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기행을 마친 후.......





원광대 인문학부 사학전공

20030386 이민희      





-목차-

서론 

본론

1)전라남도 지역 개관

2)운조루에 대해서..

3)그밖에 문화 지역

결론




서론

대학이란 낯선 곳에 들어온지도 벌써 1년이란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개강한지도 벌써 한달이 다 되어 가는데 대학이란 곳에 처음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 그  설레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세부 전공이 나뉘어 지고 사학과라는 테두리 안에서 첫 답사를 가게 되었다.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 된 나의 첫 답사.........

처음으로 가는 답사라서 그런지 설레이기도 하였지만,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까봐 하는 두려움도 생기며 여러 가지의 감정이 교차 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교수님과 친구들과 함께 2박 3일 동안 바쁜 일정을 잡아 첫 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본론

우리가 처음으로 답사를 가게 된 지역은 전라남도지역이다. 전남의 주요 역사지를 돌면서 새로운 곳을 보고 또 가보았던 곳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1)전라남도 지역 개관...


전라남도는 현재 한반도의 남서단에 위치하고 있는 도

인구는 205만 4204명이며 인구 밀도는 171명/㎢이다. 전라남도의 행정구역은 2003년도의 조사로 보아 5시 17군 31읍 198면으로 구성 되어있다.

전라남도의 연혁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땅으로 백제의 영토가 되었다가, 신라 말 견훤이 후백제를 세워 고려가 멸망할때까지 후백제의 영토가 되었다.983년(고려 성종 2) 전국을 12목으로 나눌 때 나주목(羅州牧)․승주목(昇州牧)의 관할이었다가, 995년 전국을 10도로 개편하면서 해양도(海陽道)라 하였다. 1018년(현종 9) 전국을 5도 양계로 개편하면서 강남도(江南道;지금의 전라북도)와 함께 전라도라 하였다. 조선시대 인조와 영조 때 전라도를 전광도(全光道)라 하였고, 1895년 23부제 실시에 따라 전주부(全州府)․남원부(南原府)․나주부(羅州府) 등으로 나뉘었으며 이듬해 13도제 실시로 노령(蘆嶺) 이남의 땅을 전라남도라 하여 광주에 도청을 두었다.

문화재로는 송광사국사전(松廣寺國師殿, 국보 56)․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국보 35) 등 국보 16점, 보물 102점, 사적 34개소, 천연기념물 42점, 명승지 5개소, 무형문화재 32점, 중요민속자료 32점 등 국가지정문화재 246점, 도지정문화재 558점이 있다




2)운조루에 대해서...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각..

운조루는 중요 민속자료 제 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 영조 시대 경북 대구태생의 유이주(1726~1797)가 낙안 군수로 있을 때 건축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창건 배경→운조루는 유이주라는 인물이 건축적 기본 소양과 재력을 받침으로 창건한 것으로 금한 낙지(천정에서 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형상)의 명당에 99칸의 집을 짓고 그 일가들을 모여 살게 한 곳이다. 운조루라는 택호는 “구름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라는 뜻과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 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는데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에서 첫머리인 운(雲)과 조(鳥)를 따온 것이다.

gis편 운조루 창건 과정에서 운조루가 명당의 증거라는 사건이 발생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집터를 잡고 주춧돌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파는 도중에 부엌자리에서 어린아이의 머리 크기 만한 돌거북이 출토 되었는데 이는 운조루의 터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금귀몰니(金龜沒泥)의 명당을 입증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이 돌거북은 운조루의 가보로 전해져 오다가 1989년 도난당했다.

운조루의 건립게획이 본격화되고 아울러 터를 잡기 시작한 연도는 177년으로 유이주가 낙안군수로 있던 시절이다. 운조루의 건축계획이나 규모 등 전반적인 사항은 유이주가 관계하였으나 실제 현지에서 운조루를 짓는 작업은 아들 덕호(德浩)가 감독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운조루의 조영에 있어 배치 개념은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의 유교적 사고체계에 따라 이루어졌다 즉 남․ 여의 구분과 주․종관계 그리고 주자가례에 따른 조상 숭배 개념이 조영의 규범으로 자리하고 있다.

