살렸으며 원형을 잘 지니고 있습니다. 기단부에는 아무런 가설도 없이 자연암반이 깔려 있어 홍수에도 안전하다고 합니다. 홍예 한복판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밑으로 삐죽 나와 있어 석축에 장식적 효과를 주고 있는데, 예부터 이것을 뽑아내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 다리는 임진왜란 뒤 선암사를 중건할 때 가설한 것으로, 호암대사(護巖大師)가 관음보살의 도움을 입어 세웠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


  선암사삼층석탑 ( 仙巖寺三層石塔 )

                                                선암사는 넓은 사찰입니다. 넓은데 오밀조밀, 아기자기하며, 어느 건물 하나 특색 없는 것이 없으며, 커다란 대웅전 하나에 다른 것은 곁다리로 붙어있는 듯한 느낌도 주지 않습니다.

무게중심이 골고루 배분되어 있어 경내를 둘러보는 것은 하나씩 하나씩 아름다움을 발견해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대웅전 앞에 있는 보물 제395호인 선암사삼층석탑은 전라남도 순천시(順天市) 승주읍(昇州邑) 죽학리(竹鶴里) 선암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입니다.

높이 4.7m. 대웅전 앞에 동서로 건립된 2기의 석탑 가운데 하나로 2층기단 위에 건립된 삼층석탑이다. 하층기단은 지대석(地臺石)과 중석(中石)을 같이 붙여서 짰고 중석 각 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 하나씩을 모각하였습니다. 갑석(甲石)은 윗면에 경사가 있고 중앙에는 호형(弧形)과 그 상하에 각형(角形)을 붙인 3단의 굄이 있습니다. 상층기단 중석은 각 면에 우주와 탱주가 하나씩 모각되었으며, 중석은 밑에 부연(副椽)이 있고 윗면은 약간 경사진 가운데 하층기단 갑석과 같은 형식의 3단탑신굄이 있고 추녀가 약간 반전되었습니다. 탑신부는 옥신석(屋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1석씩이며, 각층 옥신에는 우주형이 모각되었으나 장엄조각은 없습니다. 옥개석은 처마밑이 수평이고 받침수는 각층 4단씩이며, 낙수면 정상에는 각각 각형 2단의 옥신받침이 있습니다. 이 탑은 규모는 크지 않으나 전형적인 신라시대 석탑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습니다. 건립연대는 9세기 무렵으로 짐작됩니다. 

       

      선암사대웅전 (仙巖寺大雄殿)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의하면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 아도화상이 비로암으로 창건하였던 것을 그후 도선국사가 중창하여 선암사라 개칭하였고,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여 이 사찰은 법당 13, 전각 12, 19암자 등 대가람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들 대가람은 정유재란 때 대부분 소실된 것으로 보이며 그후 현종 1년(1660) 경잠, 경준, 문정 등 3대사가 대웅전을 중수하였습니다. 현존 대웅전은 상량문이 발견되어 순조 24년(1824)에 중창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보물 제1311호인 선암사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 무고주 5량가이며 자연석 기단위에 놓인 초석은 주좌가 있는 초석과 덤벙주초가 혼용되었고 그 위에 세워진 기둥은 민흘림기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면에는 모두 궁창판이 있는 4분합의 빗살문을 달고, 양측면의 남측 협칸에만 출입문을 달아 벽체로 마감하였고 후면 중앙에만 2분합의 세살문이 있고 나머지는 벽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건물 내부로는 모두 우물마루가 짜아졌으며 어칸의 후면으로 불단을 놓아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는데 석가모니불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기둥위에 짜아진 포작은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라 창방과 평방을 놓고 그 위에 전후면에는 각 3조씩, 양측면에는 각 2조씩의 주간포를 배치하였으며 첨차는 교두형(翹頭形)이지만 내외살미는 외부에서 앙서형을 이루고 내부에서는 화려한 연봉형장식으로 마감하였습니다. 포작은 외3출목(7포작) 내4출목(9포작)이며 조선 후기 건축에서 보이는 연봉장식 등의 요소가 두드러집니다.

