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박 3일로 다녀온 전남 답사는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전남지방의 주요 문화재와 장소를 들를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말로만 듣던 명소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시간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좋은 여러 곳들이 아직도 기억에 나지만 화엄사는 문화재도 많고 볼거리도 많은 장소였던 것 같다. 화엄사는 지리산에 있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사찰 중 하나로 알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화엄사는 엄청난 규모와 수많은 문화재가 즐비한 곳이다. 또한 지리산의 아름다운 산세 역시 화엄사의 장관이 더 멋있게 보여주고 있다.

 화엄사의 창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사적기에 따르면 544년(신라 진흥왕 5)에 인도 승려 연기가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는 시대는 분명치 않으나 연기라는 승려가 세웠다고만 전하고 있다. 670년(신라 문무왕 10)에는 의상대사가 화엄10찰을 불법 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이 화엄사를 중수하였다. 그리고 장륙전을 짓고 그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을 둘렀다고 하는데, 이때 비로소 화엄경 전래의 모태를 이루었다.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중수하고 고려시대에는 4차례나 중수하여 보존되고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소되었다. 하지만 조선 인조때 벽암대사가 크게 중수를 시작하여 7년 만에 몇몇 건물을 건립, 폐허된 화엄사를 다시 일으켰고, 그 뜻을 이어받아 계파는 각황전을 완공하였다고 한다.

 화엄사의 문화재로는 국보급은 물론, 수많은 유물, 유적들이 보존되고 있는 사찰이다. 특히 화엄사 4사자상은 화강암으로 만든 이 탑은 절 서북쪽의 높은 대지에 석등과 마주보고 서 있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얹은 후 꼭대기에 상륜부를 얹어놓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지대석 위에는 높직한 3단 받침이 있고 하층 기단의 면석 각면에는 탱주가 없으나 그 대신 3구씩의 안상을 음각하고 그 안에 천인상을 1좌씩 12구를 양각하였다. 상층 기단에는 우주 대신 연화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은 암수 2쌍의 사자를 지주 삼아 네 귀에 배치하였다. 사자들이 에워싼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 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하며,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사자의 두부에는 연화대가 있어 이것들이 갑석을 받치고 있다.

어느 절에서나 그 저마다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는 대웅전이지만 대웅전 화엄사의 대웅전을 살펴보면 조선 인조 때 건립된 대웅전은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현존하는 화엄사의 당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다전의시 중것한 것 이다. 대웅전 현판은 36년 선조의 여덟째 아들 의창군이 썼으며, 대웅전앞에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석단과 대석계가 있고


전면 주간에 각각 세 짝으로 된 문짝을 달았으며 그 위로 교창을 냈다. 공포는 3출목으로 되었고 불단 후면에 3개, 불단 전면 좌 ·우에 2개의 높은 기둥을 배치하여 대들보를 받쳤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불단 위에는 비로자나불을 비롯하여 3구의 금동불을 안치한 것을 볼 수 있다.

 각황전은 터에 3층의 장륙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파괴되어 그 조각들을 절에서 소장하고 있다. 각황전의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5칸으로 되어있으며 양식은 중층 팔작지붕다포집형식이다. 원래는 장륙전이라는 이름이었으나 숙종이 사액하여 각황전이라 하였다고 한다. 대석조 기단 위에 선 웅장한 건물로 기둥머리에 창방을 끼고 그 위에 평방을 둘렸다. 평방위에는 기둥위와 주간에 공포를 올렸으며 공포는 대웅전의 경우 3출목을 하고 있지만 각황전은 상하층 모두 2출목으로 되어있다. 천장은 우물 정자 모양이고 벽쪽 사방에는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각황전의 건축기법은 매우 우수하여 건축 문화재로 평가 받는데 손색없는 건물이라 말할 수 있겠다. 

 괘불탱은 불화로써 석가모니불의 설법장면을 묘사한 군집도 형식의 영산회상도로 조선 1653년(효종 4)에 제작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 괘불의 크기는 11.95×7.76m이며, 마 바탕에 채색되었다. 전체적인 화면구성은 석가모니불과 문수 · 보현보살이 중심에 삼각형으로 배치되었고 그 아래에는 지국천왕과 증장천왕 등 사천왕 중 이천왕이 서 있다. 이들 사이에는 예배단이 있고 그 위에 향로를 봉안하였으며, 부처의 머리 좌우에는 10대제자와 2구의 분신불이 있고 그 좌우 상단에는 다문과 광목 등 사천왕이 배치되었다.

 본존불은 중앙에 높다랗게 마련된 단의 연화좌 위에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키모양 광배를 지닌 채 좌우 협시보살과 함께 삼존상 중심에 있다. 그러나 하단부에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는 사천왕상 두 구와 더불어 오존도처럼 구성되었으며, 사천왕 중 나머지 두 구를 화면 상단 좌우에 그려 놓아 네 모서리를 지켜주는 것과도 같은 특징을 보여준다. 본존불을 비롯한 각 상들의 형태는 균형잡힌 모습으로, 둥근 얼굴에 어깨 또한 동그스름하게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원만한 느낌을 주며, 각 상은 커다란 눈에 작은 코와 입, 기다란 귀를 하고 있다. 육계가 뾰족해진 석가불의 머리에는 중앙 계주와 정상 계주가 뚜렷하며, 커진 화면과는 달리 사용한 필선은 섬세하고 치밀하여 각 상에 개성과 함께 세련미를 더해주고 있다. 홍색과 녹색 위주의 색조는 밝고 화사한 중간색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은은하면서도 화사한 느낌을 주며, 특히 화려한 채색무늬와 금색무늬는 한층 화려함을 더해준다. 전반적으로 늘씬하고 균형 잡힌 형태에 치밀하게 장식된 꽃무늬와 작고 둥근 꽃무늬, 밝고 선명하며 다양한 색채 등은 17세기 중엽의 불화에서 보이는 양식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답사를 하는 동안 피곤하기도 하였지만 너무나도 좋은 경험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재미 덕분에 힘든 일정을 무사히 끝마칠수 있었던 것 같다. 너무 많은 좋은 명소들을 들른 이 경험과 기분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전남지방의 명소들을 구경해 보고 싶다. 너무 감명깊게 본 여러 명소들을 기억속에서 쉽게 잊을수는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레포트를 준비하면서 다른 여러 가지 소홀히 할 수 없는 문화재들도 있지만 간략하게 정리하기 위해서 몇가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하지만 내가 정리한 이것이  예전에는 미쳐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 만에 위안을 삼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