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松廣寺)

 

  - 우리나라 3보 사찰 중의 하나.

 

 법보사찰인 합천 해인사, 불보사찰인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송광사는 승보사찰로서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로 꼽힌다. 송광면 신평리에 위치한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선사가 창건했고 고려명종 29년인 1197년 보조국사 지눌이 중건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나라의 크고 작은 전란을 겪으면서 옛 절간의 모습이 많이 소실되고 지금은 스믈 여섯채만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6.25때 소실된 가람들이 많이 복구되어 70여동에 이르는 가람들이 웅장하게 골짜기를 메우고 있다.

 옛날의 절 규모가 어떠했는지는 승보전 한켠에 남아있는 '비사리 구시'를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비사리구시'는 한꺼번에 4천명분의 밥을 담아둘 수 있을 만큼 크다.

 국사를 16명이나 배출한 송광사 경내에는 많은 문화재들이 남아 있는데 고려시대 고종임금이 혜심에게 내렸다는 제서교지와 고려시대 노비문서와 하사당, 나무를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조각해 만든 삼존불감, 역대 국사의 영정을 모셔놓은 국사전제, 약사전 영산전등을 비롯한 13점의 보물들,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우화각등이 볼만하다.

 

 송광사의 또 다른 특이한 볼거리는 바로 땀흘리는 부처님. 이 불상은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라치면 두세달 전부터 온몸에서 비오듯 땀을 흘린다고 전해진다.

 주지스님 말씀에 따르면 1986년 불상에 다시 금색을 입힌 뒤 다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도 하는데 과학적인 설명은 할 수 없는 상태다. 다만 큰 일이 일어나니 미리 준비하라는 부처의 계시쯤으로 받아들인다 한다. 이 불상은 우리나라 실내 삼존불로서도 으뜸이다.

 송광사에 딸린 천자암 뒤뜰에는 수령이 7백년이나 된 쌍향수가 있는데는 지눌과 당나라 담당왕자가 꽂은 지팡이가 뿌리를 내려가지가 생기고 잎이 나고 꽃이 피어 그대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흔히 삼보 사찰이라하여 불,법,승을  상징하는 성지처럼 인정받는 곳이 있으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통도사(불),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법), 그리고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16국사와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송광사(승)를 이름이다. 

 또 덕유산, 추월산, 무등산과 더불어 호남 4대 명산이라는 조계산 자락에 그 터를 잡았으니 승보종찰로서의 송광사가 여러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함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일부에선 조계산 맞은편의 선암사를 더 쳐주기도 한다. 태고종 사찰이라 널리 주목받지 못한 탓에 고찰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한다. - 중생들이 더 쳐준다는 표현은 무얼 말함인지 웃음이 나오긴 하지만 )

 두 고찰 모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절이나 특히 송광사는 오래된 역사와 큰 규모에 걸맞게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3대 명물이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 첫째는 비사리구시. 270여년전인 1724년, 전북 남원시 송동면 세전골에 있던 싸리나무가 태풍으로 쓰러진 것을 조선 영조 이후 절에서 국재(國齋)를 모실 때 손님을 위해 밥을 저장했던 일종의 밥통이다. 천왕문 입구에 세워진 이 비사리구시는 약 쌀 7가마의 분량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하여 승보종찰로서의 송광사 규모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탱화전시관 바로 밑에는 비사리구시와 관련하여 당시의 거대한 규모를 짐작케하는 거대한 쌀뒤주들이 차곡차곡 여러개 쌓여져 있다.

 두 번째는 능견난사(能見難思)이다. 풀어보면 `능히 보기는 해도 그 이치를 생각하기는 어렵다`라는 뜻이다. 보조국사가 중국 금나라 황제 장종을 위해 갈 때 부처님 전에 올리던 그릇으로 본래 명칭은 옹기이다. 재료는 놋쇠로서 구경 21.5 cm, 높이 3.3cm, 두께 0.1cm 이며 이름에 따른 유래로는 조선 숙종이 이 그릇이 어느 순서로  포개어도 포개지는 사실을 신기하게 여겨 장인에게 만들게 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이와 똑같이 만들지 못해 이에 능견난사(能見難思)라는 어필제명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약 500여개였다고 하나 현재는 30여개가 남아 송광사 탱화전시관에 전시되어져 있다.

 세 번째는 쌍향수. 천연기념물 88호인 이 곱향나무는 높이가  12.5m, 가슴둘레 3.98m 로서 수령이 약 800년 정도 된다. 보조국사와 그의 제자인 중국 금나라 천자(天子)인 담당국사가 중국에서 짚고 온 지팡이를 꽂은 곳에서 자라났다는 설화가 내려져 온다.

 송광사는 약 1300여년전인 신라 말엽 혜린선사가 창건한 절이지만 고려중엽 보조국사가 크게 중창함에 알 수 있듯이 사찰 여기저기에  보조국사와 관련한 설화가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보조국사의 중창 이후 16국사와 많은 고승이 배출된 전통을 이어 오늘에도 종합수도원인 조계총림을 통하여 많은 스님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일반 대중들에게도 여름철 불교학교 등의 프로그램을 통하여 문호를 활짝 개방하고 있다.

 

 승보(僧寶) 사찰인 송광사는 법보(法寶) 사찰인 합천 해인사, 불보(佛寶) 사찰인 양산 통도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이다. 선암사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송광사는 눈으로 보는 사찰이라기보다는 가슴으로 느끼는 큰 절집 같다. 이런 때문인지 송광사는 지금도 조계종단의 교육기관이요, 선시의 요람이다.

  이름의 유래도 보면 ‘열여덟(十+八=木) 명의 어른(公)이 대를 이어서(木+公=松) 널리 불법을 펼칠(廣布) 터’이므로 ‘송광사(松廣寺)’라 했다고 하는데, 이는 송광사에서 열여덟 명의 국사가 나온다는 예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조선조까지 16명의 국사가 나왔으니 앞으로 두 명의 국사가 더 배출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승려들은 더욱 정진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 송광사의 자랑거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본거지였다는 것이다. 지운윤눌, 혜희 등의 승장들이 왜란 때 내륙지방의 승군 지역대를 통관하는 위치에서 송광사의 의승들을 지휘했다.

  오랜 전통이 살아 있는 송광사는 단일 사찰로는 국가지정문화재가 제일 많다.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 국사전(國師殿) 등 국보 3점과, 하사당(下舍堂), 약사전(藥師殿) 등을 포함해 13점의 보물을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전남지방 유형문화재 8점이 있다.

  송광사는 비가와도 각 전각의 처마가 연결돼 있어 비를 피해가면서 사찰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