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려   청   자


03학번 김근애


   * 목 차 *



1.고려청자의 역사


2.고려청자의 특징


3.고려청자의 문양


4.고려청자의 제작과정


5.중국청자와의 차이점

 



1. 고려청자의 역사

 

 ․청자란 무엇인가?

   청자는 투명하고 신비로운 비취색을 띠는 자기로서 한국에서는 이미 12세기에 빛깔이나 형태, 문양에서 최고의 품격으로 전성기를 이루었다. 청자의 재료가 되는 흙은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인데 이 백토로 그릇을 빚은 후 철분이 1~3%정도 함유되어 있는 유약을 입혀 1300도 정도의 온도에서 구워낸 것이 청자이다. 유약의 색은 초록이 섞인 푸른색으로 백토를 구웠을 때 나타나는 옅은 회색과 어울려 청자의 색은 투명한 비취빛을 띠게 되는 것이다. 흙이나 유약등 재료가 시대나 지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청자는 그것을 만든 시기나 지방에 따라 빛깔이나 품질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 11세기 전반

   10세기 말에서 11세기에 들어서면서 고려의 도자 기술은 바야흐로 숙련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기형이 다양해지고 종전의 기형에 변화가 있으며 문양 표현기법과 내용이 다양해졌다. 대접의 경우 주종을 이루던 월주요식의 굽다리 밑이 넓고 측사면이 직선인 형식이 굽다리 밑이 좁아지며 대접이 우묵해지고 측사면이 완만한 내경된 곡선을 그리다가 구연부에서 약간 외반되는 형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또 내면 구연밑이 외반되기 시작하는 곳에 한 줄의 음각대선이 생겼다. 초기 청자 시기의 병, 주전자 등은 금속기에서 영향을 받았던 각 부위가 예리하게 꺾이는 강인한 형태에서 점차 모든 부위가 도자기의 특색이 나타나는 유연한 곡면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음각문양은 가늘고 부드럽게 세련되고 국당초문, 파어문, 앵무문 등 그 종류가 다양해지며 양인각문이 많이 등장했다.

    

․11세기 후반, 12세기 초

   이상과 같이 긴 숙련기를 거쳐서 고려의 도자기는 11세기 중엽부터 고려적인 세련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청자, 백자의 기형과 의장(意匠)에 유연한 곡선 주조의 고려적인 풍모가 정착하기 시작하였으며 유약․태토의 질과 번조 기술, 문양 표현 기법과 문양 자체가 또한 진일보하였던 것이다. 청자의 기형에서 일부 금속기를 모방한 주전자와 광구병 등은 중국의 영향이 남아 있으나 대접, 접시 등 일반 기명들은 구연이 유연하게 외반되는 등 유려한 명이 더 발전되어 단정한 가운데 예리한 맛이 깃들여 있다.

   문양은 상감 기법의 시도가 조금씩 늘어나고 음각과 양각이 예리해지며 특히 양인각이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11세기 말경에 이르면 요주요식의 각개 문양의 주연을 날카롭게 부각시키는 방법은 점차 사라지고 문양의 부조가 아주 낮아지면서 부드러운 문양이 된다. 또한 각개 문양의 중심 부위가 더 두드러지면서 그 문양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그 주위를 음각으로 마무리하는 새로운 방법이 시도된다. 문양 표현과 소재도 공예 의장화된 당초문 위주에서 운학문(雲鶴文)과 작약문(芍藥文), 쌍룡문(雙龍文), 연동자문(連童子文), 연지문(蓮池文), 모란당초문(牡丹唐草文) 등 주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동식물의 사실적인 문양 구성이 주류를 이루며 전시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사실적이거나 상징적인 동식물을 상형화한 청자가 많아지고 기형도 공예적으로 세련화 되어가기 시작하였다. 