선암사 대웅전은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랐지만 정면 기둥머리에 용머리 장식의 안초공 수법과 건물 내부에 연봉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하나의 계보를 이룬 부안의 내소사대웅보전(보물 제291호), 개암사 대웅전(보물 제292호)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화려한 건축양식과 가구의 수법 및 포작의 장식성이 뛰어나며 중건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선암사북부도 (仙巖寺北浮屠)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인데 보물 제1184호인 선암사북부도는 선암사 중심에서 북쪽으로 약 400m 지나 한적한 산중턱의 선조암이라는 암자에 세워져 있습니다. 3개의 받침돌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로 탑신(塔身)을 올려 놓았으며,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단은 아래받침돌에 사자상과 구름무늬를 조각했고, 가운데받침돌에는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으며, 윗받침돌에는 8장의 연꽃잎을 큼직하게 새겨 놓았습니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고, 앞뒷면에 자물쇠가 달린 문짝 모양을 새겨두었으며, 앞면 양 옆으로 인왕상(仁王像)을 배치했습니다. 투박해 보이는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큼직한 꽃장식이 솟아 있습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보륜과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있습니다. 이 부도는 사자상, 구름모양, 연꽃, 인왕상 등을 새긴 조각 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선암사동부도 (仙巖寺東浮屠)


선암사 무우전 뒷편의 능선을 따라 동북쪽으로약 200m 올라가면 보물 제1185호인 선암사동부도가 보이는데, 사찰 안에 있는 3기의 고려시대 부도 중 하나로, 규모가 크고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진 모습입니다.

기단부(基壇部)는 8각의 바닥돌 위에 안상(眼象)을 새긴 괴임대를 마련하여 구름무늬를 조각한 아래받침돌을 올려 놓았습니다. 가운데받침돌과 윗받침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물결무늬와 연꽃무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탑신(塔身)의 몸돌은 윗부분이 좁아진 사다리꼴

모양으로,앞면에는 봉황이 새겨진 문의 양 옆을 지키는 인왕상(仁王像)을 새겨 두었고, 뒷면에는 문고리가 달린 문짝을 조각해 두었습니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꽃장식이 달려있다. 꼭대기에는 갖가지 모양의 머리장식이 차례로 놓여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8각 부도 양식을 착실하게 따르고 있는 작품으로, 각 부분의 만든 솜씨들로 보아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선암사대각암부도(仙岩寺大覺庵浮屠)


선암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5년(875)에 도선이 창건하였고, 고려 선종 6년(1088)에 의천에 의해 대규모로 다시 지어졌습니다. 이 부도는 대각국사 의천이 선암사에 딸린 암자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하여 대각암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8각 부도로, 3개의 받침돌로 이루어진 기단(基壇)위에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얹어 놓았습니다. 기단에서 아래받침돌은 옆면에 구름무늬를 새겨놓았고, 가운데받침돌은 각 면에 1구씩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다.윗받침돌에는 8장의 연꽃잎이 둘러져 있습니다. 탑신의 몸돌은 각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떠 새겼으며, 앞뒷면에 자물쇠가 달린 문짝모양을 새겨 두었습니다. 지붕돌은 평평하고 투박한 모습으로, 경사진 면의 모서리는 굵직하고, 그 끝마다 큼직하게 솟은 꽃장식이 달려 있습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과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 등이 차례로 올려져 있습니다. 조각수법과 지붕돌 형태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이상으로 선암사의 문화재에 대해서 알아보았고,이와같이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이 깃든 문화재들을 잘 보존하여서 후세에까지 계승되어 나가길 간절히 바라며,또한 저 역시도 우리문화재를 바로보는 안목을 구비하고 우리 것에 대해 많이 배우려는 자세를 숙지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