또한 운조루의 경역은 남향으로 자리한 평탄한 방형의 형태로서 중앙으로 가옥의 기본이 되는  사랑채와 안채가 자리하고 있으며 사당은 안채 동쪽의 약간 위쪽에 별도의 담장으로 구획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사랑채→3채가 있는데 큰사랑은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높이 약 1.2m의 축대 위에 있으며, 중문쪽이 온돌방 가운데가 마루방 서쪽 끝이 누마루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사랑체에 난 중문간과 연결되어 대지의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안주인이 거처하는 공간과 곡간 등이 서로 연결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ㅁ자형”배치구조는 18C경 영남지방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배치규범이 되는 유형으로서 건축주인 유이주가 영남태생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무노하의 연계성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높이 약 60㎝의 활석을 쌓아 올린 기단 위에 있으면 마루 끝에 선 것이 지름 약 2.3m의 둥근 기둥이며 다른 것은 모두 모난 기둥이다. 안채 남동쪽에 사당이 있으며 맞배지붕 출처마집이다.

그 밖에 대문과 행랑채 남쪽 마당 건너에 연당이 있는데 원래는 약 200평 되던 것이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으며 연당은 맞은편에 보이는 오봉산(五峰山) 삼태봉(三台峰)이 화산이어서 화기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또한 운조루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은 ‘누구나 열어 쌀을 퍼 갈 수 있다’라는 의미의 “타인능해 ”글귀를 새겨 넣은 뒤주이다. 99간의 대저택이었던 이 곳 사랑채와 안채의 중간 지점에 곳간 채가 있고 그 곳간 채에 지금도 쌀 뒤주가 하나 놓여져 있다. 둥그런 통나무의 속을 비워 내고 만든 뒤주라서 네모지지도 않고 둥그런 원목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뒤주의 특이한 장치는 하단부에  가로 5㎝ 세로 10㎝ 정도의 조그만 직사각형 구멍을 만들어 놓구 그 구멍을 여닫는 마개에다가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를 새겨 놓은 것이다. ‘다른 사람도 마음대로 이 구멍을 열 수 있다’라는 의미로 이 뒤주는 누구라도 와서 쌀을 마음대로 퍼 갈수 있는 뒤주인 것이다. 유씨 집안에서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베풀기 위한 용도의 뒤주였다. 보통 가난한 동네사람들이 주로 대상이었고 그 외에도 운조루를 찾아오는 지리산 일대의 과객들도 조금씩 쌀을 가져가곤 하였다.

또 하나 운주로에서 유명한 장소는 굴뚝이다. 운조루는 다른 집에 비해서 굴뚝이 아주 낮게 설치되어 있다. 굴뚝의 높이는 1m도 되지 않는 낮은 굴뚝이다. 건축적으로 볼 때  굴뚝이 높아야 연기가 술술 잘 빠지게 되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낮게 설치한 이유는 밥하는 연기가 높이 올라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굶고 있는 사람들이 부잣집에서 펑펑 올라가는 굴뚝의 연기를 보면 자연히 증오와 질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배려하기 위해서 낮은 굴뚝을 지게 되었다.

 



3)그밖에 문화 지역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이라 불리는 담양의 소쇄원, 장흥에 위치해 있는 보림사의 동부도 그리고 한국의 전통적인 시골마을의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순천의 낙안읍성..

익숙하지만 승보사찰로 유명한 송광사 국보 제 53호의 연곡사 동부도 그리고 제가 발표한 구례의 운조루 등 ....전남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많은 국보 보물 중요 민속 자료 등이 많이 있는 곳이다.


결론

운조루가 아직까지 많은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명당 중에 명당에 집을 지었다는 것도 있겠지만...우선 건축적인 면을 볼 경우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충실하게 따른 역사적 유물로도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굴뚝이나 뒤주에서 배울 점도 많은 것을 느꼈다. 아무리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지만, 굶주리고 가난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의 양식을 나눠주고 그리고 굴뚝을 낮게 지을 만큼 배려심을 가진 양반임을 다시 한번 알 수 있게 되었다.

2박 3일동안 짧은 일정에서 많은 곳을 돌아보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곳을 알게 되며 그리고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알지 못했던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 답사는 준비 위원이 되어서 이것을 바탕으로 좋은 답사가 되길 .....

간절히 소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