   11세기 후반기이래 생동감이 넘치면서 유연한 세련을 거듭하여 온 청자와 백자는 유약과 태토 모두 차원을 높여서 한층 정치해졌다. 이것은 비단 도자기뿐만 아니라 이 무렵 모든 고려 공예와 회화 그리고 인쇄술의 발달 등과 견주어 보아도 발전한 것이며 고려 자기는 기형과 의장 등 조형 감각과 기술에 분명한 독창적인 고려화의 경향을 짙게 나타내게 된 것이다. 병, 주전자 등 큰그릇의 굽을 깎는 방법과 번조 때 굽 밑 유약을 훑어 내리고 눈을 받치는 방법도 가능한 한 단아하고 깨끗하게 하였다. 눈을 받치는 방법은 11세기 중엽까지는 굽 밑과 그 안쪽 바닥의 유약을 훑어내고 내화토눈을 위주로 하였으며 11세기 후반부터 항아리, 병, 주전자, 화분 같은 큰그릇은 내화토와 가는 모래비짐눈을 받쳐 번조하였으며, 대접, 접시 등 작은 그릇과 큰 그릇 가운데 특별한 것은 굽과 안쪽 바닥의 유약을 그대로 두고 규사눈(硅砂目)으로 번조하는 새로운 기법이 등장하였다. 이때 굽은 작고 예쁘게 깎고 굽 밑까지 빈틈없이 시유하고 유약을 그대로 둔 채 규사눈 3 내지 5개를 받쳐 번조한 뒤남은 흠자국을 극소화시켰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병, 항아리 등 커다란 그릇은 내화토와 모래비짐눈으로 번조하였으나 굽 밑은 이전보다 깨끗하게 정리하였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에는 초기 청자 가마가 많다. 그 대표적인 가마는 전남 강진군 대구면(大口面)과 칠량면(七良面) 일대에 있으며 이밖에 평안남도 강서군 잉차면(芿次面) 이리 사기동(沙器洞), 황해남도 봉천군 원산리(圓山里),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원흥리(元興里),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釜谷里),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放山洞),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서리(西里), 충남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梧沙里), 충남 보령시 천북면 사호리(沙湖里), 전북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道通里), 전북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龍溪里), 전남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雲袋里) 등이다.


2. 고려청자의 특징

   섭씨 600내지 800도의 낮은 화도로 산화 번조 상태에서 구워낸 토기[옛날 우리 표기는 와기(瓦器)]에서 고화도(섭씨1,100내지 1,200도) 환원 번조의 도기(陶器)-일본에서는 석기(石器)라고 한다. 단계에 이르면 가마에서 자연히 생겨나는 재티가 고온의 토기 표면에 내려앉아 태토에 포함되어 있는 규사질과 합쳐져 녹아 붙어 회유(灰釉)계의 자연유(自然釉)가 된다. 이러한 자연유의 성분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을 잿물[釉藥․灰釉]이라 한다. 이 잿물을 토기 표면에 인공적으로 바르거나 가마에서 구울 때 일부러 재를 날려 재티가 토기 표면에 많이 내려앉게 하여 고온에서 구워내면 회유 토기(灰釉土器)가 되는데 이 회유 토기가 청자 발생의 시초이다. 고려청자는 도자기기술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는 신비의 색깔과 선의 아름다움, 그리고 섬세하고 세련된 문양의 조화로 그 예술적 가치를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어느 정도 우리 문화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일반화된 상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표현해 보라고 하면 쉽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또 청자색에 대하여 감상적 표현을 말하라고 하면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어렵다. 청자란 글자가 지닌 뜻으로 풀이해 보면 푸른 빛깔의 자기그릇이다. 그런데 청자에서의 청색이라는 색의 정의가 막연하다. 자연과 도공의 혼이 어루러져 나타나는 청자의 색을 어떤 사람은 푸른 하늘의 색에 비유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먼산의 푸르름에 비유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깊은 물의 색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평소 청자를 잘 몰랐던 사람들도 청자를 곁에서 보면 무언가 신비스러움에 도취되고, 그윽한 색깔과 청아함, 섬세하고 다양한 무늬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게 된다. 어쩌면 이런 것이 청자가 지니고 있는 신비함이요, 아름다움이요, 가치일지도 모른다. 청자문화의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중국에서까지 자기 나라의 청자를 제쳐두고 고려청자를 천하에서 제일 귀하고 값진 것 중의 하나로 지목한 바 있어 고려청자의 예술적 가치를 가름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천년이나 지난 오늘날의 우리에게 까지도 그 신비스런 아름다움과 예술적 감각을 공감하게 하는 고려청자는 인간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예술품이며 한국문화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단군 숭배의 전통적인 토속 신앙과 불교, 노장, 풍수도참 사상 등을 배경으로 청자를 주로 생산하였고 세련시켜 12세기 전반에 비색 순청자로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특색을 나타냈고 12세기 중엽에 유약을 맑고 밝게 발전시켜 청자 상감으로서 다시 한번 꽃을 피웠다. 토기에서 청자로의 이행은 인류 문화 발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나 고려 도자기 가운데에는 청자가 특히 많이 생산되었다.

   고려청자에는 자연의 향기가 넘쳐흐른다. 은은하면서 맑고 명랑한 비색, 조각도의 힘찬 선을 지니고 기물과 일체가 된 시적인 운치가 넘치는 회화적인 상감문양, 유연하고 유려한 선의 흐름을 지닌 형태, 구리의 붉은색을 세계최초로 개발하였으며 이를 한두 점 악센트로 사용하는 이외에는 모두 담담하게 표현하는 점등이 그 특색이며 아름다움이다

 

3. 청자의 문양

  (1) 모란문

    모란문이란 모란을 소재로 나타낸 장식무늬로 한국에서는 고려시대 이후에 성행하였다. 고려자기의 모란문은, 초기에는 중국도자기의 모란무늬와 같은 회화적인 형식이었으나, 차츰 절제와 화분형식 등의 관념적인 무늬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당초문과 결합된 모란당초무늬를 철사물감으로 활달하고 자유롭게 그린 회화적인 무늬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에도 시원스러운 철사모란무늬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모란무늬가 특징적이며, 백자에서는 매우 사실적인 투각모란무늬가 항아리 등에 가득 새겨지고 있다.


  (2) 당초문

    당초문이란 식물의 형태를 일정한 형식으로 도안화시킨 장식무늬의 일종으로 당초는 당풍 또는 이국풍의 덩굴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덩굴이 어지럽게 엉킨 듯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이 특징적이다. 한국 미술에서는 당초문은 고대미술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는 각종 불교미수에 나타나고 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도자기 장식에 널리 사용되었다.


  (3) 장식기법

    상감기법은 빚은 도자기의 표면에 문양을 음각하고 그 음각 부분에 다른 빛깔을 나타내는 이물질을 채워 넣어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으로 세계도자사상 독보적인 장식 기법이다. 상감기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그릇의 형태를 빚어 반쯤 마른 상태일 때 칼로 문양을 파낸 다음 그 파낸 흠에 백토니 또는 자토니를 붓으로 발라 메워 넣는다. 이것이 완전히 마른 다음 겉에 묻은 이토를 깍아내고 문양이 드러나게 하여 초벌 구이를 하고 그 위에 유약을 입혀 재벌구이를 하면 백토니는 하얀색으로 자토니는 검은색으로 문양이 나타나며 유약을 통해 더욱 맑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고려인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독보적인 장식기법으로서 고려 상감청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4. 고려청자의 제작과정

    청자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정성과 정밀을 요하는 작업이다. 흙을 수비(水飛)하여 성형, 정형, 조각, 장식, 시유, 소성 등을 거쳐 완성품이 되기까지는 무려 60~70일 정도가 소요되며, 소성과정에서는 초벌은 800℃, 본벌은 1,300℃의 열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주야간 이틀 이상을 연속 불을 지펴야 한다. 또 신비스러운 비색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불과 태토(胎土)와 유약의 3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되고, 가마 내에서 불의 작용과 기상 조건에 따라 변화무쌍한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청자를 제작하는 어려움은 이루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어느 한 부분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전체적인 균형미를 잃게 되는 것이 청자이다. 그래서 청자 제작이 어렵다고 한다. 청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하여 제작된다.

▷  점토선정 및 수비 - 성형 - 조각 - 건조 - 초벌구이 - 시유 - 본벌구이 - 상회구이


5. 중국청자와의 차이점

  고려청자는 중국 청자(신안출토 중국도자기 또한 마찬가지이다.)와는 다른 독특한 푸른색인 비색을 띠고 있다. 겉면에 무늬를 새기고 거기에 금, 은, 자개 등을 끼워 장식하는 상감기법은 세계 도자기의 중심지였던 중국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성을 자랑한다. 고려청자와 같이 1100℃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지는 경질자기는 당시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만 생산되었다. 원료, 유약, 불의 세기 등을 완벽하게 조절해야 은은한 비색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도자기 기술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하자면 청자의 발생이 중국청자의 영향으로부터 왔지만 고려청자는 은은한 비색(翡色)의 색조, 부드러운 곡선적 기형이 풍기는 세련된 아름다움, 상감기법(象嵌技法)이라는 독창적 기술의 발명, 도자기사상 진사(辰砂)를 최초로 사용한 점등에서 중국청자와는 엄연히 구별되는 독창적 세계를 이루었다. 또 중국 청자의 기술상 완벽성 대신 고려청자에는 개개의 작품마다 개성과 생명력이 있으며, 또한 고려인들의 시정(詩情)이 곁들여져 있다. 중국청자가 색이 진하고 유약이 두껍고 불투명하며 기형이 예리한 반면 고려청자는 맑고 투명한 비색이며 유리한 선의 흐름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세계 최초의 상감문양 기법과 환원번조에 의한 붉은색을 내는 구리의 발색기법을 창안해 냈다. 즉 아름다운 문양과 빛깔 그리고 중국의 완전대칭과 틀린 약간의 부조화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의 극치는 세계적 자부심이고 앞으로 계승해야할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